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부터 과거 까지를 역사라고 한다
역사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
문화 와 유적 그리고 유물 이 역사의 구성요소 일 것이다
문화에는 풍속과 민요 그리고 구전설화 사상(철학) 언어등 이 있을 것이고
유물에는 각종 골동품 외에 역사서가 있을 것이다
유적에는 조상들이 남겨놓은 구조물 과 지명 이 있을 것이다
역사 의 내용에는 무엇이 있는가 ?
존재한 흔적 과 이동한 흔적 그리고 빼앗은자 와 뺏긴자 그리고 혈족과 어족 친연관계와 투쟁관계 이런 것들이 시간 위에서 전개 된 것 이 내용 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전개된 투쟁사는 혈족과 친연 이 투쟁의 발단이 되어 발생 한 것인데도 오늘 날 승자의 역사는
패자의 역사를 지우며 패자의 조상과 재산이 원래 자기 조상이고 자기 재물이라고 호도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동이와는 조상신 하느님 부터 다른 하화족 이 동이족을 몰아내고 그 역사를 지우고 자기네 조상들이 원래 동이족 이었다고 환부역조 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역사의 진실을 원하는 본 연구회는 하화 나 동이가 역사서에 등장하는 한 그리고 그들이 서로 투쟁하던 과거사 가 있다면 그것에 관하여 연구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씨조선이 흑해 카스피해 서쪽에도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카스피해 서쪽 지역에의 구전설화 나 사상 그리고 풍속 등의 동질성 그리고 이씨조선이 가지고 있는 역사서 내용과 그 쪽의 자연지형 과 기상등 이 일치하는 점을 제시 해 주어야 한다
이씨 조선이 카스피해 서쪽 까지라면 고려도 그 쪽 에 있었을 것이고 신라도 그 쪽 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의 역사서 나 신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들이 그 쪽 의 자연상태 와 일치하며 그 쪽에도 고려나 신라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구전 설화 나 민요 같은 것이 있는지 알아 봐야 한다
그런 후에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 쪽 역사가 한반도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최남석의 생각을 털어 놓자
카스피 해 서쪽 은 인종과 지명이 중앙아시아에서 간 것 일 뿐 고려나 신라 백제의 역사서는 지나대륙에서 일어 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조선사 나 서양조선사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 일 뿐 역사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흐트려 놓아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시간낭비라는 방해 만 줄 뿐이다
다만 고구려 나 대원제국의 정복역사 편린은 카스피해 서쪽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금의 역사지식에 비추어 납득 할 수는 있다
첫댓글 중국 공산당 제 1세대를 모택동 계, 제 2세대를 등소평 계로 보는데, 자료를 찾아보면, 두 세력간에 갈등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순탄하게 1세대->2세대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 진 것은 아닌듯 합니다. 1세대를 보게되면 '모'라는 것은 백제왕을 상징하므로 한국의 역사가 공유된다는 관점에서 해석되지만, 2세대로 넘어가면서 그것이 퇴색하게 되는 것이죠. 즉, 1세대의 상당수 인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만...
또, 그것이 그렇게 바뀌게 된,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60년대~70년대까지 '정체성'에대한 갈등이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살펴보면, 보입니다...
상당히 흥미있는 내용은 1970년대 중반에 동아시아에서는 일련의 세대교체의 작업이 일어나게됩니다. 1974년 한국에서는 육영수 여사가 사망을 하였고, 1975년에는 대만의 장개석이 사망을 하고, 그 뒤를 이어 1976년에는 바로 모택동이 사망하게 되는 것이죠... 비록 박정희의 죽음은 1979년이지만, 분명히 일련의 연관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1950년대 이전 대륙중심적 동아시아 역사가 어떻게 한국전쟁과 함께 더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는'가가' 보이는 것이죠...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바로 이동하는 역사의 중심점이 꾸준히 이동하여 왔다는 것을 뒷바침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의 분수령이 바로 1970년대 중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양조선사"가 또 다른 조선사로 있는 모양이군요?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흐트려 놓아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시간낭비라는 방해 만 줄 뿐이다."는 지적을 하셨군요. 당연한 지적이십니다 그려. 지난날 처음 "대륙조선사"의 발표가 그랬답니다. 어디 카스피해, 흑해 주변에 어떤 력사가 있는지 한번 찾아봅시다요.
최남석선생님의 지적...지극히 자연스럽고 정확하신 말씀 같습니다.
물론,고구려나 특히 신라 비류백제(페르샤)의 영역은 카스피해 까지 미쳤을 순 있겠고...수당의 영역은 이집트까지라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중원대륙 동부가 삼국과 고려와는 다른 문명인 듯...그 더 동쪽인 현 만주와 한반도는 뭔 미지(왜노?)의 문명이나 되는 듯 한 뉘앙스의 주장들은...
고지도 자료들에 수없이 나오는 조선과 고레란 지명은 모조리 무시하고...아직 검증도 제대로 않됀 파미르 서역의 조선이 미친의 편린들만을 조선의 중심으로 과대해석하는 오류일지 싶습니다.
수 없이 나오는 고지도들의 일관됀 지명표기들이 모조리 음모에 의한 조작이라면...
같은 논리로...아직 그 실체도 정확히 규명&검증도 않됀 파미르 이서가 조선문명의 편린들은 어찌 조작돼지 않았다 보장할 수 있으며...
그 편린들이 조작이 아니라 하더라도...그게 어떻게 조선은 중원동부엔 없었단 증거가 돼는지도 의문이라 하겠습니다.
유치하게 비유하자면...
서울 테헤란로를 보고...조선반도는 원래 서역인들의 터전였다 과대 해석하는 식의 오류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은, 조선은 한반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그 지도를 보면. 절대로예요.
수 많은 한반도 관련 지도들 중...대동여지도는 일제의 교열을 받은 대표적 지도입니다...당연 왜곡이 가미됀 지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대동여지도란 명칭을 보더라도...조선(고려)이란 나라의 동쪽땅임의 명칭으로 전 보입니다.
그걸 일제와 대한졔국 친일파들이...반도만이 조선(고려)의 전체영토라 억지 쇠뇌했던 것이라 보입니다.
왜곡됐던 않 됐던...한반도 조선의 강역은 구한말까지도 현 동북삼성...크겐 북경일대와 동몽골...더 크겐 서안일대까지로 표기됀 양이들 지도를 보건데...조선(朝鮮)이나 고려(꼬레)등으로 표기된 나라가 한반도를 포함해 현 만주와 북경 서안일대를 본향으로 했단 반증같으며...그 외 중원 전체와 서역에서 나오는 조선문명과 동일시 되는 문명들의 흔적은...고려(고구려)와 탕구트(왕건고려)의 흔적들로 보이며...더 크겐 이를 흡수했던 몽골(무굴,마고려)의 흔적들이지...역사가 조선이라 명기한 조선 후기의 영토를 이름은 아닌듯 합니다.
특히...고려라 명기된 자료들을...무조건 조선으로 해석하는 현 대륙사학계들의 고정관념도...스스로 이론적 함정을 파는 오류라 생각됩니다.
고려와 조선은 그 통치영역이 턱없이 다를수 있고...한반도와 현 만주의 고레(고려)라 표기된 나라는...왕건의 그 고려(탕구트?)와는 다른...아골타의 금나라를 칭하던 명칭였을 수도 있음도 감안해야한다 보입니다.
고려(고례,꼬레,고리)란 국명은...왕건의 그 고려(탕구트?)만의 전유물이 아닌...고구려 이후 그 계승국들 대부분이 나라를 뜻하는 궈(國)이란 명칭으로 사용하던 음이였음의 흔적을 보건데...
거련(거란.글단.계단=키당?)과 금나라(키타이) 그 이후의 몽골(무구리아=무고려)제국들 모두의 나라란 발음에...고려(고례)란 통칭이 붙었음을 보건데...
완건고려(탕구트?)가 몽고려(몽골)에 제압당한 이후까지도...서역에서 나오는 고려(코레) 비슷한 지명들을 무굴이나 거란의 흔적으로 보질 않고...무조건 완건고려의 흔적이라 해석함은...
큰 무리수라 하겠습니다.
특히나 그 거란이나 무굴을 이르는 것으로 보이는 고려(코레,고리.꼬리)등의 명칭을...역사내내 망국직전까지도 그대로 이씨조선이라 직역하는 오류가 시동부터 역사연구의 헛걸음을 스스로 유발하는 패착으로 보입니다....이씨조(차이나)를...한반도나 현만주의 선비국을 이른 그 조선(朝鮮)으로 무조건 직역함도 전체 사학자들의 근본적 헛삽질로도 보이고여...
제일 큰 근대사의 역사조작과...이를 무조건 기본으로 깔고 접근하는 역사학자들의 패착은...뭐니 뭐니해도 이것이라 사료됍니다.
일제에 업혀 조선에 진입한 대한뎨국(떼국)을...朝鮮이라 무조건 전제하는것.
지도?! 세계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지도를 보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한반도"가 "조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400년대에 만들었다는 <혼일력대국도지도>라든지, <곤여지도>라든지, <천하도>라든지 그 어떤 것도 한반도를 떠날 수 없는 것이 "조선"의 강역입니다. 1600년대, 1700년대, 1800년대 그 어떤 것도요. 지도로써 그 숱한 유명한 학자들의 지도들이 다 "한반도"이지요. 이를 바탕으로 력사를 연구한다면, 그것이 옳다면, "왜곡"이란 말 자체가 참으로 우스운 것이지요. 이를 부정해야 할까요? 인정해야 할까요? 나는 ...
<대동여지도>가 왜곡되었다는 말은 참으로 우습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도들도 왜곡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말인데 아닙니까요? 아닌가요? 그래서 <대동여지도>를 왜곡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모든 지도들도 왜곡되었다고 해야 옳은 말이 되지요!!! 그렇다면 조선의 력사를 다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 되고요.
예전부터 본카페에는 제가 영감을 받는 두분이 계셨는데, 한분이 바로 최두환 선생님이시고, 또 다른 한 분이 바로 홍진영 선생님이시죠.. 두 분이 담론을 나누시는 것을 뵌지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만...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하시는 최선생님에 비해서, 감성적 또는 시공을 초월하는 직관력을 보이시는 것이 홍선생님이시죠... 두 분다 따라가기 힘든 면모를 가지고 계시나 두 분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상호 보완적 관계로 진보하고 계신것이 수년전에 비해서 제 눈에 비취어 보입니다... 짧은 소견입니다...
최두환 선생님은 "과학자" 스타일이고, 홍진영 선생님은 "소설가" 스타일이라고 제 눈에 보입니다. (하하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철저한 "과학적 검증 과정"이 없다면 어떠한 주장이나 학설이든 "허구(虛構)의 창작물(創作物) 또는 저작물(著作物)"에 불과합니다.
홍선생님께서는 fact를 제시하십니다... 항상, 그리하여 소설가보다는 한단계가 높다고 평하여 집니다. 과학적 검증은 여러사람이 함께 시간을 갖고 차근히 하여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못찾는 자료를 제시하시는 노력이 참 저에게는 대단해 보이십니다...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특기라고 봅니다만...
특히, 최근의 정곤수 초상과 과거의 가칭 '티무르이론' 이런 것들을 보면 기존의 억매여있는 고정관념을 완벽히 무너트리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홍진영 선생님이 "Fact"를 제시하신다고요??? 아닐 겁니다. 그 "Fact"가 무엇인가요?? "역사적 사실(Fact)"인가요??
김재만 선생님은 홍진영 선생님을 과대 평가하시는 겁니다.
홍진영 선생님은 어떤 "정황"(상황)만으로 저를 "정신병 경력자"로 취급하셨거든요... (하하하)
학문은 과학입니다. 소설은 문학이지 과학이 아니며, 학문도 아닙니다. 력사는 한때, 지금도 문학에 바탕을 두고, 두려고 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 즉 과학입니다. 문학은 학문은 아니며 허구로 이루어진, "참"으로 인정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 "참"과 "참" 사이의 사건을 이어주는 부분만이 공감을 가질 수가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문학으로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문으로 잘못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으로써 학문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학문으로써 문학의 성격을 따질필요없죠.
학문이나, 문학이나, 그 분야의 특성이 있으니까요. 상상력도 필요하고, 논리적 비판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홍진영 선생의 접근도 결코 나무랄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 분야의 특성으로만 리해하면 될 것이니까요.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이런 분야의 특성을 제대로 리해하고 있을지가 가장 걱정입니다. 실제로 문학과 학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훨씬 더 많을 것이니까요. 이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거짓"을 "참"으로 인식해버리게 된 경우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따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과학적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학적 연구란 실증 / 물증을 요구 하는 것인데 유물 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유적을 조작 하면 과학적 연구도 무의미 해 집니다 승자에 의해 왜곡 된 역사에서 는 유물 유적도 참고사항 일 뿐 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 보면 상황논라(정황) 가 그런대로 합리적 이었습니다 홍진영 님의 글을 보면 많은 시간 자료수집을 한 후 그것이 조작인가 ? 아닌가? 를 고민 한 후 상황논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그것이 유일무이 한 결론 확정적 결론은 아니더라도 역사의 진실을 이해 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과학적 연구는 왜곡 된 역사에 한 해서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 합니다
최남석 선생님의 지적도 일리(一理)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아무런 물증(物證)도 없이 "정황"(상황)만으로 "정신병자" 또는 "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정황"(상황) 논리는 물증(物證)을 보충 또는 보완하는 경우에 그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홍진영 선생님의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라 "정황"만으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독해력(讀解力)에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할 경우에는 독해력(讀解力)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독(誤讀)과 오해(誤解)는 엉뚱한 결론으로 유도합니다. 그래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홍선생님께서는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 상당히 능하십니다.. 과거의 자료를 찾아보면 그것을 알 수 있어요...
과거에 제가 이 카페에서 글 쓰기를 금지당할 때에도, 홍선생님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구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렇게 반론하다가 활동을 멈추게 된 것이죠... 그러니, 배경이 궁금하다 이것입니다...
홍진영 선생님에게는 자료 수집에도 문제가 있고, 그 분석과 해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소설가" 스타일이라고 제가 말하는 겁니다.
홍진영 선생님이 인용하시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 한계가 보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계속 "소설"만 쓰실 겁니다.
홍진영 선생님은 저와 논쟁하시면서, 어떤 "정황"만으로 저를 "정신병 경력자"로 의심하셨습니다.
정신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하하하)
아무런 물증(物證)도 없이 "정황"(상황)만으로 어떤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저런 논쟁을 통하여, 홍진영 선생님의 문제점을 제가 분명히 인식하였습니다. 그 분이 그것을 고치시면, 아마도 "위대한 연구자"가 되시겠지요...
"과학적 연구는 왜곡된 역사에 한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최남석 선생님의 생각은 오해(誤解)라고 봅니다.
"왜곡된 역사"는 "과학의 예외"라고 보시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고 저는 봅니다.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자체가 "과학"의 영역이며,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하는 "머리"를 버려야 합니다. 사견(私見)입니다.
어떤 주장이나 학설의 논리에 결함(비약, 함정, 모순 등)이 존재하거나 그 증거가 부족하면, 당연히 연구자들로부터 그것은 배척됩니다.
"과학적 연구란 실증(實證)/물증(物證)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최남석 선생님이 주장하셨는데, 그것이 전부(全部)는 아닙니다. 일부(一部)에 불과합니다. "정황"(상황) 논리를 전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다만, "정황"(상황) 논리는 물증(物證)을 보충 또는 보완하는 경우에 그 존재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 저기에서 단편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정황"(상황) 논리로 해석하여도 어떤 결론은 나옵니다. 특히, "정황"(상황) 논리로써 새로운 견해를 최초로 밝히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방식에는 "자의적인 해석"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단편적인 기록 자료들... 이것도 일종의 물증(物證)입니다. 이것들을 가지고도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유물(遺物)과 유적(遺跡)만이 물증(物證)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유물(遺物)과 유적(遺跡)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분석 논리에 결함(비약, 함정, 모순 등)이 존재하면 어떠한 물증(物證)이라도 그 증거력(證據力)이 떨어집니다.
유물(遺物)과 유적(遺跡)은 그저 "참고 사항"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황"(상황) 논리가 진실을 규명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오해(誤解)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