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조선세법 朝鮮勢法
혈창루는 오 년 전에 잠시 보았던 죽간의 무술 도식 圖式을 회상 回想해 본다.
당시에는 죽간을 집중해서 보진 않았고, 나이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전공이 창술인지라 단편적 斷片的인 부분 부분은 일부나마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한준의 창술을 몇 번 지켜보니 일부분의 초식은 이해가 되는 것이 있었다.
그때마다 수제자인 설태누차와 다른 제자보다 창술이 뛰어난 이중부를 별도로 불러서
자신이 깨달은 초식들을 설명하고 전수해 주었다.
그러나 이중부는 요즘 창술보다도 도법 刀法에 심취해 있었다.
육 개월 전,
을지소왕이 계획한 마지막 수련단계에서 납치되어, 을지소왕의 비밀 게르에 사흘 동안 감금되어 있을시,
우문청아와 각자 양 발목을 쇠사슬로 묶인 것을 제외하고는 신체가 자유로웠다.
서너 평 坪 정도 넓이의 게르 안에는 처음 보는 여러 가지 진귀한 무기와 병서 兵書로 보이는 죽간 竹簡들도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 별도로 나무 함지박 안에 들어 있던 유독, 얇고 낡은 죽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언가 특별한 죽간처럼 보였다.
먼지를 털고 펼쳐보니 ‘朝鮮勢法 조선세법’이란 희미한 제목이 겨우 보이는
낡고 오래된 갑골문자 甲骨文字로 쓰여진 무공비급이었다.
그러니까 중부와 청아가 갇힌 게르는 을지 소왕의 비밀무기고였었다.
을지담열 소왕은 각종 진귀한 무기와 무공서 武功書의 수집광 收集狂이었다.
오래되고 진기한 무기와 무술 서책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무장 武將으로서는 적절한 취향 趣向이다.
그런데,
을지 소왕의 명령으로 포박조 捕縛組들이 사정 수련원으로 출동하여,
그날 포박해 온 인물들이 하필 何必이면 이중부와 우문청아였다.
을지소왕은 평소 안면이 있는 중부와 청아를 대면하기에 멋쩍으니,
수하를 시켜 우선 급한 대로 비밀 게르에 감금 監禁하도록 지시하였다.
을지 소왕은 이중부는 최근에 알았지만, 우문 청아는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기에 서로 보기가 계면쩍다.
더구나 우문 청아는 자신이 아끼는 우문무특 천부장의 무남독녀가 되는 묘한 관계다.
박지형과 중부, 우문청아 외의 다른 수련생이었으면,
소왕과 같은 게르에 머물도록 배려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갑자기 바꾸었다.
어두운 야밤에 잡혀 온 중부와 청아도 자신들이 갇힌 게르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다만 고문이나 신체를 결박 結縛하지 않은 점, 식사도 제때 주고, 별 불편함이 없어 적군
즉, 한군은 아니라는 느낌은 들었으나 아군 진영일 줄은 더더구나 몰랐었다.
게르를 지키는 병사들의 말투가 가끔 흉노족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투후부 측이 아닐까?’하고,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다.
할 일 없이 게르에 갇혀 있던 중부는 호기심이 동하여 ‘조선세법’이란 죽간을 사흘 동안 탐독하였다.
죽간이 너무 낡아서 도식 圖式과 설명문이 희미하였고,
더구나 한자 漢字의 토대 土臺가 되는 오래된 갑골문자 甲骨文字로 표기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반인은 해독하기가 곤란하였으나, 조선하에서 십칠 선생으로부터 배운
기초적인 갑골문자 甲骨文字 해독법 解讀法과
십이지살 사부로부터 심도 深度 깊은 도법 刀法을 전수 傳受 받은 중부는 겨우겨우 조금씩 해독할 수 있었다.
도법도 간단한 편이었다. 7식 式 밖에 되질 않았다.
당시에는 그 내용이 어마어마한 비급이었음을 모르고 게르에 갇혀 할 일이 없으니,
도결 刀決을 읽고 외우고 열심히 수련하였다.
* 고당전쟁
고구려를 상대로 힘겹게 승리한 당 태종 이세민,
역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다.
고구려를 이긴 것이다.
서쪽으로는 요서를 넘어 북경의 서쪽 고비사막 부근부터 발해만과 요동만을 지배하고,
북으로는 대흥안령산맥과 만주벌판과 그 위쪽의 아무르강까지,
동으로는 백두산과 동해 바다까지,
남으로는 한반도의 아리수(漢江)까지 (-이는 고구려가 직접 관할한 영토이며, 시대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으나, 전성기 때의 고구려의 복속(服屬) 관리지는
서북쪽은 몽골고원과 알타이산맥을 넘어 우랄산맥까지 북방 초원의 전역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고,
남으로는 황하 黃河부터 발해만을 비롯하여 황해 黃海 전역 그리고 한반도의 끝, 신라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니 전성기의 고구려는 단일국가로 보기보다는 많은 부족과 다양한 종족이 연합한 거대한 제국 帝國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 중국의 당서 唐書에는 고구려의 역사를 90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졸본부여의 역사까지 합해서 그렇게 계산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니면, 삼국사기를 편찬한 신라 출신 김부식의 ‘신라 띄우기’에 의거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축소 縮小해 버린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 당서를 객관적인 사료 史料라고 본다면, 고구려는 신라보다 150년 이상 먼저 건국한 것으로 보여진다.>
900년 동안 아시아 북부지역을 지배하던 동북아의 거대 제국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이세민은 다시 한번 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친 先親 이연 황제가 고구려에 처참하게 패퇴한 후,
구사일생 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진 후
“다시는 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는 유지 遺志를 남겼으나 이를 어겨가면서까지,
도박하는 심정으로 고구려를 정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되새겨본다.
당 고조 이연은 고구려의 원정 전투에 대패 大敗하여 연개소문 대막리지에 쫓겨 요택에서 길을 잃고, 40여 일을 헤매다 겨우 탈출하였다.
- 당사 唐史
* 요택 遼澤 : 현재의 요하 遼河의 하류 下流라고 많은 사학자가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지역 오류이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당시, 당 唐나라 까지의 많은 사서가 난하를 요하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니 ‘요택’이라 함은 난하 하류부터 황하 하류까지의 넓은 습지 濕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요하 하류도 상당히 넓다.
그러나 요하가 넓은 습지라 하더라도 40여 일을 헤맬 정도의 넓이는 결코 아니다.
하루 정도만 걸어가더라도 충분히 갈대밭을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표현만 보더라도 요하가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니, 요택이라 함은 지금의 요하보다 훨씬 더 넓은 황하와 영정하, 그리고 난하의 하류를 합친 지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도의 넓이라면 40여 일을 헤맬 수도 있는 광역 廣域이다.
또, 당서 唐書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었다’라고 서술하였지만, 이 역시 춘추필법에 입각한 표현술이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위맹한 고구려 철기병의 추격병을 피해 다니느라, 40여 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갈대밭 이곳저곳으로 숨어다녔다’라는 것이 사실적인 표현일 것이다.
이연 황제는 요택에서 구사일생 九死一生으로 요행히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결국, 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앓다 세상을 떠나면서 ‘차후로 고구려는 절대 공격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거대한 고구려를 침범한 그 대가 代價는 참혹하였다.
또, 당태종 이세민 황제 자신도 제2차 고당 高唐 전쟁시, 고구려 철기병의 무위 武威에 혼이 나고,
황하를 건너 산동성 남부까지 도주하여 우물에 숨어,
보잘 것 없는 미물 微物인 거미의 도움으로 구구도생 區區圖生하여 목숨을 겨우 보전했으니,
당시 상황이 무척이나 위급했었고, 그때 당한 두려움과 후유증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나타내 주는 사실성 높은 기록이 있다.
안시성 전투에서 패퇴하여 요택을 지나면서 위급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여,
설인귀 등 신하들과도 헤어져 산동성 남쪽의 강소성까지 달아나,
홀로 다급히 도주하는 황제의 등 뒤로 나타난 연개소문.
"세민아! 어딜 그리 급히 가느냐! 황제가 어찌 감히 뒤를 보인단 말이냐!"
연개소문이 칼을 휘두르며 쫓아오자 급한 나머지 당 태종은 재빠르게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그러자 때마침 거미가 우물 입구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개소문이 그 우물이 있는 곳으로 왔으나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고,
우물을 들여다보니 우물 안은 거미줄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연개소문은 우물 입구의 거미줄을 보고는 '사람이 출입한 사실이 없을거라' 하며 단순히 생각하며 돌아갔고,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당 태종은,
수도 장안으로 돌아가 날이 어둡고 위기에 처했을 때 거미줄 덕분에 목숨을 보전한 것에 고마움을 느껴,
우물이 있던 자리에 탑을 쌓고 이름을 몽롱탑 朦朧塔이라고 지었다.
* 그림 - 연개소문과 이세민.
연개소문이 비도 飛刀로 이세민을 공격하자, 설인귀가 화살로 막고있다.
* 사진 - 몽롱탑 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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