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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기 목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신 이희호 여사가 쓴 "내일을 위한 기도"(1998, 12. 도서출판 여성신문사 발간, 328쪽, 값 9,500) 라는 책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기록으로서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갇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남편, 죽어서 나올지 살아서 나올지를 모르는 남편을 무작정 기다리면서 썼던 편지들을 모아 만든 책인데 아픔의 편린들이 구구절절이 베어 있는 책입니다.
그 내용 중에 보면 "월말이 되니 당신의 편지가 기다려지는데 아직 쓰시지 않으셨는지요? 쓰신 후도 우리 손에 닿기까지는 여러 날이 걸릴 겁니다. 한 달에 한 번의 면회와 단 한 장의 편지를 기다리는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이 제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서 실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늘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망부석(望夫石)에 대한 전설을 아십니까? 한국의 여러 지방에 전해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박제상(朴堤上)의 아내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있는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수릿재[述嶺]에 올라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그대로 돌부처가 되었는데 그 바위를 뒷날 사람들이 망부석이라 불렀습니다.
기다림이라는 게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드는 일인지 아십니까? 애간장이 다 녹아 내리는 일이요 가슴이 멍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중 18절을 보면 죄인 된 우리 인간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죄악 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나간 자리에서, 탕자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유다 왕국은 북방의 강대국 앗수르와 남방의 강대국 애굽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외교로서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양쪽의 환심을 사기 위한 예물들을 틈틈이 가져다 바쳤는데 그러나 그러한 외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의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유다 왕국은 국력이 점점 쇠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하나님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는데 선지자들은 이러한 사대주의 외교, 친 애굽주의 노선을 펼치는 왕국을 향하여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사 31:0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0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0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러면 어찌해야만 합니까?
인간의 힘, 강대국의 권력을 의존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능력의 하나님, 살아 계셔서 권능을 베푸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저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렘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살 길이 있다는 말이지요.
사람에게 있어서 불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돌아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따뜻이 맞아줄 가정이 없고, 열심히 일할 직장이 없고, 평안히 휴식을 누릴 곳이 없고, 평안히 예배드리면서 은혜 받을 곳이 없는 그것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지 않는 것이요,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령한 마음이 없는 것 아닙니까?
7, 80년대 시절이지요. 밤 열 시가 되면 어김없이 KBS 라디오에서는 고요한 음악이 깔리면서 청소년에게 귀가를 종용하는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속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학생들이 밤거리에서 탈선하거나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는 호소 어린 정책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는 참 친절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지내던 방종 된 삶들을 벗어버리고 돌아갑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다보니 만신창이가 되었습니까? 얼룩진 부분들이 너무 큽니까? 그래도 돌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장애물들이 가로놓여 있다 할지라도 능히 극복하고 돌아가야지 망설이면 안 됩니다. 탕자와 같은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슥 01:0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2.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우리도 기다려야 합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복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도록 합시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요 또한 기다리는 삶이야말로 삶의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시간과 날들을 나를 위하여 참고 기다려주심과 동시에 자신을 믿는 그의 백성들 역시 오래 참음의 옷을 입을 수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복된 삶, 은혜로운 삶을 위해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인내심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롬 0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현재의 고난도, 미래의 고난도 참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서 기본적인 것이 인사말입니다. 가령 미국인들이 인사할 때에는 "헬로, 또는 굿모닝", 프랑스인들은 "봉쥬르", 중국인들은 "니 하오 마"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인사말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뭐라고 알려져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라는 말도 더러는 있지만 그러나 주로 "빨리빨리" 란 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 단체관광을 가서 식당에 들어가면 종업원들이 한국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인사가 빨리빨리 라고 하면서 좌석을 안내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조급하고 기다리기를 잘 못 한다는 것은 우리도 피부로 느끼지 않습니까? 이 조급함 때문에 엄청난 대형 사고를 여러 번 경험했고 또 그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아가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 조급함 때문에 발달하는 사업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스턴트 식품이 제일 많이 유행하는데 가령 라면도 전에는 물을 붓고 한 5분 정도 기다렸었는데 그것도 지겨우니 지금은 1분 내로 먹을 수 있게 만듭니다.
특히 인터넷 분야는 그 속도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약 일백 배 정도 빠른 통신망이 보급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조급한 시대요 초스피드 시대로서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줄 모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공중 전화에서 앞의 사람이 너무 오래 전화를 거니까 기다리던 여자가 좀 빨리 끝내라는 말을 한 마디 했다가 그만 칼에 배를 찔리어 죽게 된 일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렇게 조급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오래 기다리시는 분임을 알 수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도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는 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워싱턴 D. C의 뉴욕 에비뉴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의 조셉 C. G 목사님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쓰던 낡은 성경을 살펴보다가 특별히 손때와 눈물 자국이 많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살펴보았더니 시 37편 07절 말씀이더랍니다.
시 37:0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며 주님께서도 믿음을 위해서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구원받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4:13).
혹 성도 여러분 가운데 예기치 않는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고난을 많이 참고 훈련을 받은 만큼 큰그릇이 되고 큰 축복을 받습니다.
약 0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기도한 후에 응답이 늦어진다고 실망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기도가 끝나기 전에도 응답해 주시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생각으로만 잠시 기도해도 응답해 주실 때가 있지만, 때로는 오래 부르짖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응답을 체험할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나서 자그마치 25년이 지난 후에 응답을 받았지만 그때까지 그의 신뢰는 낙망되지 않았습니다.
롬 0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3.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마침내 복을 주십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야말로 복이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야말로 금은보화를 지닌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본문 15,16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은 이 마음을 가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백성들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세는 돌이키는 일로서 돌이킴은 회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다가 애굽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을 철회해야한다는 말이죠?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고 계속 인간적인 생각에만 머물러 있음을 1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17절을 읽어볼까요?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
이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충실했을 때는 그들이 한 사람으로 천을 쫓으며 두 사람으로 만을 쫓을 수 있었습니다.
신 32: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 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수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전쟁의 참화에서 겨우 살아 남게 될 패잔병들의 모습을 산꼭대기의 깃대와 영 위의 기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계속 하나님으로 힘을 삼기를 거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 백성들의 처지를 적절하게 설명하는 말로서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의 길은 결국 파멸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생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받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축복 된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Howard Whitman은 인생은 기다리는 기간이다 라고 하면서 "어린아이는 자전거 탈 때를 기다리고, 청소년은 자동차 몰 때를 기다리고, 의학도는 면허 받을 때를 기다리고, 젊은 부부는 자기들의 새 집을 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예술은 단번에 배워지지 않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도 기다리는 기간이고, 신앙 생활도 기도하며 기다리는 생활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해이해 지기를 원치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기다리는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생각의 초점을 옮기도록 합시다. 현재 일에 집착되어 내일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 일에만 집착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온전히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20절의 말씀이 우리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져 슬픔과 아픔이 사라지고 간구하는 음성 속에는 풀리고 열리어지는 응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