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갯골 가을마중
엊그제 입추가 지나 다가올 절기는 처서를 앞둔 팔월 초순 일요일이다. 폭염은 여전해 행정 당국에서는 재난에 잘 대응해 주십사는 문자가 이어진다. 어제 오후 우리 지역에 한줄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정말 이 비가 얼마 만인가 싶다. 비록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몇 방울 비에 감동할 지경이다. 자고 난 아침은 하늘은 구름이 옅게 가려져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일요일 자연학교 행선지는 열차를 타는 교통이다. 이른 새벽 외동반림로를 걸어 퇴촌교 삼거리로 나갔다. 어둠이 채 사라지지 않은 창원천 천변 산책로 운동 기구에 늙수레한 이들과 함께 몸을 단련하고 창원대학을 거쳐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부전을 출발 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에서 하동역 구간까지 승차권을 구했다.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에 올라 진주를 거쳐 서쪽으로 갔다.
하동에서 내려 쌍계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악양을 거쳐 화개에서 내렸다. 다음번 차가 쌍계사를 지난 의신까지 가기에 바꿔 탈 요량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화개장터로 가 현지 곡차를 한 병 마련해 배낭에 챙겼다. 화개 터미널로 돌아와 뒤이어 온 의신행 버스를 타고 화개 동천을 지났다. 천변에는 막바지 더위를 식히려는 이들이 차를 몰아와 갓길에 길게 이어져 있었다.
쌍계사를 지난 칠불사 갈림길에서 오른쪽 의신 방향으로 계속 올라갔다. 기사는 종점 의신에서 나를 내려주고 차를 돌려 연방 되돌아갔다. 2시간 후 다음 버스가 들어오기에 그사이가 내게 주어진 트레깅 시간이다. 의신에는 마지막 남부군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전투 장비와 현지인들이 지난날 화전을 일구던 농기구로 꾸민 ‘지리산 역사관’이 있으나 시간이 촉박해 그냥 지났다.
주어진 시간까지만 벽소령 대피소로 가는 숲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의신에서 개울 건너 신흥까지 숲길은 두 차례 걸었다. 서산대사가 그곳 원적암에서 출가해 ‘서산대사 길’로 붙여져 있었다. 이번은 벽소령으로 가는 숲길을 걸으면서 폭염이 진행 중이지만 가을이 어느 만치 오고 있는지 느껴볼 셈이다. 아스팔트는 시멘트 포장으로 이어졌는데 차량과 인적은 끊겼다시피 드물었다.
숲길 들머리를 지나 얼마쯤 가자 탐방 데크가 설치된 전망대가 나왔다. 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노인 여남은 명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개울 건너 소나무가 얹혀 자란 서산대사 명상 바위를 조망하는 곳이었다. 그들에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남기고 돌아서니 잔을 권해 비우고 문어숙회를 안주로 삼았다. 아마 초등학교 남녀 친구들이 나들이를 나온 자리인 듯했다.
숲길과 가까운 개울에는 혹심한 가뭄에도 물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맑은 물이 흘러 바라만 봐도 시원함이 더했다. 초행길인 탐방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알맞은 쉼터가 나오면 한동안 앉을까 했는데 그런 여건이 못 되었다. 국립공원이라 계곡으로는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간 어디쯤에는 사유지 별장과 텃밭 구역이 나오기도 했다.
길섶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줄기에 손을 담그고 얼굴의 땀을 씻고 더위를 잊었다. 벽소령 대피소까지 오르기는 무리여서 도중에 발길을 돌려 하산했다. 예초를 마쳐둔 길섶 언저리 파리풀이 피운 자잘한 꽃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사진을 찍어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남방노랑나비라 했다. 우리나라 산지와 계곡에서 흔히 만나는 여름과 가을 나비로 극남노랑나비로도 불린다고 했다.
되돌아 나온 숲은 매미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의신에 닿으니 하동읍으로 나갈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 쌍계사를 거쳐 화개를 지나 악양을 둘러 하동읍에 닿았다. 배낭에 넣어간 곡차와 간식은 그새 먹을 틈이 없어 터미널 쉼터에서 비우고 이웃한 하동역으로 가니 열차는 정한 시각 도착했다. 아침에 예매한 승차권으로 객차에 올라 창원으로 복귀했다. 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