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정부 계승 가능성 높지만, 원활한 운영 미지수
일본, 한국의 영토고권 불인정…'집단방위' 불가능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캠프 데이비드 회담하면 떠오르는 것은 1978년 오랫동안 앙숙이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전쟁을 끝내고 화해하는 장면이다. 그에 앞서 1943년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만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방안을 논의했고, 1959년에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미국을 처음 방문한 흐루쇼프 소련 총리와 동서 데탕트를 협의했던 곳이 바로 캠프 데이비드이다.
캠프 데이비드가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단연 미국·이집트·이스라엘 3국 정상이 만나 오랜 중동전쟁의 종식을 알린 회담 덕분이다. 19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만나 일종의 종전선언인 '캠프 데이비드 협약(Camp David accord)'에 서명했다. 6개월 뒤인 1979년 3월 구체적인 평화체제의 이행방안을 담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으로 이어졌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이 양국 평화에 그치고 중동 전체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 불완전성 때문에 '차가운 평화(cold peace)'에 머문 것으로 평가되지만, 적어도 전쟁의 악순환을 피하고 중동평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캠프 데이비드 회의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캠프 데이비드는 국제정치에서 종전과 평화의 상징성을 지닌 장소였다.
달라도 너무 다른 2개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
2023년 8월 18일 바이든 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곳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을 갖고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 '캠프 데이비드 원칙' '한·미·일 간 협의 공약' 등 세 개의 문서에 합의했다. 3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핵심 내용은 중국·러시아·북한을 겨냥한 3국 안보협력의 강화이다. 이는 평화를 상징했던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과 정반대의 길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부제에 밝힌 대로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해당하는 것이고,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한·미·일 간 협의 공약'은 부속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의 협력이 모든 영역에 걸쳐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주된 영역은 인도·태평양 지역과 포괄안보 분야이다. 그리고 정상·외교장관·국방장관·국가안보실장 회의 등 3국 협의체 발족을 통한 정보 공유, 메시지 동조화, 대응조치 조율을 선언했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은 3국 안보협력의 기본방침으로 주권, 영토보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강압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를 제시했다. 역내 공약으로 아세안, 태평양 도서국 포럼과의 협력과 북한 비핵화, 대만의 평화와 안정을 내걸고, 경제 공약으로는 금융안정, 기술표준, 기후변화의 협력을 내세웠다.
'한·미·일 간 협의 공약'은 앞서 공동성명에서 밝힌 3국 협의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이 공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며 그 한계를 설정했다. 또한 3국 사이의 협의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 법적 권리나 의무를 만들지 않는다고 밝혀 강제성이 없는 정치선언임을 분명히 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8.20. 로이터 연합뉴스
동북아판 나토에 한 발 접근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에 안보협력을 맺는 방식에는 크게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와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가 있다. '집단안보'란 적대 국가도 포함해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통제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국제연합(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대표적이다. '집단방위'는 특정 국가들을 적대세력으로 상정해 놓고 회원국 간의 군사협력을 통해 군사적 억제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대표적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유엔과 같은 집단안보기구의 기능이 약화되고, 집단방위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동유럽에서 WTO가 해체된 틈을 이용해 NATO의 동유럽 확대, 더 나아가 동아시아까지 집단방위를 구축하려는 것이 미국의 전략구상이다. NATO의 동유럽 확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한국과 일본의 NATO 확대정상회의 참석과 집당방위 형성 움직임은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캠프 데이비드의 3개 합의는 미국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동북아 집단방위 체제에 한걸음 접근한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역통합전략에 따라 서유럽의 NATO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집단방어체제 구축을 시도했지만, 일본의 평화헌법에 따른 집단자위권 제약, 한국의 일본과의 안보협력 거부감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러시아·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3국 집단방어 체제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번 합의의 특징은 미국이 정책선택의 여지를 가지면서 자신의 주도성을 분명히 한 점이다. 미국은 NATO에 공약한 자동개입 의무(duty)와 달리 협의(consult)를 공약하는 데 머물렀다. 또한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 비확산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지킬 것"이라고 밝혀 대미 의존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한·일의 독자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번 합의의 또 다른 특징은 미국이 한·일을 끌어들여 세를 과시하면서도 중국에 대해 종전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 매립지의 군사화를 지적하면서 중국의 실명을 거론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과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는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을 초청해 양국 갈등을 잠정 봉합함으로써 내년 11월 미 대선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바이든 정부의 의도와 맞물려 있다.
한일 관계는 집단방위체제의 끊어진 고리
그렇다면 미국이 구상하는 동북아판 NATO, 즉 동북아 집단방위체제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미·일 집단방위체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끊어진 고리(missing link)인 한일관계가 군사동맹으로 발전해야 가능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에도 불구하고 한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다면 동북아 집단방위체제는 성립할 수 없다.
이번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가능하게 한 것이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의한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의 봉합이지만, 한일 간에는 역사문제 못지않은 주권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첫째는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끊임없는 영유권 주장과 영토분쟁 시도이다. 둘째는 '투 코리아' 입장을 견지하며 북한영토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 한일 군사동맹은 성립될 수 없다. 군사작전계획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주권 공간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등 공동방위를 추구하는 동맹의 취지로 볼 때 군사동맹이 되기에는 역사적, 국제정치적으로 커다란 장벽이 놓여 있다. 이와 관련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자위대가 독도에 상륙하는 것은 대한민국 주권에 저촉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점은 한일이 군사동맹이 되기에 한계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일본이 한국의 북한영토에 대한 영토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충돌한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담대한 구상 목표에 대한 지지'와 "자유롭고 평화롭게 통일된 한반도 지지(We (…) support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라는 표현은 일본이 한국 주도의 자유통일을 지지했다기보다 통일국가의 최종상태가 자유ㆍ평화임을 지지한 것이다. 일본이 '투 코리아' 입장을 유지하며 북한지역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기조치인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조차 수용될 수 없다.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주장하고 영토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일본과의 군사동맹, 더 나아가 한·미·일 3국 집단방위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미국과 일본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서두른 것은 내년 11월 미 대선을 염두에 두고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보여주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가 적극 반영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도 윤석열 정부가 자진해서 굴욕외교에 나서자 이를 이용해 평화헌법 제9조에 따른 군사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은 3년 만인 14일 워싱턴D.C에서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개최하고 미사일방어훈련과 대잠수함전훈련 정례화에 합의했다.이달 4일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 훈련 모습[해군 제공] 2023 04 15 연합뉴스
국제합의라지만, 운용의 묘 발휘할 공간 열려 있어
문재인 정부가 밝힌 '사드 3불 방침'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계승을 거부했다. 이것은 3불 방침이 중국과 공식적으로 합의한 사항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서 밝힌 일방적인 선언이었기에, 방침의 계승 여부는 윤석열 정부에 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 정부가 '3불 1한'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까지 압력을 가했으나, 국내의 반중 여론에 편승한 윤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2023년 3월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된 제3자 변제 방안이다. 하지만 제3자 변제 방안도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일 뿐이며 사법부의 절차에 따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 여부와 차기 정부의 성격과 의지에 따라 강제동원피해자 문제는 한일 간의 쟁점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2015년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한일 외무장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정치적 합의이다. 합의 발표 당시부터 국내의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국제합의 위반이라며 항의하자 결국 문재인 정부는 한일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갖게 될 것인가? 이는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한·미·일 3국 정상이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사드 3불 방침이나 제3자 변제안과 달리 한일위안부 합의처럼 정치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계승을 거부할 경우 상당한 외교적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동맹국이자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이 포함된 정치선언이라 차기 정부가 쉽게 계승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차기 한국 정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계승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가 원활하게 운용되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설사 차기 정부가 합의를 깨지 않더라도 의무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의 성격과 범위, 규모, 속도 등의 조정을 통해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성패는 차기 정부의 성격에 달렸다.
윤석열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3개 문서의 체결로 대외전략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고 판단하고, 내년 4월 총선의 승리를 통해 정책 굳히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윤 정부가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대외정책들을 제도화해 놓는다면 차기 정부도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굳어지기 전에 냉엄한 중간평가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인 이유이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 성패 '차기 정부'에 달렸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