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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7:1~3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7:4~10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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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살렘 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자,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의와 평강의 왕인 그는 족보도, 생명의 시작과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았습니다. 그는 레위 족보에 들진 않았지만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을 만큼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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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7:1~3
하나님은 예수님을 가리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셨습니다(5:10).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한 교훈을 다시 시작하면서, 그가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근거를 밝힙니다. 히브리인의 시작이요 언약의 수혜자이며, 신앙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아브라함보다 멜기세덱이 우월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야기에서도 나타납니다(창 14:17~20). 또한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입니다(1~2절). 혈통의 기원이 없는 멜기세덱은 하나님 아들을 닮은 존재입니다. 이러한 멜기세덱은 하나님 아들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멜기세덱에 대한 묘사에서, 내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과 그의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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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7:4~10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1절).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고 또 아브라함을 축복한 사실은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부각합니다(창 14:19~20). 축복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받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곧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던 레위(아브라함의 증손자)도 십일조를 드린 것과 다름없습니다(9~10절). 레위와 멜기세덱이 모두 십일조를 받는 제사장이기에 지위가 동일한 듯하나, ‘죽게 될 사람’인 레위와 ‘생명이 영원한’ 멜기세덱은 위계가 다릅니다(8절).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지파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십니다. 구원은 레위 지파가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 얻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죽게 될 사람’과 ‘영원한 생명’ 중 어느 쪽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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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히브리서 7장 1~2절
아브라함 때 나타났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다는 것은(창 14:14~20) 예수님이 아브라함보다 높으신 분임을 시사합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성도는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의와 평강을 누립니다.
우리의 가장 큰 보배이신 예수님과 비견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 존 파이퍼
오늘의 기도
지존하신 주님! 십자가의 피로 제 죄를 씻기시고 제게 한없는 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왕이신 주님께 제 마음과 시간, 물질을 온전히 내어 드리게 하소서. 저와 가정, 교회가 의와 평강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을 온 맘 다해 경배하고, 온 힘으로 전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8 속죄하신 구세주를)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최고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보다 탁월하심과,(1:1~3)
천사보다 탁월하심과,(1:4~2:18)
모세보다 탁월하심과,(3:1~19)
여호수아보다 탁월하심과,(4:1~16)
아론보다 탁월하심과,(5:1~10)
본문에서는 아브라함보다 탁월하심을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히7:4)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축복을 받았으니,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보다 높고 탁월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히7:6~7)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아브람에게 복 주시려는 것이고,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14:19)
또한 우리에게 복 주시려는 것입니다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행3:26)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주께서,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사51:2)
또한 우리에게도 복을 주시고 창성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7)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우리로 십자가 고난의 광야를 통과하게 하심도 마침내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담대히 더 복을 구할 수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13:31)
그리하면 야베스의 복으로 충만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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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1절)’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일상의 삶을 이어가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일에 사용합니다.
잠시 여유를 내어 여가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이들은 외적인 곳에서 참 평안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히브리인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핍박과 환란에 처했던 이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지금까지도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주제, 곧 율법, 제사 등의 유대인의 전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표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민족에게도, 또한 이방에게도 속할 수 없는 외톨이, 왕따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5~6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보다 먼저 그들의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을 통한 변치 않는 축복의 언약을 통해 이 땅에 구원을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닻이 되시며 그들이 이제 드릴 수 없는 과거의 제사를 대신하는 신실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주셨음을 선포하며 어려운 시대에 흔들리는 그들의 영혼을 단단한 말씀으로 채워 연단된 분별력을 지녀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의의 왕, 평화의 왕(2절) 멜기세덱’
히브리서 저자는 다시 5:10~11절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계열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레위 지파의 후손이었던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과 그것을 수행한 대제사장 아론의 계열을 통한 변할 수 없는 그들의 신앙적 전통의 고수와 우월성이, 시대와 혈통과 관습을 뛰어넘어 레위의 증조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의 받고 축복을 해주었던 의와 평화의 왕이었던 멜기세덱(창세기 14장)의 새로운 계열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이미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변치 않고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을 품게 하며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환란의 너머에 있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보이지 않는 소망을 믿음의 눈으로 붙들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각자의 보물들을 하나님의 진리 앞에 내려놓는 헌신을 통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누리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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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의 왕 평화의 왕(1-3절)
오늘 성경에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사역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예표적인 인물로 멜기세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면서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던 살렘왕 이었습니다. 이 뜻은 곧 평화의 왕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의의 왕입니다. 의의왕이자 평화의 왕인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땅에서 실천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켜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함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모든 인간이 가진 형통근거를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께서 가지신 영원한 신성과 탁월성을 넉넉히 예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에 대한 의심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확신하고 더욱 더 예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소유하여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의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갖고 있는가?
2.멜기세덱 제사장직의 우월성(4-10절)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율법이 있기전 이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인정하고 십일조를 바칠 정도로 명예롭고 존귀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레위계통의 제사장들이 세워지기도 전에 이미 계셨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탁월한 것입니다. 결국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나온 예수님의 대제사장직 역시 레위계통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우월성은 곧 우리의 가진 신앙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고 확고한 소망이 있는 지를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인정하며 신뢰하는가?
살렘 왕 맬기세덱은
고대 예루살렘 도시국가의 왕으로,
(히브리 민족과 관련이 있기 전) 왕과 제사장을 겸직한 의의 왕으로 불렸던 왕입니다.
그에 대해선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나 신학자 칼뱅 등은
그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순수하고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가진 가나안의 왕으로 봅니다.
즉, 홍수 후에 여러 땅으로 흩어진 노아의 후손들 가운데 살렘 땅에 정착한 경건한 후손이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다만 그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족보가 없다는 점에서 그를 신적인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단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의 탄생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그것을 통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그의 제사장 되는 특징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 직분이 아론의 제사장들처럼 족보나 출생 같은 외적인 조건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확립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저자는 그러한 점을 통하여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제사장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것을 입증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라는 표현입니다.
닮은 것입니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본체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는 원형이고, 멜기세덱은 모형인 셈입니다. 원형이 포인트입니다.
까다로운 문제도 맥을 잡으면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성전제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희생제물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양과 염소 등의 제물이 바쳐집니다.
인간의 죄값으로 치러져야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죄 없다 용서하시며 만나주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제사는 끓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조차도 죄를 범하기 때문으로, 그것은 불완전한 제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죄가 없는 제사장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완전한 제물, 동시에 완전한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다시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니, 단 한번으로 완전한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입니다. 아울러 대속 양도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대제사장이 되셔 스스로 죽어야 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혈과 육을 입으시고, 그것도 아주 조그만 처녀 아기방으로 그 엄청난 분께서 오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무엇이 불만족이며, 도대체 어떤 것이 부족한가요?
또한, 무엇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기시는지요?
사는 것 자체가 호사입니다.
호흡하는 것조차 감사입니다.
예수님 이후 태어난 것이 행복입니다.
평생 그 은혜를 갖고 사는 자는 만 개의 입이 있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대로 갈 수 없습니다.
무언가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모든 성경을 통틀어 꼭 집어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할 것을, 친히 당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해 복을 빌자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것의 10분의 1을 주었습니다.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인 그는 족보, 시작한 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은 제사장입니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않지만 아브라함에게서 10분의 1을 취할 만큼 높은 자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그에게 십일조를 받았습니다(창 14:18~2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레위 족속에서 선택된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은 추적할 수 없는 그 근원 때문에 오히려 더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초점은 멜기세덱이 아닙니다.
그러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이
아브라함이나 레위 지파 대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멜기세덱과 레위 제사장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 적용 질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이 내 삶과 세상의 주인 되심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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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제사장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던 직분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그 중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백성의 위치에서 백성의 죄와 허물을 사하는 제사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세 가지 직분의 사역을 다 감당하셨는데 오늘 본문은 제사장 직분에 대한 설명입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의 으뜸으로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 사역에 있어 자신을 희생제물로 삼아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긍휼히 여기시며 백성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도록 중보의 역할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이야기인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멜기세덱이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멜기세덱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멜기세덱은 그의 이름과 그가 다스리던 도시의 이름 그리고 그가 성경에 나타나서 행했던 특성을 들어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아주 많이 나오기 때문에 멜기세덱을 신비한 인물로 말하기도 하지만 멜기세덱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는 예수님이 신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멜기세덱에 촛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서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독특한 제사장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려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적으로 가져와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2.멜기세덱 비유
멜기세덱의 이름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랐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의의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데 그 분은 우리 편에 서기 때문에 법을 어기고 우리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 편에 서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법을 지키셨습니다. 모든 법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기준을 충족시키셨습니다. 세상의 제사장들이 전에 제사를 드릴 때는 그들이 죄가 없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에 필요한 '의'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의 왕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백성들을 위해 죽으실 수 있고 '죄의 삯의 사망'이라는 모든 법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멜기세댁은 살렘이라는 도시의 왕이었습니다. 살렘은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평안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시고 온전한 샬롬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살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대제사장입니다. 멜기세벡은 또한 성경에서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는데 이 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에서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유비가 나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절) 하나님의 아들이 그와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 세상에는 족보가 없는 대세자장입니다. 그 분의 족보는 오직 하늘에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서 오신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으로서 대제사장이며, 평안의 왕으로서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의가 이루어지고 평안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것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세상의 모든 시도를 멈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으로 주어지는 의와 평안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평안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형
멜기세덱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위대한 제사장임을 논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체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자신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이루십니다. 우선 메시아를 통해 구원하실 것을 영원 전에 계획하셨고, 역사에서 멜기세덱을 모형으로 세워 메시아의 등장을 예고하셨으며(창 14:17-20), 그때로부터 약 2천 년 후에 멜기세덱의 원형이며 정의와 평화의 왕이자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장차 예수님을 다시 보내셔서 완전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이룩하고 우리로 하여금 거기서 영원히 안식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껜 실수도, 실패도 없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구원의 계획을 이루셨다.
자기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완성하셨다.
구약은 그림자와 같다 하였다.
구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확실해졌다.
그 계획 속에 나를 포함시키시니 감사하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내 몫이다.
흐트러짐 없이 푯대를 향하여 오늘도 정진하길 원한다.
전체 :
예수님은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에 레위 지파의 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시 110:4) 대제사장이 되셨기에,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함을 증명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지닌 보통 사람이었지만,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신비한 존재로서 영원토록 있는 제사장으로 인정됩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족보를 따라 제사장이 되고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족보를 초월하여 제사장이 되었고 율법이 있기도 전에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십일조를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으며, 그러니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칠 때 그 후손인 레위도 함께 바친 셈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으니 당연히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보다 높은 존재입니다. 유대인이 그토록 바라던, 아니,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염원하던 구원을 가져다주실 분은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여정 동안 한눈팔지 말고 흔들리지 말며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찬송합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그 시대의 사람들이 멜기세덱을 잘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해 본다.
예수님을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히브리 기자는 멜기세덱을 언급하였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멜기세덱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시다.
평강의 왕으로 함께 하신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끝까지 예수님만 따라갈 수 있는 승리자로 살기 원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4절 :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우리의 왕이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모형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는 멜기세덱의 원형이신 예수님을 더 섬기고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 합당한 삶과 예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
십일조의 기원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경배했듯이 예수님을 그렇게 경배하라는 것이다.
물질로도 섬기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물질의 십일조가 있다.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기도 한다.
난 어떤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드리기에 인색하기도 함을 회개한다.
생각까지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생활 전반에 주님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께서 날 찾아오신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큰데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적어 주님께 죄송할 뿐이구나.
오늘 하루는 좀 더 힘써 보자.
더 주님을 생각하고 더 가까이 가 보자.
주님!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형식적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말씀을 따른다 하면서도 제 생각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만 온전히 경배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다스림 안에 있음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제 생각과 불순종의 모습을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 못 박게 하옵소서.
이 하루는 더욱 주님 따르기를 힘쓰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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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 예수님은 왕이시며 제사장이십니다(1~3절).
히브리서 기자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인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아브라함이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만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1절). 아울러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레위 지파의 제사장의 경우 아버지는 아론의 후손이어야(출 28:1) 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율법으로는 불가능했던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고, 모든 조건을 초월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 자존하시는 분이신데, 이는 그 시작과 끝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는 멜기세덱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3절)입니다.
멜기세덱의 가장 큰 특징은 왕이면서 제사장이라는 것이며, 영원한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입니다. 왕이며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그 직무를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온전한 의와 평강의 복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써의 삶은 많이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세상의 가치원리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즉, 먼저 받고 누린 자로써 아직 받지 못한 자를 섬기는 영적 원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죄인이었던 내 자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던 내 자신이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미 받아서 누리고 있는 은혜와 평강의 복을 나누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그분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존귀하신 하나님이십니다(4~7절).
아브라함이 아무리 탁월한 조상이라고 할지라도 전쟁에서 이겨 얻은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을 만큼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인물임을 강조(4절)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다른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취하지만, 레위 족보에도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5~6절). 두말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 사람에게서 받는 법(7절,새번역)인데도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던 멜기세덱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예표의 실체로 오신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희생은 숭고하고, 지극히 값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와 불의를 완전히 속량하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권력자가 낮은 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높으신 분으로서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가장 낮은 내 자신에게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자기 부인과 희생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따라 삶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섬기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그분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영원하신 제사장이십니다(8~10절).
제사장들로 십분의 일을 받지만, 그들도 결국 죽을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하나님으로부터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라고 기록(8절)하고 있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이신 아브라함보다도 멜기세덱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9절).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아브라함의 몸 속에 있었기 때문(10절)입니다. 결국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한 사람은 죽음에 매이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며, 그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주의 자녀로 살아가는 내 자신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받고 변치 않은 하늘 천국의 유업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위기나 환난을 만날지라도 온 땅과 만물을 다스리시며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을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큰 인생의 문제 앞에 서 있다 할지라도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간구하시는 예수님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죽음보다 크시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자신의 연약함을 위해 간구하시며 도우시고 계시기에 그 무엇도 내 자신이 받은 하늘의 축복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그분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왕이시며,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서 의인으로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온전한 평강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떤 위기나 환난을 만날지라도 만유를 다스리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늘 새롭고 살아있는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고 충만한 인생으로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성령으로 매일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오직 아버지의 강한 팔과 능력의 손을 붙드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보살펴주시고 지진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모로코 땅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구합니다.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