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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를 쌌다.
어느 모래사막에서 불어왔는지 모르는 따가운 모래 한 줌이 나를 밀쳐낸다. 지구라도 관통할 듯 그 힘은 거세다. 일용할 양식보다 더 귀한 혈압약과 영양제와 유산균. 그리고 이십여 년이 넘게 먹어 온 에스트로겐을 챙겨 넣었다.
먼 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까운 곳도 아닐 것 같은 예감이다. 몇 날이 될지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는 일탈을 위한 짐은 역시 흔들린다. 넣었다 뺐다 를 여러 번 하다가 엉키는 실타래를 끊는다.
평생 동안 내가 묶었던 보따리는 몇 번일까. 아마도 첫 번째 내 손으로 싸 본 짐은 초등학교 때 책가방일 것 같다. 교과서와 필통과 그리고 무엇이 있었을까. 기억은 없지만 란도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속내 같다.
친구들과의 여행길에 챙겨 넣었던 코펠과 버너와 침낭은 책가방 이후 내 손으로 짐을 싼 첫 번째의 보따리였다. 쌀과 볶은고추장과 얇은 이불과 속옷 몇 개와 때 맞춰 넣은 비키니다. 그때의 날들은 뜨겁고 벅차게 조류를 따라 돌다가 해변으로 밀려드는 튜브 같았다.
나를 시집보내실 때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솜이불을 만들고 둘이 벨 수 있는 기다란 베개를 넣어 주시던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한다. 바느질고리를 챙겨주시던 엄마의 가슴속을 휘돌아 나온다. 바늘 끝에 찔린 듯 따갑도록 아리다. 엄마의 그 정성만큼 나는 잘 살아온 걸까. 엄마의 정성에 부끄럽지 않은 나의 생이었을까 돌아본다.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때마다 짐을 싸 주시던 엄마는 자신의 짐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시고 어느 날 내 곁을 떠나셨다. 왜 그때 나는 엄마에게 고운 선물 하나 묶어서 보내드리지 못하고 눈물로만 이별을 했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진료소장으로 30여 년을 보내면서 남들은 싸지 않는 보따리를 수도 없이 챙겼다. 이동진료라는 업무의 보따리다. 그 안에는 청진기와 혈압계, 체온계와 당뇨수치를 검사할 수 있는 검사도구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주민들이 호소할 증상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약품들이 가방 가득 채워진다.
약종이 약 봉투 등 의료 소모품을 넣고 간단한 상처 치료에 쓸 수 있는 상비약 등에 메모지랑 필기도구까지 넣고 나면 가방 지퍼를 닫는다. 마중 나오셔서 그 가방을 받아 들고 웃던 주민들의 모습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입원을 위해 싸던 보따리에는 불안이, 아이를 출가시키기 위해 싸던 보따리에는 아쉬움과 후회가 함께 묶이고 그 보따리들을 풀면서 눈물도 펑펑 많이 흘렸었다.
아마도 일생은 보따리를 싸고 푸는 일로 채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오늘 행선지도 목적지도 없는 보따리를 주섬주섬 묶는다.
누구나 한 번은 떠나야 할 그 길 앞에서도 정리하고 묶고 풀어야 하는 인생이다. 미움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스크루지 영감의 열쇠도 손에서 놓아야 한다. 수도 없이 많은 보석들과 폐지들을 차근차근 돌아보아야 할 즈음인데 지금 묶으려는 이 보따리는 무엇일까.
가방의 지퍼를 잠그려다 부끄러워 슬그머니 풀어놓고 만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친정아버지를 내 집으로 모시던 보따리처럼 섧다. 보따리는 역시 싸도 풀어도 뜨거운 눈물을 뿌리게 되는 것만 같다.
등단: 2012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
저서: 사진 수필집 「두 번 울던 날」
수상: 제7회 백교문학상. 제15회 춘천여성문학상
활동: 강원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