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설교
2세기 초에 쓰인 초대교회 문서 ‘디다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내 아들아, 너희에게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주님처럼 존경하라. 왜냐하면 주 되심이 설교 되는 곳마다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마다 그 거룩한 자들과의 교제를 추구하여 그들의 말씀으로부터 위로를 얻도록 하라”(4.1~2).
초대교회는 설교를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래서 설교자를 ‘주님처럼’ 존경하라고 명령하는데, 설교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디다케’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주의 교훈을 가르치거나 만일 원한다면 교회에 정착하기도 했다. 특별히 교회는 그들이 참된 가르침을 주는지 분별해야만 했고, 만일 참된 가르침을 준다면 마땅히 재정적으로 후원해야 했다(13).
그중에서 지역교회만을 위하여 설교할 ‘감독들’과 ‘집사들’을 선출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매 주일 성찬 중심의 예배를 인도하고, 밤낮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했다. 설교 사역이 초대교회의 직분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직무였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는 그의 저서 ‘제일변증서’에서 기독교 예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날에는 도시나 지방에 사는 자 중 어떤 사람의 장소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도들의 회고록 혹은 예언자들의 글들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읽힙니다. 낭독자가 끝내면, 이 모임의 장은 설교 중에 이런 것들을 모방하도록 열심히 권하고 부탁합니다”(67). 유스티누스의 증언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주일에 모여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신구약 성경을 낭독했고, 설교자는 그 성경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아가라고 설교했다. 이처럼 주일 모임의 중심에 설교가 있었다.
라틴어를 사용했던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인 테르툴리아누스(155~212)도 ‘변증서’를 기록했다. 그는 이 책에서 예배의 모습을 짤막하게 기록하는데 설교의 역할을 이같이 인상 깊게 묘사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자세하게 읽고 오늘날의 특성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이나 배워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모입니다. 확신하건대, 이 거룩한 말씀들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살찌우고, 우리 소망을 세우며, 경건을 강화하며, 동시에 도덕적 원리들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강하게 훈련합니다”(39.3). 설교를 은혜의 방편으로 이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구약 각 권에 대한 설교집을 남겨준 최초의 설교자는 오리게네스(185~254)이다. 초대교회의 천재 설교자이자 신학자인 오리게네스는 젊은 시절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예비 세례자들을 교육하고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뛰어난 명성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지역에서 설교자로 초청을 받곤 했는데 이 점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우스는 오리게네스를 파면한다. 이후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카이사레아에 정착하여 성서를 책별로, 장별로 주석하고 설교했다.
그는 성경 말씀에서 문자적 의미, 윤리적 의미, 영적 의미를 구별하여 탐구하고자 했다. 문자적 의미는 본문의 해석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숨어있는 영적 의미를 가르쳐 주신다. 오리게네스는 영적 의미를 통하여 구약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읽고, 신약을 구약의 성취로 읽으며, 신약을 장차 누리게 될 행복을 약속하는 것으로 읽는다. 비록 그가 자주 지나치게 세부적인 구절에서조차 영적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논쟁적이긴 하지만 그는 당대의 다른 설교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명석한 설교자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장별로 성경 전체를 설교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결코 폄훼될 수 없다. 오리게네스는 성경 주석에 근거한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게 하는 일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위대한 설교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7~407) 역시 성경 각권에 대한 주해에 근거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알레고리적 해석 방식을 추구했던 오리게네스와 달리 본문의 문맥에 나타난 쟁점과 문학적 특징을 파악하여 설교했다. 특히 당대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실제적 문제에 적용하였고, 가슴을 울리는 수사법을 활용하여 말씀을 따라 살 것을 촉구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많은 설교문을 남겨주었는데, 마태복음 설교 89편, 요한복음 설교 90편, 사도행전 설교 44편, 창세기 설교 67편 등 성경 각 권에 대한 많은 시리즈 설교문을 남겨주었다.
초대교회의 가장 괄목할만한 설교자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이다. 그 역시 성경 각권에 대한 많은 시리즈 설교문을 남겼다. 휴즈 올리판트 올드는 「성경에 따라 개혁된 예배」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자신의 심오한 가르침을 그렇게도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단순하게 하여 작은 지방 도시의 평범한 사람들도 즐겁게 듣고,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을 발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야말로 설교의 황금기를 꽃피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읽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책을 저술한 로완 윌리엄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설교자로서 성경 말씀과 씨름한 경험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직분을 “성례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행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교 교양’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설교자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무릇 성경의 해석자요 교사, 바른 신앙의 옹호자요 오류의 반대자라면, 선한 것을 가르쳐야 함은 물론 악한 것도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며, 또한 이 같은 언어의 활동을 통해서 등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태만한 사람들을 분발시키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장차 무엇에 기대를 지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설교는 목회의 총체적인 활동을 요약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연구의 중요성, 설교자의 숙달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성경을 기도로써 이해해야 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설교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대교회의 예배와 목회에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의 설교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는 설교를 통해 믿음이 자라고, 설교를 통하여 소망이 세워지며, 경건이 강화되며,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받고 있을까?
kosinnews.co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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