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현정(아기 예수의 데레사) 배우·화가맑은 샘물이 흐르던 미사
“호수가 산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다. 오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복음 성가 ‘호수’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지난달 장례 미사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특별히 불렸다. 장례 미사의 주인공은 한평생 ‘영혼이 맑은 삶’을 사셨던 서봉세(Gilbert Poncet, 1939~2017) 신부님이다. 신부님은 1968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오셨고 7월 6일 새벽 선종하는 순간까지도 ‘한국인’으로 살다가셨다.
신부님을 처음 만난 곳은 대전 가톨릭대학교 구내식당이다. 신부님은 그곳에 걸려 있는 내 그림 ‘바게트 십자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빵이 아니라 떡으로 그리면 더 좋았을텐데.”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인데. 신부님은 “바게트는 프랑스 음식이에요. 우리나라는 떡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2년 전, 신부님의 폐암 투병 소식을 접했다. 나는 공부하러 중국 베이징에 있을 때였다. 타국에서 선교의 의미와 성당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중이었다. 한평생 타국인 우리나라에서 봉사하신 신부님이 암에 걸리셨다니….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신부님께 위로가 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시들고 버려진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신부님이기에 ‘매미의 기도’라는 그림이 좋을 것 같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신부님은 한평생 엄격하고 청빈한 삶을 사셨다. 병석에 누운 신부님께 내 작은 마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병원으로 찾아뵙고 그림을 드렸더니 “내가 이런 그림을 받을 자격이 있나” 라며 한참을 주저하셨다. 하지만 멀리서 가져온 성의로 받으셨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그림을 뜯어 보셨다.
‘매미의 기도’는 옛날에 불경을 썼던 다라수(多羅樹) 나무의 잎과 나뭇가지에 매달린 매미를 그린 그림이다. 매미 선(蟬)자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의 선(禪)자와 발음이 같아 기도의 뜻으로 그린 작품이다. 신부님은 이야기를 들으신 후 “나는 지금 기도할 수 없어요. 하지만 기도해 보겠습니다”고 하셨다. 그 후 나는 신부님의 암이 진행을 멈췄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됐고 신부님은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신부님은 수많은 병문안 손님을 맞이하느라 또 다른 고생을 하셨다. 방문객을 환대하고 병동의 환우에게 간식을 나눠 주는 일을 새로운 사목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셨다.
마지막 병문안이 된 6월, 쇠약해진 신부님의 모습에 병원 지하 성물방에서 묵주를 사서 축복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묵주알을 돌리며 신부님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길, 신부님이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계시기를 간구했다.
신부님은 생전 자신의 장례는 축제가 돼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고 한다. 장례 미사 때 부를 성가의 순서도 정하셨다. 나는 장례 미사 때 신학생들이 부르는 성가를 들으며 샘물처럼 맑고 한없이 청빈했던 그분의 삶을 다시 생각했다. 신부님은 평소 대화 중에 ‘탁하다’ ‘더럽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분을 통해 매 순간 탁해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참된 성직자의 모습을 보았다.
장례 미사 가운데 나는 신부님의 제자 신부님을 통해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미사 내내 우리는 소리 없이 울다가 웃다가 기도했다. 어느새 맑아진 나의 마음을 보니, 신부님의 바람처럼 신부님의 천국 이민을 축하하는 축제였음을 믿게 됐다.
ⓒ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