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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제물 9:23~25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사망과 심판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9:26~28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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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닌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그리스도는 자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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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제물 9:23~25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며, 동물 제물도 완전한 제물의 그림자입니다. 지상 성소를 동물의 피로 정결하게 했다면, 하늘 성소는 ‘더 좋은 제물’(23절)로 해야 합니다. ‘더 좋은 제물’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를 제물로 삼아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에 죄인은 물론 하늘 성소까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속죄를 완성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의 중보자’(9:15)로서 하나님 앞에 계십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해마다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 제사의 완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 이름과 완전한 대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늘 성소를 거룩하게 한 ‘더 좋은 제물’은 무엇을 가리키나요?
예수님이 완성하신 속죄는 나와 인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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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과 심판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9:26~28
동물의 피로 드리는 속죄 제사는 효력이 일시적이기에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에, 자신의 몸을 반복해서 드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속죄가 불완전했다면 창조 이래 그분의 몸을 자주 제물로 드리셔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세상 끝’에 나타나셨습니다(초림). 죄인에게 죽음과 심판은 필연이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려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은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재림). 그때는 주님을 바라는 자들을 위해 만유의 심판주로 임하실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심판자이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하신 일은 무엇이었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받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모두의 인생 끝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하며 제 삶을 돌아봅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준비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63 이 세상 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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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23v)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은 여러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함
(24v)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음.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음
(25v)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음
(26v)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임.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몰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음
(27v)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음
(28v)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임
대지와 소지:
1. 먼저, 우리를 정결케 하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a.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은 여러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음
b.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는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
2. 둘째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a.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희생제물을 드려서 죄를 없이하여 주었음
b.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셨음
3. 마지막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a.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생각했음
b.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셔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셨음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그 사랑에 늘 감사하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도록 하자
② 우리의 죄를 도말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인인지 늘 감사하고, 늘 기뻐하도록 하자
③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남은 삶을 그분께 드린 만큼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뜻과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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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사람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개의 배경이 있습니다.
곧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그리고 마지막 날입니다.
우선, 구약시대에서는 하늘 성소의 모형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그 때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나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그가 나타나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을 받으시고 용서했음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유보입니다.
다음, 신약시대에는 하늘성소의 그림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단 번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분의 희생제사로 죽음의 세력은 멸해지고, 그것에 포로로 잡혀있던 사람들은 해방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확증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지체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하늘 성소의 원형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그리스는 그분을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죄 없다 변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비로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심판이 실현됩니다.
세상 끝날 죽은 자와 산 자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의 성취입니다
. 심판의 실제입니다.
죽음을 연구한 학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이 의사들이나 근사체험 연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죽음학의 권위자는 아예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므로 사후생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기정사실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심판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후생이 결정되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보라고 권합니다.
죽음이라는 나타나는 현상에 겁먹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것이지요.
즉, 죽음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 이후에 있을 것이 진짜라는 것으로, 그것이 곧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주관자가 있다는 말로,
그것은 단지 잠에 불과할 뿐 생명을 주관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일도 그분의 일이라는 선언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워할 것을 무서워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유일한 권위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난, 슬픔, 질병, 불행, 외로움, 사고 등은 실은 두려워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것의 정점이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단지 경유지일 뿐입니다.
종착역은 죽음이 아니라 심판 이후의 사후생이지요.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 닥칠 일을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심판은 허구도 아니요, 먼일도 아닙니다.
현실이고 곧 닥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필히 겪어야 할 일입니다.
돈의 유무, 행복 여부, 지위나 명예 등에 상관없이 우리는 일단 죽음을 향해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는 것보다도, 더 나아가 죽는 것보다도 더 긴장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심판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그것이 초 관심사입니다. 그 때 우리 곁에 누군가 나타나야 합니다. 나타나서 ‘이 사람 대신에 제가 죽었습니다’라고 변호해야 합니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는 분! 그 분이 우리의 소망이고, 그 분만이 우리의 구원주입니다. 문제는 그 심판의 시기와 때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후의 삶을 고심할 것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심판 받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앞날은 결정되었습니다. 그날을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보다는 개인적인 종말이 먼저 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급한 과제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끝을 대비하며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현명한 판단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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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죄를 즐기며 살지만, 누구나 반드시 죽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심판을 피하고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결코 스스로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심지어 율법의 제물의 피로도 없앨 수 없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4)
그래서 다윗조차도 죄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38: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죄를 없앨까요? 죄를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죄를 없앨 의지도 있으신 주께 의뢰해야 합니다 참으로 죄를 없애려는 주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요일3:5)
죄를 없애려는 의지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피를 하늘 제단에 바침으로 죄를 없앨 능력도 충만하게 되셨습니다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참으로 예수님은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오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그러므로 주께 의뢰함으로 죄 없이 함을 받기 원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3:19)
그때 죄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이제 곧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그러므로 오늘도 내려다보지 않고 주를 바라며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기 원합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눅21:28)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일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27절)'
우리는 매일, 매순간 결단한 것들을 지켜내기도 하지만 쉬이 넘어지고 무너져 스스로 실망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 문제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그 구약의 제사는 매년, 매 절기마다 이뤄지는 두렵고 간절한 결단들을 그들의 심령 가운데 심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죄의 문제는 잠시 사라졌다가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들고 그 인생들과 나라와 역사를 삼키는 문제로 다시 그들을 넘어뜨리고 좌절시켰습니다.
또한 그 문제는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국 무지와 무감각, 그리고 불순종과 불경건의 깊은 수렁에서 빠질 수밖에 없도록 유혹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행위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는 회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결심이 과연 힘 있게 더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연약하고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육신을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장 악하고 지독한 것들도 모두 소멸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 십자가에서 온전히 그리고 단번에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하심으로 그 은혜 아래 모든 이들의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 그 진리 아래 또한 하나님의 의롭고 준엄한 심판의 증거가 되셨습니다.
반복적으로 우리는 자고 일어나지만 결국 생애의 마지막 날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소중할 수 없는 독생자를 그 심판대에 올리심으로 또 다른 구원의 이름이 없다는 확증으로 우리에게 그 길을 삼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여호와 앞에 서서, 그 구원과 심판의 갈림길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가신 길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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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우리를 위하여 정결하게 하셨습니다(23~24절).
하늘에 있는 참된 것들을 모방한 이 땅의 모형은 짐승 제물로 정결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그와 같은 제물로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희생제물이 필요했습니다(23절). 그 희생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지은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참된 것의 모형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시고, 그곳에서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나님 앞에 서신 것입니다(24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새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도록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장막은 하늘의 성소와 모형에 불과 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사람들을 대표하여 지성소에 일 년에 한 차례 들어가 백성들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했지만, 그 사역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흠이 없으시며,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제물로 친히 드려지심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내 자신을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자신이 믿고 사랑하며 소망해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정결하게 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 되셨습니다(25~26절).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자신의 피가 아닌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25절).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 자신을 드렸으며 세상 끝에 단번에 드렸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26절).
인간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는 완전하지 못하므로 해마다 죄를 기억해야 했습니다(10: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들이셨고,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효력이 영원히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이 이루신 온전한 의를 이 땅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전가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의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종교적인 어떤 제의 의식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 완전한 의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 주시고,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우리를 위하여 순종하여 주셨습니다(27~28절).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27절). 즉,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피할 수 없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번에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28절).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이 아니라 중간 점이며, 죽음의 공포와 체념을 넘어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삶에 있어서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주 아래 놓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믿는 자들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내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의와 생명을 누리게 하심으로 더 완전한 것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총을 날마다 누리며, 주님께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완전한 구원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걷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23,24절 :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우리를 하늘 성소에 계신 하나님 앞으로 이끄십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가 죄인인 상태로는 하늘로 들어갈 수 없기에 가축보다 더 좋은 제물인 자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하나님 계신 곳에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둘째, 우리를 위해 하늘로 앞서가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고,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6:20; 10:19,20). 이 일은 예수님 말고는 누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짐승의 피로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하던 대제사장도 땅에 있던 장막의 지성소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유일무이한 일을 해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다시 한번 삶의 지향을 예수님께 맞춥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예수님은
- 스스로 제물이 되셨다.
- 하늘로 올라가셨다.
-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
- 우리를 하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이 그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처럼 짐승을 잡지 않아도 된다.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거저 주신 은혜일 뿐이다.
예수님의 피로 산 은혜이다.
이 은혜로 오늘을 살자.
모든 것이 감사로 이어지도록......
25-28a절 :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단번에 속죄를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다시는 반복될 필요 없이 그 효과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속죄 효과가 한시적이었다면, 첫 언약의 대제사장이 매년 제사를 드렸듯이 예수님도 창조 이래로 여러 번 세상에 오셔서 반복해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반복해서 죽으시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는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는데(2:17), 사람의 죽음은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의 효과가 영원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 끝에 오셔서 많은 사람을 위한 속죄 사역을 단번에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자일(등산용 밧줄)을 우리 몸에 묶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의 산언저리에서 과연 안전한지 고민하지 말고, 안전을 확신하며 산을 올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대한 신뢰는 과감히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구약 시대에는 매번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번에 이루셨다.
그 영향력은 영원한 것이다.
모든 인류를 위해 이루신 주님의 위대한 업적이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천국 백성을 가르실 것이다.
반드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아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을 동안만 가능한 것이다.
죽은 다음에는 선택할 수 없다.
지금 믿어야 한다.
내 생명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기에 더욱 그렇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 되심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이다.
그 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하다.
이 하루도 그 감사가 넘쳐야 한다.
마음에만 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표현되기 원한다.
28b절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때는 또다시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구원을 완성하러 오실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놓지 맙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구약의 수많은 곳에 예언된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탄생하심과 죽으심이 있었다.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은 또 하나의 약속을 하셨다.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는 것이다.
올라간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 하셨다.
그때는 심판을 위해 오신다 했다.
구원을 완성하기 위함이시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주님의 약속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나의 생전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까?
숨는 자가 되지 않기 원한다.
부끄러움이 덜 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이 남은 양 살고 있다.
그날이 아직 먼 것처럼 살고 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 때가 많다.
지금도 내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의식하자.
매 순간 의식하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의 생각까지도 헤아리시는 주님이시니까.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살자.
주님!
말씀을 대할 때만 주님을 의식하지 않기 원합니다.
모든 생활 전반을 주님 앞에서 행하듯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복된 일임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부끄러운 모습으로 만나지 않기 원합니다.
저를 날마다 바르게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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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백성이 심판의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1. 초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깊은 아픔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27절) 그런데 사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죄로 인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자체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으로 그냥 사라지는 것이라면 죽음이 뭐가 그리 큰 문제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고통 많은 이 세상을 마치는 것에 불과하여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이후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심판은 그 사람의 영원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나뉩니다. 영원한 죽음은 영원한 형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형벌이라는 엄청난 사실 앞에 놓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사실입니다. 만약 세상의 어떤 것으로 사람들이 영원한 형벌을 면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면 성자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기까지 하시면서 이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동물제사는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성소에서 날마다 드려져야 했고, 지성소에서 해마다 드려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그들의 죗값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림으로 모든 죄가 씻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신 그것을 초림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룰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몸소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심판의 날은 우리의 죗값이 불려지는 날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2. 재림
사람이 죽고 심판을 기다릴 때 이제는 죗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죗값을 다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28절)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것은 '죄와 상관 없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 날은 이제 그리스도의 핏값을 믿음으로 이미 죄를 씻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말입니다.
죗값을 씻음 받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픔은 사실 죗값의 잔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이 그러한 죗값의 잔재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 받은 백성의 영광을 누리도록 온전한 구원의 자리로 부르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얼마나 복된 날이겠습니까?
주님이 두 번째 오시는 날은 복된 날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은 그 날을 기다리며 삽니다. '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바라는'이라는 단어는 '간절히 바라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씻고 이제는 예수님의 손길로 온전한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시는 날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때의 심판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잔치의 심판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잔치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고 불리는 심판이며, 온전한 기쁨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잔지, 가장 행복한 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잔치임을 믿고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가져오는 완성된 천국을 소망하며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히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날에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음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 하였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때에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놀라울까요? 그 심판이 믿는이들에게는 영원한 천국 잔치의 시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늘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 측량할 수 없는 보혈로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뜻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 은혜의 손길을 붙들고
죄를 버리고 멀리하는 결단이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의 여정이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그 기쁜 소식을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지진과 홍수 등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 깊이 알고 사모하며
그 섭리와 손길 아래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