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오백일흔여섯 번째
떡이나 칠까?
이른 아침 산책을 갔다 오는 길에 지나게 되는 시장통에 떡집이 몇 집 있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떡을 사갑니다. 주인 말에 의하면 요기도 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하여 여성들이 많이 찾는답니다. 우리네 떡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기원전 2000~기원전 1500년경) 유적지나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렇답니다. 고사를 지낸다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시루떡입니다. 아시아대륙을 떠돌던 유목민들은 양洋을 잡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민족 가운데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양 대신 떡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쌀가루 떡을 ‘고糕’라 하는데, ‘새끼 양 고羔’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양洋을 대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떡이 제물이었으니 나누어 먹는 것이 그 기본 정신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거기에 깃든 신령한 복을 이웃과 나누는 겁니다. 또 떡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기에 당연히 나누어 먹는 게 상식입니다. 공동체 문화가 떡 속에 깃들어 있는 겁니다. 집안에 애가 태어나면 백설기를 만들어 이웃에 돌려 기쁨을 함께하고, 이사 가면 역시 이웃집에 떡을 돌려 공동체에 합류했다고 신고하는 겁니다. 그랬기에 떡타령은 떡을 치며 부르던 노동요로 전국에 걸쳐 발달해 있습니다. 통영 사람들은 ‘해변 놈은 갈파래떡 산중 놈은 칡가래떡’이라 노래하고, 전라도 화순 사람들은 ‘서울 사람은 설기떡 전라도 사람은 찰떡’이라 노래하고, 성주 사람들은 ‘곰배야 곰배야 떡쳐라 내일 모리 설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잡귀가 사람의 입을 통해 사람 몸에 들어간다고 믿었던 원시 신앙에서 팥시루떡은 잡귀를 쫓는 의미였습니다.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잡귀도 쫓고 이웃과 복도 나누고 정도 나누자고 이웃을 불러 떡이나 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