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뒤에 연좌(連坐)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날(日)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들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번 때리고
곧 땅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지상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번째 베어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군집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새끼 짐승들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 박아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향해 손짓해도
정적으로 날아간 흰 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병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발 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하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젖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하다면
[출처] 이기철 시인 43|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