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7. 12 주일예배 설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마태복음 5:10)
Ⅰ. 서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이 세상에서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만사형통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는 행복의 개념에 있어서 다른 관점을 갖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때로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환난을 겪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해야 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주님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여기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일까?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자.
Ⅱ. 본론
그러면 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된 자일까?
1.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그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로부터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특히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자 밥이 되기도 하였고, 산 채로 화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개종 전에 예루살렘 성도들을 박해했다. 그 때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씀하셨다(사도행전 9:4).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울은 분명 성도들을 박해했다. 그런데 주님은 사울이 예수님 자신을 박해하신 것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수 믿는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도들이 곧 예수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결국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성도들이 박해받는 것은 그들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예수님께 속한 자임을 증명해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지금도 주님께 속한 성도들을 박해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였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면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박해를 오히려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는 그 박해와 고난을 통하여 성화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박해와 고난은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박해와 고난이 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왜 성경은 박해와 고난이 복이라고 이야기하는가?
그것은 박해와 고난이 우리의 신앙을 정금(순금)같은 신앙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고난이야말로 우리 신앙 가운데 존재하는 불순물을 걸러내어 우리의 신앙을 아주 순수한 신앙으로 만드는 도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도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바뀌어 결국은 성화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도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도 베드로도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신 위대한 인물들(요셉, 모세 등)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고난의 훈련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이 정금같은 신앙으로 성화된 자들이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나 고난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당하다 죽은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다 죽은 사람은 참으로 복된 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난으로 일관된 그의 생애를 마감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한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리고 그는 고난 받은 성도가 장차 받을 하늘의 상급은 현재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확신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로마서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도바울은 이처럼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죽음도 불사한 채 복음을 증거하였고, 웃으면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다(사도행전 20:24).
스데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하늘 영광을 바라보았기에 복음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며 박해자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며 순교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7:59-6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확신하면서 의를 위하여(=예수 믿는 것 때문에=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며, 그분을 증거하는 것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Ⅲ.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정체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는 자를 말한다. 즉 세상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상을 거꾸로 살아가기에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의 것이고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기쁨으로 받고 이겨내어 큰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