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무봉산(舞鳳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942년(태조 25)고려 전기 승려 남대사(南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때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그 뒤 퇴락된 채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1972년 주지인 혜송(慧松)이 대웅전과 삼성각(三聖閣)·요사채 등을 중수하였고, 1979년 실화(失火)로 요사채가 전소되자 1980년 크게 확장,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극락전으로도 사용되는 동쪽 요사채와 서쪽 요사채 등이 있다.일주문 지나 천왕문위에 명부전이 있는 특이한 구조.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後佛幀畫)·신중탱화(神衆幀畫) 등이 봉안되어 있다.
철조여래좌상은 높이 143㎝. 후삼국시대의 광주 철불 등의 양식을 계승한 철불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불이다. 두껍게 개금(改金)되어 원래의 세부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는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오른팔과 양 손은 모두 나중에 보수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석탑재(石塔材)·석등재(石燈材)·석불·부도 등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재(石材)들이 산재하여 있으나 결실된 부재(部材)들이 많아 대부분 복원이 불가능하다. 어정(御井)이라고 불리는 우물은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시게 되었는데 물맛이 특이하였으므로 샘 이름을 감로천(甘露泉)이라고 명명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세조가 마신 물이라고 하여 그 물을 어정수라고 불렀다.
도시에서 멀지 않고 교통도 편리한 반면 아늑하게 감싼 산과 절 앞쪽 멀리에서 동서로 흐르고 있는 진위천, 그리고 주변에 넓게 펼쳐진 들과 그 너머 보이는 산들은 한적한 시골풍경을 자아낸다. 절 앞쪽의 진위천은 많은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위향교가 위치하여 만기사의 철불과 함께 우리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기도 하다.
평택을 연결하는 1번 국도에서 가까운 곳으로 산속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으로 교통이 편리해 숲속의 여유로움과 아늑한 사찰의 풍경을 만끽하기에 좋은 곳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 가람을 최근의 중건불사로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산기슭 나지막한 비탈면을 이용해 상중하 세 단으로 대지를 조성한 터전 위에 위계에 맞추어 여유롭게 전각과 당우를 배치하고 있는 만기사는 상쾌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주불전인 대웅전 안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67호)이 있어 절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이 철불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철불 양식을 지니고 있어 고려시대 불상의 숨결을 느끼면서 신심(信心)을 고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 이곳은 세조가 지나다 수레를 멈추고 우물을 마셔보고 “이 우물은 감천(甘泉)이니 감로천(甘露泉)이라고 하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의 절은 그 당시의 절과는 좀 떨어져 새로이 조성되었지만 현재 절 아래에 있는 약수터에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을 길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가까운 곳 높지 않은 산기슭에 이렇게 아늑한 절이 위치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여유로움에 더하여 서울과 경기도 권역에서는 흔하지 않은 고려시대의 철불을 배알하며 예불을 드리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주지 원경(圓鏡)스님을 비롯하여 모두 세 분의 스님이 거주했으나 최근 원경스님은 입적하셨다.
원경 스님의 은사인 송담(1927~ ) 스님은 아직 생존해있지만 부도탑이 세워져 있다.
송담 스님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전강 선사의 상수 제자로, 경허 선사 - 만공 선사 - 전강 선사 - 송담 선사로 이어지고 있다.
문중의 안정과 화합을 강조해 온 송담 스님은 용주사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주지 선거가 진행되면서 문중 내부에서 반목과 대립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크게 낙담했다. 이 과정에서 송담 스님은 종단을 떠나겠다는 뜻을 처음 세웠다. 2014년 용주사 주지 선거 과정에서 문중 내부의 불협화음이 발생하자 2014년 제적원을 제출하며 조계종에서 탈종하였다.
남진제 북송담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추앙받았던 송담 스님의 탈종소식은 조계종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