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계란과 빵, 야채 스프 등으로 든든하게 아침 식사. 까만돌이 좋아하는 것 같은 전통복 처녀와 함께 중루(中路) 마을로 이동 답사. 가는 길에 어제 공연단의 리더 아가씨 잠시 우리 차 이용. 두 아가씨의 고음 청아한 노래 다시 감상. 머뭇거리지 않고 쉽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가 생활화된 것처럼. 길이 좁아 봉고차로 바꾸어 중루 마을 도착. 비를 맞으며 망루에도 올라가고 개인 민속박물관에도 갔지만 특별히 눈을 끄는 곳은 없었다. 비를 맞거나 여기저기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중식. 만두를 중심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 다시 협곡 속을 헤맸다. 며칠 전 폭우로 길이 끊겨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0시간 이상 둘러가야 할지 모른다는 까만돌의 설명이 여러 번 있었지만 다행히, 정말 행운으로 길이 열렸단다. 한참을 달리다 스톱. 호기심에 차들이 멈추어 선 길 따라 가 보았더니 끊어진 교량을 복구하고 있었다. 두껍고 넓적한 송판을 대어 못질하고 도끼로 찍어 자르고 원시적이긴 하지만 공사가 한창이었다. 30-40분 정도 머무는 동안 맑은 도랑물에 발을 담갔다. 어찌나 찬지 1분을 못 견디었다.
복숭아 하나 먹고 다시 출발. 낙석 주의가 아니라 바로 낙석. 굴러오는 작은 바위를 바로 경험할 수 있었다. ‘앗 차 하는 순간’이란 말이 생각났다. 19:00 무렵 칸딩의 호텔에 도착. 커텐을 열고 내다보니 급류로 길게 흐르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양안으로 고층 건물이 들어선 도시였다. 각자 저녁 식사 해결이란다. 우리 부부는 과일과 생식으로 식사 후 쇼핑. 이것저것 구매. 마지막으로 과일 깎아 먹을 작은 칼 구입.
07년 8월 1일(열흘째)
호텔에서 조식 후 칸딩 출발. 협곡 또 협곡. 맑은 물이다가 많이 모이면 흙탕물이 되어 마구 굴러가는 계곡. 많이 심상해졌다. 날씨는 늘 비가 오락가락. 열시 무렵 루딩교에 이르렀다.
루딩교(노정교)
쇠사슬 연결 고리
열세 가닥 이은 다리
땅과 땅, 사람과 사람
가고오고, 주고받고
사람살이 연결고리
건너편 피안엔 관음각이 우뚝
인과인가, 응보인가
제갈공명 업장인가.
쫓기던 공산당 홍군 대장정
앞 막혀 뒤 막혀 독 안에 든 쥐가
건곤일척 한판 승부
기적으로 기사회생
산화한 22명 동상으로 세워졌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는 법
궁지에 몰리면 쥐가 사람을 무는 것은
평범한 진리.
아무튼
하늘은 모택동을,
중국은 공산당을 선택하였다.
해라구 빙하
점심을 먹고는 대도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정이다. 공원에서 티켓을 끊고 셔틀버스로 옮겨 타고 다시 케이블카로 올라야 하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고 산을 휘돌아 올라가는데 길은 좁고 흘러내린 돌 더미는 군데군데 방치. 그뿐인가. 한쪽은 금방이라도 돌덩이가 굴러 떨어질 것 같은데 한쪽은 천길 절벽이니 오금이 저릴 수밖에. 그런데 희한한 일. 비가 오는 중에도 안개가 걷히고 나타나는 연봉들의 모습.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들. 아, 정말 비비비비비경이었다. 비 5제곱이 아니라 10 제곱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모두들 창을 열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오금 저림도 고산증도 잊고 야단들이었다. 해라구는 공가산(7566m)의 유명한 빙하공원이다. 공가산 지역은 6,000m 이상의 고봉 20여개가 집중되어 있으며, 골짜기에는 50갈래 이상의 빙하가 있다고 가이드 까만돌이 목소리를 높여 설명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긴 곳이 해라구 빙하란다. 빙하전망대까지는 케이블카로 약 20분 올라가야 한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모두 일품이었지만 회색빛 빙하의 거대한 모습. 수많은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도 입을 벌리고 전망대에 내렸다. 정말 장관이었다. 쳐다보면 폭포 물줄기, 줄기가 일직선으로 떨어져 빙하 밑으로 숨어버리고 거대한 얼음덩이가 아가리(크레바스)를 쩍쩍 벌리고 폭포를 이루며 꿈틀꿈틀 굴러가는 듯한 모습은 가관이었다. 천천히 흐르고 있단다. 지학을 전공한 유명준 선생이 이래서 U자 계곡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고산증으로 호흡이 가빠온다. 들것에 타고 가자고 조르는 현지인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려갔다. 몇 걸음에 한 번 쉬고 호흡을 다스리고 하면서 계곡으로 내려가 빙하를 밟았다. 회색빛 빙하. 그 갈라진 틈으로 돌을 넣어보았더니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 들렸다. 미끄럼을 조심하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머리가 아찔아찔하여 올라오는데 한 번은 찡하고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오르는 길 얼음 사이사이 흙덩이에 뱀딸기가 열매를 맺고 있었다. 입에 넣어 씹어 보았다. 분명 딸기다. 변형된 봉숭아?도 보았다. 채송화 종류도 보았다. 신비로운 생명력, 끈질긴 생명력. 이 생명력을 아내에 전해야지 싶어 몇 개를 채집하였다. 호흡곤란으로 내려오지 못한 아내의 손바닥에 얹어 주었다.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나에겐 관음보살의 미소보다 더 소중한 미소.
공가산(해라구 빙하)
날렵한 봉
바위, 바위, 삼나무, 소나무
연미복 입은 신사보다 늘씬한 귀공자
飛流直下 三千丈을
가슴에도 걸고 어깨에도 걸고
선녀 사랑 몰래하다 쫓겨난 공가산.
풍우에 울고
세월에 울다
무서운 옥황상제 얼굴까지 잊은 지 오래
사랑이 식을 만도 하건만
상기도 두고 온 선녀 못 잊어
한껏 뽑아 입고
까치발 들고 선 공가산.
사랑도 병
기다림도 병
떨어지긴 쉬워도
올라가긴 힘든 것을
얼마나 아팠나 하얗게 센 머리
해라구 빙하로도 못 식힐 아픔에
몸 떨림을 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공가산 사랑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리라 마음먹고 케이블카로 하산. 희한한 일도 다 있지. 氷河, 氷川이 흐르는 저 아래 은밀한 곳에 따뜻한 물이 솟아났다. 노천 온천이었다. 온천수 수영장이 있고 그 밑으로 물의 온도에 따른 노천탕이 8곳 정도 있었다.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가 노천탕마다 일일이 몸을 담가보았다. 수영장에서 박길자 선생과 다른 남자 선생들의 수영 시합 운운하다 남자들의 기권으로 박길자 선수 우승. 그 전에 양화식 선생 다이빙 선보이다가 이마를 다쳤고, 씽크로나이즈 시연도 있었다. 피로가 풀리는 즐거운 한때였다. 오늘 저녁이 함께 술잔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지막 밤이란다. 한 자리에서 식사. 박길자 선생이 배려한 양주 시바스로 시작하여 맥주 섞어 한 잔씩 마시며 여행 소감을 곁들어 한 마디씩. 놀랍다. 하시는 말들에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어, 철학 강의 몇 시간보다 더 유익하게 느껴졌다.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한 몫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특히 박문동 후배의 분위기 아우르는 자질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소, 야소, 야야소”게임으로 마무리.
07년 8월 2일(열 하루째)
중국에서 보낸 마지막 날
푹 자고 10시에 나오란다. 바쁜 일정이 없이 청두(성도)로 이동하여 황룡고진에서 시간을 보내다 공항으로 이동하면 된단다. 어제 저녁 받은 보이차 생차 박스를 정리하여 기존 짐 속에 넣고 출발. 버스는 협곡을 따라 달렸다. 터널 앞에서 휴식. 화장실 볼일. 일행들은 벌여놓은 난전 쇼핑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시 출발. 운전기사가 소개한다는 참깨 구입. 박재화 선생님 주선으로 석이버섯 구입과 나누기. 협곡 어구 경치가 좋고 정자가 있는 모시마을에 들러 늦은 점심. 역시 서비스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손님 접대를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식사 후 잠시 휴식하면서 수박 파티. 아주 붉게 잘 익은 수박이었으나 당도는 낮았다. 다시 달려 청두의 황룡고진에 도착. 자유롭게 관람하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란다. 아내는 다시 쇼핑 시작. 나는 천천히 고성 안을 관람. 거리를 죽 내려가 성의 동쪽 끝 해자식으로 둘러 흐르는 강까지 갔다가 양화식 선생과 옆으로 꺾여진 곳에 있는 고룡사에 들렀다. 이제까지 본 티벳사원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불상과 탑으로 된 등, 천년이 넘었다는 나무. 거대함이 기를 죽임은 어디나 마찬가지. 양화식 선생과 한참을 절 안에서 시간을 보냄. 국수로 저녁. 남는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다 공항으로 출발. 총무를 맡아 수고해 주었던 이형우 선생이 아직 여정이 남아 헤어지고 안내를 맡아 수고한 까만돌과 가이드 보조 삼촌(애칭)과도 작별. 00:20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 손님 한 사람의 탑승 지연 문제로 01:00에 이륙. 잠을 청하다. 늦은 시간, 아니 이른 시간에 기내식. 기내에서 면세품 구매 시간. 아내는 양주 4병을 샀다. 술은 전혀 못하면서 술꾼 아내의 역할은 착실히 수행.
07년 8월 3일(열 이틀째, 막을 내린 날)
무사 귀국, 돌아온 일상
한국 시간 새벽 05시:00. 인천공항에 도착. 역시 제나라, 제집이 제일. 안도감에 휴! 짐을 찾고, 입국 수속. 세관 통과. 관광버스에 올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귀향길. 문경 휴게소를 지났을 무렵. 버스에 이상이 발생. 기사님과 양화식 선생이 각종 밸트를 벗기고 새로 갈고 시간을 보냄. 더운 날씨에 양화식 선생이 도와서 빨리 사태 수습. 대구 팔공산 IC에서 일행 몇 분 하차.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 포항 용흥동 도착. 포항회원 하차. 경주 도착. 아내를 보내고 우중에 뒤풀이. 마음 놓고 막걸리 마시는 걸로 동티벳 여행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튿날 술에 절여 비몽사몽간인 채로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내의 잔소리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