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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에 처음 등장한 GDP의 개념은 오로지 생산성에 초점을 둔다. 자연히 이로 인한 허점들이 진작부터 지적되었고, 이를 보완하려는 BLI, HDI, WHI, ISEW와 같은 개념이 꾸준히 등장해 왔다. 우리나라에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설파해 온 LAB2050의 이원재 대표가 ‘우리에겐 너무 낡은 GDP’의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해 왔고, 지난달 2월 16일에는 국회에서 공개 토론회를 가진 바 있다. 이원재 대표가 한국형 참성장지표에 관한 비전을 피렌체의 식탁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 대공황과 전쟁에 대한 대응력을 측정하고자 오로지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춘 GDP
✔ 교통사고나 질병 환자가 많아지면 저절로 증가하는 GDP의 허점
✔ 건물이나 다리의 붕괴 역시 건설회사의 매출로 잡혀 GDP의 관점에서는 성장
✔ 불평등은 차감으로, 인적 자원과 무료 디지털 서비스도 성장에 반영하는 한국형 참성장지표
(사진:셔터스톡)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올해 우리 사회는 3%만큼 더 나아지겠구나. 내 삶의 질과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그 정도 좋아지겠구나.’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크기를 기준으로 경제성장률을 측정한다. 그런데 GDP는 삶의 다양한 측면 중 시장에서 화폐로 거래되는 부분만을 집계한 것이다. 환경 및 사회적 가치는 모두 빠지며, 경제적 가치 중에서도 불평등이나 불필요한 지출처럼 실제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요소는 빠진다.
기존 경제성장률 지표의 문제점을 시적이면서도 가장 과학적으로 비판했던 1968년 로버트 케네디의 캔자스대 연설에 따르면 그렇다.
1968년은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큰 사건이 많았던 격변의 해였다. (사진:셔터스톡)
격렬했던 1968, 강렬한 RFK의 연설
미국의 존 F. 케네디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던 해였다.
연초에는 베트남전쟁의 여론을 뒤바꾼 ‘음력 설 대공세’가 일어난다. 북베트남군이 명절을 이용한 기습작전으로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거세게 압박하며 큰 피해를 입힌다. 이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이 점령당하기도 하며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된다.
한편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며, 흑인 민권 운동과 학생 시위는 더욱 격화된다. 청년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68혁명’과 궤를 같이하며 전국에서 전쟁 반대 및 인종차별 반대 등 사회 개혁 요구에 나선다.
4월에 벌어진 뉴욕 콜롬비아대 점거 농성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대학이 국방부와 연결되어 무기를 연구했다는 점, 대학이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점 등을 비판하며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했다. 결국 경찰이 진입해 900여 명의 학생들을 구속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생겼다.
격동의 시기에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이던 로버트 케네디는 3월 캔자스대학을 방문해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의 국민총생산(GNP; GDP와 유사한 당시의 경제 성장지표)은 공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우는 구급차를 성장으로 측정합니다. 국민총생산은 사람들이 감옥을 탈출하지 못하도록 가두기 위해 만든 특수잠금장치도 성장으로 측정합니다. 이 지표는 삼나무와 경이로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도 성장으로 여깁니다. 네이팜 탄과 핵무기와 시위 진압용 장갑차도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라이플 총과 칼을 판매해도,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하지만 국민총생산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시(poetry)의 아름다움도, 결혼의 건강함도, 공적 토론의 지적 수준도, 공직자들의 청렴도 역시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 용기, 지혜, 배움, 헌신, 열정도 측정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총생산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측정합니다. 우리가 미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지표입니다.”
이 격동의 시기,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그가 연설에서 ‘GDP’를 비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 이후 미국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꺼내 들었던 것이 아닐까?
BLI, HDI, WHI, ISEW: GDP가 놓친 것을 담아내는 대안 지표
로버트 케네디는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국민총생산(GNP)을 연설에서 언급했다. GNP는 해당 국가 국적자의 경제활동을 집계한 지표다. GDP는 해당 국가 국경 내의 경제활동을 집계한 지표다. 집계 방법이나 항목은 큰 차이가 없다. 국경보다는 국적을 중시하던 당시 시대를 반영한 지표다. 따라서 로버트 케네디는 GDP를 일컬은 것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경제가 성장하면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우리의 직관과는 달리, GDP를 기준으로 한 경제성장은 삶의 질과 관계가 없거나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사교육비를 예로 들어 보자. 입시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져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면, 이는 삶의 질이 좋아진 것인가 나빠진 것인가? 우리나라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학부모들의 교육비 고통이 커졌다는 점에서 보면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GDP 기준으로 보면 좋아진 것으로 집계된다. 시장에서 더 많은 사교육 서비스가 화폐로 거래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고팔지 않는 개인의 부담은 집계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많아져 의료비가 늘어난다면 어떨까? 건강이 나빠진다면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GDP 기준으로 보면 좋아진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의료서비스의 양이 늘어났다고 집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 화력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제조업 공장가동률이 높아진다면 어떨까?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늘어나지만, 미세먼지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 미래 기후재앙을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GDP에는 늘어난 미세먼지와 탄소배출량은 잡히지 않는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늘었으니 크게 상승한 것으로 집계되고 말 것이다.
건물이 불타고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불행한 일로 여기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GDP에서는 이런 인명피해 자체는 집계하지 않는다. 손실된 노동력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오히려 복구과정에서 건설회사가 더 많은 매출을 일으키며 고용을 하게 되니 잠깐의 노동력 손실 뒤 다시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집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GDP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은 로버트 케네디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장 폴 피투시,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티아 센 등이 참여한 이른바 ‘스티글리츠 위원회’에서 GDP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OECD에서는 ‘더 나은 삶 지수(BLI)’를 내놓았고, 인간개발지수(HDI)나 세계행복지수(World Happiness Index) 같은 지수도 주기적으로 발표된다. 지속가능한 경제후생지수(ISEW)와 참성장지수(GPI)도 역사가 오랜 대안 지표다.
필자가 소속된 민간정책연구소 LAB2050은 이런 다양한 지표를 종합해 한국형으로 가공한 ‘참성장지표’를 연구했고, 지난 2월 16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그 내용을 발표했다.
태생부터가 정치적이었던 GDP, 이제는 그 유효기간이 다 했다고 보아야
하지만 GDP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GDP의 문제점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GDP만이 유일하게 측정 가능성이 높고 객관적인 지표’라는 현실론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GDP의 연원을 살펴보면 이 지표 역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며, 특정한 주관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지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잠시 GDP가 등장하던 시기를 되돌아보자.
대공황 직후인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뉴딜’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승리했다. 당시 루스벨트 후보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내세운 뉴딜 공약은 연방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재정 정책)이 핵심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사회 전체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종합 지표가 없었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은 경제 상황이 어떤지, 정부의 개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객관화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루스벨트는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에게 ‘국민계정’ 지표를 만들도록 했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노력이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년 뒤인 194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어떻게 전쟁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국가가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의 생산능력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책에서 간략한 추정치를 직접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듯 GDP는 대공황과 전쟁에 대한 대응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서 만든 지표에 뿌리를 두고 있다. UN은 1953년에 미국과 영국의 방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국민계정 체계’를 처음으로 발간했으며 이후 국제 표준으로 확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GDP는 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자리매김했고, 여러 국가의 발전 정도를 계량화해 비교하는 잣대로도 활용된다.
‘국제비교가능한 지표’라는 지위를 얻게 된 GDP는 단순히 측정치를 넘어 경제적 규범으로 역할이 확대된다. 어떤 활동이 ‘생산적인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국가에 이익을 주는지, 또 어떤 행위가 비용을 발생시키는지의 기준이 된 것이다.
연구 개발과 무기는 미래에 대한 투자, 교육은 소비 지출로 분류하는 GDP
그런데 당시 만들어진 GDP는 절대적이며 객관적이며 불변의 가치 기준을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줄곧 수정 보완되어 왔다. 즉 GDP의 집계 기준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UN은 2009년 ‘국민계정체계 2008’을 승인했다. GDP의 기반인 국민계정 작성기준을 바꾼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 기준에 맞춰 새롭게 GDP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니 한국의 2010년 명목GDP는 이전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와 같은 데이터로 비교했을 때 5.1%가 높아졌다. 한국의 상승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스웨덴이 4.4%, 핀란드가 4.2%, 미국이 4.0% 높아져 한국의 뒤를 따랐다. 반면 멕시코와 이탈리아는 1.5%, 스페인은 1.6%, 캐나다는 1.7%, 영국은 2.3% 상승하는 데 그쳤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상승률은 3.1%였다. GDP 작성기준의 변화만으로 한국, 스웨덴, 핀란드는 좀 더 나은 경제로 발돋움했고, 멕시코, 이탈리아,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경제가 된 셈이다.
원인은 연구개발비와 무기 지출 관련 기준 변경에 있었다.
연구개발비는 쓰고 없어지는 비용일까 축적되는 자산일까? 연구개발의 미래 가치는 어느 정도는 추정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알아낼 수는 없다. 상당 부분이 가치 판단의 문제다.
이전 기준에 따르면 기업 연구개발비는 생산 과정에 수반되는 비용으로 처리될 뿐, 부가가치로 여겨지지 않았다. 연구개발의 결과 생산된 제품이 팔려야만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면서 부가가치로 인식되고, 그래야 GDP에 산입되는 체계였다. 그런데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연구개발비는 미래에 부가가치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지출, 즉 투자로 분류된다. 지출한 만큼 자산이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것만으로도 2010년 기준 한국 명목GDP가 3.6% 올라서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을 압도했다.
군함이나 탱크 같은 무기에 들어가는 돈은 쓰고 없어지는 비용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미래에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으로 봐야 할까? 가치 판단의 문제다. ‘전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기준 변경으로 무기 중 군함과 탱크 등 군사용 장비에 관한 지출도 고정자산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2010년 기준 명목GDP를 0.3% 높이는 효과로 나타났다는 연구가 나왔다. 한국 정부 지출 중 방위력개선비(군비지출)가 컸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는 0.5% 상승한 미국이었으며, 대부분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효과가 작았다.
연구개발이나 무기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교육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GDP는 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을 투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소비지출일 뿐이다. 역시 가치판단의 영역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설비투자나 금융투자와는 달리 투자행위는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이, GDP는 가치중립적 계산과정을 거쳐 나온 지표가 아니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상당부분 담고 있다. 그 판단 기준이 바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GDP는 매우 정치적이다.
대안지표인 GPI를 출발로 구축한 한국형 지수 참성장지표
문제는 현재의 GDP가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경제의 모습을 측정하고 있느냐에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수많은 국가들이 GDP를 측정하고 그 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의 정책 목표로 삼아 달려가고 있다. 만일 이 지표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모든 국가들은 벼랑 끝을 향해 엑셀을 밟으며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현재의 GDP가 표상하는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는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생산성 증대’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 경제력 측정이 처음 대두되었던 1930년대는 공황과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일이 지상의 과제였다.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인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다.
이에 비해 2020년대는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초래한 갖가지 부작용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다.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 수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LAB2050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참성장지표’를 발표했다.
참성장지표는 경제 이외에도 네 가지 항목이 더 집계되고, 경제 부문에서도 불평등과 무급 돌봄 노동의 가치 등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자료제공: LAB2050)
참성장지표는 경제, 일과 여가, 인적자본, 디지털, 환경의 다섯 개 영역으로 나누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다. 기존의 GDP는 이 가운데 경제를 중심으로 측정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참성장지표는 전세계의 다양한 대안지표 사례 가운데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s)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 상황에 맞게 구축한 지표다.
참성장지표는 GDP와의 관점의 차이를 구체적인 지표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참성장지표의 경제 부문을 살펴보자. 기존 GDP에서는 모든 소비지출을 부가가치 상승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참성장지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방어지출’은 성장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즉 주거비나 안전유지비용 등 소비지출 가운데 일부를 적절한 비중으로 차감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니라 사회환경이 악화되는 데 대응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시장 거래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지출은 성장으로 인정해 계산한다.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또한 불평등이 커지더라도 평균소득만 늘어나면 성장으로 집계하는 GDP와 달리, 참성장지표의 경제부문에서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성장분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똑같이 소득이 100만원 증가했을 때, 이미 풍요로운 부유층이 느끼는 효용은 빈곤층이 느끼는 효용보다 낮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계산법이다.
이밖에 GDP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무급가사돌봄노동의 가치, 인적자본의 가치,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무료 디지털서비스의 가치 등을, 참성장지표는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게산한다. GDP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탄소배출, 폐기물 배출, 출퇴근시간의 증가, 가사노동의 불평등 등은 비용을 발생시켜 성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해 계산한다. (참성장지표의 기타 세부 내용은 LAB2050 홈페이지의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대에 맞는 성장의 길 이끌어 줄 새로운 길잡이가 절실
루스벨트나 케인스 시대의 화두와 성장을 위한 지표가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로버트 케네디가 이를 비판한 지도 50년이 넘게 흘렀다. 시대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만큼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 지표가 필요하며, 그 지향하는 발전상이나 목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아야 하며, 이를 측정하고 규범화할 도구로서의 지표가 필요하다.
코로나19 감염증 사태 이후 국가의 방향 설정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GDP라는 과거의 낡은 지표를 금과옥조로 삼아 정책의 방향을 설계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줄 수 있는 가치 척도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 정부는 국정과제를 수립하고 평가할 때 참성장지표처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가치를 담은 지표를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국민계정과 병행해 환경 사회적 가치를 담은 위성계정을 더 많이 개발하며 주기적으로 발표해, 통화정책 수립에도 이런 지표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성장률을 주기적으로 발표할 때, 환경사회적 가치를 담은 지표를 유사한 주기로 병행 발표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제 관련 통계 생산처럼, 사회환경 데이터 생산도 더 자주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생활시간조사,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 측정, 탄소배출과 폐기물의 측정 등의 통계 등이 시급하게 강화되어야 할 조사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데이터를 포괄한 시대에 맞는 새 국민계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 갈 새로운 지표는 성장 지상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공존, 조화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70년 동안 따라온 북극성인 GDP는 지금 그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전환을 이끌 새로운 북극성이 필요하다.
글쓴이 이원재는
LAB2050 대표이자 경제평론가.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했고,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희망제작소 소장,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책을 연구하는 일을 했다. 현재는 민간 싱크탱크 LAB2050을 세워 미래의 경제, 사회,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 담론을 연구하며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방송, 기고, 강연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소득의 미래>, <안녕하세요, 기본소득입니다>, <MIT MBA 강의노트> 등이 있다.
참고문헌
참성장지표 개발 연구(2022), 최영준 손종칠 윤자영 반가운 유정민 이지웅 윤선우 고동현, LAB2050.
GDP를 넘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시대, 진정한 가치를 찾아서(2021), 이승주 최영준 이원재 고동현,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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