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전원길
나는 신선한 공기에 맑은 물이 흐르고 소음이 없는 풍요로운 농촌의 풍경을 동경한다.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더더욱 잊을 수가 없나 보다. 직장생활도 대부분 농촌학교에서 근무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해맑은 눈을 가진 농촌의 학생들을 참 좋아한다. 아름다운 환경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농촌의 서정적인 느낌과 생각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된다. 마음껏 학생들과 어울려 동고동락하면서 지냈다. 때로는 산으로 들로 나가서 농촌일손도 돕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학부형을 이웃처럼 여기며 지냈다. 그러면서 농촌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나의 농촌사랑은 유별났다.
기독실업인으로 함께 모이는 회원의 한 사람이 전북 정읍시 산내면 두월리 자연동부락 소재 밭 3,300제곱미터가 있다고 했다. 회원들과 농사짓는 기쁨을 함께 체험하고자 무상임대하기로 했다. 모두 열 두 부부가 동참했다. 나는 힐링 농촌체험활동 추진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농촌체험활동을 진두지휘하였다. 우선 신출내기 농부들에게는 농사짓기 편한 작물을 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고구마, 들깨, 호박, 콩, 옥수수가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하기 쉽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작물이 고구마라는 결론을 얻고 고구마재배 농촌체험활동을 시작했다. 밭갈이를 하고 시커먼 퇴비를 뿌렸다. 두 사람이 협력하여 고구마 두덕에 검은 비닐을 씌웠다. 농촌에서는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비닐이 우리의 우군이 되어준다. 한 사람은 기다란 대나무 꼬챙이로 두덕에 꾹 찔러 구멍을 내고 기다란 장대 끝에 매달린 고무호스로 물을 흠뻑 주고 한 사람은 한 뼘 길이의 어린 고구마 순을 심었다. 밭 언저리에 호박과 옥수수도 심었다. 농작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부부들은 힐링을 했다. 밭이랑에 웃자란 훼방꾼인 명아주, 쇠비름, 개망초도 뽑아주었다. 잡초의 뿌리가 깊으면 뽑는 것도 쉽지 않았다.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서 겨우 뽑았다. 이마에 구슬땀도 송알송알 맺혔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열심히 일하면서 껄껄 웃었다. 아홉 차례 우리는 공기 좋은 농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농부의 수고가 이러한 것이라는 것도 느꼈다. 나물과 김치로 담가 먹기 위해 잎자루도 땄다. 육체적으로는 고단했지만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다.
그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운암저수지가 한 눈에 보이는 운치가 있는 곳이다. 신선한 공기와 한적한 농촌마을 양지바른 언덕배기다.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이 늘면서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다. 빈집도 있어 온 동네가 썰렁하다.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 오는 몇 사람과 연세 많으신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이장님이 자진하여 농사법도 가르쳐 주었다. 동네 분들도 반가운가 보다. 안면이 없는 데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인정이 많은 아줌마가 간식거리도 챙겨주었다. 아직까지 농촌은 넉넉한 인심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쇠스랑이나 호미로 고구마를 수확했는데 기계화된 현대는 방식도 달랐다. 굴착기로 두 세 두덕의 흙을 깊게 파서 살살 흙을 털었다. 고구마가 흙더미위에서 나왔다. 신기했다. 귀하신 사모님들은 허리가 아프다고 엉덩이에 동그란 모양의 방석을 달고 다니면서 고구마를 줍는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깔깔거리며 고구마를 주워 한 곳에 모은다. 그리고 상자에 담는다.
“와! 내 얼굴만큼 크지?” “이봐, 이봐, 이렇게 많이 달렸어!”
앉았다, 일어섰다하며 손에 고구마를 들고 함성도 지르며 야단법석이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수확의 기쁨이다.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고구마를 먹었다. 쌀밥대신 먹는 것이 감자나 고구마였다. 요즘 사람들은 감자, 고구마는 주식이 아니라 참살이 먹거리라고 즐겨먹는다.
“와, 부자가 되었다.”
“놀라운 축복이다.”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신 덕이다.”
수확에 대한 탄성이 계속되었다. 1톤 트럭에 가득 실었다.
우리는 각자 집에서 가져간 마대, 포대, 주머니에 가득 담아 가기로 했다. 그리고 10kg 들이 170박스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40여 년 간 농촌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제는 한가한 시간이 늘면서 농촌에 대한 향수가 밀려온다. 삭막하게 느껴지는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까?
“여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삽시다.”
아내가 나의 귓가에 들려준 이야기다.
“안 돼. 당신의 꿈과 낭만은 인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도시생활만 한 아내가 너무 낭만적인 생각만 하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도 느꼈단다. 도심 속의 농촌사람이 되어 힐링체험을 하도록 한 것이 아내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것 같다. 지금의 농촌은 내가 농촌에 살던 때와는 다르다. 농촌의 일들이 모두 기계화되어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소들에게 멍에를 씌어 쟁기를 끌던 농부들도 찾아볼 수 없다. 한 참 인기리에 상연되었던 영화 ‘워낭소리’의 장면도 볼 수 없다. 사람이 흙으로 빚어졌다고 하니 흙을 밟고 살면서 흙의 정기를 받고 사는 것이 순리인 것 같다. 앞으로 귀농 귀촌교육을 통하여 많은 적응을 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