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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과 자식 교육.
아내를 데리고 멕시코로 떠나다.
오랜만에 고국에 도착한 전진은 즐거웠다.
공항 마중 나온 6살 딸이, 대머리 된 전진을 보고 울면서
“우리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 아니야!” 소리쳐도 좋기만 했다. 3년 만에 돌아온 33살 아버지는, 어린 딸 생각보다 폭삭 늙어 버린 것이다. 그런 딸을 아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9 살 아들은 눈치를 보면서 강조한다,
“바보야! 아버지야! 아버지!”
즐거운 시간도 잠시 지구 상 모든 생물은 숨을 쉬고 있는 한 자전으로 만들어내는 공기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돈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가고 싶지 않는 외국이지만, 전진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영주권자는 6개월이 넘으면 미국 들어가기가 힘들다. 전진이 옥련을 데려갈 수 없는 것은, 정략적 결혼이란 이민국 직원들의 의심 때문이다. 시민권을 받으면 그때 가서 초청하기로 하고 동생 집으로 보냈다.
전진이 미국으로 가는 날!
서울에 올라와 밤을 새운 옥련은 먼동이 밝아 오자 울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얼굴이 많이 부었다. 사실 그녀는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른다. 먼 길 떠나는 남편 잠 깰까 봐,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가면 언제 올까? 안타까운 마음은 거짓 잠의 연속이다. 혼자서 미국 들어가 영주권을 들고 나오긴 했지만, 자기도 못 데려가는 영주권이 야속하기만 하다. 미국 시민권을 따면 그땐 문제없다니 믿어 봐야 하겠지만, 남편이 미국 시민권을 따려면 앞으로도 4년! 그것도 시험을 봐야 한다니 두려운 일인데, 거기다 심사관 아량이라니 더더욱 걱정이다.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잘도 추진하는 남편이니, 90% 믿음은 가지만 남은 10%가 안 될 땐 자긴 어찌되는가? 시집오면서부터 이날까지 걱정걱정 그놈의 걱정은……. 기다림 속의 연속된 걱정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미국서 거래하던 가방회사와 연계하여, 여자에겐 발행되기 힘든 상용 여권을 만들고, 서류 일체를 갖춰 영사관에 들어가 비자를 받으라고 했지만, 이삿짐 뒤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들어온 여행사 직원을 이상하게 생각한 영사가 불러들여, 보물처럼 안고 다니는 수첩을 열어보곤, 당장 옥련의 비자를 거절해 버렸다. 가난한 종갓집서 겨우 장만한 차례 상에 오마나, 한 손님이 세배하러 와 엎질러 버린 꼴이다. 한번 떨어진 미국 비자 받기란 하늘에서 별 따오기다. 남편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전진(前進)하면서, 뜬금없이 호적 전체를 다른 면(面)으로 옮기고, 옥련의 이름을 (순자)로 바꾸더니, 나이도 3살이나 줄여서 큰오빠를 아버지로 만들어서 넉살도 좋게 이죽거린다.
“호적에 처녀로 됐으니 좋은 남자 만나 시집 한 번 더 갈랑 가?”
말도 안 된 농담을 하고는 자기가 다시 신랑 되서, 영사관엘 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옥련이 미국 영사 앞엔 가슴 떨려서 못서겠다고 하자
“그럼 캐나다로 들어가세!”
캐나다 영사와 면담자리서, 통역하는 여자 질투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까진 캐나다 돈이 미국 돈보다 파워가 있어서, 캐나다 비자만 있으면 미국은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었다. 캐나다 입국 거절 비자가 찍힌 여권을 보고 <가마멀미도 안 끝난 색시 몸에 문신 했다.>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멀쩡한 여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새 여권을 발급받아, 미국 영사관엘 가자고 졸랐다. 그러나 도저히 미국 영사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아 못 들어가고 말았으니, 영사 얼굴만 봐도 쓰러질 것 같다. 어쩌다 머리 좋은 남편을 만나기는 했는데 하는 일마다 도깨비 같아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너무 많다. 시아버지처럼 순해 빠진 남편은 한국에선 도저히 출세하기 그릇 사람이다. 대차게 일은 잘 진행하는데 뭔가 답답한 데가 있다.
학연, 지연, 돈 연, 문중 연, 인연…… 인연은 뜻이 다른가?
좌우지간 한국서 출세하고 살려면, 꼭 필요한 연이라고는 하나도 뜬것이 없는 남편은, 한국에선 애당초 출세하긴 그른 위인이다. 이태원 해밀턴 앞길 집 살 돈을 사기 맞고 힘들어 하기에, 친정에서 혼날 것을 각오하고 이혼까지 해서 미국으로 보낸 것인데, 거기서도 엉뚱한 년을 사귀었으니, 좌우지간 이년인지 저년인지 미남도 아닌 남편은 목소리만 듣고도 여자들이 오고 있으니, 어떤 연을 하늘에 띄웠는지는 몰라도 비행기 안에서 말 몇 마디 나눴다고, 예쁘기도 한 일본 아가씨 년까지 한국 집으로 편지를 보내왔으니, 남편의 여자 인연만은 보통이 아닌 것 같다.
한번은 의정부 살 때, 앞집 담장에서 넘어온 장미꽃이 참으로 예쁘다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오면서 그걸 꺾기에 당연이 자기 것이려니 가슴 설레고 기다리는데, 성형수술 연습장 같은 옆집 여자가 자연미라고는 하나도 없이 눈만 오소리처럼 똥그랗게 만들어가지고, 대문 열고 아는 체하자 홀랑 주어 버리는 것 아닌가? 꽃처럼 밝아지는 년 얼굴을 보면서 내색은 안했지만 얼마나 성질이 나던지, 그날 저녁 남편 밥에서 돌 씹히는 것을 보면서 턱을 잡고 쩔쩔매는 모습에 얼마나 배꼽이 빠지던지, 시치미를 똑 따고 있었으니 남편은 지금까지도 그때 이빨 부러지게 돌 씹힌 사연을 모른다. 공들이지 않는 꽃이 아름다울까마는, 남편은 여자 대하길 꽃밭 돌보듯 하면서, 거짓 없는 매너가 몸에 밴 도사 같으니 미워할 수도 없고, 좌우지간 신경이 좀 쓰이는 편이다. 그게 어찌 신경만 좀 쓰이냐고? 아이고, 호호호. 그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또 안 날 수 없다. 사찰로 놀러 갔는데, 아름답게 그려진 탱화를 보고, 감탄을 하면서 말한다.
“여보! 예쁘기도 하지? 당신은 저 그림 속의 누군 줄 아는가?”
“응! 누군데요?”
“저기 저 연꽃 위에 올라선 여인이 바로 당신이야!”
교회 나가는 자기에게 보살이란 단어가 안 좋아도, 그래도 시원한 눈매와 복스러운 코, 고운 살결이 좋아서 (흥! 그래도 사람 볼 줄은 아네!) 생각하고 있는데, 곁에서 구경하던 옆집 년이 불쑥 나선다.
“그럼 난 누구 같은데요?”
꽃을 받은 경험도 있는 터라, 지가 뭐 학 타고 날아다니면서 피리 부는 선녀쯤으로 지적해 줄 줄 알았던 모양이지? 그런데,
“저기 있네!” 하는 것이다.
“어디! 어디?”
“아! 저기 있잖아! 문수보살 곁에 큰 부채 든 예쁜 여자 중에!”
그래도 못 알아듣고 열심히 찾고 있자 옥련이 배꼽 빠지게 웃으니, 그제야 알아채고 샐쭉 돌아서는 것 아닌가. 그때의 통쾌하고 고소한 심정이란, 자기를 항상 황후라고 말하더니, 법당의 그림을 보고도 보살로 칭해 주니, 황후나 보살이나 주부(主婦)같이 높은 계층만은 사실 아닌가?, 그러니 부채든 무수리를 놓고 질투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황후인 척, 보살인 척 속아주면서 주부로 사는 편이다.
아무것도 없는 남편이 그런 매너라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까짓것 남녀 간의 불장난? 여자도 피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남편 두고도 혼자 사는 여자들만 귀신같이 알아내는 뚜쟁이 년한테 의사 남자와 잘생긴 소령 하나 소개 받고 두 번이나 약속 장소를 나가려다, 소문이라도 잘못 나면 애들 앞길까지 쑥대밭 될 것 같아 못 나갔다. 그리고 보면 바람둥이 정의란 것이, 여자들에게 가장 많이 바람 맞는 남자만 같다.
그런데 다시 또 이별이라니, 농익은 젊은 청춘의 육신을 어찌 견디고, 봄마다 사랑 찾아 밤길 헤매는 고양이의 처절하고도 애절한 울음소린 어찌 견뎌 낼 것인가? 생각 사로 무섭다.
남들은 10년 걸려도 못 만드는 영주권을 3년 만에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아득한 세월이 이별의 예고장만 같아 옥련은 정말 힘들다. 여자의 운명이 기다림의 연속이라지만, 애들을 데리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 해일(海溢) 같은 두려움 밀려오고 있다. 돈이라도 있음 속는 셈 치고 기다려 보겠는데, 미국서 몇 푼 벌어온 것 호적 정리하면서 몽땅 써 버리고, (기저귀 차고도 시집살이시킨다.)는 시뉘 집 가서 있으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남편은 친정아버지처럼 성질 급하고 부지런한 것까진 좋다. 거기다 잔정도 많아서 우선 여자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좋다. 담배는 배도 안 부르다고 총각 때부터 입도 안 대고, 술은 <자넨 저놈 술 마시고 실수할 때까지만 사소!> 할 정도다. 주량이 많은 것이 아니라 2홉 들이 소주 반 병! 젊은 나이에 몸 관리도 잘해서 벗어 놓고 보면, 어떤 스타도 따라오지 못 할 영화서나 볼 것 같은 근육질을 유지하고 있으니, 우선 약값 안 들어 좋다. 남편 말로는 뉴욕에서 헬스클럽 다닐 때, 우람한 근육질의 미국인 Gym(운동)선생이 남편 체격을 기계로 재보고
“와! 너는 십대 근육이다. Fat(지방)이 하나도 없다!”
놀라서 기계를 떨어뜨렸다더니, 미국 사람들도 놀랄 체격은 가진 모양이다. 운동하는 것도 별로 안 보이는데, 아무리 힘들게 아프다가도 자리 털고 일어나면 금세 똑같은 체격을 유지하고 있으니, 체력도 어려서부터 관리해야 하나 보다. 남편 말로는 시골서 자라면서 3살 때부터 개구멍 끼여 다니면서 달리기, 울타리 넘기, 돌팔매로 새잡기, 지게지고 산길 타기, 도끼질로 나무패기, 태권도는 13살 때부터 배웠다니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의 숙제는, 열심히도 풀고 단련한 모양이다.
사실 그의 팔 뒤에 붙은 나무꾼의 도끼 근육은, 장정 장단지에 붙은
매기 살(매기 배처럼 불룩 나온 알통) 보다도 더 넓게 붙어서, 천사들도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그의 팔 근육을 보았다면,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멋지다. 5살짜리 여자애가, 남편이 팔뚝을 내놓고 일하는 것을 보고, <아저씨와 함께 밥을 먹겠다고> 밥그릇 들고서 고집피우고 울었다면 이해가 될까?
체격, 그까짓 것! 빛 좋은 개살구라고? 어떤 걸 두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밤 사랑? 그거 두고 한다면 잔소리다, 옥련이 만족한 눈치를 안 보이면 밤 세도록 올라타고 팔 굽히기 운동을 하는 통에, 인생살이가 연극이란 말처럼, 어떤 땐 너무 힘들어서 거짓 연기를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난한 집 남자가 아내에게 해줄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다나? 그러면서 진심어린 사랑으로 봉사할 땐 그 마음에 감동되어 눈물이 날 정도다. 항상 똑같은 사람과의 연기는 따분한 것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인간은 갔던 길도 돌아올 땐 헤매면서도 딴 길로 오는 사람이다. 조금 힘들긴 할지언정 따분한 일은 절대 없다. 그래서 맘에 좀 안 들어도 꼭 입 다물고 사는 처지다. 아님 또 다른 년이 금세 인연처럼 하늘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편 전진이란 남자에게 또 다른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세상에 왔으면, 뭔가는 이뤄 놓고 가야 한다.)면서 쉬지 않고 뭘 만들어 특허도 받고 상도 받으면서, 요즘은 주제도 모른 채 뭔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한다나? 어쩐다나? 머리 싸매고 글 쓰면서 우유도 열심히 젓다 보면 치즈가 된다고 총각 때부터 저러더니 앞으로도 얼마를 저 꼴로 지내야 책이 나올지? 저놈의 책이 나오기나 할는지? 가당찮은 모습에 처녀 때 들었던 허파의 바람까지 호호호 터져 나올 정도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미련한 놈 곰 잡는다고! 황소 뒷걸음에도 생쥐가 밟히는 세상이니 저렇게 몽그작거리다 보면, 감자 먹고 변 본 것처럼 반지르르하게 읽기 좋은 책이라도 한 권 세상에 나올지? 거지가 없어도 대문달린 집만 찾아다닌다고, 남의 나라 들어가 사는 주재에 대통령도 미국 대통령, 상도 노벨상, 뱃장하나는 좋아서 청와대로 박대통령 면담을 안 가나원! 뭐 지나나나 고추 달고 세상 살아가긴 똑같은 남자라나, 호호호.......아주 웃기고 놀아요.
백 가지를 다 이루고도 자식이 없으면 추 없는 저울인 것처럼,
백 가지를 다 갖추고도 돈 없는 남편은 바늘 없는 시계 형상이다.
시집올 때 동리사람들 말처럼 남편 하나는 그런대로 쓸 만한데, 나머지 식구들은 눈을 씻고 봐도 쓸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태원서 이불 장사하면서 셋방을 둘이나 얻어 살 때다.
시아버지가 죽고, 시동생 둘에 시누 둘, 시어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입만 달고 왔다. 정확하게도 석 백이로 3년 터울 막내 시누인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다. 먹는 입만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데 허울 좋은 이불 가게 하나로 9식구가 먹고 살자니 그 참상이 전쟁통 피난살이다. 얼마나 힘든 생활인지 4살 아들이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기침을 하고 다니기에 그런 아들이 가여워서 뭐 좀 먹이려고 사다 놓으면 식구들이 홀랑 주워 먹어 버리고, 비 오는 날 부침개라도 해 먹이려고 밀가루를 사다 놓고 가게에 손님이 와 잠시 있다 가 보면 마파람의 게 눈처럼 사라지고 없다. 기침하고 뛰노는 아들이 불쌍해서 가게서 뭐 좀 사 먹이고 있으면 그걸 본 시어머닌 눈에 쌍불을 켜 가지고, (항상 지들만 맛있는 것 사 처먹는다!) 야단극성이 말이 아니다.
자계상공장한다고 돈 대준 큰 시동생은 홀라당 말아먹고, 돈 안준다고 자기 목 눌러 3개월 된 애를 유산시키지 않나.......
신혼살림 때부터 다락방에 재워서 이불 기술 가르쳐, 월급 계산 다하고 사는 시뉘 년은 동네방네 쌩콩 거리고 쏘다니고.......
쥐어짠 살림에 T.V 학원 보낸 막내 시동생은, 낮잠 자다 머리통에 새집이나 전문으로 지어서 이고 다니면서, 어쩌다 동대문 시장으로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버스 칸에서도 낮잠 자다 물건 잃어 먹고 종점으로 전문으로 찾으러 다니고…….
초등학교 졸업한 막내 시누 중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아-아 ― 생각만 해도 가슴 터질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인가?
그나마 일찍도 이불 기술 배우러 서울 올라왔다가 포기하고 시집간 큰 시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쥐뿔도 없는 식구들이 전주 이씨라고 자존심은 어찌나 대단한지! 뭔 말만 하면, 시어머닌 업고 있던 손자도 가게에다 동댕이치고선
“이년아! 내가 공 밥 먹고 사야!”
소리치고 자기 자식들 데리고 가출이나 하는 통에 남부끄러워 못살겠다. 마치 자기 큰아들이 세상에 잘나서 옥련이 이 고생을 하면서도 붙어사는 줄만 안다. 옥련 나이가 어려서 아직 어른들 비위를 못 맞춘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친정아버지가 <혼인신고는 친정집서 해 줘야 한다.>면서 함박눈 쏟아지는 날, 주막 같은 시집을 흰 두루마기 입고 찾아가다 황토 길에 넘어지고 들어간 것이 큰 실수 같다.
그러나 저들이 우리 집안 내력을 몰라서 그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친정집은, 3개면에선 손가락 안에 드는 집안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옥련은 7살이 되도록, 아버지가 업고 다닐 정도로 귀염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잘 가르친 큰 아들이 도박으로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면서 자고 나면 수십 마지기 논문서가 사라지고, 한겨울이 지나면 산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수십 명의 장정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집안에 씨종자까지도 실어 가던 시절이 있었으니, 친정아버진들 오죽하셨을까?
술 취해 들어온 아버지 눈이 좀 이상한 것 같으면, 어머니하고 자기하고 나중에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조카 하나만 빼고는 많기도 한 15명 식구가 순식간에 쥐구멍을 찾아드는 각개전투병 시절도 있었다.
“이놈아! 내 논 내놔라! 이놈아! 내 산 내놔라!”
큰 오빠 붙들고 물어뜯고 우실 땐, 어린 딸 옥련은 애처로워 못 본다. 그래서 일찍 결혼한 것인지는 몰라도 노름이라면 학을 땐 집안서, 시아버지 될 사람이 노름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옥련의 결혼은 절대불가 판정이 내렸던 것이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그래도 친정은 아직도 고향에서 산도 있고 먹고 살만하다.
시아버지 나이와 비슷한 노름꾼 큰오빠는, 서삼면(西三面) 전체에 3명밖에 없는 <갈잎 중학생>이기도 했다. 그 오빠와 학교를 다닌 집안 아재가 공화당 국회의원 시절 옥련의 주례를 서주기도 했는데, 그런 집안을 남편이 호적까지 바꿔 버린 줄 알면 난리가 날판인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안 그래도 콩 타작마당에 찾아온 작은아버지가
“형님 딸 요즈음 연애하고 다닌다고 하던데요!”
약 올리고 도망가다가 콩 마당서 미끄러지자 타작하던 도리깨로 얼마나 두드려 팼던지, 논 3마지기를 팔아 치료해 준 아버지다.
사람이 살기가 힘들면 도둑들도 극성을 부린다.
바로 큰 산 밑에서 살아서 그런가?
한번은 도둑이 대밭을 통해 3섬들이 항아리 쌀을 몽땅 퍼가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구멍이 침 발라 뚫려 있고, 대밭은 동네 길이 나 있다. 도둑들이 잠자는 아버지를 내다보면서 밤새도록 퍼가 버린 것이다. 덕분에 쓰레기 죽으로 봄을 났던 기억도 있지만, 진돗개라고 생각하고 한 마리 사다 놨는데 얼마나 순해 빠졌는지, 도둑을 보고도 꼬리치고 다닐 정도여서 옥련 집소를 끌고 가 버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버지는, 되새김하면서도 울리는 소목에 매달아 놓은 인경소리가 없자 외양간에 들어가 보니 소가 없다. 아버지는 곁에 있는 소죽 쑤는 큰 양은 솥단지를 번쩍 빼들고 두드리면서 식구들과 동리사람들을 깨우고, 낫을 들고 산길로 뛰어 들어가자, 멀지 않는 곳에서 소울음소리가 나 달려가니, 소나무 우거진 숲속 공터에서 도둑들이 막 도끼로 소머리를 치려는 찰나다. 눈에 불이 붙은 아버지가 소리치며 달려가지만, 도끼는 순간에 소머리에 박혔고 비명도 못 지르고 무릎을 꿇는다. 황소도 넘어지는 인간의 불량한 힘이 가증스럽다.
갑자기 시퍼런 낫을 들고 달려오는 노인의 행동에 3명이나 되는 소도둑들도 칼을 들고도 죽어라고 산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소 한 마리 잡아서 살코기만 셋이서 나눠지면 무거울 것도 없다. 죽어 가는 소를 붙들고 서럽게 우는 아버지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달려가 소를 잡아오긴 했지만, 그 국물 한입도 안대고 한 달 넘게 울고 지낸 친정아버지다. 그런 아버지를 사위가 호적에다 오빠를 아버지로 바꿔 놓고 미국간 줄 안다면, 자긴 물론이고 사위 잡으러 간다고 미국까지 쫓아갈 것이 뻔한데, 이런 두려운 일을 저질러 놓고 날 보고 기다리라고……. 혼자만 미국 들어간다고?……. 나 원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옥련은 전진과 사는 데는 하등의 갈등은 없다.
아니, 꼭 한 번 있다.
이태원 살 때 살림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이웃집 전화상과 동국제강 아들과 밤마다 화투를 치고 놀자, 한날은 마음먹고 바가지를 긁었다. 화투로 망한 집안에서 시집와서까지 그 꼴이라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만 못할 것이다. 바람피운 집구석은 자식이라도 남지! 노름하는 집구석은 깨진 쪽박밖에 없다. 여자가 맘먹고 싸움을 걸면 남자는 피해 갈 길이 없으니 누우면 긁어 대고, 일어나면 잔소리하고, 화투 친 손가락이라도 절단되는 꼴을 보기 전엔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전진이 눈퉁을 쳐서 멍이 들어도, 한 손으로 부여잡고 잔소리를 해댄다. 죽기야 하겠는가? 자기도 맘먹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독한 여자라는 본때를 보여줄 결심이다.
남편은 주먹으로 벽거울을 부수고 크기도 한 가게윈도를 3장이나 박살내면서 손등이 갈라져 피가 분수처럼 흘러내려도 아주 끝장을 볼 결심인데, 무섭게 피 흘리는 것을 보니 금세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저러다 정말 병신 되겠다 싶어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부운 눈두덩이 두 달을 가긴 했어도 그 억울함이 어찌 노름하는 못된 버릇하고 견줄까? 날 때린 지손도 큰 흉터가 났으니 쌤통이지만, 깡통 들고 거리 동냥 나선 것보단 얼마나 다행한가? 그 후로 남편은 화투장 근처도 얼씬 안 하는 눈치다. 그런 남편을 미국으로 보내고, 외로운 들쥐처럼 생활하고 있으니, 이웃들이라도 불쌍하게 생각하고 이해해 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나이 들고 외국이라도 다녀온 여자들은,
“참고 살아봐라! 미국 가보니 참 좋더라!”
위로하며 감싸주는데, 별 볼 일도 없이 여물통에 먹을 것 좀 있어, 밥만 처먹고 살면 최고 출세하는 줄 아는 젊은 년들은 돈이나 안 꿔 준다고 사람 무시하고 약 올리는 통에 분통이 터져 죽겠다. 특히 남잔지 여잔지도 모를 양장점 뚱보 년은 보기만 하면 입 삐죽거리고, 작은 일도 큰일 난 것처럼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통에 억울하고도 얄미워 죽겠다. 날 보고 뭐! <의사 보이 프렌드를 사귀고, 군인 애인 뒀다나?> 나 원 참기가 차서, 혼자 사는 여자는 남자들하고 말도 못하나?
동서끼리 단합하면 시아버지 상투도 잡는다고, 지나 나나 젊은 청춘에 남편 떨어져 몇 년씩 지내는 터에, 짝 잃은 기러기 같이 한 동네 살면서 서로 위하고 감싸주면 얼마나 좋아? 꼭지도 못 먹는 년이 남 먹는 것 아까워서 꼴 못 본다니까……. 그러니까 지 팔자가 그 모양이지! 눈물 바람 중에도 옥련은 입을 삐쭉거린다. 이젠 시누 집으로 가니 그 꼴 안 봐 좋지만, 그곳이라고 별다를까? 오후 6시면 미국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울지 말아야 하는 줄은 아는데, 설움을 참으려니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다.
시집 내력을 보면 여자 문제는 강단 있는 것 같은데, 미국엔 고향에서 함께 나물캐던 요정 같은 년이 있다니, 신나게 줄넘기 하다 고무줄 같이 늘어나는 세월에 함께 넘어져서 못 일어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다. 이런 때 안 울고 견딜 재간 있는 여자라면 하느님 딸이거나 대통령 영식일 것이다. 남편이라고 어디 맘이 편하겠는가마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한스러워서 밤새도록 눈물 흐르고 있은데, 언제 깼는지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더니, 애꿎은 천장 쥐들한테만 베개야구 놀이 하다가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기다려 보소!”
폼이 또 뭔 일인가 시작하려는 모양인데, 내용도 말 안하는 사람한테 <뭣 하러 가는데요?> 물을 수도 없다. 이번엔 뭔 일이 제발 좀 잘됐으면 하는 간절한 맘으로 방도 치우고 양말도 빨면서 남편의 짐을 정리한다. 사람이 살면서 편한 것만 찾는다면 죽어 무덤에 누워 있어도 구더기가 괴롭힐 것이니, 힘들어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을 보면서, 옥련도 팔자려니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고생의 연속된 행로라면,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멋진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길,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간 좋은 날도 오겠지! 옥련은 그런 맘으로 버티면서 살고 있다. 그런 옥련을 보면서 우린이래서 부부는 서로 닮는 모양이구나? 생각도 한다.
옥련의 눈물 바람에 전진은 잠을 깬다.
“여자 혼자 살고 있으니, 사람들마다 이상하게 쳐다보고, 없어서 못 빌려주는 돈도 <여우같은 년은 다르고!> 돈 떼먹고 도망가는 년까지 욕하고 다닌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서럽게 울고 있다. 그 사이 혼자 사느라 푼돈깨나 떼인 모양인데, 구멍 뚫린 3류 여관 중 천장 속 쥐들은 요란하게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밝아 오는 여명 속에 운동회 날 마지막 경주라도 하는 듯 우당탕 탕, 우당탕 탕 잘도 뛰고 있다. 마음도 답답한데 설친 잠까지 성질나서 베개를 던져 보지만 잠시뿐, 찍찍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늘은 아주 쥐들 씨족의 등수를 확실하게 결정지으려는 심사인 것 같다.
전진이 시민권을 시험을 보려면 앞으로도 4년! 그때까지 옥련이 기다려 줄까? 가슴은 너덜너덜 찢어진 천정이다. 찢어졌으니 망정이지 아님 복장이라도 터져 죽었을 것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아내의 넋두리를 듣고 있자니 창자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 견뎌 낼 재간이 없다. 이 여자와 살려면 또다시 결혼할 때처럼, 어떤 결정적인 모험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데려와서 승마선수처럼 순간순간 잘도 올라타면서 큰 눈에 눈물 자주도 흐르게 한다면 이래가지곤 절대 좋은 남편이 못 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여자를? 깊은 생각을 한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데? 그래 다시 한 번 두드려 보자!”
그길로 멕시코 영사관을 찾아간다.
멕시코와 한국은 비자 협정이 돼 있어, 여권만 있으면 그냥 가는 줄 알았는데, 여권에 도장만 찍지 않았지 비자 받는 나라보다 더 까다롭다. 많은 양식을 작성해 접수하고, 무조건 영사 면담을 요청했다. 미국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 때 소공동의 교보문고서 임시 영사를 만난 전진은 무조건 매달렸다. 그분은 전진이의 전후 사정을 듣더니 흔쾌히 허락했고, 3시쯤 여권과 비자서류를 찾아들고 대한항공 본점으로 가 뉴욕 경유 멕시코 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김포로 달린다.
새로 도입한 대한항공 비행기는 비취빛 색상도 곱다.
무게차에 끌려 나와 엔진도 부드럽게 시동을 걸더니, 큰 날개 사이의 풍등이 날개를 꺼내 올렸다 내렸다 연습하고 집어넣는다. 만리타국 미국까지는 아직도 하루 길인데 내릴 걱정부터 하다니? 무작정 떠나가는 인간보다 한결 났다. 비행기는 친정 보고 통곡하는 딸처럼, 폭음 소리도 요란하게 엔진에 불을 붙이고 이내 흐느낌이 되어 천천히 굴러 출발 대기 선에 멈춰 서서, 가난한 친정집 보고 우는 딸처럼 서러운 눈물 같은 연기를 솔솔 뿜으면서, 억수 같은 빗속에서 어찌 가나? 망설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시집에 두고 온 자식 생각난 엄마처럼, 천하에도 없는 폭음을 울리면서 거꾸러질 듯 달려 나가 앞바퀴를 살짝 들어 올리고 한 마리 백조가 되어 사푼히 떠올랐다.
전진도 옥련도 그 속에서 한 마리 새가 되어, 한 많고 설움 많은 대한민국 땅! 조국 땅을 떠올랐다.
힘들어도 운명이라면 가야지!
첫댓글 참 좋은작품 잘 보고 갑니다. 오래 오래 건강 하세요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글에 머물어 갑니다.
봄날같은 따뜻한 삶 되세요.
아름다운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명깊은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오늘도 아름답고 지혜롭고 행복한 날 되세요.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글이너무길어서 읽다가 말았습니다 ㅈ하송해요
글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장편에 글 잘 보았습니다 수고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귀한글 잘읽어습니다.감사합니다.
감명깊게 읽었읍니다.인간만사 세옹지마라 하지않습니까!!노력의결과는 반드시 행운이 오련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잘 읽었습니다.
18세기 필법?
어디에 살더라도 조국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조국을등지는일 없도록해야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수고에 감사들입니다,즐거운 시간 되시길 ~~~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고 늘 행복하세요
좋은글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은혜로운 말씀 감사 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