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바람난 사람을 미행해서 상간녀를 확인하는 임무를 담당하다
숙경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조용하게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질속이 숙경을 찾아갔다. 숙경은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고 있던 차에 다시 옛날 생각이 나서 질속과 사랑에 빠졌다. 질속은 너무 행복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가을 밤이었다. 은행잎이 진한 색깔로 정원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창문을 비쳤다. 숙경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서툰 솜씨로 치고 있었다. 낙엽이 피아노 선율을 따라 숙경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가을바람은 선선하게 가벼운 아픔으로 가슴에 부딪혀왔다.
숙경은 질속의 진실한 마음에 점차 감동이 되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또 정육이 나타났다. 숙경에 대한 자신의 권리주장을 했다.
“원래 숙경은 내 애인이었어. 나에게 처녀성을 바쳤던 여자야. 내 아이까지 가졌다가 불가피하게 낙태를 했던 거야. 숙경은 나만을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손을 떼는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육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으면서 이런 억지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숙경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질속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너는 정말 나쁜 인간이구나! 숙경이 너에게 처녀를 바친 것도 아니고, 네가 강간을 했던 것이잖아? 낙태를 한 것도 네가 책임지지 않고 버렸기 때문이고, 나와 관계를 끊었던 것도 너였잖아? 뿐만 아니라 숙경이 비참하게 되어서 고향을 떠난 다음에도 너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나 피다가 지금은 결혼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지금 와서 숙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거야?”
질속은 정육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숙경에게 누구를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숙경은, “당신들 두 사람 모두 좋아하지 않아요. 이제는 모두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질속은 더 이상 숙경에 대한 관계를 유지했다가는 골치가 아플 것이고, 정육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숙경에 대해 손을 떼었다.
그 후 정육은 계속해서 숙경을 괴롭혔고, 그 때문에 숙경은 커피숍을 아는 사람에게 맡긴 다음 부산으로 가버렸다.
이 때문에 질속은 정육과 원수가 되었다. 정육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치가 떨렸다. 정육 때문에 숙경을 놓친 것이 그렇게 아깝고 한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민첩이 나이 들어 알게 되었고, 민첩 역시 정육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고, 나쁜 인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 이번에 구직원서가 접수되어 면접을 본 공칠이 바로 질속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만일 민첩이 공칠을 채용해서 직원으로 쓴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아버지는 민첩을 아들로 생각하지 않고 호적에서 파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민첩은 공칠이 마음에 들었고, 한편으로는 공칠을 통해 공칠의 아버지에게 복수도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민첩은 아버지에게는 이런 사실을 일체 비밀로 하기로 하고, 일단 공칠을 직원으로 뽑았다.
민첩은 공칠을 수제자로 만들 생각이었다. 민첩은 모든 것이 긍정적이었다. 민첩이 시키는대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민첩은 우선 공칠에게 다른 사람의 뒷조사를 하는 법을 가르쳤다. 배우자의 불륜을 확인해 달라는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기술자들에게 공칠을 부쳤다.
예를 들면 어떤 사장 부인이 의뢰를 해온다. 사장이 애인을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 여자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민첩은 베테랑 요원 세명을 담당자로 정한다. 먼저 사장을 미행한다. 처음에는 오토바이 한 대로 시작한다.
그 다음 사장이 차로 이동하면 오토바이 한 대와 차량 한 대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일주일 정도 따라다니면 대략 사장이 가는 모텔, 사장이 얻어놓은 오피스텔 등이 파악된다.
사장이 애인과 같이 모텔이나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다. 때로는 사장의 핸드폰을 복제한다. 사장 자동차에 비밀녹음장치를 부착한다. 이때는 의뢰인인 사장 부인의 협조가 필요하다.
착수금은 대략 3백만원 내지 5백만원에서 출발한다. 돈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눈치를 봐서 바가지를 씌운다. 공칠은 이런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사생활을 조사하는 것은 너무 스릴이 있었다.
그러다가 공칠은 어떤 판사 부인의 부탁으로 내연녀를 찾아내는 일을 맡았다. 당시 회사에서는 중요한 일이 너무 많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첩은 공칠에게 이번 케이스는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판사 부인은 남편이 공무원이라 그 빽을 믿고 살아서 그랬는지, 흥신소에 의뢰를 하면서도 매우 고압적인 자세였다. 용역비도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합해서 2백만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흥신소 직원을 완전히 무시하고 머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민첩의 입장에서는 흥신소에 뒷조사를 의뢰하는 사람도 법에 위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경찰에서 흥신소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도 판사 부인을 물고 들어갈 야비한 생각에 비용은 다른 사건에 비해 적게 받아도 일단 맡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공칠은 사건담당책임자로서 판사 부인을 만나서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미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 및 자료를 받았다. 마치 경찰관이 어떤 사건을 맡아서 향후 수사계획을 수립하고 제보자를 만나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 구체적인 수사에 착수하는 것과 똑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