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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소설 「어린왕자」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시나요?
오마이걸이 우리에게 '기적'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을 붙여주던 날,
그 감격스러운 순간 우리의 귓가에 들려오던 멜로디는 바로 <B612>였습니다.
여기서 'B612'란 소설 「어린왕자」 속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의 이름이며,
곡 <B612>는 소행성 B612에 피어난 장미의 입장에서 어린왕자에게 건네는 노래입니다.
오마이걸은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 곡을 사용했으며,
이를 지켜본 우리는 「어린왕자」가 오마이걸이 가진 정체성의 근간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어린왕자」가 워낙 아름답고 유명한 동화이기에
한 번쯤 인용하고 싶었던 소설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린왕자」를 연상시킬 수 있는 곡은 <B612> 한 곡 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마이걸의 초창기 타이틀곡들을 천천히 곱씹다 보면
어째서인지 이들마저 「어린왕자」 소설 속 핵심적인 부분들과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도대체 초창기 오마이걸의 모습이 「어린왕자」의 어떤 모습과 닮아있었는지,
정말 오마이걸은 소설 「어린왕자」를 그룹의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았는지,
소설 속 어린왕자의 여행에 발을 맞추며 단서를 하나씩 찾아보겠습니다.
CUPID
이야기의 발단
2015년 어느 봄날, 천사의 모습을 한 소녀들이 가요계에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오마이걸.
그들은 짝사랑에 빠졌지만 그 감정 앞에 너무나 미성숙한 소녀를 노래했습니다.
그들의 첫인상은 어딘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들의 타이틀곡 <CUPID>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이름을 빌렸으며
마침 그룹명도 신(God)을 연상시키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마이걸이라는 그룹은 신을 표현한 그룹이다" 라는 명제가 성립할 것 같지만
단 하나, 그들의 왕관 모양 로고는 위 명제를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왕 혹은 왕자에 가까운 존재였죠.
과연 그들은 신을 흉내 내는 겉모습 뒤에 무엇을 숨기려 했던 것일까요?
이번엔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평소와 같던 소행성 B612의 어느 날,
우주로부터 하나의 씨앗이 날아듭니다.
마치 큐피드의 화살이 누군가의 심장에 꽂혀 사랑을 피워내듯
B612에 떨어진 씨앗은 사랑스러운 한 송이의 장미를 피워냅니다.
어린왕자는 마치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듯 장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고,
장미가 요구하는 것들을 착실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장미는 B612의 일부가 되었고 행성은 향기로움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결국 장미의 곁을 떠났고,
파일럿의 앞에서 장미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과거의 자신을 한탄합니다.
어린왕자는 사랑 앞에서 너무나 미성숙했던 것입니다.
마치 <CUPID> 속의 소녀처럼요.
LIAR LIAR
균열, 여행의 시작
장미는 어린왕자에게 대화를 건네지만,
그 내용이 하나같이 이상합니다.
자신의 가시 덕에 호랑이조차 두렵지 않다는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씨앗 상태로 B612에 왔을 텐데!)
어린왕자는 이를 가만히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장미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불행함이 커졌으니까요.
결국 어린왕자는 장미의 거짓스러운 말들에 질려버렸고
장미와의 이별을 위해 B612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오마이걸의 <LIAR LIAR>는 짝사랑의 감정에 서투른 소녀를 노래합니다.
소녀는 사랑의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비밀로 하는데,
상대방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 없이 서투른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다간
소녀는 거절의 메세지와 함께 상처투성이의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릅니다.
장미의 사랑 표현은 너무나 서툴렀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던졌던 거짓말들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죠.
그렇게 어린왕자는 B612를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훗날 어린왕자는 장미의 소중함을 깨닫고 B612에 돌아오길 희망하게 됩니다.
"LIAR"도 아닌 "LIAR LIAR"가 곡명으로 선택된 이유,
그것은 장미와 어린왕자 양쪽 모두가 거짓말쟁이였음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요?
WINDY DAY
깨달음
어린왕자는 B612를 떠나 6개의 소행성을 건너 지구의 사하라 사막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준 존재입니다.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어린왕자는 '길들임'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온 우주에 널리고 널린 장미 중 하나가 왜 그토록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건넨 말의 일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네가 나를 길들여 준다면
너의 발소리는 내게 마치 음악처럼 다가올 거야.
금빛 밀밭을 보면 너의 금발이 떠올라
밀밭의 바람 소리마저 사랑하게 될 거야."
무언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오마이걸의 <WINDY DAY>는 사랑의 감정에 한껏 들뜬 소녀를 노래합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소녀의 눈앞에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데도 소녀는 즐거워하며
소녀는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상대방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여우가 건넨 말의 내용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어린왕자는 여우를 길들이지만 곧 이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우는 슬퍼했지만, 작별의 선물로 하나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보아야 정확히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이 비밀을 접한 우리는 곧바로 무언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WINDY DAY>의 가사는 「어린왕자」의 내용을 정말 많이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어쩌면 「어린왕자」 속 여우의 입장이 되어 어린왕자에게 건네는 곡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LOSER
죽음은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가
어린왕자는 마침내 이 소설의 서술자인 파일럿을 만나고,
그들은 서로에게 길들여져 사막 위의 며칠을 함께 보냅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이별은 찾아오는 법.
어린왕자가 지구에 온 지 1년째 되던 날,
파일럿은 고장난 엔진의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하고
어린왕자는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왕자는 애초에 우주선을 타고 오지도 않았고,
어린왕자의 몸을 우주로 날려줄 무언가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어린왕자는 자신의 행성에 핀 장미를 몹시 그리워하여
저 하늘의 별 중 하나인 B612에 닿길 원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CLOSER>의 화자가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CLOSER>는 몽환적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곡입니다.
이 곡의 화자인 소녀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을 스스로 이룰 수가 없으며,
그저 밤하늘의 별에게 소원을 빌며 무언가가 자신을 안아서 데려가 주길 바랄 뿐입니다.
덧붙여 오마이걸은 <CLOSER> 활동 당시 영혼을 표현하는 듯한 하얀 복장을 주로 채택했으며
가사와 MV 그리고 안무의 대형까지 '죽음'이라는 단어를 암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녀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죽음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눈치 채셨나요?
어린왕자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은 죽음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B612가 바로 보이는 장소에서 독사에게 물리는 것이죠.
어린왕자는 슬퍼하는 파일럿을 위로합니다.
자신이 죽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의 몸은 낡은 껍질에 불과하다고.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어린왕자는 파일럿에게서 멀어지고,
뱀의 도움으로 마치 낙엽처럼 소리 없이 쓰러집니다.
과연 어린왕자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린왕자는 더 이상 장미를 향한 그리움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린왕자가 B612로 무사히 돌아갔다는 뜻이 될까요?
B612
기적이 만든 결말
사실 어린왕자가 B612로 돌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파일럿은 다음 날 어린왕자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두고
어린왕자가 B612로 돌아갔다고 확신하게 되지만,
어른의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린왕자의 최후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오마이걸은 「어린왕자」의 결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오마이걸은 어린왕자의 죽음을 인정하는 듯합니다.
'4'는 흔히 죽음의 숫자라 불리는데,
공교롭게도 오마이걸의 4번째 앨범 4번 트랙이 <B612>이며
이는 의도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어린왕자의 여행의 마지막 장면은 사막 위에서의 가엾은 죽음일 뿐인가요?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B612>의 후반부 가사를 통해 장미는 어린왕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넵니다.
"네가 여행했던 세상과 비행은 어땠어?"
이 가사는 어린왕자가 B612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어린왕자의 죽음이 어린왕자를 B612까지 안아서 데려가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과 재회.
오마이걸의 해석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념을 하나로 연결시켰습니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어린왕자의 죽음을 받아들였기에 장미와의 재회는 불가능마저 초월한 '기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마이걸이 「어린왕자」를 빌려 우리의 관계를 설명한 이유를.
오마이걸에게 미라클이란 어린왕자의 장미만큼이나 간절한 바람의 대상이었고,
오마이걸에게 미라클이란 아득한 어둠의 장벽을 뛰어넘어 찾아낸 기적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어린왕자」와 얽힌 오마이걸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 같습니다.
4번째 앨범 이후로 더 이상 「어린왕자」를 인용한 듯한 타이틀곡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 글에서는 「어린왕자」 속 어린왕자와 장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사실 「어린왕자」는 정말 다양한 방면에서 교훈을 주는 소설입니다.
그 교훈들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을 고르자면,
눈에 보이는 숫자를 쫓느라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어른들에게 바치는 교훈을 뽑고 싶습니다.
현재의 오마이걸은 기나긴 역경을 딛고 아름답게 성장한 존재입니다.
수많은 예능과 광고에서 오마이걸을 향한 러브콜을 쏟아내고,
수많은 숫자들이 오마이걸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어 그들의 영광을 드높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마이걸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오마이걸의 방송 출연 횟수가 높아서도 아니고,
오마이걸의 음악방송 1등 횟수가 높아서도 아닙니다.
오마이걸은 기나긴 역경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고,
자신만의 특색이 숨기고 있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마이걸이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어린왕자는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마이걸은 더 이상 어린왕자를 노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잊지 않은 오마이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어린왕자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를 잊는다면, 나는 오직 숫자 외에는 관심이 없는 어른이 될 지도 모른다..."
- 파일럿,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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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츠아이 감사합니당 ㅎㅎ 제가 글 재주가 없어서 머릿속 이야기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할일도 하다보면 며칠이 걸릴지도 🤣🤣
저도 캐츠아이님의 이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롤모델씅 글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ㅎㅎ
잘 해내시리라 믿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