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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소설가 등산그룹에 동행했다. 그날은 특히 시산제가 있는 날인데 큰 파티도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시산제라는 것이 박수치고 노래하는 축제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봄날의 액땜 고사였다.
산속에는 나무로 짠 테이블이 있었다. 멤버들은 제사지낼 때처럼 격식 맞춰 제물을 배열하며 고전을 읊조렸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어동육서 두동미서.”
정말로 까맣게 잊고 살던 단어들이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것들을 따지고 가리고 차린단 말인가? 하기야 오른쪽에 놓을 옥출사탕을 왼쪽에 놓으면 제사 받으러 온 귀신이 화가 나서 팩 돌아설는지 모른다.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놓아야 먹기 좋을 텐데, 거꾸로 놓았다면, 복 주러 온 혼령이 발길로 상다리를 걷어차고 되돌아갈 것이다. 사과 배 밤 대추 늘어놓는 것을 보며 그들이 마련한 철저한 준비물에 감탄할 무렵, 한 사람이 짐에서 웃는 모습의 돼지머리를 꺼내놓았다. 그 무거운 돼지머리를 산위까지 짊어지고 올라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값도 꽤 주었을 텐데, 산꼭대기까지 지고 올라온 그 정성은 산신령으로부터 복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자못 심각했다. 도네이션인지 헌금인지, 어떤 사람들은 준엄한 표정으로 웃는 돼지 입에 꽤 큰돈을 꽂아 넣었다.
단체로 혹은 개인적으로 절도 하고 소원도 빌었으며, 심지어 순서 되니 어려운 한문체로 쓴 제축까지 읽었다. 나는 제축이라는 단어를 아직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웠다. 멤버 중 유식한 사람이 근엄한 음성 가다듬어 대표기도도 올렸다. 귀담아 들어 봤다.
“능력이 많으셔서 산과 땅을 주관하시는 산신령이시여! 우리 정성을 받으시고, 일 년 내내 사고 없이 산행하게 하옵소서.”
산신령이 계셔서 악운을 막아줄 수도 있다는 것을 믿기에는 이 사람들이 너무 박식한 지성인들이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한 여성회원은 숲속으로 서성이다가 제사가 끝난 뒤에 나타났다. 참석회원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산신령님께 보인 후, 태워서 산 기운에 흡수시키겠다고 회장이 회원들에게 이름 철자들을 확인시켰다. 숲속에서 서성거리다 다가왔던 여자회원이 소리를 빽 질렀다.
“난 목사사모에요. 알아서 내 이름은 빼 줄 줄 알았었는데 누구 맘대로 내 이름을 써 넣었어요?”
사모님도 산신령인지 귀신 찌꺼기인지가 산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마지못해 회장은 화를 내는 사모님의 이름에 몇 줄을 덧그어, 산신령이 볼펜 글씨를 읽을 수 없도록 줄 생채기를 낸다. 미국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왔던 나는 침묵했다. 생면부지인 산신령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랴? 더구나 서류상 내 정식이름은 영어인데 명단엔 전혀 다른 한국이름으로 올라 있으니, 여간 똑똑한 귀신이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인식할 수도 없다. 제사 준비한 사람들에게 복주기도 바쁜 산신령이 내게까지 왜 신경 쓰랴? 회장은 그 회원들 이름이 적힌 명단의 종이를 불에 태워, 연기를 산의 정기 속으로 섞어버린다. 이제 명단에 들어있는 회원들은 일 년 내내 산신령의 보호 아래, 산에서 넘어져 코가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드디어 돼지머리 썰어 다시 삶고, 잔치가 벌어졌다. 사도 바울은 제사지낸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나도 제사지냈던 음식을 보통 거리낌 없이 먹는다. 왜냐하면 아무 귀신도 건들지 않았던 새 음식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술도 주룩주룩 마셔대고, 음식도 아귀아귀 잡수신다. 그냥 나무 앞에 잠시 두었던 음식인데 기분 나쁠 이유는 없다. 낙엽에서 먼지가 묻었거나 칼잡이의 덜 닦은 손에서 손때가 묻었을지라도, 다시 삶았으니 배탈 날 리는 없다. 내가 깡술만 마신 이유는 엉뚱한 데 있었다. 제사지낼 때 그 회원들의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들이 심하게 눈에 밟혔다. 금도끼 은도끼 든 할아버지가 분노 가득한 얼굴로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아서, 전혀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고기나 기타 제물을 먹으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었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