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월 초에서 8월 말까지, 나라 안에서 가장 크고도 아름다운 연꽃들이 연달아 피는 장소가 있다. 그 부근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연꽃 향기가 진동해서 가슴 깊은 곳까지 아릿해지는 곳,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궁남지(사적 제135호)다. 입구에서 수양버드나무가 늘어진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다리, 그 다리를 건너면 호수의 가운데 포룡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백제 왕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 조원으로 알려진 이곳은 백제 왕궁의 별궁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궁남지는 백제의 조경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사적으로, 궁남지보다 40여 년 늦게 조성된 신라의 안압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일본서기》에는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나와 있다. 거의 사라져가던 것을 196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3만 평 규모로 복원했고, 1965∼1967년에 1만3000평 규모로 축소했다가 다시 주변 일대에 큰 연지를 조성해 오늘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삼국사기》<백제본기> ‘무왕 35년 조’에 실린 글을 보자.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
무왕의 이름은 장으로, 그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南池) 주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고 아명을 서동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가 평소에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무왕의 어머니가 이곳 궁남지에 살고 있던 용과 관계를 맺어 서동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그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고 마음이 비단결 같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은 뒤 마를 가지고 서울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 먹인 뒤 동요를 지어 부르게 하였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을 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밤마다 안고 돈다네.
결국 서동과 선화공주는 결혼을 하고 서동이 왕위에 올랐다는 설화가 전해져 궁남지 초입에 그 사연을 새겨 놓은 비가 서 있다.
궁남지 동쪽에 있는 화지산 서쪽 기슭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8각형 우물이 남아 있고, 그 주변에는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곳을 사비정궁(泗沘正宮)의 남쪽에 있었다고 하는 이궁(離宮)터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런 연유로 궁남지는 이궁의 궁원지였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궁남지는 경주 안압지와 달리 고유한 이름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삼국사기》<백제 본기> ‘비유왕 21년 조’를 보면 ’궁남지 가운데에 화재가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성 시대 백제의 도읍지에도 ‘궁남지’가 있었던 것이다. ‘궁전 남쪽에 연못을 팠다(穿池於宮南)’는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면 보통명사로 쓰였던 이름 같다.
또한 궁남지는 왕과 귀족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적을 막기 위한 외호(外濠)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유적을 살펴볼 때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자연형 곡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여름이면 백련과 홍련, 수련, 가시연꽃을 비롯해 나라 안에서 가장 많은 수종의 연꽃이 피고 지는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부여군이 주최하는 연꽃축제가 열린다. 2026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