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일이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게 시작되더니 갑자기 쌀이 부족하다며 혼식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하여 점심시간 마다 모두 도시락을 까서 도시락에 보리알이 몇 개나 들어 갔는지 담임이 일일이 검사하여, 성분이 부족하다 생각되면 존나 얻어 터졌다. 쌀 100g당 얼마의 보리가 들어가야 하는지의 기준이 없었으므로 모든 기준은 순전히 담임의 지조때로 판결에 의존해야 했다. 이쁜 놈은 좀 봐주고 미운 놈은 존나 패고.
학기 초가 되면 시범 케이스가 걸린다. 이 시범 케이스라는 것이 조금 독특해서 반에서 가장 찌질스러운 놈을 패면 효과가 없다. 일단 공부도 조금 잘하고, 덩치도 평균 이상으로 크고, 누가 봐도 범생이 타입을 골라서 존나 패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녀석들은 공포에 떨기 마련이다. “ 아 안전지대란 없구나” 라는 생각을 모든 학생들의 뇌리에 새겨두게 되면 이 시범 케이스의 효과는 극대화 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테러가 되겠다.
그런데 그 웃기는 보리밥도 싸오지 못하는 녀석들이 반 마다 몇 명씩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보리알 때문에 얻어 터질 일은 없었지만 점심 시간이 되면 녀석들은 슬그머니 교실을 나가 운동장을 배회하다 들어오곤 했다. 반면 조금 여유가 있거나 자식 사랑이 지극한 부모들이 약간의 돈을 학교에 내면 서울우유(병에서 삼각팩으로 바뀐)와 콘티빵(안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고 그냥 맨 빵)을 입에 물고 다닐 수도 있었다.
4학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같은 반에 2년씩이나 꿇은 녀석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초등학교)도 못 가다가 동생과 함께 입학한 케이스였다. 아마 또래 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친구였는데, 보기보다 언변도 좋고 사회성이 좋아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었다. 두 형제 역시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이므로 나는 그들이 점심시간에 대해서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는 초등학교도 완전 의무교육이 아니라서 육성회비란 명목으로 일정 부분의 교육비를 내야 했었다. 비율은 기억나지 않지만 600원, 450원, 300원, 150원으로 차등을 주어서 집안 형편에 따라 일정량을 반마다 걷어야 했었다. 문제는 모두 다 가난 했다는 것이다. 가정환경 조사서라도 쓰게 되면 집집 마다 TV나 전화, 냉장고 등등의 보유 여부를 기록해야 했다. 자가용 있는 집은 전교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시절.
담임들은 이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곤 했다. 전부 형편이 고만고만 한데 누구는 600원 내고 누구는 150원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 반장, 회장등등 반에서 임원이나 줄반장이라도 되면 무조건 600원, 나머지는 전화나 TV의 보유 여부에 따라 역시 지조때로 정해지기 마련이었다. 어중간한 중간 범위(300~450원)의 학부형들이 담임을 만나 우는 소리하면 가끔 감해주기도 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어린 것들을 동원해 화장실 똥을 퍼다가 담 옆에 심은 호박에 거름을 주고, 호박이 열리면 학부형들이 따다가 시장에 팔아서 학교에 기부하는 것을 “자연학습”이라고 여기던 시절이니 오죽했을까. 다행히 옆 반이 시범반으로 선정되어 녀석들은 오뉴월 내내 똥 푸러 다녔다. 인기가 있었으므로 녀석은 충분히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반장을 한 적이 없다. 어쩌다 후보로 추천이라도 되면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녀석과 같이 도시락을 나누어 먹게 된 계기는 운동장 스탠드에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을 교실 창 밖으로 본 후부터다. 도시락을 눌러 담아 달라고 해서 녀석과 나눠 먹기로 했는데, 며칠은 같이 잘 먹더니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피하는 것이었다. 하여 도시락을 운동장까지 들고 따라 다니면서 같이 먹기도 했다. 훗날 안 일이지만 다른 반에 있던 동생 때문에 혼자 밥을 먹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매일 똑 같은 멸치와 보리밥 조차도.
이 도시락 기피사건의 전모를 들은 것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 가을, 녀석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알게 되었다. 이미 중3의 사춘기 나이가 되었고 얼굴에 여드름이 만발한 모습이라 “새끼”소리가 목까지 올라오다가 그만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중학생 정도면 어느 정도 서열을 알던 시절 아닌가. 결국 녀석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동생을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운다고 하였다.
양복점에서 먹고 자며 기술을 배우는 소위 “시다”의 길을 택했다. 밥은 매일 잘 먹는다는(아닌 게 아니라 얼굴에 살이 잘 올라 있었다) 얘기를 하며 씩 웃을 때, 그의 얼굴에 비친 그림자를 나는 잊지 못한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며 돌아 선 후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으므로 녀석이 훌륭한 양복 재단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녀석은 절대로 자신의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무상급식 때문에 시끄럽다. “애들 밥먹이자는데”와 “세금폭탄”으로 갈리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은 급식으로”만” 차별 받는 게 아닌 시절이다. 나이키 신발이 짝퉁인지 아닌지와 티셔츠의 브랜드, 가방으로도 차별 받는다. 공짜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그들에게는 서열이 매겨져 있다. 그러니까 밥은 그냥 주자. 대한민국 대리기사 SD혈계 세금 낼 테니 밥은 그냥 주자. 설마 쥐꼬리만큼 버는 대리기사가 세금 폭탄 맞아 뒈지겠냐. 씨발
첫댓글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글이군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그와 더불어 유년 시절의 몇 몇 장면이 영화처럼 스치는군요^^
눈물나는 시절이네요.갑자기 왜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일까요? 그 힘들고 어렵고 고달프게 살았던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설득력있는 글이군요. 세금 더 않내고 부자애들 급식비(월 6~7만원) 받아 애들 더 맛있는거 먹이면 않될까요.? 지금 투표경향으로 봐선 "강남부자들은 돈내고 먹을려는데,못사는 사람은 부자 너희들도 공짜로 먹어라"는 기이한 선택을 강요하네요.
부자들 세금 많이 내니까(없는 사람들 보단) 부잣집 애들도 그냥 밥 먹입시다
훌리건 정말 넌 인간 말종이다. 이런 글에까지 정치적 성향의 댓글을 다냐! 에라이 천하에 잡종새야! 난 눈물이 나는데 넌
머라고 씨불거리냐 이 개 잡종새야! 너 지금 내 눈앞에 보이면 아주 그냥 아작을 낸다.진심과 광고를 구별 못하는 이 개 고랑말코 더러운 인간아!
불싸신// 감성이 풍부하시군요.제가 목욕은 않하는 편이죠.^^충고 감사합니다.
아휴! 이런 개 병신! 숨이 차서 저 멀리까지 넘어간다.그리고 글을 쓰려면 공부좀 하고 와서 써라 이 좀만아!
안과 않도 구별을 못하냐?
블싸신 // 님이 욕하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않나쁘네요.? ^^
정말 어이가 없다. 좀 착하고 진실되게 세상을 봐라!
짝짝짝~~
정말 좋은 글 입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SD혈계님의 글은 품위와 격이 요즈음 무엇에도 심상한 딜레땅트에게
댓글 달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밤이슬, 세상사는 이야기에 정말 이런 좋은 글이 자주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읽는 내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잊고 지냈던 무엇인가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http://durl.me/fzs6c
역쉬~~~된장은 묵힐수록 깊은 맛이나쥬, 감동을 주는글은 흔하지않아요
제목만 보고 분할프로그램 글인가 했네요~~~~표면에 나타난 것은 무상급식인데 이것이 정치와 아주 복잡하게 얽혔네요
나 어릴적 이야기 같네요 잘읽었습니다
전에 TV프로였는데... 일반인들이 나와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였죠... 대부분 출연자가 은사, 첫사랑 등을 찾았는데, 학창시절에 자기랑 도시락 같이 먹던 친구를 찾는사람이 있었죠. 알고보니 자신은 가난해서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못되었고 그걸 눈치챈 친구가 도시락을 많이 싸와서 혼자먹기 많으니 같이 먹자고 하여 중학교시절 내내 같이 먹었다는 겁니다. 나이를 먹고 다시 만난 친구가 서로 알아보고 얼싸안는데...SD혈계님 글 읽으니 생각나네요.. 물론 저는 아직 어리지만 제가 학교 다닐때도 도시락 싸올형편이 못되어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배회하던 친구들이 있었죠.. 그 친구들은 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저의 어린시절 이야기 이군요 다행히 조은 부모만나서 밥은 안굶었습니다..지금은 보리밥이 더 비싸고 건강식이죠^^
혈계님 에게 이런 어린시절이 있었군요
포인트는 무상급식이지만 글도 재미있어요 우리에게 그런시절이 있었지요 잊고 살았지만 ... 가끔은 금정에서 보았으면합니다.
주마등처럼 학창시절이 떠오르는 군요 그땐 왜글렇게 배가 고팠는지... 두시간 단위로 배가 고팠던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