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경력 박정희가 벌인 악날하고 무도한 짓들
박정희 정부(1961~1979년)는 18년간의 장기 집권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 헌정 질서 파괴, 그리고 민주주의 억압 사건들을 공권력을 동반하여 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주로 비판받는 핵심적인 독재 행위와 인권 유린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헌정 질서 파괴와 장기 집권 조장
• 5·16 군사정변 (1961년): 군사력을 동원하여 합법적인 장면 내각과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 10월 유신 (1972년):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집중시키는 초헌법적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 국가 권력에 의한 사법 살인 및 고문
•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75년): 중앙정보부의 조작과 고문을 통해 죄를 뒤집어씌운 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8명의 피고인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이는 국제법학자협회로부터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되었습니다.
• 중앙정보부의 고문정치: 비밀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를 활용하여 정적, 민주화 운동가, 언론인들을 불법 연행하고 잔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3. 인권 유린 및 불법 납치
•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일본 도쿄에 머물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조직적으로 납치하여 살해하려다 국제적인 압박으로 미수에 그친 중대한 주권 침해이자 국가 테러 사건이었습니다.
• 대한청소년개척단 및 강제 노역 (1961년~): 사회 정화라는 명분 하에 무고한 시민과 부랑인들을 강제로 잡아 들여 [서산개척지] 등에서 무임금 강제 노역을 시키고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4. 민주화 운동 유혈 탄압
• 긴급조치 발령: 유신 체제 비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긴급조치(1호~9호)를 잇달아 발령하여, 정권에 비판적인 말 한마디만 해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부마민주항쟁 탄압 (1979년): 정권 말기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군대를 투입해 계엄령 및 위수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이는 결국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10·26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박정희 정부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과 인프라 구축의 성과를 냈다는 긍정적 시각도 존재하지만, 권력 유지를 위해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한 좌익 스타일 독재의 과오 역시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
지나간 과거는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현재는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좌우균형의 통합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