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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에서 공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는 남부럽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참회와 고행의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그는 남편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병원을 세워 직접 병자들을 돌보았다. 1231년 스물네 살에 선종한 그는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이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은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고 율법서를 불태우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의 눈먼 이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자, 그의 믿음을 보시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렸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10-15.41-43.54-57.62-64
그 무렵 10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41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62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3,14-18)와 복음(루카 6,27-38)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다 보면 관광 체험 상품 가운데 ‘마차 투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마차를 끄는 말의 두 눈 좌우에 작은 가리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양옆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하여 말이 달리는 도중에 놀라는 것을 예방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가게 하려는 것이랍니다. 어쩌면 우리 또한 비슷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두루 살피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면서 말이지요.
우리는 신앙으로 ‘눈을 뜬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의 역사 곳곳에 배어 있음을, 우리의 삶 곳곳을 꿰뚫고 있음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완고함을 꿰뚫어 주변에 고통받고 상처받아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이웃들이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은 신앙의 사건이요 눈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의 눈먼 이는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라고 간청합니다. ‘다시’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오늘 독서인 마카베오기 상권에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 시절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변절과 불충실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민족들을 부러워하여 거룩한 계약과 그들만의 고유한 관습을 저버린 채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온갖 악을 저지르고 이방의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힙니다.
세상에 대한 관대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채 퇴색되고 변질되어 가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도 예리코의 눈먼 이를 따라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김동희 모세 신부)
가장 가련한 사람들, 정신적, 영적, 신앙적으로 눈먼 사람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육체적으로 눈먼 사람보다 더 가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신적, 영적, 신앙적으로 눈먼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봐야되는데, 한 부분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의 편협되고 왜곡된 관점을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쳐다봐야 하는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바로 또 다른 형태의 눈먼 사람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복합적인 존재입니다. 한 인간 안에는 영과 육이 공존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꿈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가 서로 대결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소우주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3년 이상 지켜봐야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성격적 결함이 있습니다. 모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쪽에는 그만이 지닌 강점, 경쟁력, 긍정적 측면도 반드시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가 지닌 수많은 좋은 것들을 간과합니다. 반대쪽의 것에만 혈안이 되어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일부분만 바라보고 있지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먼 상태입니다.
세상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크나큰 시련의 파도가 다가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의 표면만 바라봅니다. 시련의 실체를 보지 못합니다. ‘왜 하필, 지금 내게 이런 일이!’하면서 고개를 흔듭니다. 이 역시 눈먼 상태입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마다 이렇게 마음먹는 사람을 봤습니다. 영혼의 눈을 활짝 뜬 사람의 고백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열심히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한층 성장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열렬히 사랑할 때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눈을 감고 지내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봅니다.나 자신의 내면이 긷든 악을 솔직히 들여다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이웃들 안의 존재하는 어두움과 강함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내 약함과 형제의 부족함을 견뎌내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힘차게 눈을 뜨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무서운 장면 앞에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런 아이를 엄마가 품에 안고 어루만져주면 아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어머니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나약함으로 인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사랑 많으신 하느님의 품에 푹 안길 때만이 우리는 다시금 눈을 뜰 수가 있습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더 이상 지난 상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를 홀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형제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웃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뜬다는 것은 내 부족함과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다시금 새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3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날에는 본당 성가대 형제님과 함께 갔습니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14시간 장거리 비행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마일리지가 많았던 형제님은 공항 내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3주간의 휴가 일정 중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모님이 있는 ‘비봉 추모관’입니다. 아버지는 2011년 하느님의 품으로 먼저 가셨고, 어머니는 9년 후인 2020년 아버지가 있는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원래 고향의 선산은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데, 2007년 ‘비봉 추모관’에 부모님이 계실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서울에서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좋았습니다. 추모관에서 부모님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강인하였고, 지혜로웠습니다. 어머니는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일찍 하얗게 되었고, 혈압이 높았고, 치아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검었고, 혈압도 정상이었고, 치아가 좋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성격과 어머니의 체질을 닮았으면 싶었는데 아버지의 체질과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남겨 주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어온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쩌면 신앙은 두 갈래의 길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따르는 길이 있고, 세상의 뜻과 나의 영광을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방주를 만들었고, 방주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따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아담은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뱀의 유혹에 빠졌던 아담은 낙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카인은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시기와 질투에 빠졌던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습니다.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캐오와 그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하느님을 따랐습니다. 박해와 순교가 있었지만,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파라오는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권력을 위해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달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것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고 했을 때, 달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예전에 승강기의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욱 푸르다.’ 모든 것이 푸르른 여름에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련의 때, 고난의 때에는 유독 그 푸름이 돋보이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보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삶은 살아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자비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살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경은 주님께 간절하게 외칩니다. ‘주님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소경의 간절함을 보시고, 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은 ‘빠르고 편하고, 쉬운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느리고,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선택과 결정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믿음으로 다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2)
다시 보고픈
눈먼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보게 하리니
다시 보게나
다시 듣고픈
귀먹은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듣게 하리니
다시 듣게나
다시 외치고픈
숨죽인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외치게 하리니
다시 외치게나
다시 일어나고픈
쓰러진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일어나게 하리니
다시 일어나게나
다시 누리고픈
빼앗긴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누리게 하리니
다시 누리게나
다시 어울리고픈
쫓겨난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어울리게 하리니
다시 어울리게나
다시 이루고픈
힘없는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이루게 하리니
다시 이루게나
다시 자유롭고픈
묶인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자유롭게 하리니
다시 자유롭게나
다시 나아가고픈
가로막힌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나아가게 하리니
다시 나아가게나
다시 살고픈
죽은 사람아
그대의 믿음이
다시 살게 하리니
다시 살게나
오늘의 성인
성 후안 데 카스틸로(Juan de Castillo)
신분 :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 파라과이(Paraguay)
활동연도 : +1628년
같은이름 : 까스띠요, 까스띨로, 까스띨료,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카스티요, 카스틸료, 한스
성 로쿠스 곤잘레스 데 산타 크루스(Rochus Gonzalez de Santa Cruz)는 에스파냐의 귀족 출신으로서 15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Asuncion)에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하고 열심한 소년으로 성장한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세에 마침내 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교구 사제직에 부적합하다고 느낀 그는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다가 160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당시는 바로 유명한 파라과이 ‘정복’이 시작될 때였다. 에스파냐는 제국주의를 앞세워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통치하였다. 예수회 회원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에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들의 개종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원주민들로부터는 적대감을 이겨내야 했고, 정복자인 에스파냐 당국으로부터는 공개적인 반대와 억압을 받아야만 했다.
1626년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동료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신부와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수사와 함께 원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 신부는 현재의 브라질 남단지역인 카아로(Caaro)로 갔다. 이곳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지역 주술사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628년 11월 15일 주술사가 고용한 일당이 도끼를 들고 성당에 잠입해 그들을 살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카아로에 있지 않았던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파라과이의 순교자로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5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그들을 시성하였다. 한편 성 로쿠스 곤잘레스의 생애는 영화 ‘미션’(Mission)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성녀 엘리사벳(Elizabeth)
신분 : 왕비
활동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 1207-1231년
같은이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14세 되던 해에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크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성 그레고리오(Gregory)
활동년도 : 213-270년?
신분 : 주교, 선교사, 기적자
지역 :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
같은 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고, 타우마투르구스
소아시아 폰투스(Pontus)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방인 가문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또는 기적자 그레고리오)는 훌륭한 집안의 자녀답게 그곳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233년 그는 동생인 성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 10월 18일)와 함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로 가려 했으나,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갔을 때 오리게네스(Origenes)를 만나 결국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리게네스에 의해 세례를 받고 개종하였다. 5년 동안 오리게네스의 문하생으로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그는 선교사로서 폰투스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아직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네오카이사레아의 주교로 임명되어 거의 30여 년 동안이나 지역 주민들의 개종사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교회의 축제일에 세속적인 흥미를 가미시키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을 대중화시킨 인물로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수많은 신학논문들을 남겼고, 그의 높은 인기 때문에 '타우마투르고' 즉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기적자)이란 별명을 얻었다.
성 후고 (Hugh)
활동년도 : 1140-1200년
신분 : 주교
지역 : 링컨(Lincoln)
같은 이름 : 위고, 후꼬, 휴스
아발론(Avalon)의 성주 빌리암(William)의 아들인 성 후고(Hugo)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아발론 성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에 어머니 안나(Anna)를 잃고 빌라드-브느와(Villard-Benoit)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부제로 서품을 받고 성 막심(Maxim)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160년에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 Chartreuse) 수도원을 방문한 뒤에 그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0년 후에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재정담당이 되었고, 1175년에는 잉글랜드(England)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의 성덕과 학덕에 대한 명성은 전 영국에 퍼졌고, 그의 영향력 또한 점점 커졌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8년 동안이나 공석 중이던 영국 잉글랜드 중동부 링컨 교구를 맡아 교구의 신앙을 일신하였는데, 이때 보여 준 그의 지혜와 정의는 너무나도 유명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에 사는 유대인 박해정책을 반대하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200년 11월 17일 런던(London)에서 사망하였고, 1220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