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家訓)과 아호(雅號)
가훈이라고 하면
근면, 정직 등등
간단한 몇 마디 좋은 말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원래 '가훈'은 책 이름이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
梁(양, 907~923년) 나라 출신
안지추(顔之推)가 저자이다.
그의 ‘가훈’은 여타의 가훈과
구별하기 위해
‘안씨가훈(顔氏家訓)’이라 부르는데,
총 20편 약 5만 여 글자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자신의 생각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안씨가훈’을
‘가훈의 시조(家訓之祖)’ 라고
평가하고 있다.
안지추가 ‘가훈’을 남긴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9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린 동생이 불쌍했던 큰 형은
그를 응석받이로 키웠다.
한없이 너그러웠으나
위엄이 없는 형이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안지추는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베었다.
술독에 빠져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던 그에게
24세에 겪은 조국의 멸망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포로 생활이 시작된다.
정말 운도 없는지
끌려간 나라도 또 망해서
계속 유랑의 신세였다.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를 거쳐
수(隋)나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느낀 모든 것들을
가훈을 통해
후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너무 할 말이 많았는지
자신의 기막힌 인생 유전을
‘논어’의 편수에 따라
20편으로 정리하였다.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적절히 섞어 글을 풀었는데
마치 한 편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다.
그가 서위(西魏)에서 포로 생활할 때,
같이 끌려간 양나라 귀족들은
공리공담에만 익숙할 뿐
세상의 실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자들이었다.
입들은 살아있고
지식인 행세를 하니
문서 정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자가 태반이었다.
서위의 권세가들은
하사 받은 양나라 귀족 출신 포로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공밥을 먹일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안지추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무엇이든 기술 하나는
익혀야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 가운데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릇 배움이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봄에는 그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얻는 것이니,
서로 토론하고 글을 짓는 것은
봄의 꽃이요,
자신을 수양하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은
가을의 열매이다.”
안지추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란 성어로
공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개괄하고 있다.
우리네도 자식에게
늘 공부 타령을 하나,
안지추가 강조하는
공부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그들이 말한 공부는
바른 사람 만들기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다들 가훈으로 삼는
글귀 하나씩은 있지요?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 듯 해서
위 글을 옮겨와 공유해 봅니다.
우리집 가훈은
기산심해(氣山心海)로
기운은 산과 같고
마음은 넓은 바다처럼
살자는 뜻입니다.
내가 품은 뜻과 기상은
산과 같이 크게 품고 행하되
상대를 향하는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게 품고 살아 가자며
아버지 생전부터
가훈으로 정해 실천해 나가려고
노력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의 좌우명은
대구사범학교 1학년때부터
'끈기 있게 노력하자'였는데
둘째 아들에게
여의도국민학교 졸업후
이 좌우명을 알려 주었더니
기억하고 실천하여
여의도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여
현재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우리 남녀 동기생 자녀 중에
유일하게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70세 경에
호를 청산(靑山)으로 해서
항상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자식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자주 만나기가 어려워
청산가족 그룹채팅방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자식, 사위, 며느리들의
직장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있다.
청산가족 개인과도 채팅방을
사용하고 있다.
靑山(청산)은 엇뎨야 萬古(만고)에 프르르며
流水(유수)는 엇뎨야 晝夜(주야)에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만고상청) 호리라.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 하리라.
현대어(現代語)로 해석하면,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오랜 세월 동안에 푸르르며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 하는가
우리도 그치지 말아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푸르리라.
자연이 오랜 세월에도
변함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자연을 본받아
쉬지 않고 학문 수양에 힘쓰자는 노래.
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연시조인
전육곡(前六曲, 言志),
후육곡(後六曲, 言學) 열두 수 가운데
후육곡(後六曲)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 작품.
이황(李滉, 1501~1570):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선비.
조선 시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 정치인.
退溪는 나아감과 물러남의 의미로서
이황의 호(號).
대사9회 회원님들의 아름다운 雅號!
고종달 - 송암(松巖)
구자훈 소설가 - 연호(蓮湖): 월간문학 등단
김선자(김형신) 시인 - 소연(韶淵): 시와시학 등단
김기대 시인 - 성헌(省軒)
故 김몽선 시인 -
김승태, 그레고리오 - 금성(金星)
김창수 작곡가 - 청솔: MBC 창작동요제 대상
노승렬 - 청산(靑山)
박수규 박사 저술가 - 청남(晴南)
백길현 논픽션 작가 - panama
유명덕 - 거북이
윤소자 - 수필가
조명웅 화가 - 소석(素石)
가나다 순
옮겨 온 글 편집
첫댓글 가훈의 유래를 동문에게서 들으니 새롭습니다.
저의 집 가훈은 기독교적입니다.
시집 와서 못난 붓글씨로 벽에 척 붙여 놓았습니다.ㅎ
*매사에 최선을 다 하자.
*범사에 감사하자.
(새로 쓰기인데 나 자신에게 ㅋ)
맏며느리니까 가족 9명중 시부모님만 타계하시고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며 잘 베풀고 살고 있으니 성공한 삶인 것 같습니다.ㅎㅎ
[대청마루/카페 메뉴명]에서 눈발을 보면서 청산님과 수다 떨고 있으니 노년 행복이 앞산보다 높군요.ㅎㅎ
양양엔 눈이 오고 있습니다.^^
바람새 김능자 카페지기님
두 가훈이 참 좋습니다.
첫 번째 가훈이 가슴에 와 닿고
두 번째 가훈이 좀 종교적인 감이 듭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연세가 많으실 테니까
타계하셨겠지요.
아직도 가족이 7명이시니 참 다복하십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에서 바닥을 내려다 보니
철렁이고 부딪치는 파도에 눈이 아찔했습니다.
강화도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
여수 금오산의 향일암
우리나라 4대 관음전이지요.
참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고 계시는군요.
바람새님 댓글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번에 글을 올리기 위해 몇몇 동기들에게
문자 메세지로 호를 확인했는데,
청남 박수규 박사 저술가가 대구사범 카페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대구사범9회 카톡방에도 이 글을 올렸습니다.
'안지추는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베었다.'를
'안지추는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로
'윤소자 - 수필가'를 '윤소자 수필가 - '로 수정
유덕길 서예가 - 장암(璋巖)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