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10. 7. 월요일.
하늘이 다소 흐리다.
월 - 금요일에 날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보고, 인터넷 뉴스를 보고, 월간 국보문학카페에서 회원들의 글을 읽고, 나도 카페에 생활글 올리고, 날마다 일기를 쓴다.
나는 호적신고가 늦어진 탓으로 1년 뒤인 아홉살부터 시골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가갸거겨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한자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도 한자를 배웠다.
더우기 초등학교 시절에 시골에서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대전 2층 일본집에 사시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대전에서 알아주던 돌집(석재상) 주인이었기에 할아버지 방에는 한복 도포자락을 휘날리고, 망건을 쓴 한문쟁이 영감들이 늘 들락거리면서 커다란 문종이에 먹물로 한자 비문을 쓰는 것을 늘 보았다.
커다란 오석(烏石) 빗돌에 비문을 새기는 각자꾼(刻字꾼)을 숱하게 보면서 자랐다.
* 검은 빗돌 오석(烏石)은 충남 보령군 내륙 산악지대에서 출토되었다. 특히나 내륙지방인 성주면 성주산에서 오석을 채굴했다.
남포면 용머리 갯바다 물속에서 남포 애석(艾石)을 캐서 배로 운반해서 육지에 부렸다. 지금은 남포방조제로 바다를 메꿔서 간사지로 조성했기에 남포 애석발굴 사업은 영영 사라졌다.
나는 내 고향 보령지방은 물론이고 대전에서도 온통 돌문화를 보면서 자랐다.
* 조선조 남포현은 석재산업으로 발달한 고장.
이런 이유로 나는 중국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도 실상은 한자 한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산골 마을 태생인 나는 그저 우리말에나 길들여졌다. 내 고향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무지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학교 교문이 어느 쪽에 붙었나도 모르는 무학자 문맹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덕분에 국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대전으로 전학가서 공부를 더 했다. 대전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고,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공직자였기에 30년이 넘게 서울 용산구 어떤 기관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나는 중국 한자에 어느 정도껏은 길들여졌지만 사실은 중국 한자말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나는 중국 한자말을 잘 모른다.
국보문학카페에세는 중국 한자말을 덜 써서 좋다.
그런데도 이따금 어려운 한자말이 뜬다. 중국 한자로 쓰면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데도 중국 한자말을 우리글자인 한글로 음역해서 글 쓰면 나는 이따금 오해한다.
일전 어떤 글을 보았다. '심심'이란 낱말이었다.
글 내용이 아주 중후한 뜻을 지녔는데도 나는 '맛이 조금 싱겁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 내용과 다르게 해석되었기에.
오늘(2024. 10. 8.)에서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심심' 낱말을 검색하니 뜻이 여러 개이다.
1. 심심하다 : 맛이 조금 싱겁다
2. 심심하다 : 할 일이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
3. 심심甚深)하다 : (주로 ‘심심한’의 꼴로 쓰여)) (마음이) 매우 깊고 간절하다.
*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4. 심심(深深)하다 : 아주 깊고 깊다
중국 한자말을 우리 한글로 음역해서 쓴다면 그 낱말 뒤에 괄호( )을 열고는그 안에 중국 한자단어를 넣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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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자말을 많이 알아서 유식한 체하는 사람은 존경해야 하나 싶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은 쉽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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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탠다.
쉽고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글 썼으면 싶다. 특히나 문학글에서는.....
2024.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