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결사 경과보고
■1942년 가을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서울 선학원에서 만남. 당시 한국불교의 상황은 대처식육이 만연하여 비구승단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수행종풍이 해이해져 조조상전(祖祖相傳)해온 정법의 불씨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함.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은 불교가 처한 이 같은 위기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왜색불교의 폐단을 일소하여 청정 비구승단을 재건하기 위해 부처님 법대로 함께 수행하기로 약속함.
■1943년 봄 청담, 성철, 금포, 도우스님 등이 법주사 복천암에 모여 공동수행에 들어감. 그러나 청담스님이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상주경찰서에 구금되면서 공동수행은 중단되고, 대중들은 불가피하게 해산됨.
■1944년 봄 청담, 성철, 청안, 자운, 서암, 도우스님 등이 대승사 쌍련선원에 모여 공동수행을 다시 시작함. 여기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굳건한 결의를 다지고 수행가풍 진작을 구상함. 이때 봉암사 결사의 주축으로 활동했던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은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그려놓고 율장, 청규 등 불법에 의거한 총림체제의 구축 방안을 논의함.
■1945년 해방 해방과 함께 대승사 수행대중들이 해산함.
■1946년 가을 청담, 자운, 홍경, 종수, 도우스님이 봉암사에 선방을 열고 수행하기 위해 봉암사에 입주함. 이 때 능엄주 수행도 하기 시작함.
■1947년 봄 종단적 차원에서 해인사에 가야총림이 설립되자 봉암사 대중들도 이 총림에 참여하기 위해 해인사로 떠남. 그러나 성철스님은 수행환경과 지원조건에 대한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지 못해 해인사를 떠나 통도사 내원암으로 들어감. 반면 청담스님은 가야총림에 남아 초기 총림 운영에 참여함.
■1947년 여름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서울에서 김법룡 거사로부터 경전을 비롯한 불교와 관련된 귀중한 책을 인수함. 47년 하안거를 마친 후 공동수행을 재개하기로 약속하고 장소를 물색함. 이에 청담스님께서 봉암사가 수행환경이 좋다고 제안하여 봉암사를 결사장소로 결정함.
■1947년 가을 결사를 약속한 성철, 보문, 자운, 우봉스님이 1차로 봉암사로 들어가 결사를 단행함. 결사 대중들은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굳건한 기치를 내걸고 철저한 규칙아래 수행을 시작함. 당시 수행결사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음.
첫째, 율장과 청규 등에 근거하여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제정하고, 이에 의거하여 부처님 법대로 수행을 전개함.
둘째,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백장청규의 정신에 따라 수행과 운력을 병행함.
셋째, 발우, 가사, 의례, 육환장 등 수행과 생활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함.
넷째, 식민지불교의 극복, 교단개혁의 단행, 불교 발전이라는 대승적 목표의식아래 정진함.
다섯째, 비구니스님들도 봉암사 산내암자인 백련암에서 결사에 참여함. 이는 비구니를 교육하여 불교발전에 동참케 하려는 청담, 성철스님의 원력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됨.
봉암사 결사 참여 대중
현재까지 문헌기록이나 증언에 의해 밝혀진 봉암사 결사 참여자 명단은 다음과 같음.
○ 비구 스님
청담, 성철, 자운, 우봉, 보문, 향곡, 종수, 혜암, 월산, 응산, 홍경, 도우, 청안, 일도, 성수, 법전, 보경, 보안
영신, 정천, 만성, 지관, 혜안, 보일, 혜명, 혜정, 혜연, 혜조, 의현 등등
○ 비구니 스님
묘엄, 지원, 재영, 묘찬, 응민, 오선, 혜민, 재용, 혜일, 원명, 지현, 혜해, 수진, 묘각, 묘명 등등
■1949년 가을 남북분단으로 인한 좌우대립이 격화되면서 봉암사 일원에는 빨치산이 등장하여 수행환경이 위협 받게 됨. 이에 따라 성철스님이 1차로 기장 묘관음사로 옮겨가고, 뒤이어 백련암에 머물고 있던 묘엄스님 등 비구니스님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감.
■1950년 3월 잔여 대중들이 고성 문수암으로 옮겨 감.
■1950년 4월 결사를 다시 구성하기 위해 15명 내외의 대중들이 문수암에 다시 집결하여 결사를 준비함.
■1950년 6월 한국전쟁의 발발로 문수암에 모인 대중들이 해산하면서 봉암사 결사가 중단됨. 그러나 봉암사 결사의 정신과 수행가풍은 이후 정화불사의 이념적 근거가 되었으며, 조계종단의 수행가풍과 사상적 뿌리로 자리 잡게 됨. 나아가 봉암사 결사를 계승한 조계종은 현재 5대 총림과 100여 개의 선원에서 매년 2,500여명의 수행자들이 정진하고 있으며, 1만 3천여 명의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전법교화를 위해 헌신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청정 비구승단으로 발전함.
■2007년 10월 19일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결사의 정신을 되새기고, 수행종풍을 계승하여 불교중흥의 계기로 삼고자 사부대중들이 이 자리에 모여 기념법회를 봉행하기에 이름.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共住規約)
1. 엄중한 부처님의 계율과 숭고한 조사들의 가르침을 온힘을 다하여 수행하여 우리가 바라는 궁극의 목적을 빨리 이룰 수 있기 바란다.(森嚴한 佛戒와 崇高한 祖訓을 勤修力行하야 究竟大果의 圓滿速成을 期함)
2.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이외의 개인적인 의견은 절대 배제한다.(如何한 思想과 制度를 莫論하고 佛祖敎勅 以外의 各自 私見을 絶對 排除함)
3. 일상에 필요한 물품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목표 아래 물 긷고 나무 하고 밭일 하고 탁발하는 등 어떠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日常需供은 自主自治의 標幟下에서 運水 搬柴 種田 托鉢 等 如何한 苦役도 不辭함)
4. 소작인의 세금과 신도의 보시에 의존하는 생활은 완전히 청산한다.(作人의 稅租와 檀徒의 特施에 依한 生計는 此를 斷然淸算함)
5. 신도가 불전에 공양하는 일은 재를 지낼 때의 현물과 지성으로 드리는 예배에 그친다.(檀徒의 佛前獻供은 齎來의 現品과 至誠의 拜禮에 止함)
6. 용변 볼 때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오조가사를 입는다.(大小二便普請及就寢時를 除하고는 恒常 五條直綴을 着用함)
7. 사찰을 벗어날 때는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으며 반드시 함께 다닌다.(出院遊方의 際는 戴笠振錫하고 必히 同伴을 요함)
8. 가사는 마나 면으로 한정하고 이것을 괴색한다.(袈裟는 麻綿에 限하고 此를 壞色함)
9. 발우는 와발우 이외의 사용을 금한다.(鉢盂는 瓦鉢 以外의 使用을 禁함)
10. 매일 한번 능엄대주를 독송한다.(日一次楞嚴大呪를 讀誦함)
11. 매일 두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한다.(每日 二時間 以上 勞務에 就함)
12. 초하루와 보름에 보살대계를 읽고 외운다.(黑月白月 菩薩大戒를 講誦함)
13. 공양은 정오가 넘으면 할 수 없으며 아침은 죽으로 한다.(佛前進供은 過午를 不得하며 朝食은 粥으로 定함)
14. 앉는 순서는 법랍에 따른다.(座次는 戒臘에 依함)
15. 방사 안에서는 반드시 벽을 보고 앉으며 서로 잡담은 절대 금한다.(堂內에는 座必面壁하야 互相雜談을 嚴禁함)
16. 정해진 시각 이외에 누워 자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定刻以外의 寢臥는 不許함)
17. 필요한 모든 물건은 스스로 해결한다.(諸般物資所需는 各自辯備함)
18. 그 밖에 규칙은 청규와 대소승의 계율 체제에 의거한다.(餘外의 各則은 淸規及大小律制에 準함)
이상과 같은 일의 실천궁행을 거부하는 사람은 함께 살 수 없다.(左記條章의 實踐躬行을 拒否하는 者는 함께 사는 일을 不得함)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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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두손모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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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마하반야바라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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