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와 미륵신앙
팔공산의 사찰이라면 두 말할 필요 없이 동화사가 으뜸이다. 동화사를 창건한 분은 신라 41대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대사이다. 전설상으로는 골육 간에 서로 피를 흘리며 왕위 쟁탈을 하는 것을 보고 인간사에 회의를 느껴, 중악으로 출가 했다고 한다. 그때 나이 15세라고 하였다.(이분이 동화사를 창건하신 심지대사이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창건 설화에 의하면 동화사는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로 출발하였다. 심지대사는 진표율사의 수제자이고 진표율종의 2대 법통인 영심대사가 법주사에서 베푸는 법회에 참석하려 법주사에 갔다. 그러나 법주사에서는 영심대사의 법회에 심지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스스로를 반성하며 앉아 있었다. 이레가 지나자 눈이 내렸다. 이상하게도 그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법주사에서는 신이함에 놀라서 그를 방으로 모셔 들였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그때 심지대사의 몸에서 피가 흐르면서 진표율사가 선계산에서 미륵불의 수교를 받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진표율사가 주재하였던 금산사는 법상종 사찰로서 미륵불을 주존불로 모시는 중심 사찰이었다.
법회가 끝나자 동화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절문 밖을 나서서 얼마 가지 않았는데 소매 안에 불골 간자가 달려 있었다. 불골 간자는 종파의 법통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왕의 상징인 옥쇄와 같다.) 법주사로 돌아가서 돌려주었으나 또 다시 소매에 간자가 달려 있었다.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나자 하늘의 뜻이라면서 영심스님이 심지대사에게 법통을 넘겨주었다. 이로서 심지대사가 불골 간자를 동화사에 갖고 옴으로 심지대사는 3대 법통이 되었고, 동화사는 미륵 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동화사 창건 설화가 의미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뒤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동화사 창건 설화는 신라 말에 미륵신양이 널리 퍼졌음을 암시한다. 한편으로 미륵신앙이 어떤 교리를 갖고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더듬어 보자.
미륵 신앙은 기원 전 2세기경에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인도에서 나타났다. 신앙의 바탕에는 가난한 자에게 희망을 주려는 배려가 깔려 있다.
미륵경전에 의하여 미륵신앙을 요약하면 석가가 죽은 후 56억 8천만 년이 지나면 도솔천의 수명이 다 함으로 미륵보살은 우리가 사는 염부세인 이 땅에 내려온다. 용화수 나무 아래에서 성불을 한다. 성불을 한 후에 중생을 위하여 세 번의 설법을 함으로 구제한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미륵신앙에서 우리가 구제를 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죽으면 도솔천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륵이 이 세상으로 내려 올 때 함께 내려온다. 이것은 우리가 죽어서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므로 상생(上生)사상이라고 하였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 도솔천에는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다.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세 번의 설법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설법만 들으면 구제된다. 이것은 하생(下生)사상이다.
상생신앙이든, 하생신앙이든 미륵불이 앞으로 언젠가에 우리 세상에 내려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미래라는 시간과 구제라는 방법론에서는 서로 같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약속이다. 대중의 마음속에는 희망의 존재로 살아있는 부처님이 미륵불이다.
미륵불의 미래적인 속성 때문에 시대가 혼란으로 절망적인 상태가 되면 대중들은 희망을 찾아서 미륵신앙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면서 민중을 혹세무민함으로 사회를 더욱 혼란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미륵신앙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를 삼국시대로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라의 땅에서는 화랑들이 미륵신앙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받아 들였다. 화랑들이 생각한 미륵신앙은 상생사상이었다. 자신들은 사후에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이 하강할 때 같이 신라 땅으로 내려와서 살기 좋은 땅 미륵정토로 만든다고 하였다. 신라에서 화랑은 미륵이 현신한 존재라고 믿었다.
팔공산의 동화사를 창건할 때 가져온 미륵신앙은 상생신앙이 아니었다. 미륵신앙을 믿는 법상종 사찰로서 백제에 뿌리를 둔 진표율종을 계승하였다. 백제 계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분히 사회적 모순과 억압을 타파하려는 민중의 욕구를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민중의 혁명 이론을 담고 있었다. 신라 말의 국운이 쇠퇴기에 접어 든 것도 맞물려 있었다.
진표는 한국 미륵 사상의 본산이라는 모악산 금산사에 주재하면서 미륵사상을 신봉하였다. 그의 이념을 전파하려 전국을 돌아 다녔다. 포교 활동을 하면서 도력(道力)이라고 하는 신이한 기적을 많이 일으켰다. 민중들은 고도의 철학적 이치를 깨닫기 보다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진표율사의 신통력은 민중을 흡수하는데 강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진표율사를 연구한 학자에 의하면 그는 백제 유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진표의 행적에서 직접적인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백제 부흥이라는 이념을 지닌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가 태어나서 자랐고,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시작한 곳이 백제의 옛 땅이다. 이 땅은 나중에 신라에 저항하여 백제 독립 운동을 일으킨 견훤이 활동한 지역이다. 금산사는 견훤을 지원하는 사찰이 되었다. 진표는 주로 신라의 변방을 돌아다니면서 포교하였다. 특히 충청도의 속리산과 금강산에 많이 머물렀다.
신라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통제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이들이 나중에 신라에 저항하는 세력이 되었다. 진표의 세력이 변방에서 크게 번져나가자 신라 왕실은 당연히 불안을 느꼈다. 경덕왕은 진표율사를 경주로 불러서 보살례를 하면서 많은 시주를 하여 그의 환심을 끌려 하였다. 역사 기록에는 경덕왕이 진표의 구제사상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표의 신앙운동이 저항 세력으로 바뀔 것을 두려워하여 회유할 목적으로 불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진표 율사가 직접적으로 신라에 저항하였다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뿌린 이념이 나중에 반 신라적 민중 저항으로 이끌고 간 불씨였음은 틀림없다. 그런 만큼 신라 조정에서는 진표율사의 행적을 예의 주시하였다. 진표도 신라에 저항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인 협조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진표도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금강산에 머물다 입적하였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회유의 방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종통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바꿨으리라고 본다. 이에 왕손인 심지대사를 앞세워서 법주사의 영심으로부터 반 강제로 종통을 뻬앗다시피 인수하였다. 왜냐며 동화사 창건 설화를 보면 영심대사가 심지대사를 따뜻하게 맞이 한 것이 아니었다. 법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심지대사가 팔공산의 동화사에 주지로 있으면서 진표율종(법상종)의 3대 종통을 차지하였다. 이로서 골치 아픈 교단의 종권을 신라의 중심부에 두었다. 동화사의 창건 설화는 이와 같은 사실을 행간에서 말하고 있다.
진표율사가 미륵불을 전면에 내세운 법상종 사찰 금산사를 모악산 기슭에 세웠다. 모악산에는 여기저기의 바위에 알터가 많이 발견된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토속신앙지 였음을 말해준다. 불교가 민중에 다가가기 위해서 토속신앙과 습합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악산에 뿌리를 둔 진표율종의 종권을 인수받아 동화사가 새로이 중심 사찰로 떠오른 팔공산은 이름도 부악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팔공산은 모악산에 비하여 고대 신앙의 흔적인 알터도 찾기 어렵다. 오늘에는 미륵 신앙도 현저히 약하다.
우리의 고대 신앙은 농업신적인 성격이 강하다. 여신적인 요소도 많다. 물과 관련된 신앙이다. 농업신이고 수신인 용을 우리 말로 ‘미르’라고 한다. 미르와 미륵은 언어학적으로 쉽게 동화되었을 것이다. 미륵이 하생하는 곳은 쉽게 모악이 되었지만 부악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동화사가 미륵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신이가 전설로 전해져야 한다. 미륵 신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륵 신앙의 본산이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자료도, 자취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거나 팔공산이 한때는 미륵 신앙의 성지였는데 지금은 미륵불이라고 부르는 부처님을 찾기도 어렵다. 강제로 모시고 온 미륵부처라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약사불에세 자리를 넘겨 주었다고 할까?
(*동화사는 대구에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찰임으로, 창건설화 등을 조금 더 상세하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