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내가 한번 말해볼까, 컨드 촌장."
"예."
붉은 머리의 소년은 이 늙은 촌장이 만든 맛있는 차를 음미하며 입을 열었다.
달칵.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은 루시퍼는 주름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올드사이언스 지구가 심한 과학의 발달로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은 알고있다.
개화적인 마계정부의 이 정책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겠지. 쉽게 말하자면 '마계정부 타도'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미 올드사이언스 지구의 일은 여러번 나의 수족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떨떠름한 기분에 촌장은 괜히 차를 한모금 마셨다.
쌉싸름한 맛이었다. 컨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올드 사이언스 지구가 말입니까?"
"물론 제거의 여부에 대해 오르내렸지."
마계의 대장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입은 누가보기에도 잔인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지배층의 진실이었다.
마계의 신세기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올드사이언스 지구.
보수파와 같은 이 옛 과학을 따르는 지역의 촌장에게 루시퍼가 찾아온 것은 일종의 통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긴장한 촌주의 반응은 당연한 것. 컨드의 흐릿한 눈동자는 턱을 괴는 루시퍼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반지배세력의 목적을 두고있다는 것은 뚜렷하게 아는 사실이다.
이제 머지않아 공격할 것이라는 것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희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다. 이것은 강요적인 것도, 강제적인 것도 아니야. 너희들의 선택이다."
"선택?"
"그렇다."
호주머니에서 캡슐이 가득 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자그마한 유리통을 건너편으로 스윽 넘기며
루시퍼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것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던 촌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것은....S.R.S의 표본 아닙니까? 뇌에 시스템이 잡입해서 사회를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잘 알고 있군."
만족스러운 웃을 지으며 루시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 없이 티 스푼으로 차를 빙빙 휘저으며 마계 국무총리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Science Revolution System... 정령계에서는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마계만의 과학기술이다..
속칭 S.R.S 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이, 만약 올드사이언스 지구사람들에게 잠식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컨드 촌장. 대답해보겠나?"
차가 뚝뚝 떨어지는 티 스푼으로 늙은 촌장을 지목하며 셀르도라가 말했다.
늙은 이들의 어투가 그렇듯, 컨드 역시 쉰 목소리로 떨리는 듯한 대답을 즉각 해왔다.
공손하게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은 촌장은 고개를 숙였다.
"…올드 사이언스 지구 사람들은 막강한 과학혁명지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 지구는 수도 카켈브스 못지 않은 곳으로 발전하겠죠. 바라는 바에 의하면, 수도를 제치고 당당히 마계 중부권의 1위에 등극할 겁니다."
"보수파인 올드 사이언스 지구가 마계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곤란해져.
만약 개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생이 싫다면, 이 캡슐을 넘겨받는 너희에게 좋은 조건이 아닌가?"
컨드의 눈썹이 움찔했다.
살짝 감은 그의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었다. 이 총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가 알기로, 셀르도라는 이런 것을 순순히 넘겨줄 위인이 아니었다.
"개화 과정에서 이 지구와 과학 기술이 잘 맞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실험체가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매스컴에서 보도됬었던 것 처럼, 이미 많은 도시들이 민간인을 실험체로 데려가 희생을 본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일이 아니게되었습니다.
그것을 벗어나고 타도하기 위해 일어선 올드사이언스 지구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 S.R.S를 쓴다는 것은 말도 안됍니다."
S.R.S를 가운데에 두고 말하는 두 사람.
루시퍼는 은근슬쩍 자신에게 본 목적을 알아내려는 컨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훗."
하지만 결코 만만찮은 루시퍼의 대답은 이랬다.
"…말 솜씨가 늘었군, 컨드 대장."
"과찬이십니다."
".....뭐, 굳이 변명하지는 않겠다만은 우리 마계에서 실시되고 있는 개화정책은 아쉽게도 정령계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들에게서는 과학혁명의 의의란 무궁무진한 호기심의 원천. 그리고 뒤지지 않기 위한 경쟁심의 발동 요소일 뿐이지.
적잖은 희생은 감수해야만 했던 과정이었다. 그래. 너의 말처럼, 올드 사이언스지구는 이제껏 우리 정부를 배척하기 위해 세워졌지.
하지만 이제 이 사정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지금은 너희들의 제거 여부에 대해 수하들과 입싸움 할 시간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정부에게 품은 불만은 제거할 요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있다."
그래.
늙은 컨드 촌주의 머리 속에서는 루시퍼의 목소리가 감돌고 있었다.
정령인들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버티고 있는 이 순간에서 루시퍼가 자신에게 신신당부한 사항을 되새긴 촌주는
일단 이 이방인들에게 앉을 것을 제안했다.
그들은 순순히 응했다. 계획에 실패한 아카진은 컨드의 옆에 서있었다.
'조건이 있다....라고.'
컨드 촌주는 다시금 되새겼다.
"올드 사이언스 지구의 총 관리책임자인 컨드 알파도어라고 합니다."
"많이 놀라셨을겁니다. 갑작스럽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먼저 공격한 건 저 빌어먹을 자식이야!!!"
헤롤드의 말에 에반이 벌떡 일어나 외치자, 아카진은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일단 경험이 경험인지간에, 몸이 바뀌는 불쾌한 일을 겪은 불의 정령으로써는 아카진은 용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자신의 속성답게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가진 에반에게 시선을 맞추지 못하며 아카진은 촌주에게 좀더 다가가섰다.
"물론 명령을 한 것은 접니다."
조용히 손을 들며 촌주가 말했다.
"그러니 저의 부하에게 뭐라 꾸짖으시는 것보다 저에게 책임을 물으셔야 옳은 줄 압니다."
"말 한번 잘하시는군."
질책의 말을 내뱉은 로웨나에게 은해가 눈살을 찌푸리자,
레드포드의 정령의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별 것 아닌채 지나가고 싶었지만, 죄송스럽게도 저희들이 지금 하려는 일이 이번 사정과
관계되어있는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총리께서 자신들의 행동범위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이건가.'
이미 루시퍼에게서 들은 바 있는 촌주는 혼자 비꼬았다.
'올드 사이언스지구의 구역을 넘어오는 이방인들은 모조리 몰살시켜라.
그 중에서 파란머리와 붉은 머리, 갈색머리를 가진 세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어느 일행이 너의 부하들을 데리고
역으로 너를 찾아올 것이다.'
컨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최강이다. 함부로 맞서지 말고 모조리 말살시켜라.'
말살.
루시퍼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간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긴장되는 것일까.
늙은 그의 얼굴 옆으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쳤다.
지역의 부를 위해 탐욕을 절제하지 못한 컨드는 침을 꼴깍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짐짓 넘겨짚는 척하며 시치미를 떼었다.
"마계와 무슨 안 좋은 감정이 있으신가요? 너무 습격이라는 것에 민감하시군요."
예리한 눈이군.
상황을 모르는 헤롤드는 안경너머로 컨드를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바벨리아의 정령의 아이는 말했다.
"어디 신분인지 밝히지 못한 점은 유감이라 생각합니다만,
맞습니다. 저희들은 마계정부에 대응하러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민감해져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헤롤드와 컨드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잠깐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컨드가 입을 열었다.
"안심하십시오. 올드사이언스 지구는 마계정부에 대응하는 반정부 세력을 갖춘 지역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전혀 다행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헤롤드가 대답했다.
"같은 쪽인 줄도 모르고 공교롭게도 공격하고 말았군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 쪽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넓으신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많이 피곤해보이시는데,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컨드 촌주가 넌지시 제안하는 바를 눈치채지 못할 이사도라가 아니었다.
헤롤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왕이면 쉴 곳을 마련해주시면 더위날 것 없이 감사드리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을.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컨드 촌주가 이끄는 곳을 따라 일행은 움직였다.
'최대한 그들의 시간을 끌어라. 그리고......죽여라.'
죽여라.
컨드 촌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하고 있을 적, 헤롤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촌주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 학교의 중간고사는 왜이리도 빨리오는지요.
시험대비하느라 요즘엔 정신이 없습니다.ㅠ
평소보다 짧게 올리는 점, 양해바랄께요.
;;;요즘엔 게임장에 가서 신나게 pump 나 DDR 같은 것 좀 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ㅠ
첫댓글 ㅜㅜ 오랜만이신듯...흑흑 기다리가다 전편 내용을까먹을꺼같아요..그래도 안까먹고 계속보고있답니다..너무재밌어요..다음편도기대하겠습니다~
루시퍼 정말 사악하군여...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우수작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양돌님~ 이젠 좀 자주 올려주세요
앗, 길던 전편을보다가 이걸다시보니 적응이안됌!ㅠ>ㅜ 너무짧아~~<<퍼어억!! ㅋ오랜만이얌>.<꺅 우리루시퍼는왜이리깜찍한생각을 하는 걸까...?
악독한 루시퍼.ㅋ
역시 헤롤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