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소수만 아는 단식의 목적: 빼앗긴 신랑을 되찾아라!
오늘 복음은 단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자주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한다고 불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해주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단식은 신랑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신랑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입니다. 누가 신랑을 십자가에 달까요? 우리 자신입니다. 더는 신랑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신랑을 자아에게 빼앗긴 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 때는 결국 신부의 거울이 되어야 할 신랑을 빼앗긴 때입니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왜 단식할까요? 그들에게 어떤 목표가 되는 신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고긴스’의 인생 이야기는 극도의 정신적 강인함과 신체적 훈련의 토대 위에 세워진 놀라운 변화의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내력 운동 선수, 동기 부여 연설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의 여정은 심각한 도전과 좌절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강렬한 신체 운동, 엄격한 다이어트, 단식이라는 그의 유명한 아침 일과를 채택하게 된 그의 삶의 주요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데이비드 고긴스는 1975년 2월 17일 뉴욕 버팔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학대적이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역경으로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 트루니스 고긴스는 가족을 신체적으로 학대하여 격동적이고 충격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데이비드와 그의 어머니는 결국 학대하는 가정에서 벗어났지만, 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긴스는 어린 시절 인종 차별, 괴롭힘, 빈곤에 직면했고, 그 결과 학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심각한 우울증과 자존감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고긴스는 20대 초반에 종종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묘사합니다. 혈액질환과 관련된 의학적 이유로 공군을 제대한 후, 그는 깊은 우울감을 느꼈고 해충 구제업자로 일했습니다. 당시 고긴스는 심하게 과체중이었고, 체중이 거의 300파운드였으며, 움직이지 않고 건강에 해로운 생활 방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범함과 자기 의심의 악순환에 갇힌 것처럼 느꼈고, 이는 신체적, 정신적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그에겐 닮아가야 할 삶의 모델이 없었습니다.
고긴스가 해군 특수부대의 TV 광고를 본 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300파운드인 고긴스는 SEAL 훈련에 필요한 체력 요건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고, 자격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100파운드 이상을 감량해야 하는 시간이 겨우 3개월뿐이었습니다. 이 촉박한 마감일과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그의 사고방식에 급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고긴스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훈련하는 매우 엄격한 아침 일과를 개발했습니다. 강렬한 신체운동, 엄격한 식단과 단식, 극도의 규율과 자기 책임으로 결국 필요한 체중을 감량하고 BUD/S(기본 수중 폭파/SEAL) 훈련에 성공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SEAL 훈련 중에 극심한 신체적 어려움에 직면했고, 부상으로 인해 세 번이나 ‘지옥 주간’(강렬한 신체적 정신적 훈련 기간)을 견뎌내고 해군 특수부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줄 수 없다』(Can't Hurt Me)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들, 듣고 싶은 말만 해 주는 하고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반면에 흔치 않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는 그 ‘느낌’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 이제 뛰러 가자.’ 그런 걸 아주 싫어합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고난 끝에는, 소수만 아는 세계가 있어요. 매우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찾게 되거든요.”
데이비드 고긴스가 평범함을 거부하고 찾으려고 했던 자기 자신, 이것이 우리에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기 위해서는 처절한 고난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해방되시면 어떨까요? 나의 모습이 내가 기대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일 때는 그분과 함께 즐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는 삶이 새 포도주에 새 부대가 되는 길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랑을 빼앗겼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것 자체가 신랑의 뜻을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때 단식을 하였습니다. 이틀을 꼬박 굶었습니다. 그러자 신랑이 다시 오셨습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다 주신 분이 오시니 더는 단식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 바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 밥알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먹었습니다. 무언가 불만이 많았는데 매일 먹는 밥알 하나하나가 감사해서 많이씩 퍼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식하면 겸손해집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이틀만 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데 내가 뭐 대단하다고 주님께 불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식하면 자아의 힘이 죽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잡았던 힘이 풀립니다. 이때 신랑이 풀려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셨듯이, 나를 통해 신랑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단식은 단식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갇힌 그리스도를 해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잘 알 것입니다.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로 영웅, 운명, 황제, 합창 등의 교향곡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쓴 9번째 교향곡 ‘합창’을 발표할 때, 그의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럼에도 그는 열심히 작곡에 임했고, 합창 교향곡 마지막 4악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ode to Joy)를 작곡합니다. 들리지도 않는데 왜 작곡했을까요?
자기는 듣지 못해도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본인이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다른 이와 나누기 위해 이 곡을 쓴 것이 아닐까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실제로 자기가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타인과 내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만 행복한 것도, 남만 행복한 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타인의 행복을 보면서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그 행복에 문제 있는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깎아내려고 합니다. 나만 옳고 나만 행복하다면서, 상대의 행복이 잘못된 것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과연 진정한 행복일 수 있을까요?
타인의 행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행복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짜 사랑의 삶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경건한 사람들로 여겨졌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정말로 율법에 충실했고 신앙심도 깊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이런 노력과 달리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 것으로 보이니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그 행복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기쁨을 깨뜨리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는 혼인 잔치를 일주일 동안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단식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신랑이고, 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인 그리스도인은 단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빼앗길 날,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고통에 동참하게 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단식은 보이기 위한 단식일 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열심을 알리기 위한 것,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단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짜 단식을, 즉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고통에 동참하는 단식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은 신뢰의 행위다. 믿으니까 믿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로맹 롤랑).
사진설명: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