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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예수님의 피 9:11~14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피 흘림과 죄 사함 9:15~22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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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그리스도는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 피는 죽은 행실에서 양심을 깨끗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는 첫 언약 때의 범죄에서 우리를 속량하고자 죽으셔서, 우리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십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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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예수님의 피 9:11~14
예수님의 대속 사건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십니다(11절). ‘장래 좋은 일’은 완전한 죄 사함과 영원한 안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기의 피’(12절)로 단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일을 믿을 때 주어집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물의 피만 뿌려도 부정한 육체가 정결해졌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성령을 통해 자신의 몸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의 피는 동물 제물의 피와는 견줄 수 없이 그 효력이 크고 확실합니다. 흠 없는 예수님의 피는 양심을 정결하게 해, 하나님을 담대히 섬기게 합니다. 동물의 피는 일시적인 속죄를 제공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완전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속죄의 효력에서 ‘동물의 피’와 ‘예수님의 피’는 어떻게 다른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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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림과 죄 사함 9:15~22
히브리서 기자는 완전한 속죄를 위해 필요했던 예수님의 죽음을 ‘유언’과 ‘피’로 설명합니다. 유언은 당사자가 죽은 후에 법적 효력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새 언약’(막 14:24)의 효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필연적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피’가 가진 ‘언약의 기능’(출 24:8)에도 주목합니다. 언약에 따라 제물의 피를 드리면 일시적이지만 육체의 정결함을 받고, 피를 바른 장막 물건도 정결하게 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정결함과 죄 사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완전한 속죄를 위해 예수님의 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속 제물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는 인류를 구원한 보혈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반드시 죽으셔야 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나는 보혈의 능력과 죄 사함의 은혜를 늘 찬양하나요?
히브리서 9장 14절
흠 없는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단번에 깨끗하게 했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에는 회개라는 인간의 행위보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시고 피 흘리신 예수님의 행위가 선행합니다. 흠 없는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살리고 행실을 깨끗하게 해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성도의 본분은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나의 결심 이전에 나를 위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음 받고 그분의 사랑을 맛보게 될 때 참된 행복이 시작된다. - 찰스 스펄전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죄를 사하시려 귀한 몸을 친히 제물로 드리신 주님의 희생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제 마음과 삶의 구석구석을 적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순결한 신부로 서게 하소서. 영원한 언약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만 섬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50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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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완전한 제사를 드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유업, 정결하고 거룩한 속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대지와 소지:
1. 먼저,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제사를 올려 주신 것입니다.
a.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이 아닌 자신의 피를 제물로 삼아서, 땅이 아니나 하늘 성소를 통과하여, 예전에 들어가지 못하던 지성소로 단번에 들어가심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 주심
b.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완전한 제사를 드려 주신 것입니다.
2. 둘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a. 그리스도께서는 첫 언약 아래에서 범죄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유업을 약속한 새 언약이 유효하도록 하기 위해 죽으셨음
b. 대제사장으로써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죄사함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a.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따르면 피를 통해서만 정화와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성취하신 것임
b. 대제사장으로써 당신의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여 주시고, 죄사함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드려주신 그 제사는 우리를 영원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 제사임을 잊지 말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도록 하자
② 우리를 택정하여 불러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아버지에게도 그 은혜를 부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아버지께서 신앙이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수 있도록 잘 인도하고, 돕도록 하자
③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그 말씀을 당신의 피로 성취하여 주시고, 확증하여 주신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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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믿는 자라면 스스로 성취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성취하신 것을 또한,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믿음을 더욱 기뻐하고 즐기며 살면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이미 모든 일에 형통한 자인 것을 부지런히 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더 나아가 그런 은혜를 베푸신 예수를 전심으로 자랑하고 높이고 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때 주와 함께 가는 길에서 감당하는 수고와 무거운 짐도 가볍고 쉽게 여겨질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함으로 즐거운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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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게으르고 분별력 없는 어린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초보 상테에 계속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말씀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을 단순히 슬픈 현실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참담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성품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결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되신다는 사실이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대속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뿌려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죄와 싸울 때에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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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
속죄 제물인 짐승의 피로도 육체가 정결하게 된다면
하물며 흠도 없고 죄도 없는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사람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는 짐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 차이입니다.
짐승의 피는
육체의 정결을 가져오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진정 영혼의 정화는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외형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내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할 수 없으니 곧 양심을 정결하게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는 양심의 특성 때문입니다.
양심은 죄를 고발하고 기억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양심은 더욱더 더러워집니다.
계속되는 죄를 하염없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짐승의 피로 속죄하여도 죄는 계속 쌓여 양심은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깨끗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깨끗한 피로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끔하게 정리될 수 있으니, 곧 전혀 죄가 없는 피인 예수그리스도 보혈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더러워진 호수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깨끗해지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이의 능력의 피라 그렇습니다.
그 피는 양심이 담고 있는 모든 죄에 대한 정보들을 말소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곧 죄에 대한 파일들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지요.
그 사실을 굳게 믿는 자에게 내리는 복이 있습니다.
온전함의 복 즉, 진정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복을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더러운 양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제대도 섬길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양심이 깨끗해져 불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제대로 섬길 수 없었던 하나님을 비로소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결심을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이제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먼저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가능하니, 정결한 그분의 피만이 우리의 양심을 살리고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섬길 때 진정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것이지,
그 외에는 자기 의지 자기 공로로 섬기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처럼 보혈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되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되려면,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기 원한다면 외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피!’입니다.
또한,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과 정결한 마음을 갖기 윈한다면 외쳐야 할 것입니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피!’ 그것입니다.
진정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애타게 찾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참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 어려운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그 신앙을 전수해 준 것은 그것을 외친 까닭입니다. 이제 우리 후대를 위해서도 우리가 외쳐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피!’입니다.
심마니들이 애타게 찾다가 산삼을 발견하면 외치듯이, 찾는자 만이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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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없이는 죄사함도 없고 깨끗하게 되는 것도 없고 언약도 없습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
래서 옛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며,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히9:18)
피 없이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히9:7)
그러나 육체의 예법과 짐승의 피로는 양심을 온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히9:9)
그래서 육체로는 정결한듯 보였으나 마음과 양심은 여전히 더러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그래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러한 피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13)
그러나 우리 주께서 자기 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참으로 우리 주의 십자가 피는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시는 능력의 보혈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3~14)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도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선한 양심, 착한 양심 되기 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3:16), "착한 양심을가지라"(딤전1:19)
그리하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24:16) 앞 길에 거침이 없으며,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유1:24) 우리의 걸음을 당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아6:4)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22절)’
죽임당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지성소로 들어가 그 언약궤에 뿌렸습니다.
모세 역시 율법을 따라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언약책과 백성에게 뿌렸었고
이후 제사장들은 그 장막과 제사의 사용하는 그릇에도 이를 행하였습니다.
피뿌림은 죽음의 선포이며, 희생의 상징입니다.
내 손에 묻은 죄악의 피는 아무리 씻어 낸다고 해도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기억이 시작되는 시절에 지은 죄도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셔서
자신의 피로 자신의 몸과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보혈로 피뿌림을 하심으로 용서를 선포하신 그분의 ‘다 이루신’ 용서의 선포만이
그 묶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죽음으로 얻어낸 유언의 시작이며
생명을 건 언약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단번에 죄인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11~14절).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고, 손으로 만들지 않은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11~12절). 단 한 번의 제사는 완전한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단 한번의 제사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다시는 짐승의 피를 뿌리지 않아도 되는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피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동에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할 것(13~14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인간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됩니다. 내 자신 역시 죄 없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양심까지 깨끗하게 된, 곧 근본적이며 영원한 속죄를 받은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미치는 죄의 영향을 단번에 끊으시고 완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입은 내 자신은 새롭게 된 마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사는 인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과 진실함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며, 단번에 죄인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죄악의 지배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15~17절).
옛 언약에서는 모세가 백성의 중보자의 역할을 했듯이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첫 언약인 장막 제도에서는 죄인인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중보자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신과 백성의 죄를 위해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중보자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15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 그 언약은 유언이 되었고, 그 유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16~17절).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하는 중보자로 친히 제물이 되셔서 대신 죽으심으로 죄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내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다 치르셔서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게 되었습니다. 이 영원한 기업은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 없는 영원한 속죄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을 죄에서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지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속죄를 확신하므로 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그 구원을 약속받은 자로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게 하셨습니다(18~22절).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말한 뒤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언약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고서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20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모세는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도 그런 방법으로 피를 뿌렸고(21절), 율법을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해지며,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22절)고 말하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자가 사함 받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언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대신 흘려 속죄하였고, 새 언약의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효력으로 인하여 내 자신은 죄의 지배로부터 단절되는 완전한 자유를 약속받았습니다. 또한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은 상속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취소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정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약속받은 영원한 기업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되, 합당치 않게 살아가므로 주님의 몸과 피를 욕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은 이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죄의 영향을 단번에 끊으시고 완전히 새롭게 하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기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날마다 십자가의 약속을 믿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피제사
사람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지성소에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NKRV) 예수님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 대제사장이 들어간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지만 지상에서의 제한적 임재인 물리적 성막이요 성전이었으나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이 들어가신 곳은 하늘의 성소로 사람이 만든 곳이 아니라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특별한 영광의 임재로서 성소입니다. 그러니 사람 대제사장과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염소와 황소의 피' 곧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1–22, NKRV) 가난한 자를 위한 예외적인 경우를 뺴고 모든 속죄는 피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피 또한 거룩한 것인데 그 피는 예수 그리스도 피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결코 어떤 죄도 속죄될 수 없고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우리의 진정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으며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향해 진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사람 대제사장 때처럼 동물의 피를 대속죄일마다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말할 때 그것이 동물의 피를 흘리는 그 날보다 더 엄숙하고 거룩하며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물의 피를 가지고 제사드릴 때 그들은 참으로 엄숙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말할 때 엄숙해야 합니다. 진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2.피제사의 능력
옛언약 때 피제사는 거룩하였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히브리서 9:13, NKRV) 그렇다면 원형이신 그리스도의 피는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NKRV) 동물의 피를 드리는 의식은 엄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내면까지 살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만집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의 피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구약 시대의 동물의 피를 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교리적인 어떤 한 형태로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매우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피라는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죽은 의식(죽은 행실)은 어떤 경우는 우리의 양심을 더 무디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헌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등의 외적 의식이 때로는 우리의 양심을 무디게 하고 믿음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바로 알 때만이 그러한 거짓된 믿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또 하나의 외적 믿음의 위험에서 건지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섬기게'라는 단어는 조금더 의식적인 예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피를 제대로 알게 될 때 그것이 우리를 자유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진정한 의무의 길도 가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의무입니다. 공적예배가 가장 주된 의미요 삶의 예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이기 때문에 이제 의식적인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내적인 변화가 없는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변화가 있는 외적인 것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외적인 변화를 낳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아는 사람이 어찌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던 그 때보다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더욱더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피 흘리셨습니다. 그 순간을 구약의 모든 제사가 바라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는 또한 그 순간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죄인의 죄를 속죄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사함을 얻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동물의 피를 드리던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참으로 엄숙하게 제사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부족한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시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중보사역 앞에서 우리의 속마음이 변하고 우리의 예배가 변해야 합니다. 속마음이 순결하고 우리의 예배가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동물의 피보다 못한 것으로 격하시키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와 중보 사역 앞에 감사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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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피
1.오직 자기 피로(11-14)
여기서는 동물의 피보다 그리스도의 피가 더 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동물의 피로 정결케 됨을 받았는데, 그리스도의 흠 없는 피는 더욱 우리의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해줍니다.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씻어버립시다.
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15-22).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시 "언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렘31:31-34을 인용하면서 새 언약이 있을 것을 말했습니다(8:8-13).이제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새 언약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예언하면서 "피"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주어진 옛 언약이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림으로 시작되었듯이(출24:6-8) 새 언약도 피뿌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죄를 온전히 해결하는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죄 사함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결입니다. 이것은 레위기가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정결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케 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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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절 :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은 온전한 희생제사를 통해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고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짐승이 아닌 자신의 피를 제물 삼고, 땅이 아닌 하늘 성소를 통과하여, 첫 언약 아래서는 알지 못했던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또 매일 성소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이나 매년 속죄일마다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의식을 반복해야 했던 대제사장들과는 달리, 반복할 필요 없는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첫 언약에서 드려진 가축의 피는 육체적이고 제의적인 정결만 주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의 양심을 정결하게 씻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속한 행실을 떠나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 돈이나 명예나 쾌락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이 된 것, 이것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이고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적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의 순종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속죄함을 받았다.
이제는 짐승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 다 이루셨다.
그 피로 나의 죄도 씻음 받았다.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
가장 큰 기적을 나에게도 허락하셨다.
주님이 아니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오늘을 살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첫 언약의 형벌에서 새 언약의 복으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파기한 첫 언약의 저주에서 벗어났으며 새 언약에 참여해서 새 언약에 약속된 영원한 복,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가슴에 품은 사람,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재자로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확보해 주신 영원한 유업을 소망할 것입니다. 현실은 깨끗해진 양심을 따라 살기 힘들지라도 예수님이 보증해 주신 '장차 올 세상'(2:5),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4:9), '하늘의 예루살렘' (12:22)을 바라보며 현실의 고단함을 견됩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예수님이 죽으셨기에 나음을 얻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았다.
새 언약을 받았고 기업의 약속을 얻었다.
첫 언약의 죄를 속량하셨다.
나의 죄를 씻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영 죽을 나를 살리셨다.
그 은혜가 내게 임함이 감사하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사망 속에 사는 자 같이 살지 않아야 한다.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야 한다.
좌절과 절망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이 세상 것이 다 없어진다 할지라도 영원한 집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감사의 찬송을 많이 부르자.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은 유언과 같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전제하고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자신의 죽음을 전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언약의 모든 복을 주기 위해 처음부터 언약의 모든 저주를 죽음으로 담당하실 작정이셨습니다. 첫 언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약을 체결할 때 뿌린 피, 성막과 기물을 정화할 때 바른 피 모두 하나님의 죽음을 예고했습니다. 하나님은 말 그대로 우리를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시며, 죽을 만큼 사랑하십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예수님의 죽음은 곧 하나님의 죽음이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드리셨다.
피를 흘리셨다.
그 피로 속죄하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주님의 피 흘림으로 용서함을 받았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도 없다.
우리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택이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늘 넘치기를 소원한다.
주님!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사랑은 최상급이십니다.
그 크신 사랑을 저에게 베푸셨습니다.
거저 받았습니다.
주님께 드린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혜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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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동인천 지하상가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에게 새롭고 살아 있는
구원의 은혜로 덮어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며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주님의 제자로 오늘도 우리의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로 지고 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지진과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더 아는 지혜로 넘치고
놀라운 그 섭리 안에 참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