<군과 영화> 밀 정
위국헌신 군인본분
밀정(The Age of Shadows), 2016 감독: 김지운/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신성록, 엄태구
|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얼마 전 산정호수 인근 도로를 지나다 맞닥뜨린 문구다. 도로 옆 군부대 입구에 부대 명칭과 함께 적혀 있었다.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치는 것이 바로 군인의 본분이라는 의미다. 안중근 장군이 1910년 3월 26일 순국일 아침 뤼순 감옥에서 일본인 헌병 간수가 내민 명주 천에 써준 글이다. 안 장군의 유훈은 청년 사관의 요람인 화랑대 교정의 비각에도 새겨져 호국 간성들의 혼을 일깨우고 있다.
영화 ‘밀정’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의열단의 이야기를 통해 그 헌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드러낸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한 호국 열사들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단체 활약 그려… 실제 인물 모티브
‘밀정’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의열단의 활약을 그렸다. 의열단원 김장옥(박휘순 분)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다 누군가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쫓긴다. 김장옥은 자신을 쫓는 무리 중에서 젊은 시절 함께 독립의 꿈을 키웠으나 이제는 일본 경찰이 된 이정출(송강호 분)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정출은 투항을 권유하지만, 김장옥은 끝내 자결하고 만다. 이정출은 경성에서 고미술상으로 활동 중인 김우진(공유 분)이 사건과 연결됐다는 걸 알아낸다. 이정출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으로부터 의열단원들이 중국 상하이에서 폭탄을 준비 중이란 정보를 입수한다. 이정출은 김우진의 환심을 사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을 잡으려고 한다. 김우진은 이정출의 속셈을 알아채고 상하이로 도피한다. 하지만 상하이의 의열단에는 이미 일본 경찰의 밀정이 있는 상태다. 정채산은 김우진에게 오히려 이정출의 민족의식을 자극해 이중밀정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상하이에서 우연히 만난 김우진과 이정출. 이들의 속고 속이는 포섭 작전은 누구의 뜻대로 될 것인가? 그리고 의열단원의 비밀을 누설한 밀정은 또 누구인가?
‘밀정’은 1919년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이야기에 기초한다. 의열단은 해외로 독립운동기지를 옮긴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무력에 맞서 더욱 조직적이고 강력한 투쟁을 하기 위해 조직했다. 의열단장 김원봉은 6년여에 걸쳐 대규모 암살, 경찰서·동양척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 투척 등을 배후에서 지휘했고, 이후 김구와 함께 공동으로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통신문을 발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당시 일제는 ‘김구’에게 60만 원의 현상금을, ‘김원봉’에게는 100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약 200억~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영화 속 김장옥이나 정채산은 실재 인물 김상옥과 김원봉을 모티브로 했다.
민족주의에 매몰될 수 있는 이야기, 감각적 영상으로 살려내
‘밀정’은 나라에 헌신하는 남녀의 강렬한 열망에 터를 잡는다. 거친 삶도, 외로움도, 배고픔도, 심지어 죽음도 마다치 않는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민족의식을 자극하기 마련인 기존 독립군 소재의 영화와 거리를 둔다. 작전을 꾸미는 과정도, 은둔하고 위장하는 현실도 근대 신사와 숙녀의 의식처럼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기존 영화가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영화 ‘아나키스트’)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영화 ‘암살’) 등의 대사로 의열단의 나라에 대한 헌신을 그렸다면 밀정에서는 행동과 다짐으로 표현한다. 김지운 감독은 애초 ‘제3의 사나이’(1949)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와 같이 서구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밀정’을 기획했다. 김 감독은 “국권 회복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던 의열단을 중심으로 만들었기에 영화가 차갑게 시작해 뜨겁게 끝났다”고 말했다.
나라 위해서 죽음에도 초연했던 선열들의 모습, 마음에 새겨야
‘밀정’이 말하는 나라에 대한 헌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일본 경찰이 폭탄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과 일제가 또 다른 공격이 무서워 떨고 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의열단원이 갇힌 감옥까지 전달된다. 간수가 전하는 소식을 듣고 이불 하나 없이 추위에 잔뜩 웅크린 채 마룻바닥에 몸을 눕히는 김우진. 그의 얼굴 위로 따뜻한 햇볕이 쏟아진다. 김우진은 햇볕 사이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다. 나라를 위해서는 죽음에도 초연했던 선열의 위엄과 기개가 드러나는 장면이며, 우리 군이 이 영화를 통해 진중한 마음으로 되새겨야 하는 에필로그다.
<고규대 영화평론가>
추억의 영화 음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