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첫 전투 경험은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 너무 어려서 전쟁에 나갈 수 없는 나이로 단지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아서 형들이 안전한지 살피는 임무를 수행키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골리앗을 만나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었다.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삼상 17: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삼상 17: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그는 블레셋 진영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의분이 치솟아서 그를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는 바람에 그 소리가 사울에게 들리게 되었고 마침내 사울에게 인도 된 것이었다. 자기보다 더 큰 사람들도, 심지어 자기 형님들도 숨을 죽이고 몸을 사리는 마당에 여전히 소년티를 벗지 못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에 모욕을 돌리는 골리앗을 경멸하며 그를 죽여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의 치욕을 갚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봤을 때 이는 싸워보나 마나 야수에게 먹이를 던지는 것과 진배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모든 상황이 다윗에게는 긍정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리하게 느끼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다윗에게는 유리하게 느껴졌고 하나님을 믿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육중한 골리앗의 덩치는 두려움의 요인이 아니라 그에게는 다만 자신이 물매를 던져서 맞추어야 할 과녁의 크기만 더 커진 것 뿐이었다. 그는 사울의 갑옷과 칼 대신에 그가 평소에 즐겨 사용하던 물매와 조약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무지르기 위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의지한 무기는 물매나 조약돌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었다.
(삼상 17: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삼상 17: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 대부분 사람은 그를 만나면 좌절하고 두려워하며 불안에 떤다. “어이쿠 죽었구나”하면서 탄식한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좌절 대신 희망을, 불평 대신 감사를 드린다. 무엇을 통해 그 상황과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달라진다. 믿음의 렌즈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불리해 보이는 조건이 오히려 아주 유리한 조건이 된다. 골리앗이 젖비린내 나는 다윗을 얕잡아 보고 투구를 벗어 던지자 다윗에게는 마치 그가 이마를 내밀면서 여기를 맞춰 달라고 표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덩치도 큰 놈이 자기의 이마에 점을 찍고 표적을 노출하니 평소에 물매질을 기막히게 하는 다윗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삼상 17: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버거운 골리앗 같을지라도 다윗처럼 다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며 여전히 세상은 점령해야 할 우리의 밥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가 부르면 응답하시는 만군의 하나님 계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수많은 골리앗 같은 상황과 여건들이지만 결코 우리를 주눅 들게 하거나 낙담케 하는 요인이 아니라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라는 사실만 인식시켜 주는 기회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시여!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