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대구를 찾았다. 대구는 최근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략 보름에 한 명꼴로 자살, 또는 자살 시도가 있었다. (☞관련 기사: "2주에 한번씩 자살…학교는 폭력의 숙주")
대구, '출구 없이 질주하는 한국 교육'의 상징
이에 대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이해하기 힘든 해석도 논란을 낳았다. 우 교육감은 지난 5월 한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자살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낳았다. (☞관련 기사: 학생들 자살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탓이라고?)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교 건물 3층 이상에 있는 교실과 복도의 창이 20~25㎝정도만 열리게끔 한 조치 역시 논란이 됐다.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에 따른 후속조치인데, 설득력은 없다. 최근 잇따른 자살이 창문이 크게 열려 있기 때문일 리 없다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무더위에도 학교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면, 학생과 교사는 짜증만 쌓일 뿐이다.
하지만 '대구만 특이하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다만, 대구가 출구 없이 질주하는 한국 교육의 오늘을 상징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교사들은 교육 붕괴에 대한 압박과 일제고사 부담으로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도 힘든 하루를 버텨야 했다. 아니, 청소년들의 삶은 원래 힘겹다.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일과 다가온 일제고사는 이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하고 있다.
'일제고사 세대'…수업 거부한 아이들이 타협으로 돌아선 이유
일제고사를 앞두고 지난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각 학교에서 강제 방과후학습, 0교시 수업 진행 등의 파행 교육사례가 만연하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응한 355개 학교의 40%에 이르는 143개 학교에서 파행 사례가 발견됐다. (☞관련 기사: 초등학교 절반, 일제고사 앞두고 파행 교육)
이런 파행사례는 다양하다. 학교가 방과후학습을 강제하거나, 정규교과 시작 이전인 이른바 '0교시'에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른 반발이 올해 대구에서 터져나왔다.
대구 남구의 ㄱ여중에선 최근 3학년 학생 150여 명 중 130여 명이 강제 방과후학습에 반발해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 학교는 지난해 일제고사 결과 대구 지역 내에서 성적이 하위권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반발은 타협으로 끝났다. 학생들은 교사들과 협상을 통해 "이번 일제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강제 방과후학습을 자율제로 바꾸기로 했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 씨는 "아이들도 '내가 공부를 못한다'는 점을 내면화해, 현실과 타협한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정권 바뀌면 일제고사는 끝난다"
ㄱ여중에 재학 중인 A 학생(15)은 "선생님이 '너희가 대구에서 제일 공부 못한다. (방과후학습으로) 너희들을 인간 만들어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억지로 학교에 남아 공부하기 싫다"고 말했다.
ㄱ여중의 방과후학습에는 학생의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는 수업이 없다. 오직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입시에 중요한, 일제고사에 나오는 교과만 포함된다.
학부모 김 씨는 "보수적인 대구에서조차 학부모들이 모이기만 하면 '정권 바뀌면 일제고사는 끝난다'고 말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며 "이런 시험 때문에 아이들만 스트레스 받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제고사 성적 따라 학교와 교사가 받는 돈 달라져
▲대구시내에서 학원이 가장 밀집한 범어4동 학원가를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프레시안(이대희)
일제고사가 왜 나쁠까. 일단 서열이 매겨지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일제고사 시행 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시험 대상인 전국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개별 성적뿐 아니라 학교별 실적까지 공개한다. 자연히 학교별 서열이 나뉜다. 각 학교가 일제고사에 목을 매는 이유고, 파행학습이 이뤄지는 배경이다.
각급 학교가 일제고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제고사 성적은 교사가 받을 상여금과 직결된다. 교과부는 지난해 일제고사 결과 학교별 향상도를 학교별 성과상여금 지표로 활용한다. 학생들의 성적이 오를수록 교장과 일선교사가 받을 상여금도 오른다.
학교에 유입되는 돈의 단위도 달라진다. 교과부는 시도교육청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특별교부금을 차등 지급한다. 지난 2009년부터 이 지표에 일제고사 성적이 반영됐다. 전체 18개 지표 중 '일제고사 기초학력 미달비율'은 100점 만점에서 7점의 비중을 차지한다. 일제고사를 잘 본 지역에 교부금이 많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 일제히 40~50대로 바뀐 이유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는 일제고사 때문에 죽을 맛이다. 학생 입장에선 일제고사는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는 시험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문제 푸는 기계'가 돼야 한다.
대구 동구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김형철(가명) 교사는 "6학년 학생은 학교 행사에서도 모두 제외되고, 특히 일제고사 한 달여 전부터는 문제은행에서 교사가 찾아낸 일제고사 대비 시험만 본다. 일제고사 하나 때문에 초등학생까지 입시형 문제와 씨름한다"고 말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이 학교는 일제고사에 대비하기 위해 5학년 2학기부터 일제고사 범위에 포함되는 진도를 선행해 나간다. 시험 대상 진도를 미리 뗀 후, 6학년 들어선 학교 단위로 복습하기 위해서다. 일제고사 체제에 5학년부터 편입되는 것이다. 초등학교도 일제고사 때문에 선행학습을 받아들인 셈이다.
심지어 대구교육청은 올해부터 6학년 담임에게 '승진점수 인센티브제도'까지 적용시켰다. 김 교사는 "사실상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는 6학년 담임을 맡을 수 없게 됐다. 예전에는 젊은 교사가 6학년 담임을 맡는 일이 흔했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6학년 담임이 모두 40, 50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대치동…"학원 진도가 앞서가니, 학교 수업은 뒷전"
모두 같은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대구의 한 지역에선 바깥과 전혀 다른 일상이 이어졌다.
오후 3시 30분, 수성구 범어4동으로 향했다. 입시학원과 논술학원이 빈틈없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곳은 대구 시내에서 입시학원이 가장 밀집한 곳이다. 지역의 한 상인은 "밤 10시만 되면 지하철 수성구청역 일대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차량으로 난리"라며 감탄했다.
지역의 ㅂ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최모 씨는 "범어4동과 만촌동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학원 밀집지"라며 "부산에서, 거제에서도 이곳으로 온다. 서울에서도 대치동 대신 범어동에 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마침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원가를 지나고 있었다. 인근 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아이들은 말했다. 방과후수업이 이어진다면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집에 들른 후 학원에 간다"고 답했다. 친구가 '전교에서 논다'고 소개한 장모 학생(16)은 수학과 영어, 과학 과외를 받고 있었다. 영어는 토플(TOFEL)을 배우다 최근 텝스(TEPS)과정을 시작했다. 수학의 경우 경시대회 준비 과정을 배우고 있는데, 교육과정 상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이다. 과학학원에선 일반물리와 일반화학을 배운다. 대학교 기초 과정이라고 장 학생은 답했다.
장 학생은 "과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 힘들 때도 있긴 하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 수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 아이는 "이미 학원에서 모두 진도를 뺀 과목들을 학교에서 다시 가르치니, 대부분 아이는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제고사에서 자유로운 학교는 사교육에 발목 잡혀
범어동 인근에는 대구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고교가 밀집해 있다. 자립형사립고로 변화한 경신고등학교는 지난해 수학능력시험에서 서울 대치동의 학교들마저 제치고 전국 최고 성적을 거뒀다. 학생 네 명 중 한 명이 지난해 수능언어, 수리영역에서 1등급 혹은 2등급을 받았다. 정화여고, 대구여고, 오성고, 대륜고 등도 대구에서 손꼽히는 명문이다. 대부분 학교가 학원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 지역 중학교에도 '뛰어난' 학생이 몰린다.
이 학교들의 공통점이 있다. 일제고사가 코앞임에도 방과후학습을 강제로 실시하지 않는다. 장 학생은 "방과후학습을 받는 아이는 40여 명 중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학생이 학원으로 가기 때문이란다. 이들 학교에서 일제고사는 그리 중요한 행사가 아니었다.
"내일이 일제고사인데 선생님들이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 학생은 "어차피 쉬운 시험이라 선생님도, 아이들도 큰 신경은 안 쓴다"고 말했다. 일제고사에서 자유로운 학교는, 대신 사교육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범어4동 인근의 중학교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이 지역 인근 학교의 대부분은 강제 방과후학습을 실시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이대희)
결국 신분 상승 게임
이 때문에 이 지역의 학교에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인근 A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6학년만 되면 갑자기 학급 당 20명에서 40명 수준으로 불어난다. 위장전입하거나, 아예 인근으로 이사온 아이들이 대거 이 학교로 전학 오기 때문이다.
지역의 집값이 뛰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인근 지역의 ㅅ아파트 매맷가는 109㎡ 기준으로 약 3억 원 대 후반에서 4억 원 대에 거래된다. 중개업자 최 씨는 "다른 지역은 2억 원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교육열이 지역 집값을 밀어 올리는 한 원인임은 분명해 보였다. 이 지역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직업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다.
동구 초등학교의 김 교사는 "다른 지역에서도 재직해봤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잘 나가는 집안' 아이들과 함께 커야 공부를 잘 할 거라는 믿음이 대구에 유독 강하다"며 "신분 상승 경쟁이 결국 초등학교에서부터 사교육 입시 경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성구로 전근 신청한 진짜 이유
김 교사는 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지난해 동료 교사 한 명이 수성구에 위치한 학교로 전근 신청을 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집이 가깝다는 것과 '그쪽 아이들의 수준이 높아, 가르치는 보람이 난다'는 것이었다. 속내는 따로 있었을 것으로 김 교사는 짐작한다. 그 교사의 자녀도 A초등학교로 전학했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적잖은 교사가 '자식 교육 때문에 수성구로 간다'고 말한다"며 "교사들마저 입시 사교육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강남구 대치동-양천구목동-노원구 상계동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사교육 계급 체인'이 대구에서도 생겨난 것이다. 대구에서 수성구는 대치동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며, 최근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는 달서구는 "대치동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중산층 학부모들이 밀집한" 제2등급의 사교육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달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중학교 신입생 학부모 최모 씨를 만났다. 최 씨는 "동네에 학원이 부족해 걱정"이라며 "범어동의 종합입시학원에 아이를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최 씨는 "힘들어도 견뎌야지, 어쩔 수 있느냐. 안 하면 뒤처진다"고 강조했다. 최 씨가 자녀에게 바라는 건 "인 서울 대학"이었다.
결국 모두가 신분 상승 게임을 하고 있다. 방법은 사교육화다. 상위권 학교는 아이들의 입시성적 향상에 신경을 쓴다. 따라서 사교육과 공존한다. 하위권 학교는 학교의 평판을 끌어올리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스스로 사교육화해가고 있다. 강제로 아이들에게 방과 후에도 학습을 시키고, 선행학습을 학교 스스로가 시행하고, 이를 통해 학교의 성적 향상을 일제고사를 통해 증명 받길 바란다.
최근 자살한 학생 가운데 5명이 수성구…과연 어른의 책임은 없나
이런 분위기가 대구에서 연달아 발생한 대구의 학생 자살과 무관할까.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구와 경북에선 15명이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다. 이 중 지난해 일어난 두 건은 언론에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공통 원인에 '아이들이 숨을 쉬기조차 힘든' 교육 상황이 자리한 건 아닐까. 자살한 학생 가운데 5명이 학원이 밀집한 수성구에서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나 대구는 그런 면에서 가장 극단적인 억압적 학교환경이 조성된 곳으로 추정 가능하다. 교과부가 지난 3월 14일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중간 결과'에서 대구 학생들의 학교 폭력 피해 응답률은 전국 16개 시도에서 가장 낮은 9.1%였다. 대구와 함께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경상북도의 피해 응답률도 11.2%로 조사대상의 10위를 차지해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과연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과연 이 지역 아이들이 유독 '평화적'일까. 대구의 아이들이 유독 착한데, 하필 대구의 아이들이 유독 심경이 약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낮은 응답률은 오히려 학교가 얼마나 억압적인 분위기인지를 반영하는 지표일 수 있다.
"상담 시간 늘리라고?…수업 끝나면 학원으로 흩어지는 아이들"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에선 여전히 책임을 느끼는 자세가 배제돼 있었다. 달서구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 씨는 "대구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데도, 최소한의 '추모 기간' 조차 갖지 않았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냐"며 "학교가 아이들을 내몰고, 학부모가 아이들을 내몰면서 아이들이 정상 궤도를 심각하게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이런 파행적인 교육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이들이 그런 일을 겪은 후, 교육청에서 아이들의 상담 시간을 늘리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런데 방과 후 상담을 하려고 해도, 이미 아이들은 학원에 가거나 방과후수업을 들으러 뿔뿔이 흩어졌다"며 "일제고사가 다가오면서 사실상 아이들을 더 방치하는 결과만 낳고 있다"고 한탄했다.
"학교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대구 교육감, 임시방편 아닌 방향 전환 필요"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을 고민하지 않는 우 교육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우 교육감은 아이들이 연달아 자살한 후 "베르테르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노무현 전 대통령 등 유명인의 자살에 영향을 받았다는 뜻), 그 대책으로 "학교 창문을 완전히 다 열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해 빈축을 샀다.
조형일 전교조 대구지부 사무처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학교는 아이들을 살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곳이어야 하지만, 대구시교육청과 교육감은 학교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며 "임시방편이 아닌 전반적인 교육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한국 교육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