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말씀 (사무엘하 15장 1절~ 12절)
‘1.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2.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7.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2. 줄거리와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일단 다윗 왕과 화해를 한 압살롬은 사병을 키우며 백성들의 마음을 훔쳐 내는 등 차근차근 반역을 도모해 드디어 거사에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병거와 군사를 준비한 압살롬은 왕에게 재판 받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습니다. 4년 후 그는 서원을 이루기 위해 헤브론에 가겠다고 하여 왕의 허락을 받습니다. 그 후 압살롬은 모든 지파에 전령을 보내어 자신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백성의 마음을 훔치는 압살롬, 반역을 준비하는 압살롬, 압살롬에게 속는 다윗,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 등입니다.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 다윗 왕께 재판을 청구하러 들어오는 백성을 향하여 압살롬이 한 말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왕들은 왕궁 문 앞에 자신이 임명하는 재판관을 세워 백성들의 소송 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재판은 이른 아침 열리는데 압살롬은 그 시간부터 성문 길 곁에 서서 소송을 제기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다짜고짜로 ‘네 일이 옳다마는’ 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삽니다. 재판도 하기 전에 그 사람을 두둔해 줌으로 환심을 사려는 의도입니다.
왕에 의해 임명된 자의 재판은 왕의 권위로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다시는 번복할 수 없습니다. 압살롬은 그 점을 이용해서 ‘네 송사를 들어줄 사람을 왕이 세우지 아니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네 말을 들어 줄만한 사람이 왕에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다윗에게는 충직하고 훌륭한 신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을 무책임하고 불의한 왕으로 매도하고 자신이 왕이 된다면 현재 왕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한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현혹하고자 하는 압살롬의 치밀한 전략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 서원제를 드리기 위해 떠날 것을 간청하는 압살롬의 말로, 이는 오직 헤브론으로 가기 위한 속임수입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을 거사의 장소로 삼은 것은 그 곳이 가장 효과적인 성읍이기 때문입니다. 헤브론은 전에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인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바람에 그러한 기득권을 잃어 주민들은 그만 불만과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압살롬은 그런 세력을 규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편 그곳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일 뿐만 아니라, 다윗 왕이 기름부음을 받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로서는 욕심이 나는 곳입니다.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 압살롬에 의해 초청된 이백 명이 전혀 압살롬의 계략을 알지 못하고 헤브론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평민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고위 관리들입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고 동행하니, 단순히 제사를 지내러 간다고 알고 있고 더구나 왕으로부터 허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압살롬의 무서운 음모입니다. 그들은 어정쩡한 상태로 압살롬의 지지자가 됩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반대하면 영원히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집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예루살렘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압살롬의 편이 되고 맙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거사를 성사시켰으니, 정치구단 압살롬입니다.
3. 해설과 묵상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 송사하러 예루살렘으로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므로 반역의지지 세력을 확보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좋게 여긴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점은 물론이고, 실은 압살롬에게는 자기들 것보다 너무나 훌륭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가진 것 중에 우선은 출신배경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술 아람의 공주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나라인 아람국의 일원으로, 다윗이 정략결혼을 한 이유입니다. 아람 사람들과의 국경분쟁을 피하고 자국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맺은 혼인입니다.
그런 덕으로 압살롬은 든든한 외가를 갖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암논을 죽이고 도망한 것입니다. 나라가 다르므로 감히 이스라엘 군사가 그를 체포하러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 나름대로 압살롬을 예뻐합니다. 외손자가 이스라엘의 유력한 왕자로 있어 톡톡히 견제세력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 나라의 후광을 입고 있던 로열패밀리입니다. 또 압살롬에게 가진 것이 있으니, 그것은 타고 난 외모입니다. 성경은 그를 향하여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인으로 치면 백옥 미인이라는 말입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라는 말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하나 없이 다 완벽하다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입니다. 그가 얼마나 꽃 미남이었던지 상상이 가는 말입니다. 두 말을 합하면 그는 백옥미인 꽃 미남입니다. 그런 그가 성문에 있다가 자신에게 절하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손을 펴 그 사람을 붙들고 다정하게 입을 맞춥니다. 그 사람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 후 압살롬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외모를 이용해서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재주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를 4년! 그는 드디어 한 나라의 민심을 가로 챌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당돌하게 대권에 도전해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일등공신은 그는 평민층뿐만 아니라, 지배층의 입맛에 맞았다는 점입니다. 암논이 죽은 관계로 왕자의 서열 제 1위로, 왕세자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차라리 낳았을 지도 모릅니다. 외가댁이 외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면 도망 갈 데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암논을 살해하기 전 다시 한 번 심사숙고를 했을 것입니다. 타고난 외모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단 시간에 훔치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또한 촉망 받는 왕자가 아니었다면 감히 반역을 도모하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긴 머리털이 없었다면 도주하다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의 창 세례를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갖고 있던 것으로 빛을 보았지만, 도리어 그것 때문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 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갖고 태어난 것 기대하거나 자랑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한 다윗과는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하늘이 주신 것은 마치 은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신 은사를 끝까지 선용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 반대로 사용하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것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장차 정산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괜히 재미있자고 이야기하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이 준 자는 많이 달라고 할 것이고, 적게 준 자는 적게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적게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적으면 적은 데로, 많으면 많은 데로 오직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남김없이 사용하고 예수님께 돌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