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RhFaBZGhsck?si=a9DgomjgVo2OjRgJ
배교에 대한 경고 10:26~31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뒤로 물러나지 않는 신앙 10:32~39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모세의 법을 어긴 사람도 죽었는데, 하나님 아들을 짓밟고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받을 형벌이 더 무거운 것은 당연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지난날들을 기억하고 담대하면 큰 상을 얻습니다. 하나님 뜻을 행한 후 약속된 것을 받기 위해서는 뒤로 물러가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
배교에 대한 경고 10:26~31
죄를 멀리하는 것이 대속의 은혜를 잊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에 따른 형벌을 경고합니다. 하나님 아들을 짓밟는 행위, 죄인을 거룩하게 하신 언약의 피를 속되게 여기는 행위,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행위에는 크신 진노가 임합니다. 속죄의 은혜를 받고도 일부러 죄를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속죄의 기회가 더는 없고, ‘무서운 심판’과 ‘맹렬히 타는 불’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 어긴 자를 엄중하게 처벌한 사실은(신 17:5~6) 하나님 아들을 거스른 자가 받을 심판이 얼마나 무서울지를 경고합니다. 죄를 선택하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신 32:35).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의 사역에 감사하며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죄 사함의 은혜를 알고도 일부러 죄를 선택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내가 삼가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뒤로 물러나지 않는 신앙 10:32~39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의 위기에 놓인 이들을 격려합니다. 지난날 복음의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큰 싸움’(32절)을 겪고도 잘 견디어 내던 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때는 비방과 환난을 당했고, 동일한 환난을 당한 사람과 함께했으며, 감옥에 갇힌 사람을 위해 아파했습니다. 그때는 하늘에 더 좋고 영구한 기업이 있음을 확신했기에, 옥에 갇힌 이들을 동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자로 다시 오셔서, 악을 심판하시고 의인에게 상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함’과 ‘인내’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35~36절). 뒤로 물러나는 퇴행 신앙인이 아닌, 믿음으로 전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믿음으로 전진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고난으로 인해 낙심될 때 내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히브리서 10장 36~37절
믿음의 선진들은 모든 고난과 시련을 인내로 견디었습니다. 모든 일에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고, 인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이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내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은 곧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것입니다.
거룩함은 세상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분리되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다. - 빙햄 헌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믿음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억울하고 견디기 힘들 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며 넉넉히 인내하게 하소서. 지체하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큰 상을 받기 위해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 나가길 바라신 예수님이십니다.
대지와 소지:
1. 먼저,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a.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뒤에도 계속 죄를 짓으면 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음
b.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을 받은 이후에는 죄에서 멀리 떠나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게 됨
2. 둘째로,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내야 합니다.
a.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 낸 그 시절을 되새기고, 잊지 말아야 함
b.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켜 나가기 위해 고난의 싸움을 끝까지 견디어 내야 함
3. 마지막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a.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함
b.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고, 그분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함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자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모욕과 환난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내고, 인내하면서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자녀로 더욱 더 성장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③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기 위해 인내하며 끝까지 버티어 나가자
-----------------
오늘 본문은 여러 내용이 있는데, 결국 히브리서 기자가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켜 구원의 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믿는 자들에게는 과거의 경우처럼 심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담대히 그 환난을 이겨내라고 격려하고 있는데, 장차 큰 상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에게 임할 형벌, 닥치는 박해와 고난, 가져야 할 담대함과 인내, 대두되는 믿음 등입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율법을 져버린 사람도 두세 명의 증언에 의해 동정을 받지 못하고 죽는데, 그리스도를 짓밟고 그가 흘리신 언약의 피를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받을 벌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법을 폐한 자’란 우상숭배나 배도를 하므로 ‘율법을 배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거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신명기에 배경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 하나님의 공의를 전적으로 선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분을 잘 섬길 때는 적들에게 원수를 갚아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는 엄하게 벌하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하나님을 배신하면 심판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라는 말은 조소와 고초를 당함으로 공개적인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 공동체 성도들은 과거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고소를 당하고, 폭력을 당하기도 하며, 공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일이 비일비재하였는데 그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 당시 기독교인들이 폭도들에게 재산조차 빼앗기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쁨으로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으로부터 받을 큰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은 지상에서 빼앗겼던 소유보다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면 ‘더 나은 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약속을 잊지 않으므로 비방과 재난을 당하면서도 담대할 수 있던 것입니다. 신앙인의 사전에 희생, 경제적 손실 등은 없을 수 없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형식인 이 글은,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이겨 나아가자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즉,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수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약속 받지만, 믿음도 없고 그 약속을 바라며 견디는 인내도 없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마다 그들은 애굽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행동입니다. 급기야 고라를 위시해 반역이 일어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맙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노아를 생각해야 합니다. 햇볕이 나오는데도 구슬땀을 흘리며 무려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었던 위대한 조상입니다. 그 인내를 그들은 본 받아야 마땅합니다.
광야는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가 있는 도대체 매력이라곤 별로 없는 험악한 땅입니다. 거기에 비해 애굽은 매혹적인 비옥한 땅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민족이 거주하던 고센은 푸른 들판과 강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렇듯이 두 곳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즐길 것의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은 손해 보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아니다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가려면 애굽을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광야길을 가야 합니다. 그 방법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영영 가나안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할 일은 참으며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과 인내가 필요한 길입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즐거웠다고 하더라도, 애 뜻한 향수가 있더라도 돌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광된 미래가 있으니, 장차 완성될 구원, 하나님나라가 곧 우리 앞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찬란한 그 날을 위하여 오늘을 참고 견디어 마침내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이 진심을 다해 한 말입니다.
그 고백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고백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떠밀려 뒤로 물러가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믿음의 사람들이 후퇴하여 세상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샘이 더러워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잠25:26)
우물과 샘이 더러워지면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후퇴하면 승리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5)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그러므로 또한 우리의 후퇴 없는 믿음을 위해 인내함과 담대함으로 무장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인내함 없이 약속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또한 담대함 없이 승리도 없고 승리 없이 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10:35) 그
러므로 흔들릴 때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담대함과 견뎌왔던 인내함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히10:32)
이제 주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10:37)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뒤로 물러가지 않고, 세상의 고난을 견디는 인내함과 상을 바라는 담대함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 얼굴을 부싯돌 같게 하사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사 영화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사50:5~8)
---------
‘믿음을 갖고 생명을 얻는 사람들(31절)‘
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당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과 핍박이 그 당시 그리스도인에게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압박을 버티고 버티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부인함으로 세상적 자유와 안위를 선택하고 쉽고 넓은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견디어 낸 자들은 ‘영원한 재물(33절)’을 바라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담대함(35절)’과 의롭다 여김 받는 믿음(38절)’이 있었습니다.
나결코 당장 다가올 세상의 칼날을 무서워하지 않고
영원까지 불태우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믿음을 갖고
생명을 얻는 사람들(31절)’로 세워져야 합니다.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아 이 땅에 오셔서
자신과 그 피를 단번에 우리 모두의 제물로 드리며 영원한 지성소의 대제사장으로 온전하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의 환란과 고통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후퇴하지 않는 결단과 믿음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사라지지 않고 날마다 풍성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1.일부러 죄를 짓는다면(26-31절)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도 고의로 죄를 범하면 그 죄에 대하여는 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은 부지중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범하는 죄를 말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결국 소멸할 맹렬한 불앞에 놓이게 됩니다. 가장 불쌍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부와 영화를 가졌다고 하여도 결국 그들은 소망이 없는 일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음은 참으로 복된 일임을 깨닫고 받은 은혜를 굳게 붙잡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가 받은 은혜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하소서.
9월19일 청라호수공원에서
2.더 낫고 영구한 산업(32-39절)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혜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처음 은혜를 알게 되었고 그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였던 그 때를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에 모든 시련과 환란과 고통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받는 시련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영원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 분명하게 실현되어진다는 것을 믿기에 어떤 상황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분의 재림하심을 확신함으로 담대하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은 성도임의 증거는 이 땅에서 주어지는 어떠한 신앙적인 어려움 앞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더 나은 보상과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으로 당당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은혜 받은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고 있는가?
-------------
엄중한 경고와 권고
1.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26-31)
히브리서 저자는 신학자의 입장에서 구원의 확신에 관한 교리를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설교자의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경고하며 권고를 합니다. 즉 구원의 진리를 알고, 언약의 피와 성령의 은혜를 맛본 자들이 구원의 도리를 부정할 수 있기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초점을 두는 말은 "짐짓/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을 고의로 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과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당연히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26,28-29). 우리에게 연약함과 강퍅함의 죄가 있습니다. 연약함은 우리가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짖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는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퍅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도 고의로 짖는 죄를 말합니다. 이러한 강퍅함의 죄는 짖지 말아야합니다.
2.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32-39)
경고 후에 이제 권고가 나옵니다. 10:32-34절에서 히브리서 독자들이 처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수년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극한 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믿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 받은 박해보다 더 심한 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12:3-13). 그 후 수년동안 박해를 받지 않다가 이제 다시 다가 오는 극한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유혹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독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할 가능성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권고합니다. "너희의 믿음의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그러면 상을 받으리라", "오직 의인은 끝까지 믿음으로 산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곧 주님이 오신다". 오늘도 우리에게 불신과 배교와 낙담과 미혹의 영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
성도는 예수의 십자가 은혜로 사죄의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사죄의 은총은 성도의 연약함을 덮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은총을 입고 사는 자신을 알게 된 성도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부로 죄를 지으며 살게 될까요?
물론 우리는 여전히 죄를 즐거워하고, 죄에 빠져 사는 것을 탐닉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방치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죄가 가져올 심판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자리에 죄 없으신 예수께서 대신 피를 흘리시는 십자가 현장을 보게 하십니다.
그때 성도는 자신의 죄에 대해 탄식하고 애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 십자가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는 죄를 보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를 보는 자입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맞는지? 그러나 자주 죄의 유혹 가운데 빠져들지만 죄에 대한 애통과 슬픔 가운데 십자가를 보며 감사를 고백하는 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도 좋습니다.
그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진리와 함께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어떠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하나님의 은혜의 공간에 머무르는 삶이어야 합니다(26~31절).
‘짐짓 죄를 범한즉’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배교한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인 죄는 언제든지 고백과 회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신앙 자체를 떠난 경우에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심판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26~27절).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도 두세 증인의 증언이 있으면 가차 없이 사형을 받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신을 거룩하게 해 준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은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28~29절,새번역)는 것입니다. 결국 배교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권역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긍휼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30~31절)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을 만나도 신앙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해 보기 위해, 그리고 순간의 쾌락을 누려보기 위해 신앙을 버리고 욕심과 욕망을 채운 만큼 하나님의 심판도 심각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신 은혜의 보좌를 향해 진리의 길을 따르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소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32~34절).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32절)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26절) 또 다른 표현입니다. 복음의 빛을 체험한 후에 겪었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이겨냈던 그 처음 시절을 되새겨 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 앞에서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고난을 받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였고, 소유를 빼앗긴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기뻐하였다(33~34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음을 확신’(34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빛을 체험한 히브리 공동체 안에 ‘고난의 큰 싸움’을 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싸움을 잘 견뎌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쉽지 않은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현실이 가져다주는 절망과 낙심의 그림자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고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내’라는 단어가 오늘 나의 삶을 붙들어 줍니다. 배교의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나의 신앙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참 소망이 하늘에 있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 인내하는 삶이어야 합니다(35~39절).
‘담대함’은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신뢰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신실함이 곧 믿음입니다. 이러한 담대함에는 상급이 있습니다(35절). 그러므로 히브리 공동체가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36절)가 필요합니다. 약속된 것을 받기 위해서는 그 시점까지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25년 되었을 때, 그리고 또 십 수년이 지나 시험에 통과한 후에 약속한 바를 얻은 인내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주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이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37~38절,새번역).. 그러므로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는 사람들(39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로 믿음이고, 어려움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고 믿음이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소망과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을 승리를 이끄는 것은 세상의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살 때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잠시 인내함을 통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불순종의 죄악된 모습을 과감히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믿음 안에서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서도 끝까지 인내하여 넉넉히 이겨 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히 10:26~39절)...
------------------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고의적인 범죄로 배도하는 자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경고한 후,
믿음으로 승리해온 삶을 상기시키면서
끝까지 뒤로 물러서지 말고
인내하라고 촉구합니다.
26-31절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고의적이고("짐짓") 지속적인 ["범한즉"(헬. 하마르타논톤, 현재진행형)] 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하고 최종적인 속죄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은, 그 완전한 제사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반복되는 죄를 부끄러워 할 줄 알고, 그분의 피로 활짝 열린 회개의 성소로 '나아가야'(10:22) 함을 뜻합니다. 이 속죄제사의 의미를 알면서도 죄의 길을 선택하고, 속죄제사의 효력을 명분 삼아 죄의 습관을 합리화하는 것은, 예수님을 짓밟고 그분의 피를 더럽히고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한 영원한 제사를 업신여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심판뿐입니다. 예수님이 속죄제사를 종결하셨으므로 더는 마련될 속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나는 죄와 싸웁니까, 아니면 죄와 타협합니까?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죄와 타협하지 않기 원한다.
때론 약해서 넘어질 때가 있다.
알면서도 피하지 못할 때가 있다.
죄는 어떤 모양이라도 다 죄일 뿐이다.
죄와 힘써 싸워 이길 수 있길 원한다.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치자.
게으름도 물리치자.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2-34절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고난으로 믿음이 흔들릴 때 애초부터 믿음이 '고난의 큰 싸움'임을 기억해야 하고, 견디고 또 견뎌왔던 승리의 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란 믿는 대로 살다가 세상에서 소외되어 구경거리가 된 이들끼리 사귀는 곳이었고, 믿음을 지키다 투옥된 이들을 돌보는 곳이었고, 믿음 때문에 입은 경제적 손실을 천국의 재물로 쌓아 가는 곳이었습니다. 믿음이란 함께라서 견딘 길이었고, 현재의 고난에 잠식되지 않도록 미래의 보상을 꿈꾸며 인내한 길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승리의 기억이 내게도 있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음을 늘 기억하자.
이 땅의 것은 모두 유한한 것이다.
짧은 인생이라지만 지나는 순간은 길다.
고난 가운데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비방과 멸시와 따돌림이 있다면 괴로움의 시간이 길뿐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견뎌야 한다.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할 때 힘을 얻을 것이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러한 지체가 있음이 위안이다.
영적 승리를 위해 인내하자.
오늘도 인내가 많이 필요하다.
35,36절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담대함'('담력', 10:19)을 얻은 이들은, 세상에 나아가서도 그 담대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하늘의 큰 보상에 대한 약속을 담대히 확인하고, 땅의 회유와 겁박을 담대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담대함이 더욱 필요하다.
인내함도 필요하다.
믿음은 더욱 필요하다.
절대 뒤로 물러나서는 안된다.
믿음은 전진이다.
푯대를 향한 달음질이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전진해야 한다.
오늘도 하늘의 상을 기대하자.
담대함으로 세상을 이겨나가자.
잠시 잠깐 후면 주님 오신다 한다.
그렇다.
주님 오실 그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회는 이 땅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만이 살 길이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말씀 붙들고 승리하는 하루를 원한다.
주님!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고통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신 주님 닮기 원합니다.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원합니다.
이 하루도 구원의 약속 믿고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구원에 이르라>
히 10:26-39
오늘 본문은 새언약을 끝까지 잘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새언약 파기
언약을 파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언약도 파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브리서 10:26, NKRV) 옛언약이든 새언약이든 고의로(짐짓) 언약을 파괴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엄히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흔히 새언약에서는 용서가 더 많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새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옛언약을 파기할 때보다 더 심각한 책임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 심각성을 옛언약은 속죄를 매년 하기 때문에 다시 하는 제사가 있으나
새언약은 한 번의 피흘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가 없음을 강력히 말하고 있습니다.
옛언약처럼 새언약에서도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없거나 시험에 빠져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내가 믿기는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막연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말대로 진정 조금이라도 은혜를 경험하였다면 그것은 더욱더 큰 죄입니다.
은혜를 경험하였다는 사람이 어찌 지금 하나님을 떠나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죄입니다.
안다고 말하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미래에 언젠가 돌아올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서 10:27, NKRV) 참으로 무서워해야 할 상황으로 맹렬한 불이라는 엄청난 죄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언약은 우리에게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8–29, NKRV)
새언약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라는 위대한 사건과 함께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길 때 그것은 더욱더 큰 죄가 됨을 말합니다.
새언약을 어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짓밟는 것이니 얼마나 끔찍한 죄가 되겠습니까?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새언약을 어기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옛언약을 어기는 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새언약이 은혜가 크기에 그것을 어기면 죄가 더 큽니다.
2.새언약 지킴
새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십자가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길 때는 엄청난 죄과가 따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킬 때는 엄청난 복이 따릅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 10:34, NKRV)
세상 모든 약속이 그러하듯 새언약도 그것을 지킬 때 때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더욱더 그러하였던 것 같습니다.
믿음 때문에 '소유를 뺴앗기는'일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소유를 빼앗길 때 그에 상응하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새언약을 지키면서 당하는 일은 고난도 복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고난을 다 기억하셨다가 더 큰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이전에 믿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히브리서 10:32, NKRV)
그런데 그들이 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가졌는데 어려운일만 생긴다고 말하면서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히브리서 10:35, NKRV)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어려움은 오히려 '아주 큰 상'에 대한 보증이 될 것입니다.
새언약을 지킴으로 상을 받는다고 말하니 속물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새언약을 지키는 사람이 받을 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복의 한 부분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서 얻는 어려움은 크면 클수록 오히려 나중에 받을 상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어려움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담대한 마음으로 이겨가야 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브리서 10:36–37, NKRV) 인내가필요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데 인내가 필요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38, NKRV) 의인은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은 잘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0:39, NKRV) 어려움이 있다고 뒤로 물러나면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새언약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언약입니다.
새언약이 소중하기에 그것을 소홀이 여기는 경우와 소중히 여기는 것의 차이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새언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짓밟는 것입니다.
특별히 새언약을 안다고 하는 사람이 그러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짓밟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큰 죄를 범하고 어찌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새언약은 지킬 때는 엄청난 복이 됩니다.
새언약을 지킬 때 그들이 받을 소유와 상은 지극히 큽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새언약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언약 때문에 큰 화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큰 복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뒤로 물러가지 않고
구원을 주시는 믿음을 소유한 자로
오늘도 주어진 십자가를 감사와 기쁨으로 지고 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며 세상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로 세워지도록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지진과 홍수 등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족속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