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야합한 적 없었다 결단코
늘 한발 앞서 오던 체념만이 오랜 밥이고 약이었음을
고백한다 밤낮 부레끓는 숨과 다투던 폐암 말기의 어머니
악착같이 달아 펄떡이던 몸뚱이를
일찍이 반지하 시린 윗목에 안장한 일에 대하여
마지막 구원의 싸이렌마저 함부로 외면할 수 있었던 조숙한 나약함에 대하여
방 한 귀퉁이 중고 산소호흡기를 들여놓고
새벽마다 동네 장의사 명함만 만지작거렸다
그 어떤 신념보다 더욱 견고한 체념으로, 어김없이 날은 밝아
먼 산 기울어진 해도 저토록 가쁘게
가쁘게 도시의 관짝을 여밀 수 있음을 알았다 습관처럼
사랑을 구하던 애인이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뒷걸음질쳐 갈 때도
시험에 낙방하고 아무 일자리나 찾아 낯선 가게들을 전전할 때도
오로지 체념, 체념만을 택하였다 체념은 나의 신앙
그 앞에 무릎 꿇고 자주 빌었으며 순실히 경배하였다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어쩌면
이제 와 더 깊이 체념한다 한들 제 발 살 려 다 오
끝까지 매달리던 어머니의 원망 같은 무덤이 핏빛 흉몽으로 솟아오르고
안부조차 알 길 없는 애인이 허랑한 시절이 막무가내로 뺨따귀를 갈긴다 한들
행여 우연히 한번쯤 더듬거리듯 옛날을 불러세운다 한들
절망은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절망할 것이고
나는 기어이 침묵으로 순교할 것이다 다시 체념을 위하여
도망치듯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굳센 체념을
-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시선 3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