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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내용입니다.1)
1-29절은 ‘예수님의 부활과 출현 및 제자들의 사명 위임’입니다.2)
1-18절에는 아침에 일어난 부활절 사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3)
19-29절에는 저녁에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4)
1-10절은 ‘빈 무덤’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입니다.5)
11-18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내용입니다.6)
19-23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내용입니다.7)
24-29절은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나타나셨다는 내용입니다.8)
1.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가 무덤으로 갔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갔습니다(요 20:1-2).
요한복음 20장 1-2절에 “막달라 마리아가 아침 일찍 무덤으로 왔으며 무덤으로부터 들어 올려진 돌을 보았으며. 그녀가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와 그 다른 제자를 향하여서 오고 말하기를 ‘그들이 그 무덤에서 주(主)를 들어 올렸고(have taken away) 그들이 그를 어디 놓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들 언급은 마 28:1-4, 막 16:1-4, 룩 24:1-3, 요 20:1에 나오며, 사복음서는 조금씩 다르게 기록해 조화시키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와 그 야고보의 마리아와 살로메가 방향제를 샀으니, 그녀들이 가고 그를 기름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막 16:1).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마 28:1).
안식일의 다음날에 태양이 오른 일찍 무덤 근처에 갔습니다(막 16:2).
지진이 생겼고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접근해 그 돌을 굴렸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마 28:2).
그리고 그녀들이 그 자신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그 무덤의 문에서 굴릴 것이냐?”라고 했습니다(막 16:3).
돌이 굴려진 것을 쳐다본 그녀들이 지켜보니 매우 컸습니다(막 16:4).
그녀들이 들어간 때 주 예수의 몸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룩 24:3).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리는 것은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는데, 마 28:5-7, 막 16:5-8, 룩 24:4-8에 나옵니다.
그 무덤 안으로 들어간 그녀들이 흰 겉옷을 입고 있는 젊은이를 보고, 그녀들이 매우 놀랐습니다(막 16:5).
그러나 그가 그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깜짝 놀라지 않도록 하라, 그 십자가에 못 박음을 받은 그 나사렛 사람 예수를 너희가 찾고 있노라, 그가 일으킴을 받으셨으며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노라 그를 놓은 장소라. 그러나 너희는 떠나가라 그의 그 제자들에게와 그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가 갈릴리 안으로 너희를 앞서가시노라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에 따라 거기에 그를 너희가 볼 것이라’고 하라.”라고 하였습니다(막 16:6-7).
마태복음 28장 5-7절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찾는 것을 아노라.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것에 따라 일으킴을 받았음이고. 그 제자들에게 그가 그 죽은 자들에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것을 말하고 보라 그가 그 갈릴리 안으로 너희를 앞서가시노라 거기에 그를 보겠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그녀들이 그 얼굴들을 그 땅 안으로 숙였고 그들이 말하였기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들과 함께 찾느냐?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나 일으킴을 받으셨노라, 그가 갈릴리에 계시던 그때에 너희에게 이야기하신 것과 같이 기억하라. ‘인자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셋째 날에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룩 24:5-7).
마태복음 28장 8절에 “두려움과 기쁨과 함께 빠르게 가버린 그녀들이 그의 제자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달린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와 그 다른 제자를 향하여 가고 말하기를 ‘그들이 그 무덤에서 주(主)를 들어 올렸고(have taken away) 그들이 그를 어디 놓았는지 우리가 몰랐노라’라고 하였습니다(요 20:2).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지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다른 제자”는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 기대고 있던 자입니다. 마리아는 부활을 몰라 사람들이 시체를 가져간 것으로 생각합니다.9)
“우리’라는 말은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과 갔음을 뜻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자들도 갔었는데 그녀만이 언급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갔다는 사실도 이것을 암시합니다. 특히 종교 절기에 신분이 불확실한 방문객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10)
루카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 혼자 무덤에 가지 아니하고 야고보의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룩 23:55~24:1). 그러므로 그녀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였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무덤에서부터 돌아온 때에, 그녀들이 이 모든 것을 열하나와 다른 자들에 보고하였습니다(룩 24:9).
그녀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마리아였으며 그녀들과 함께 다른 여자들이 그 사도들을 향해 이것들을 말하였습니다.
이 말들이 그들의 견해에는 허튼소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룩 24:11).
2)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갔습니다(요 20:3-10).
요한복음 20장 3-10절에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왔으나.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의 더 빨리 달렸고 첫째로 그 무덤을 향하여 왔고. 그가 놓여 있는 그 세마포 조각들을 보았음에도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시몬 베드로도 온 후 그 무덤으로 들어갔고, 놓여 있는 세마포 조각들과. 그 세마포 조각들과 함께 놓여 있지 아니하였으나 하나의 장소로 감싸인 그의 그 머리 위에 있은 바의 그 수건을 그가 지켜보므로. 그때에 그 무덤으로 첫째의 온 그 다른 제자도 들어왔고, 보고 믿었으니. ‘그가 죽은 자들에서 일어나야 하노라’는 그 성경을 알지 못한 까닭이며. 다시 그 제자들이 그들을 향하여 가버린지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온 베드로는 주저하지 아니하고 즉시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감쌌던 세마포 조각들이 한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머리를 감쌌던 수건은 딴 곳에 감싸여 있었습니다.11)
베드로는 행해진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가버렸습니다(룩 24:12). 얼음이 녹은 것처럼 옷을 입은 상태에서 몸만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으니 기이히 여긴 것입니다.
석가모니를 화장하자, 부처[佛]의 견치(犬齒)가 4개 남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후에 무덤에 수의와 수건 외에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석가모니는 죽음으로 끝마쳤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1-12절에 “우는 마리아는 그 무덤을 향하여 섰으므로 그녀가 운 것과 같이 그녀가 그 무덤 안으로 들여다보았고. 예수의 몸이 누운 곳에 앉은 흰 것들 안에 두 천사들을 지켜보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여자야 무엇 때문에 우느냐”라고 하였으며 그녀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나의 주를 들어 올렸으며 그를 어디에 놓았는지 내가 알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을 대답한 그녀가 뒤로 돌아섰고 서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가 예수님이신 것을 그녀가 알지 못하였습니다(요 20:14).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무엇 때문에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하셨고 그가 정원사라고 추정하는 저 여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를 운반하셨으면 그를 어디 두셨는지 나에게 대답하여 주소서 그러면 내가 그를 들어 올릴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요 20:15).
예수님께서 그녀에 말씀하시기를 “마리아야”라고 말씀하셨고, 돌아선 저 여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나의 선생님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몸을 만지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그 아버지를 향하여 아직 올라가지 아니한 까닭이나, ‘내가 나의 아버지께 올라가노라’고 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9-10에는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라”고 인사하셨고 그녀들이 발을 붙잡고 예배합니다.
발을 붙잡는 것은 복종과 존경의 행위였습니다(마 28:9, 룩 17:16). 발을 붙잡았다는 기록은 부활한 몸의 실재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12)
그때 예수님께서 그녀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그들이 그 갈릴리 안으로 떠나가기 위해 보고하고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0).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보고하기를 “내가 주를 보았다”고 하였고 이것들을 그가 그녀에게 대답하신 것입니다(요 20:18).
대제사장들이 부활을 은폐하였는데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 나오며 이 내용은 다른 복음서들에는 기록되지 아니하였습니다.
보초 중의 어떤 자들이 그 대제사장들에게 그 일들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의회를 모은 그들이 그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줍니다(마 28:12).
그들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훔쳤다’고 말하게 시켰습니다(마 28:13).
그리고 만일 이것이 그 통치자 위에 들리면, 그들이 그를 설득하고 걱정 없는 경비병들을 만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그 돈들을 받은 그들을 행하였고 이 말이 유대인들의 사이에 오늘날까지 퍼뜨림을 받았습니다(마 28:15).
2)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루카복음 24장 13절에 “그들에서 둘이 바로 그 날에 한 마을로 가는데 예루살렘에서부터 60스타디움을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접근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룩 24:15).
그러나 그들의 눈이 그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붙잡혔습니다(룩 24:16).
그가 “서로를 향하여 교환하는 이 말들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름에 “클레오파”(클레오파스)인 하나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예루살렘을 거주하고 이 날에 생겨난 것을 알지 못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룩 24:18).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셨기를 “어떤 종류의 것들을”이라고 질문하셨고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룩 24:19).
루카복음 24장 19-24절에 “그는 일과 말에 할 수 있는 예언자였으나. 대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죽음의 심판으로 넘겨주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가 그 이스라엘을 곧 속량하려고 하는 자인 것을 우리가 기대하였으나 심지어 모든 이것들과 함께 이것들이 생긴 바에서 세 번째 날을 이끄나. 이른 아침 그 무덤 위에 가게 된 어떤 여자들도 우리를 두렵게 하였으니. 그의 몸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가 사셨다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으며. 어떤 사람들이 무덤에 갔고 여자들이 말한 것에 따라서 이것을 보았으나 그들이 그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셨기를, “오 미련하고 믿기의 마음에 느린 자들아! 크리스트가 이것들을 겪고 영광에 들어가야만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룩 24:25-26).
3) 예수님께서는 10명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그러므로 안식일들의 한 저 날에 저녁이었고, 그 유대인들의 무서움으로 인해 그 제자들이 있은 곳에 문들이 닫혔으며 예수께서 오셨고 그가 그 중간 안으로 서셨고”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19-23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나타나신 내용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본 것을 보고한 뒤의 일입니다.13)
루카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이것들을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그가 그들의 가운데에 서셨고 ‘평화가 너희에게’라고 말씀하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문들이 닫혔음에도 그는 더 이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영(spirit)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였습니다(룩 24:37).
그가 대답하셨기를 “어찌하여 걱정스럽고 생각들이 마음에 오르느냐? 나의 손과 나의 발을 통해 그가 나임을 보라 너희가 나에 손을 대고 보라 영(spirit)은 육체와 뼈들을 가지지 아니하며 나는 가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룩 24:38-39).
그가 그 손과 그 옆구리를 보여주셨으므로, 제자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기쁨과 기이히 여기는 것들로부터 믿지 않는 그들에게 그가 대답하셨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지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운 물고기 일부분을 건네주었습니다(룩 24:42).
그리고 받으신 그가 그들의 목전에 잡수셨습니다(룩 24:43).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기를 “평화가 너희에게, 그 아버지께서 나를 파송하신 것과 같이(as)고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1).
그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이 구원되기 위해 파송하셨고(요 3:17),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자 안으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요 6:29). 진짜 하나님과 그가 파송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 17:3). 그 아버지께서 파송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파송하셨고(요 17:18), 그 아버지께서 파송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보내십니다(요 20:21).
예수님께서 보내신 어떤 사람을 받는 자는 예수님을 받는 것과 같으며 그를 받는 자는 그를 보내신 그 아버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요 13:20).
예수님의 사역은 그 효력의 영속성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여전히 계속되고 변함없이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수행하도록 위임을 받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새로운 사역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넘겨주지 아니하시고 남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계속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의 사역을 감당하며 그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러면 그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더욱 큰 일”을 행하십니다.14)
예수님께서 호흡하셨고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을 것이라. 너희가 누군가의 죄들을 용서하였으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용서되었으며 너희가 누군가의 보유하면 그것들이 보유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흡하다(breathe)”(엠퓌사오)는 “숨을 쉬다”를 뜻합니다. “호흡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나파흐)를 번역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께서 먼지로 아담을 형성하신 후 콧구멍에 생명의 숨을 호흡하셨고 아담이 산 영혼에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 야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바람들(winds)로부터 호흡아 오고 이 죽임을 받은 자들에 숨 쉬어서 그들이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겔 37:9).
호흡하는 것과 영(spirit)의 관계가 에스겔 37장 9절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을 숨 쉬셔서 아담이 산 영혼에 된 것처럼(창 2:7), 예수님께서 성령의 숨을 숨 쉬셔서 성령을 받은 자가 삽니다(요 20:22).
하나님께서 생물의 호흡을 모으시며 그 생물이 죽고 먼지에 돌아가며, 하나님께서 그 영(Spirit)을 보내시며 그것들이 창조되고 그가 흙의 표면(face)을 새롭게 하십니다(시 104:29-30).
성령님(Spirit)께서 사람 안에 들어가시면 그 사람이 삽니다(겔 37:5). 하나님께서 그 영(Spirit)을 우리 안에 주시고 우리가 삽니다(겔 37:14). 영(spirit)이 마른 뼈들을 살리듯이 성령님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십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중요한 목적은 보냄 받은 사역의 완성입니다.15)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내가 너에게 그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주고, 만일 너는 그 땅 위에 이것을 묶었다면 그 하늘 안에 묶음을 받을 것이고 너는 그 땅 위에 이것을 푼다면 그 하늘 안에 풂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너희가 땅 위에 묶은 그것이 하늘 안에 묶이고 너희가 땅 위에 푸는 그것이 하늘 안에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묶다”와 “풀다”는 재판에서 무죄와 유죄를 선언하는 말입니다.16) 이 표현들은 제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하는 문맥에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불리한 판결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왕들에 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못 박는 데에 동참한 자들에게 죄의 선고가 내려집니다. 반면에 그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죄의 용서가 주어집니다.17)
신자들은 죄의 용서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죄들의 용서나 범죄자를 징계하는 권한이 교회에 부여된 것입니다.18)
교회가 요구한 바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묶거나 풀고 요구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20장 24절에 “토마스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토마스(Thomas)”(또마스)는 개역 성경에 “도마”로 번역되고, “쌍둥이”라는 히브리어 “타옴”)과 관련이 있고 “쌍둥이”를 뜻합니다.
“디두모(Didymus)”(디뒤모스)도 “쌍둥이”를 뜻하는 말이며, 토마스가 “쌍둥이”라는 뜻이기에 똑같은 뜻의 “디두모”로도 불렸습니다. 성경에 3회, 요한복음에만 사용되었습니다(요 11:16, 20:24).
그는 큰 실수를 했는데, 중요한 때에 신자의 사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함께 있기보다는 혼자 있으려 하였습니다.
그 다른 제자들이 말하였기를 “우리가 주(主)를 보았노라”고 하였으나 그가 그들에 대답하였기를 “만일 내가 그의 손 안에 그 못의 자국을 보고 나의 손가락을 던지고 나의 손을 그의 옆구리 안으로 던지지 아니한다면 내가 결코 믿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요 20:25).
4)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에 “8일 후 그들이 안에 있고 토마스도 함께 있고, 그 문들이 닫혔고 그 예수께서 오시고 그가 그 중간 안으로 서셨고”라고 하였습니다.
19-25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내용입니다. 26-29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토마스에게도 나타나신 내용입니다.
그가 토마스에 말씀하시기를 “너의 손가락을 가져오고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가져오고 나의 그 옆구리 안으로 던지고(put) 너는 믿지 않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 믿는 자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스가 대답하고 그가 말하기를 “나의 주(主)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0:2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었노라, 보지 아니하고 믿은 자들은 복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9).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복이 선언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이런 “복되노라”는 선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2번만 사용되었습니다(요 13:17). 이런 복의 효력은 복음서를 읽는 모는 독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토마스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아니하고서도 믿는 사람들은 복됩니다.19)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다른 표적들도 예수께서 제자들의 앞에 행하셨으나. 예수께서 그 크리스트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너희가 믿기 위하여 믿는 너희가 그의 이름 안에 생명을 가지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표적들 외에 많은 다른 표적들 또한 행하셨습니다. 요한은 그 중에 일곱 표적들을 중점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것을 믿기 위해서 믿는 우리가 그의 이름 안에 생명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요 20:31).
“믿다”는 동사가 사본들에 과거 가정법과 현재 가정법으로 나뉘는데, 과거 가정법의 경우를 채택하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현재 가정법의 경우를 채택하면 믿음의 지속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20)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불신자들에게 믿게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이미 믿은 자들에게 계속 믿음 안에 살게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현재시제로 믿음을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신 메시아로 탄생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사실을 계속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안에 생명을 가집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永生)”의 줄임말입니다.
이 생명은 이 땅 위에서 미리 맛보지만, 다가올 세계의 생명입니다.21) 오직 예수님의 이름 안에만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7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절에 “예수께서 자신을 호수 근처에 나타내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요한복음의 맺음말(epilogue)입니다.22)
1-14절은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내용입니다.23)
예수께서 그 자신을 다시 티베리아스의 호수 근처에 나타내셨습니다. “티베리아스”(Tiberias)는 갈릴리 호수에 있는 한 도시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티베리아스의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부분인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그 가나에서부터인 나다나엘과 함께 있었으며, 야고보와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서 다른 자들 둘이 있었습니다(요 21:2).
시몬 베드로가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기에 떠나가노라”고 하였으며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또한 우리도 너와 함께 가노라”라고 하였으며, 그들이 나갔고 배로 올라갔고 저 밤에 하나도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생겨난 일찍 예수께서 그 호숫가로 서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이신 것을 그 제자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요 21:4).
그가 말씀하시기를 “먹는 어떤 것을 가지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그에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요 21:5).
그가 명령하셨기를, “그 배의 오른쪽 부분들 안으로 그 그물을 던져라 그러면 너희가 발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이 그물을 던졌고 그 물고기들의 군중에서부터 더 이상 끌어당길 수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주(主)시라”라고 하므로, “그는 주(主)시라”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가 겉옷을 둘러서 졸라매었으니 왜냐하면 그가 벌거벗었음이고 그가 그 자신을 호수 안으로 던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요 21:7). 요한은 그 자신을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로 기록한 것입니다(요 13:23).
“예수의 사랑하시는 저 제자”는 “그는 주(主)시라”라고 외쳤습니다.24)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에 왔으니 먼 곳에 있지 않고 대략 50큐빗이며, 물고기들의 그물을 끌었습니다(요 21:8).
“배에”는 여격의 수단의 용법으로 “~에 의해”로 번역됩니다.25)
땅으로 나온 그들이 숯불과 식용 물고기와 빵을 보았습니다(요 21:9).
그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붙잡은 식용 물고기들에서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0).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들 153마리로 가득한 그물을 땅으로 끌어당겼고 그렇게 많은 그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요 21:11).
그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조반을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나, 제자들의 아무도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감히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주(主)신 것을 안 것 때문입니다(요 21:12).
예수께서 오시고 그가 빵을 주시고 식용 물고기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이미 세 번째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나타냄을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너는 이들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19절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입니다.26)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가 그를 좋아하는 것을 그가 아셨다고 대답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어린 양들을 보살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요 21:16).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사랑하노라”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는 그에게 그가 그를 좋아하는 것을 그가 아셨다고 대답하였으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들을 돌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가 세 번째를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좋아하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세 번째를 ‘너는 나를 좋아하노라’라고 말씀하시므로 고통스럽게 되었고 베드로는 그에게 그가 그를 좋아하는 것을 그가 아셨다고 대답하였으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들을 먹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양이고, 예수님께서 양들의 목자십니다(요 10:2).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양들을 돌보고 먹이게 하시기 위해 교회에 목자들과 교사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히 13:20, 엡 4:11).
“너는 신선한 때 너 자신을 띠로 조르고 너의 원한 곳에 돌아다녔으나, 너는 늙어간 때는 너의 바라지 않는 곳에 다른 자가 가져올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8).
어떤 죽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을 지시하시는 그가 명령하셨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뒤따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8-19절은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언입니다.27)
요한은 육체가 되신 그 말씀의 영광을 관찰한 것을 말합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심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요 2:11).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결코 사람들에서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요 5:41). 이것은 그들 서로에서 영광을 취한 유대인들과 다른 점입니다(요 5:44).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에서 영광을 찾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그 자신에서 말하는 자는 그 자신의 영광을 찾는 반면 그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찾는 예수님께서는 참된 분이십니다(요 7:18).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추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요 8:50). 만일 예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시면 그의 영광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십니다(요 8:54).
이것에 의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화롭게 함을 받으시니 많은 열매를 맺고 예수님께 제자들이 되는 것에 의해서입니다(요 15: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는지를 요한복음 21장 18절 말씀으로 미리 지시하여 주셨습니다(요 21:19).
뒤돌아본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그 만찬에서 예수님을 전수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물었던 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여 이는 무엇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요 21:21).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무르기에 바라면 무엇이냐 너는 나에게 뒤따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요 21:22).
이 말씀이 그 형제들 안으로 ‘저 제자는 죽지 아니하노라’고 나갔으나, 예수께서 그에게 ‘그는 죽지 아니하노라’는 것을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무르기에 바란다면 너를 향하여 무엇이냐?”라고 그가 대답하신 것입니다(요 21:23).
요한복음 21장 24절에 “이가 이것들에 관해 증언하고 기록한 제자고, 그의 증언이 진실한 것을 우리가 알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에 “그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다른 것들도 있으며, 무엇이든 만일 그것들이 하나를 따라 기록함을 받는다면 기록함을 받는 책들을 받기에 세상도 상상하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프레데릭 레만의 작사지만, 3절 표현은 1세기 사람인 요하난 벤 자카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즉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라는 표현입니다.
“모든 하늘이 양피지고 모든 나무가 펜이며 모든 바닷물이 먹일지라도 내가 배운 지혜를 기록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8) 바다를 잉크로 삼아서 하늘에다가 글을 써도 충분히 기록하지 못합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하늘과 땅에 모든 권위가 줌을 받았으니. 너희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를 만들라 그들을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성령의 그 이름 안으로 세례를 주면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지키게 그들을 가르치면서 그러하라, 그러면 보라 내가 그 시대의 완료까지 모든 날을 너희와 함께 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 풍랑과 귀신과 병이 절대 복종합니다(마 8:23~9:8). 기적들은 모두 예수님의 왕권에 복종한 것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본문에 “모든 권위가 나에 주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마 28:18), 하늘 안에만 아니라 땅 위에 권위도 예수님께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대한 모든 권위를 받으신 우주적 왕이십니다.
인류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자신을 지배할 왕권을 악마에게 주었으나, 예수님께서 그 죗값을 대속하시고 인류에 대한 왕권을 되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값을 주고 되사셨으니 악마는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인자와 같은 자에게 지배와 영예와 왕권이 주어지게 되는데(단 7:14), 인자의 지배는 영원의 지배여서 영원히 끝나지(pass away) 아니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가 주어졌습니다(마 28:18).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에서 일으켜 그의 오른쪽에 앉히시니, 모든 지배와 권위와 능력과 지배권과 이름 위에 계십니다(엡 1:20-21). 하늘과 땅과 지하의 모든 무릎이 그 이름에 무릎 꿇습니다(빌 2:8-10).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너희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를 만들라, 그들을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들을 만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사명을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 합니다. 지상명령(至上命令)은 지극한 상위(上位) 명령(命令)이라는 의미입니다. 비할 수 없는 “큰 명령”(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이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가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제자를 만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민족들에게 가기는 가는데 제자를 만들지 아니합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냥 종교인이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며, 자기들만 지옥에 가지 아니하고 지옥에 갈 사람들을 만듭니다. 사람들을 회개 없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하는 종교인들이 그들입니다. 교인 숫자를 늘리는데 몰두하는 위선자들이 현대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회심하지 아니한 교인들이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들이 아닌 악마의 왕국의 백성들로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져야 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배우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늘에서의 지위를 버리시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는데 이제 하늘 안과 땅 위에 대한 모든 권위가 그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이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며 그 권위를 행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이와 같은 최고의 왕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에만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됩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됩시다! 예수님을 나의 왕과 주로 인정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삽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제자를 만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시행하려면 우리가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제자가 되지 아니하면 제자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을 시행하려면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곧 그의 뒤에 쫓고 따르는 사람입니다(마 4:19-20).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 와서 산상수훈을 배우는 사람입니다(마 5:1).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며, 그 말씀에 따라서 왕이신 예수님의 왕명에 복종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왕명에 복종하며 사는 자가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면 그 백성답게 그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권위를 받으신 예수님의 왕권에 복종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삽시다!
1)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59.
2)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698.
3)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4)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5)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6)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7)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8)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66.
9)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702.
10)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703.
11)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72.
12) R. T. France, 『NICNT 마태복음』, NICNT 성경주석, 권대영·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9), 1261.
13)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82.
14)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84.
15)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85.
16)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88.
17)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89.
18)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90.
19)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93.
20)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94.
21)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696.
22)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701.
23)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735.
24)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739.
25)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서울: 비블리어, 2010), 73.
26)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744.
27)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솔로몬, 2001), 724.
28)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솔로몬, 2001), 737.
첫댓글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