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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高句麗) 멸망원인중 하나는 종교(宗敎) 싸움이었다.
여소제 추천 0 조회 861 09.09.25 22:03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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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9.25 22:06

    첫댓글 윗 글에서도 말하였으나 물론 이것에 대한 증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몇줄 안되는 기록들 뿐이며 추측일뿐입니다. 뭐 본인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것중 가장 근거가 미미하네요.(좀 많이 까일듯...) 어쨋든 한번 과감히 추측해봤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9.09.25 23:20

    그럼 남건은 왜 군권을 승려 신성에게 부여했을까요? 여소제님의 논지를 주욱 보면 당시 고구려 내부에서 불교도에 대한 대우는 그리 좋지 못 했는데요. 물론 남건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아버지가 고구려 최고 권력자였는데 둘 사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여소제님 말씀이 맞다면 신성은 연개소문 사후 의도적으로 남건과 결탁한 불교 세력으로서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 어떤 음모를 꾸몄다고 봐야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남건은 사람을 잘못 믿고 대의를 그르친 거구요. 여기에 대한 생각을 좀 부탁드립니다. ^^ 그럼 이만.

  • 작성자 09.09.26 14:51

    돌부처님도 말씀하셨지만 연남건은 사실상 입지가 좁았고 이에 따라 불교 세력에 힘을 빌린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기록 부족으로 "연남생이 독실한 도교도였는가?" 하는 증거는 없지만 말이지요.

  • 09.09.27 08:36

    흐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 감사합니다.

  • 09.09.25 23:37

    제 생각엔...그만큼 남건의 입지가 좁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연개소문 사후 사실상 대권은 남생에게 있었으며 그와 불화관계에 있는 남건의 입지는 상당히 좁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기에 남생이 자신있게 도성을 떠나 지방을 순시할 수 있었던 것이죠. 다만 남건과 남산은 이 기회를 잡아 평양을 장악합니다. 남건의 입지가 좁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첫째 남생이 쉽게 도성을 떠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남건이 평양을 장악하고 왕을 배후에 두고도 남생을 1년 가까이 극복하지 못한 점, 셋째 당시 대표적 귀족가문이라 볼 수 있는 고현과 고자 가문 등이 남생과 함께 당에 투항한 점입니다.

  • 09.09.25 23:38

    결국 남생을 몰아내고도 기반이 약하고 주위에 사람이 없다보니 결국 힘을 빌 수 있는 세력이 그나마 남아있는 불교세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09.09.25 23:42

    불교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주장은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발굴되는 유물의 양도 그렇고, 벽화를 봐도 그렇고, 무엇보다 고구려에 다양한 신앙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여소제님 글은 상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빈약하다고 하시는데, 자료가 많은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 있어서 하나의 근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같을 수 없죠.

  • 09.09.25 23:54

    다만 시대에 따른 구분이 필요할것 같은데요. 4~5c의 경우 왕의 이름을 불교식으로 지었다는 것은 확실히 이 시기만큼은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작성자 09.09.26 14:49

    그건 그렇습니다. 고구려 후반기에 불교 세력이 약화된것이지 삼국사기나 다른 사서들을 보아도 그 이전에는 불교 세력이 아주 강했지요.

  • 09.09.26 10:55

    본문 논지와는 큰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 하나 지적합니다. 위에서 태평(太平)을 AD556-557에 이용된 양(梁)의 연호 태평(太平)이라 하셨습니다만, AD440-451에 이용된 북위(北魏)의 연호 태평진군(太平眞君)이 아닐까 합니다. 태무제의 활동시기는 AD408-452이니, 앞의 것이라 하면 좀 이상하지요. :-)

  • 작성자 09.09.26 18:09

    흐음... 그렇네요. 참고하겠습니다.

  • 09.09.27 16:28

    고려말 조선성립도 어찌보면 불교세력을 유교세력이 몰아낸 종교개입 쿠데타라고 볼수 있겠네요

  • 10.03.22 12:06

    이만한 글을 쓰시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대단하십니다. 근본적인 논지에 십분 동의하며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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