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링컨
링컨은 너무나 유명한 분이라서 여기서는 그의 전기를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링컨은 노예제도에서는 신중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당시에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노예제도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야 했다. 그는 노예 제도의 반대자의 입장에서 섰다. 물론 그의 신념이기도 했지만, 후보로서의 선택이기도 하였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미 연방 전체가 노예주가 되거나. 자유주가 되거나 간에 쪼개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예제도보다도 연방의 통일이 더 중요했다. 어쨌거나 링컨의 본심은 노예제도의 반대였다.
노예제도에 대한 정치적 대립은 극심하였다.
이때 노예 해방론자인 존 브라인이 무리를 이끌고 연방군의 무기고를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다. 존 브라운은 교수형을 받았지만, 에머슨이 찬미의 시를 남길 만큼 영웅이 되었다. 이 사건은 노예제도가 정치적 대립을 넘어 군사적 대립도 일어날 수 있다는 낌새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하였다. 이때 북부애 속하는 자유주가 17개 주였고,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노예주는 15개 주었다.
링컨은 노예주에서 2만 4천 표를 얻었고, 15개 주 중의 9개 주에서는 1표도 얻지 못했다.
남부인들은 자신은 북부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전원적이고 농업사회인데 반하여 북부는 도시적이고 공장 중심의 산업회된 도시이다. 노예제도에 극도로 부정적인 백인 이민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자기들은 북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링컨은 선거인 수에서는 소수였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다수여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된 후의 정책 방향도 노예 해방이 최 우선이 아니고, 연방의 통일 최 우선이었다.(남부 주가 쪼개져 나가는 것 통합주의자인 링컨은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남북전쟁의 제 1의 원인이었다.
공화당도 링컨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촌뚜기 링컨을 후보로 뽑았다. 선거에서 승리함으로 링컨 선택이 바른 선택이 되었고, 전쟁까지 시행해야 하는 선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