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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시즌 부활한 대전의 스트라이커 정성훈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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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서는 수많은 별이 뜨고 진다. 유망주로 불렸던 선수들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도 하고 연습생으로 입단했던 선수가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특히 많은 기대를 받고 팀에 합류했던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는 경우 팬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 번 신뢰를 잃은 선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힘들다. 2005년까지의 정성훈(대전 시티즌, 28)이 그랬다.
경희대 재학 시절까지 청소년 대표팀, 대학 선발,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정성훈은 2002년 울산 입단 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데뷔 첫 해 24경기에 출전했지만 2골 3도움에 그쳤고, 2003년에도 15경기 출장에 1도움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본인도,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주위 사람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2004년 심기일전의 각오로 대전으로 이적했지만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적 후 바로 3개월을 쉬어야 했고 굳은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 2004년과 2005년 내내 대전 팬들의 모진 비난을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스트라이커로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아픔이 컸다.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정성훈은 2006년 컵대회부터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컵대회 5골 1도움, 프로 데뷔 후 4년간 기록한 득점을 8경기 만에 채웠다. 골을 넣어도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좌우 공간에서의 공격 가담, 몸싸움과 제공권 장악 모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계 전지훈련을 준비하고 있는 기간, 대전 숙소에서 정성훈을 만났다. 만족스러웠던 2006시즌과 가정의 행복을 말해주듯 정성훈의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곧 동계 전지훈련을 떠나는데(대전은 11일 전지훈련을 떠났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집에 있으면서 운동하는 시간에만 훈련장이나 숙소로 와서 운동을 하고 있다. 전술 훈련은 없고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기초적인 체력 훈련만 한다. 어제는 아들의 돌잔치를 치렀다. 대전 선수들은 모두 와서 축하해줬고, 다른 팀에 있는 선수들은 직접 오지는 못하고 전화로 축하해줬다. 선물도 보내주고.
- 늦었지만 축하한다. 작년부터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
좋다는 생각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으니까. 컵대회까지만 해도 정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아쉽다.
-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보자. 축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빵하고 우유가 좋아서(웃음). 4학년 때 처음 시작하면서는 클럽 식으로 운동을 했었다.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고 동아리처럼, 공부 마치면 한 시간 동안 공 차고 집에 가고. 그런데 마치면 빵하고 우유를 주더라. 그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내가 경남 지방 출신이다. 어느 날 학성 초등학교랑 연습 경기를 하게 됐는데, 4학년 애를 하나 뽑는다고 했는데 내가 뽑힌 거다. 스카우트가 된 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차게 됐다.
- 클럽 식으로 편하게 축구를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팀에 들어간 이후에는 힘들었겠다.
낯설고 힘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니까. 초등학생이니까, 어린 마음에 시키면 시킨 대로 했다. 참 수동적이었다(웃음). 자동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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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후기리그 포항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정성훈 ⓒ대전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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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하는 데 대해서 집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
반대 많이 하셨다. 아버님이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다가 그만 두신 분이라 안 시킨다고 그러셨다. 힘든 거 아시니까.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원했기 때문에 결국 허락하시더라.
원래 집에서는 태권도를 시켰었다. 계속 태권도를 했는데, 4학년 때까지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축구가 좋았다. 축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내가 졸라댔다. 그러니까 포기를 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봐라. 하되 포기는 하지 마라.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정말 축구 밖에 몰랐다.
- 학창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슈팅 장면을 보면 생각보다 섬세하고 기술이 돋보이는데?
원래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수비형 미드필더만 봤었다. 그 전에 청소년대표팀에서 잠깐 포워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대학교 때 감독님이 보시고 포워드를 서 보라고 하셨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항상 공이 나를 거쳐 간다는 게 참 좋았다. 그런데 또 포워드로 뛰는 것도 매력이 있었다. 골도 들어가니까 재미있고. (웃음)
- 대학 시절까지는 여러 대표팀을 거치는 등 주목받는 선수였고 울산에 입단할 때도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의 기억을 회상해본다면?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울산에 입단할 때도 기대를 많이 받았고. 주위에서 ‘정말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게 부담이 됐다. 경기 출장 기회를 잡기도 힘들고 생각만큼 골을 많이 넣지도 못했다. 그런데 옆에서는 계속 잘해야 한다고 하니까 자꾸 부담이 쌓였다. 그런 부담이 문제였던 것 같다.
- 데뷔 첫 해나 이듬해나 신인으로서는 많은 출장기회를 잡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했나?
다른 선수들하고 비교하면 그런데 주위에서 기대치가 다르니까 나는 힘들었다. 그렇게 자꾸 부담이 쌓이고 쌓이니까 운동이 잘 안 되고 하기도 싫었다. 정말 축구를 그만둘 생각도 해 봤고 실제로 운동을 쉬기도 했다. 팀에서 나가거나 그랬던 건 아니지만 팀 훈련 하는데 아프다고 해 놓고 숙소에서 쉬기도 하고. 울산에 있으면서 2년 동안 정말 많이 방황했다.
- 2004년 본인이 원해서 대전으로 이적했다고 들었다.
사실 더 많은 돈을 제시한 구단도 있었다.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내가 축구를 배울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2003 시즌에 대전 경기를 유심히 봤다. 최윤겸 감독님 밑에서라면 잘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도 ‘아직 네 나이도 있고 축구를 배우는 게 중요하지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충고를 해 주셨다. 거기에 당시 대전 경기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원정을 하러 오면 분위기가 확 달랐다. ‘이런 경기장에서 뛰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있었다.
- 이적 후에도 2004년과 2005년에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사실 대전의 재정 사정을 생각해보면 부담스러운 수준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온 선수였는데 말이다.
내가 대전 창단 후 최고의 이적료를 내고 영입한 선수라고 하더라. 감독님도 많은 기대를 보여주셨고...
이적하고 동계훈련 할 때만 해도 몸이 정말 좋았다. 연습경기에서 골도 많이 넣었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동계훈련 다녀와서 피로 골절로 3개월을 쉬었다. 몸이 정말 좋아서,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3개월을 쉬고 팀에 복귀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떤 흐름이 끊긴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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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전북전에서의 경기 모습 ⓒ대전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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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컵대회부터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많은 사람이 정성훈 선수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사실 예전에는 욕심도 많이 부렸는데 이번 시즌을 시작하면서는 마음을 비웠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나니까 잘 됐던 것 같다. 그냥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동계훈련도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 같다. 2005년에 잘한 일이 있다면 결혼을 한 건데(웃음), 가장이 되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책임감도 느껴지고...
시즌 초반에는 용병들도 물갈이되고 호흡 면에서 문제도 많았다. 대전의 경우 매 시즌 용병이 바뀌고 용병 선수들이 팀에 적응하느라 시즌 초반에는 공격에서는 좀 힘든 면이 있다. 그러다 기회를 잡은 게 6월에 컵대회 전북전이었는데, 그때 득점을 하면서 분위기를 탔다. 이후에는 용병들하고도 잘 맞아 들어갔고.
- 단순히 득점을 올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움직임이 달라졌다. 공을 가지지 않았을 때의 움직임이라던가 제공권 장악에서라던가.
일단 동계훈련 때 헤딩 연습을 많이 했다. 딱히 내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제공권 장악이라던가, 팀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키가 크기도 하고 헤딩 경합이라면 언제나 자신 있다.
팀 동료들하고는 우스갯소리로 ‘분유값이 역시 무섭다’는 얘기도 한다(웃음). 이제 아이도 있고, 아버지가 된 거니까 달라져야한다.
- 컵대회에는 대전의 성적도 훌륭했고,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을 것 같다. 득점왕이라던가.
솔직히 컵대회 마지막에는 그런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몇 경기만 더 있었어도 진짜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마지막 경기 전에 보니까 (최)성국이한테 3골을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경기 시작하자마자 한 골을 넣었다. 맘 같아서는 진짜 3골 더 넣고 득점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쉬웠다. 실제로 그날 부산전이었는데 우리 팀이 4골을 넣었다. 경기 끝나고 성국이한테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더라. 울산에서 같은 방을 쓰기도 했고, 친하다.
- K리그에 데뷔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한 팀에서 주전 선수로 당당히 활약하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했나?
아직도 주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용병들도 오고 밑에서도 더 좋은 선수들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올 시즌에는 상대팀의 수비가 더욱 집중되고 철저해질 텐데.
사실 그런 부담은 있다.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더 잘해야 할 텐데, 상대편의 수비는 더 강해질 테고. 그런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냥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 K리그에서 터득한 생존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다른 것보다도, 우선 마음가짐인 것 같다. 내가 배운 게 있다면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만 하면 어떻게든 되는 것 같다.
- 본인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어떤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단 장점은 헤딩이라고 생각한다. 키도 크고, 여러 가지로 훈련도 많이 했기 때문에. 나중에도 한국에서 헤딩은 진짜 잘하는 선수였다고 꼽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면 키가 있기 때문에 순발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단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자전거도 많이 타고 줄넘기도 하면서 순발력과 유연성을 키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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