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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宋代)의 성리학은 주변학문과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이론의 완성을 이룬다. 이 속에서 그 이론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통괄하는 체계적인 유학적(儒學的) 설명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유학의 본령(本領)은 인간에 관한 문제이고 이 문제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이라는 두 가지 유기적인 영역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때 성리학의 내용은 치인보다는 수기라는 영역에 상당히 초점을 두고 있다. 즉 인간이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치밀한 논변이 성리학의 관심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송과 남송을 거쳐 형성된 성리학은 그 이론 정립과정에서 인성론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과 만물을 포괄하고 있는 우주삼라만상에 대한 구성원리를 이해함으로써 그러한 모델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성구조에 까지 통일적으로 적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주역}에 대한 관심과 천착은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역}의 추상적인 문구는 그 해석의 여지가 상당히 넓었고 유학에서 요구하는 천지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일적이고 일관된 설명을 가능케 해주었다. 즉 송대에 이르러 유학의 존립을 위협하던 불교의 이론에 대항하여 성리학이라는 이론체계를 완성하게 되는 배경에는 당시까지의 전반적인 추세였던 {주역}에 대한 상수적 해석에서 의리적 해석으로의 전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고려말에 주자학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면서 조선성리학의 전개와 발전은 송대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전개되기에 이른다. 주자에 의해서 정립된 성리학의 체계는 자연을 이(理)와 기(氣)라는 두 가지 범주로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이해는 조선의 경우 세계관을 달리하는 일련의 학자들이 배출되긴 하였지만 송대에 이미 그 기본 틀이 완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송대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모델 중에서 한 가지 씩을 채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세계관에 대한 조선 중기까지의 독창적인 이론 모색은 그다지 주목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주자는 상당한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연관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면을 인간에게도 통일적으로 적용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을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이론 분화의 가능성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소지가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볼 때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노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조선조에서 활발히 논의된 성리학의 연구방향은 성립과 발전과정을 겪었던 송대의 경우와는 달리 이미 정립되어진 성리학의 체계를 통해 인성론에 대한 관심의 심화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경향은 조선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절대화되어가는 성리학의 지위와 연관시켜 볼 때 인간 심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 수양의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자연에 대한 이해는 부차적인 것이었으며 인간 심성에 대한 이해가 보다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유학에서 탐구하고 있는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자연의 의미로 사용된 예를 성리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 이러한 인성(人性)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토론은 퇴계와 고봉의 8년에 걸친 논변으로 본격화된다. 당시에 주로 논의된 문제는 사단과 칠정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논의였다. 하지만 사단과 칠정 그리고 인심과 도심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그 개념분석을 전개하게 된 것은 우계와 율곡의 9차례에 걸친 서신을 通해서였다. 즉 보다 포괄적이고 심도 깊은 인성에 대한 이해는 퇴계와 고봉의 論辯을 바탕으로 한 우계와 율곡의 논변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성에 대한 이해도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유래와 그 전개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에 대한 우계와 율곡의 논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전거가 되고 있는 주자의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양자(兩者)는 주자가 전개하고 있는 성리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에 주자의 성리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성리학은 태극(太極) 이기(理氣) 음양 (陰陽)이라는 범주로써 자연을 설명하고 심(心)ㆍ성(性)ㆍ정(情)이라는 범주로써 인간을 해명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자의 성리설을 공맹유학(孔孟儒學)과 달리 성리학, 이학(理學)또는 신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구분을 지우는 이유는 기존 경전에서 체계화 해내지 못한 부분을 이기론을 골자로 하여 심성론으로 까지 전개시킴으로써 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자는 산재해 있는 유가경전의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탐구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탐구는 가경전에 상당히 많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주자 자신도 기존의 유가이론을 자신의 체계 속에서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심과 도심, {예기} [예운(禮運)]편에서 말하는 칠정, {맹자} [공손추(公孫丑)]에 나오는 사단에 대한 설명 등은 모두 심성에 대한 논의들이다.
주자는 도통(道統)을 중시하는 철저한 유자(儒者)였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성리설은 유가경전에서 말하는 이론들을 소화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주자는 성리학의 범주 속에서 앞에서 언급한 사단칠정, 인심도심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이정(二程) 특히 정이천(程伊川)의 견해를 상당히 많이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이천이나 주자 역시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에 관해서 자신들의 성리설을 통해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조선조 성리학자들에게 관심을 일으키면서 조선학계에서 오랜 기간동안 관심사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우선 유가경전에 나타난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고 이러한 설명이 주자의 성리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단은 맹자 성선설의 골간을 이루는 범주이다. 그는 인간의 육체적인 면을 소체(小體), 정신적인 면을 대체(大體)라 하고, 소체적인 면에서는 인간이나 동물이 별 차이가 없으나 대체적인 면에서는 인간의 독특함 내지 우수성이 있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선을 지향하는 경향성이 있고, 이것이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시켜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로서 사단을 들고 있다. 즉 사람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인ㆍ의ㆍ예ㆍ지라는 사덕(四德)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덕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선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주자는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는 정(情)이고 인ㆍ의ㆍ예ㆍ지는 성(性)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자는 성(性)과 정(情)의 구분을 발(發)과 미발(未發) 즉, 체와 용의 관계로 본다. 즉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정이며 그 정은 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성이 발하게 되면 기질(氣質)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의 본연이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정은 이치에 맞을 수도 있고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선(善) 또는 불선(不善)의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정의 총칭을 칠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예기}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칠정이란 단지 일곱 가지로 인간의 심리 상태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칠정은 단지 일곱 가지로 한정한 인간의 심리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의 모든 감정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사단도 역시 인간의 심리상태임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사단도 역시 인ㆍ의ㆍ예ㆍ지라는 성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역시 정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주자의 제자가 한 질문 중에 사단과 칠정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맥락으로 질문하는 곳이 {주자어류}에서 보이는데 주자는 여기에 별도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더라도 사단과 칠정은 같은 정의 범주에 속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사단과 칠정은 그 명칭이 다르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즉 칠정의 상태는 분명 측은해하고, 동정하고, 불쌍해하는 소위 휴머니즘과도 다르고 양보하고 물러서주고, 겸손해하는 등의 신사도나 세련된 마음과도 다르고 자신의 못난 점을 부끄러워하고 남보다 못한 것을 인정하는 등의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으려 하고, 틀린 점을 가려내려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하는 마음과도 다른 마음의 상태이다. 분명 이런 사단의 마음은 기쁨, 슬픔, 노함, 즐거움 등 칠정의 마음과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퇴계는 칠정과 사단의 마음을 엄격히 구별하려 했고 (실지 칠정과 사단과는 다른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고봉은 " 논리상 구별할 수 있을 뿐이지 두 가지 다 한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여 구분 지을 수 없다 " 하였다. ( 이것도 실제 그렇다. ) 퇴계는 어떻게든 인간본연의 순수한 理인 性과, 氣에 영향 받은 情의 상태를 구분하려했고 고봉은 설사 그렇더라도 그 구별이 심하기 때문에 후인들에게 끼칠 영향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또한 율곡은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있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없다 하였다.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있지만 성현이 편의상 그리한 것일 뿐 칠정 속에 사단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퇴계와 고봉이 오랜 기간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논변을 한 것도 모두 사단과 칠정의 성격과 유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심도심에 대한 주자의 성리학적 이해는 유가의 도통론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 보인다. 인심과 도심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혹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근원하니 그것을 알아서 깨닫는 것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은 위태하여 안정되지 않고 혹은 미묘해서 알아보기 어려울 뿐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인심과 도심을 형기(形氣)와 성명(性命)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도심이란 성명의 올바름에서 근원하는 것으로 미묘해서 알아보기 어려우며 인심이란 사람이 형기를 가짐으로써 생겨나는 것으로 위태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주자는 이 두 가지 형태의 心을 올바르게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러한 형체가 없는 이가 없기 때문에 비록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다. 역시 이러한 성품도 없는 이가 없기 때문에 비록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심이 없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가 심에 섞여 있어서 그것을 다스릴 줄 모르고 보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미묘한 것은 더욱 미묘해져서 천리(天理)의 공정함이 마침내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밀히 함이란 둘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는 것이며 한결같이 함이란 그 본심의 정을 지켜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종사하여 조금이라도 끓어짐이 없이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언제나 한 몸의 주인이 되게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항상 도심의 명령을 따르게 하면 위태로운 것도 편안해지고 미묘한 것도 나타나게 되어 동작과 말하는 것에 자연히 과불급(過不及)의 어긋남이 없게 될 것이다.
주자가 생각하기에 도심이란 천리의 올바른 마음이 그대로 발현된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인심이란 악으로 흐를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서 위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심과 도심은 현우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인심에 대한 경계는 인심이 악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주자 자신이 학문적으로 가장 추존하고 있는 이천(伊川)의 견해와는 사뭇 다르다. 이천은 인심을 곧바로 인욕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심은 사욕(私欲)이고, 도심은 정심(正心)이다. 위태함은 편치 못함을 말한 것이고 미묘함은 정미한 것을 말한 것이다. 오직 그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정밀히 하고 한결 같이 해야 한다. 유정유일(惟精惟一)이란 것은 오로지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해야만 비로소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다. 중이란 지극한 곳이다. 따라서 이천에게는 인심이란 인욕과 마찬가지로 없애야 할 대상으로 파악된다. 천리, 즉 도심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욕이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천의 견해에 대해서 주자는 병통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심이 인욕이라는 이 말은 문제가 있다. 비록 상지(上智)라도 이것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어찌 모두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는 오로지 사람은 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인심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렇지 않음을 알겠다.
인심은 형기(形氣)에서 나오니 어떻게 없앨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성명(性命)의 이(理)에 밝지 못하고 오로지 형기의 시키는 바를 하게 되면 인욕에 흐르는 것이다. 만약 성명의 이에 도달하면 비록 인심의 작용이라도 도심이 아님이 없을 것이니 맹자가 형색(形色)을 천성이라고 한 까닭이다. 만약 도심을 천리라 하고 인심을 인욕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두 개의 심(心)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단지 하나의 심이 있다. 다만 도리를 지각하는 것은 도심이요, 성색취미(聲色臭味)를 지각하는 것은 인심이다. 이것으로부터 살펴보면 주자의 인심에 대한 견해는 이천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긍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인심은 형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없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자체에 선악의 문제를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단지 악(惡)의 가능성으로서의 인심인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마치 사단칠정의 논의에서 칠정의 성격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선과 불선의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칠정과 인심은 그 성격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주자의 입장에서는 인심과 도심은 모두 이발(已發)한 정(情)으로 파악된다. 도리를 지각하고 성색취미(聲色臭味)를 지각하는 것은 분명히 성의 영역은 아니며 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미 발한 정을 도심과 인심으로 규정하여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심은 하나일 뿐이고 따라서 도심과 인심도 그 하나에서 근원되는 두 가지 지각처라고 할 수 있다. 주희는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입에 대한 맛, 눈에 대한 색, 귀에 대한 소리, 코에 대한 냄새, 사지(四肢)에 대한 안일(安佚) 등과 같은 물성(物性)을 인심이라고 정의함에 대하여 부자관계에서의 인(仁), 군신관계에서의 의(義), 빈주관계에서의 예(禮), 현자에서의 지(知) 등 의리적인 것을 도심이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인심이 악으로 흐르기 쉬운 반면 도심은 순선무악한 것이어서 인심을 이끌어 선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용까지 겸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의 성리설에서 심이란 지각작용을 일으키는 대두뇌처이다. 이러한 지각작용으로 성과 정을 통섭한다는 것이 바로 심통성정설인 것이다. 하지만 주자는 이 외에도 의(意)라는 개념을 심에 부가시키고 있다. 지(知)와 의(意)는 마음에서 나온다. 지는 식별함을 위주로 하고 의는 영위함을 위주로 한다. 지는 성(性)과 체(體)에 가깝고 의는 정(情)과 용(用)에 가깝다. 즉 주자는 의지작용으로서의 의를 심의 또 다른 역할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주자가 {대학}의 [성의장(誠意章)]에 대한 설명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렇게 의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있는 것은 후에 율곡이 도심과 인심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채용된다.
성리학의 이론분화 가능성
주자 이기론의 대전제인 '이기불리부잡(理氣不離不雜)'의 원칙은 자연에 대한 설명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주자의 이기론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불리부잡(不離不雜)의 입장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事實)의 문제와는 달리 가치(價値)의 문제 즉 인간의 심성에 관한 문제로 전이가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존재론에서 대등한 지위에 있던 이기관계가 선악과 연관을 맺게 되면 상대적으로 기(氣)의 위상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근원<인욕(人欲)>을 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 연관하여 이(理)의 위상도 문제가 된다. 존재론에서 소이연(所以然)에 해당되던 이(理)가 소당연(所當然)의 리로 환원되면서 그 기능상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규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주자가 이와 기에 대해서 일관성이 결여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일관된 이해 즉 존재론과 인성론의 통일을 모색하였지만 이론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시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성리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단ㆍ칠정론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비롯되었다.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이 지은 [천명도]를 퇴계에게 보였는데 그 가운데에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는 문구에 대해서 퇴계는 "사단은 리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라<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는 호발설(互發說)을 내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 고봉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퇴계에게 서신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약 8년에 걸쳐 논변이 진행된다. 원래 사단칠정을 이기에 분속시키는 것은 중국에서는 주자가 이미 그와 같이 하였고 뒤에 정경과 정복심 등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추만ㆍ퇴계 이전에 권양촌(權陽村)의 {입학도설} 중에 이미 보이고 또 성종 때 경연 신하 가운데 이파(李坡)가 "사단의 발(發)은 다만 이 이(理)가 있을 뿐이다"라 한 적이 있었으며 그 후 유진일재(柳眞一齋)가 찬한 {대학잠(大學箴)}과 {성리연원제요(性理淵源提要)}에도 역시 사칠(四七) 분대(分對)의 견해가 있었다. 말하자면 사칠 분대는 이기이원론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봉의 견해로는 사단칠정은 모두 정(情)이고 칠정(七情) 밖에 따로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사단칠정을 이기(理氣)에 분속시키면 이와 기를 독립된 별개의 사물로 보게 되기 때문에 사단 속에는 기가 없고 칠정 속에는 이가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발(理發)'이라는 개념도 성리학의 이기설에서는 기본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에 고봉의 생각으로는 퇴계의 설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고봉은 사단도 역시 정이기 때문에 칠정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퇴계는 고봉의 의견과 견해를 달리 하였다. 우선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여 말하는 바에 따라서 구별이 없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정에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있는 것은 성에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구분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性)에서 이미 이와 기로 나누었다면 정(情)도 그 소종래(所從來)와 소주(所主)에 따라서 이와 기에 분속 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즉 사단과 칠정을 그 성격에 따라서 서로 분대시키고자 하는 것이 퇴계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퇴계는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심에 비해 우위에 있는 도심으로써 인심을 절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구체적 실현방법으로서 거경(居敬)을 중시하게 된다.
서신이 몇차례 왕복된 후 퇴계와 고봉은 표면적으로 이론적 합치점을 찾기는 하였으나 결국 서로의 입지점을 고수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앞에서 말한 문구를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여 탄 것<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이라고 정리하게 된다. 퇴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존에 주장하던 소종래에 따라 구분하는 태도를 견지한 반면 고봉이 제기했던 이와 기를 별로의 사물로 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 고봉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발이라는 문제점은 보류한 체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원칙에 충실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퇴계와 고봉의 시각차이가 완전히 일치하여 타협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 퇴계와 고봉의 견해는 당시 학자들에게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 결국 퇴계와 고봉 사이의 논변은 성리학 내의 이론 분화 가능성을 단적으로 시사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 선상 위에서 우계와 율곡 사이에도 논변이 진행되는데 역시 앞서 말한 문제의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퇴계와 고봉의 논변과는 달리 우계와 율곡 사이의 논변은 좀더 그 범위가 확장된다. 퇴계와 고봉사이에 진행되었던 논변은 사단과 칠정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이기(理氣)에 대한 문제가 그 전제로서 논의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인심과 도심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었지만 그 중심과제는 사단과 칠정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에 우계가 율곡에게 던진 질문은 이와는 달리 인심과 도심의 문제가 어떻게 사단과 칠정의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약 인심과 도심을 사단과 칠정의 관계와 같이 볼 수 있다면 퇴계가 말한 이발의 문제점도 수긍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율곡의 입장은 오히려 고봉의 견해와 그 축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 양자(兩者)가 주장하고 있는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계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
우계와 율곡 사이의 논변은 우계가 먼저 퇴계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문제로 의문을 제기하면서 비롯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계가 율곡에게 한 질문에는 사단칠정과 함께 인심도심의 문제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계의 문제의식은 율곡에게 보낸 제1서신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제2서신에서 그 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가 묻는 것은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의미와 뜻이 같은가 같지 않은가를 알아서 이와 기가 서로 발한다<理氣互發>는 이론이 과연 이에 부합되는가 부합되지 않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이 모두 이발(已發) 즉 성이 아닌 정의 영역에서 나뉘어 진다고 한다면 인심도심을 구분하듯이 사단칠정을 구분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계가 생각하고 있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정의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논의의 관심은 인심도심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계가 가지고 있는 사단칠정에 대한 생각은 인심도심에 비해서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겨진 서한을 통해서 우계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계는 퇴계의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서 사단칠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제 사단칠정도(四端七情圖)를 만들면서 이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한다고 하면 무슨 잘못된 것이 있겠는가? 이와 기가 호발(互發)함은 천하의 정리(定理)라서 퇴계의 견해도 또한 스스로 정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가 따른다<氣隨之>하고 리가 탄다<理乘之>는 말은 정말 너무 길게 끌어대어 논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는 사단과 칠정을 대거(對擧)하여 말한다면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본다면 퇴계의 호발설(互發說)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수지(氣隨之)라는 말과 이승지(理乘之)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으며 추만이 [천명도]를 지었을 때 썼던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는 말이 오히려 적절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즉 우계의 주장은 사단과 칠정을 대거(對擧)해서 보아야 한다는 면에서는 퇴계에게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계가 퇴계의 호발설을 이해하는 방식은 퇴계의 생각과는 달랐다. 제2서신에서는 성에서 주기(主氣)와 주리(主理)를 구분하듯이 정에서 주리와 주기로 구분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퇴계의 견해에 동의를 하는 듯이 보였지만 제6서신에서는 기발(氣發) 이후만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미발일 때에는 비록 이기가 각각 발용 하는 묘맥이 없다 하더라도 처음 발할 즈음에 의욕이 동(動)하는 것은 마땅히 주리나 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은 각각 나온다는 것이 아니요, 한 가지 길에서 그 중한 쪽을 취하여 말한 것이다. 이는 곧 퇴계가 말한 호발의 뜻이다.
사단과 칠정 모두 발하기 이전에는 이를 주로 하는 것<主理>과 기를 주로 하는 것<主氣>으로는 나뉠 수 없지만 발용한 이후에는 나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계는 이러한 의미로 퇴계의 호발설을 이해하고 있다. 즉 발하기 이전에는 율곡이 말한 바와 같이 둘로 나누어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발한 이후에는 다만 한 물건으로 같이 뭉쳐 있으나 이를 주로 하고 기를 주로 하며 안에서 나오고 밖에서 감응되어 먼저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의미에서 퇴계의 대거 방식이 옳다는 것이다. 호발설이란 이와 기가 각각 발한다는 의미이다. 퇴계가 처음 추만의 [천명도]를 수정했을 때의 기본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였다는 점을 보아도 퇴계의 호발이란 주리(主理)ㆍ주기(主氣)를 넘어선 이의 능동성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계가 보는 호발이란 단지 주리ㆍ주기라는 면으로 이해된다. 우계가 고민은 퇴계의 견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인심과 도심에 대한 나뉨과 연관시켰을 때 주리와 주기로 논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대거(對擧)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계는 호발설을 비판한다.
퇴계의 호발설은 도를 아는 사람이 보면 오히려 이것을 잘못 알까 우려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람을 오도(誤導)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사단·칠정을 이기의 자리로 나누고 이기 양자가 각각 발하여 나머지가 따르고 탄다고<兩發隨乘> 단락을 나눈 것은 말의 뜻이 순조롭지 못하고 명리(名理)도 온당하지 못하니 이것이 내가 퇴계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호발설에 대한 비판은 첫째로 기가 따른다<氣隨之>하고 리가 탄다<理乘之>는 말을 사용하여 너무 길게 끌어대어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로 이와 기가 각각 발용한다고 하여 단락은 나눈 것은 논리상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인심과 도심에 대한 견해 역시 이러한 인식 위에 자리하고 있다.
우계의 목적은 인심과 도심의 정의문제가 오히려 더 시급한 과제였다. 인심과 도심이 정리가 된다면 사단칠정과의 관계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계는 퇴계 호발설의 진위여부에 대해서 상당한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호발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내심 대거라는 방식에 대해서 발한 후의 나누어짐이라는 의미에서 긍정하는 태도는 이 경향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퇴계의 호발설에 대한 관심과 천착은 인심도심설의 전개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개된다. 지난 날 주자의 인심도심의 학설을 읽어 보았더니 혹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기고 혹은 (성명의 올바름에서) 근원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은 퇴계의 뜻과 합치된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여 보건대 그에 대한 허다한 논의가 없었던 순임금의 시대에도 이미 이 이기호발의 학설이 있었다면 퇴계의 논리는 바뀔 수 없는 논변이다. 옛 것을 버리고 이것을 돌이켜 따르고자 한다. 그러므로 감히 당신에게 발문하는 것이다. 인심도심과 사단칠정의 명리(名理)를 억지로 비교하여 같게 하거나 이것을 끌어다가 저것에 合致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계는 본래 퇴계의 설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주자의 [중용장구서]에서 인심과 도심을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이 퇴계의 설과 유사함을 발견하고서 율곡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신을 왕래하는 과정에서 우계는 율곡의 설에 어느정도 인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율곡에게 대설의 혐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에 이른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번에 보내 준 장서에 "문을 나설 때에 혹 말이 사람의 뜻을 따라 가는 경우도 있고 혹 사람이 말의 발이 가는 대로 맡기고서 나가는 경우도 있는바 말이 사람의 뜻을 따라 나가는 것은 사람에 속하니 곧 도심이요, 사람이 말의 발이 가는 대로 맡기고서 나가는 것은 말에 속하니 곧 인심이다" 라고 하였으며, 또 "성인도 인심이 없을 수 없으니 비유하면 말이 지극히 순하다 하더라도 어찌 간혹 사람이 말의 발이 가는 대로 맡기고 문을 나설 때가 없겠는가" 라고 하였다. 나는 이 몇 구절을 연구해 보니 모두 양변설(兩邊說)로 말씀한 것이어서 다만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일변만 있다는 말씀과 약간 달라 점차 옛 사람의 설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크게 의아해했다.
율곡이 전제로 한 기발이승의 이론이 人馬를 비유로 든 논의와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모두가 기발한 것이고 거기에 이가 탄다고 말하고서 다시 말과 사람의 뜻으로 구분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심이 발하는 것은 기이지만 성명이 아니면 도심이 발하지 못하고 인심의 근원은 성이지만 형기가 아니면 인심이 발하지 못하니 도심은 성명에 근원하고 인심은 형기에서 생겨난다는 말이 어찌 순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계 역시 동의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단칠정의 문제에서는 퇴계의 호발설을 대거라는 의미에서 주리와 주기라고 이해하였지만 인심도심의 문제에서는 율곡과 같이 일심(一心)에서 연유하는 것으로서 이와 기로 분대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사단칠정의 경우와 같이 발(發)과 미발(未發)의 구분을 통해 논의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 있다.
사람이 이를 살핀다는 것은 그 이발한 뒤로 말미암아 선과 악이 따라서 나누어진 바 그것이고 그것을 명명하여 가로되 이와 같은 성(性)이 발하여 선(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요 이와 같이 기(氣)가 가지런하지 아니하여 악(惡)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살펴 본다면 다만 갓 발동할 즈음에 문득 이를 주로 하고 기를 주로 하여 같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요 원래부터 서로 발하여 각각 용사(用事)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를 보고 기를 본 것으로 각각 그 중한 것으로써 말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구한다면 당신이 가르치고 깨우쳐 준 것에 위배되지 아니할 것이다. 즉 이와 기의 관계는 발동하기 이전과 발동한 후의 경우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동하기 이전의 상태는 이기혼연의 상태로 파악한다. 그리고 발동한 후에 이르러서는 이를 주로 하는 경우와 기를 주로 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인심도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은 반드시 기가 발함에 이가 타고 다른 길이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반드시 미발(未發)일 때에는 비록 이기가 각각 발용하는 묘맥(苗脈)이 없다고 할지라도 처음 발할 즈음에 의욕(意慾)이 동하는 것은 마땅히 주리(主理)ㆍ주기(主氣)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각각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곧 한 가지 길에 나아가서 그 중함을 취하여 말한 것이다. 인심과 도심은 모두 정의 영역으로서 그 이전 즉 미발일 때에는 혼륜한 상태로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발한 만큼 주리와 주기의 구분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우계에서 이발과 기발의 의미는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구분은 이발의 상태에서만이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에 퇴계가 그 소종래를 구분하여 논한 것과는 달리 우계는 이발의 경우와 미발의 경우를 각각 구분하여 이발의 경우는 퇴계의 대거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미발의 경우에서는 율곡의 일도설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氣發理乘一途說에 대해서도 율곡과 견해를 달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이 전후로 부지런히 깨우쳐 주면서 다만 "성정 사이에는 기발이승일도만 있을 뿐이요 이 밖에는 딴 사물이 없다고 하였는데 제가 이 편지를 받고서 어찌 그대로 수용하여 깨닫기 쉬운 학설로 삼지 않으려고 하겠는가마는 성현들의 옛 말씀을 참고해 보면 모두 양변설을 주장하여 당신의 고견과 같지 않으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계는 사단칠정과 인심도심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러한 문제의식은 왕복서한 전체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후기의 서한에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처음 율곡에게 보낸 서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계는 왕복서한 전체의 논의에서 전제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이제 도심을 사단이라 하는 것은 옳으나 인심을 칠정이라 한다면 옳지 않다. 또 사단칠정은 성에서 발한 것을 말함이요 인심도심은 심에서 발한 것을 말함이니 그 명목과 의미 사이에 조금 같지 않음이 있다. 도심을 사단이라고 보는 견해는 일찍이 주자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단은 온전한 선이고 도심 역시 그렇다고 볼 때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주자의 견해를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우계는 사단을 도심에 그리고 칠정을 인심에 분속시키면서도 도심을 사단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사단은 천리가 드러난 단서만을 가리키는 것이나 도심은 마음의 시종과 유무를 관통해서 가리키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성에서 발한 사단칠정과 심에서 발한 인심도심은 발용처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우계는 인식했다. 성에서 발한다는 것과 심에서 발한다는 의미는 인식단계로 봤을 때 심에서 발하는 것이 보다 나중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간적인 선후문제로 단순히 이 관계를 제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논리적인 선후관계로 따져 볼 때에 성의 발은 심의 발보다 앞선다고 보는 것은 무방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은 모두 넓은 의미의 정(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인식의 최종 단계를 도심과 인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
이발에 대한 문제점은 고봉이 처음 퇴계에게 서신을 보낼 때에 제기한 문제였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이발에 대한 문제는 고봉이 인정을 하는 수준에서 일단 정리가 되었다. 이보다는 사단과 칠정을 포함관계에서 이해할 것인가 상대적인 관계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었다. 여기에 반해 이이는 이발이라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형이상자(形而上者)요, 기는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 두 가지 것은 능히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이미 서로 떨어질 수 없다면 그 발용(發用)은 하나이니 서로 발용 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서로 발용 함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이가 발용 할 때에 그 기가 혹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氣가 발용 할 때에 이가 혹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기는 이합(離合)이 있고 선후가 있을 것이요 동정(動靜)에 단서가 있고 음양(陰陽)에 시작이 있을 것이니 그 잘못이 적지 않을 것이니라. 이이는 기본적으로 이의 능동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퇴계가 주장했던 이발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긍정할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활동하고 운행하는 것은 모두 기(氣)의 영역인데 만약 이(理)를 또 활동의 주체로 본다면 이것은 두 가지 단서가 이기에 공존하는 것이 되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선현들이 성을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으로 나누게 된 동기도 역시 부득하게 나온 것이지 본래 성에 두 가지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율곡에게는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氣發理乘>' 한가지 원리만을 인정한다. 나아가 사단과 칠정도 역시 기질과 본연의 차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한다. 사단과 칠정은 바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와 같다.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하지 않고 말한 것이요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한 것이다.
율곡은 고봉의 견해와 같이 사단과 칠정이 서로 포함관계에 다고 설명한다. 즉 기질지성에 기뿐만이 아니라 이도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과 같이 칠정 안에도 사단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율곡은 자연의 모습을 이의 원리에 의해서 기가 운행하는 모습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인간도 역시 운행하는 것은 기일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인간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에 이화(理化)와 기화(氣化)의 구별이 없듯이 인간에게도 이발이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기발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기발이승(氣發理乘)이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즉 칠정이니 사단이니 하는 구분은 지선(至善)의로서의 사단이 선불선(善不善)의 가능성을 가진 칠정에 포함된다고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상대하여 논한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심과 도심에 대해서는 양자를 상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장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감동할 때에 인(仁)에 있으려 하고 의(義)를 행하려 하고 …… 친구에게 선행을 간절히 권면하려는 이러한 것은 도심이라고 이르니 감동한 것은 본래 형기이지만 그 발한 것이 인ㆍ의ㆍ예ㆍ지의 정리에서 곧바로 나왔으므로 이를 위주로 하여 이것을 도심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려 하고 추우면 옷을 입으려 하고 …… 사지는 편안하기를 원하는 이러한 것들을 인심이라고 이른다. 그 권원은 비록 천성(天性)에서 나왔으나 그 발하는 것이 이목(耳目)과 사지(四肢)의 사정(私情)에서 나왔으므로 기를 위주로 하여 그것을 인심이라 하는 것이다.
율곡은 사단칠정의 관계와 인심도심의 관계에 차이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단과 칠정은 서로 포함관계로서 칠정 안에 사단이 포함되지만 인심과 도심은 상대적인 구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도심은 도의를 위해 발하는 것이고 인심은 구체를 위해 발한다는 것이다. 윗 글의 내용으로 살펴보았을 때 도심과 사단은 지선으로서 같은 의미로 보여 진다. 마찬가지로 칠정과 인심도 선(善)과 불선(不善)이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성격으로 보인다. 그런데 율곡은 사단과 도심은 같은 맥락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칠정과 인심은 사단과 도심의 관계와 같이 연결되기에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인심과 도심은 곧 형기에서 나오고 혹은 도의에서 나와 그 근원은 비록 하나이나 그 말류는 이미 갈라졌으니 이것을 양변(兩邊)으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단과 칠정은 그러지 않은 점이 있다.
사단은 칠정의 선한 일변(一邊)이고 칠정은 사단의 총회(總會)이니 일변을 어찌 총회와 양변으로 나누어 상대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즉 범주상으로 인심과 도심은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사단과 칠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율곡은 처음에 인심이었던 것이 도심으로 될 수도 있고 도심으로 시작하였더라도 인심으로 끝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사람의 마음이 성명의 마음에서 바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혹시 그것을 능히 따르고 완수하지 못하고 여기에 사의(私意)가 섞이게 된다면 이는 처음은 도심이다가 끝에 가서는 인심이 되는 것이다. 혹 형기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바른 이치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곧 진실로 도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혹 바른 이치에 그슬려도 그 잘못을 알아서 억제하고 눌러서 그 욕심을 따르지 아니하면 이것은 처음에 인심이다가 끝에 가서는 도심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곡이 인심과 도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대치하게 되는 배경에는 인심도심을 일반적인 정의 범주에 또 다른 범주를 설정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이 곧바로 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심과 도심은 '정(情)'과 '의(意)'를 겸하여 말한 것이요 정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칠정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이 이 일곱 가지가 있음을 통틀어 말한 것이요 사단은 칠정 가운데에서 그 선한 일변을 가려 말한 것이니 이는 본래 인심과 도심처럼 상대적으로 말한 것과는 같지 않다. 또 정은 마음이 발하여 나온 그대로이고 헤아리고 비교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이니 이는 또 인심과 도심처럼 서로 처음과 끝이 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사단칠정은 모두 정으로서 느낀바 그대로라고 본다면 인심도심은 그렇게 느낀 것에 대해 사려하고 판단하는 기능인 의(意)가 덧붙여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율곡에게는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율곡의 성리설은 우계와의 차이를 든다면 상대적으로 가치보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의 장점은 자연의 사실세계와 인간의 가치세계를 현실성에 무게를 두어 통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인간에게 필요한 선에 대한 요청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율곡은 사단칠정과는 달리 인심과 도심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나뉘어 질 수 있기는 하지만 인심의 도심화라는 서로의 이행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선에 대한 당위적 요청의 창구를 마련한 것이다.
기가 용사(用事)함을 알고 정하게 살펴서 정리(正理)로 좇아간다면 인심이 도심에게 명령을 듣는 것이요 정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오직 마음이 향하는 데로 놓아둔다면 정이 이기고 욕(慾)이 성하여 인심은 더욱 위태롭고 도심은 더욱 미미해진다. 정밀하게 살피는 것과 살피지 않는 것은 모두 의(意)의 소행이므로 스스로 닦는 공부는 성의(誠意)보다 먼저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율곡이 의라는 개념을 포함시켜서 인심과 도심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인간은 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해야 된다는 당위성은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당위성을 찾는 방법은 끊임없는 수양으로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성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에 의 개념을 도입하는 견해는 주자의 전거(典據)를 따른 것이지만 인심과 도심의 정의에서 의 개념을 사용하여 사단칠정과 구분하는 것은 특기할만하다고 할 것이다. 즉 성의라는 방법이 인간에게 절실하게 되는 까닭은 도심(道心)을 인심화(人心化)하는 수양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이이의 인심도섬설이 성혼의 인심도심설과 달라지는 곳이다. 즉 이이는 인심도심이란 서로 발단하는 것은 다르나 그 과정에서 상호 관련에 따라 처음과 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심도심 자체는 본래 다른 방향으로 지향하려는 양면적인 심인 만큼 서로 내포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이다. 이와 달리 사단과 칠정의 경우는 사단은 칠정을 포함할 수 없으나 칠정은 능히 사단을 포함한다고 하여 서로 상대적으로 대치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이이의 논지였다. 이러한 경향은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다만 현실적으로 발할 때 양단이 있음만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誠意를 강조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논쟁의 의의
이상으로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유래와 그에 대한 주자 성리설을 살펴보았으며 조선조에서 본격적인 인성론 논의라 할 수 있는 퇴계와 고봉의 논변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러한 논의들은 우계와 율곡의 논변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각각 이론의 전거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정리가 가능하다. 우계와 율곡의 논쟁은 성리학<주자학>의 인성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논의였다. 따라서 우계와 율곡의 논쟁은 모두 주자의 성리설의 전제 위에서 진행된 논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자가 완성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일적인 이론체계에는 인간의 심성에 대한 상이한 이론전개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즉 형이상(形而上)의 원리로서의 이(理)와 형이하(形而下)의 존재로서의 기(氣)로 설명되던 자연과는 달리 인성에서는 도덕적 가치의 부여라는 의미에서 이(理) 범주가 채용되었고 여기에서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선에 대한 당위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이 범주가 확대되고 나아가 이의기능에 대해서 명료하지 않은 오점을 남기게 되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이 이러한 문제 선상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고 우계와 율곡의 논쟁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 선상의 연장이었던 것이다. 우계는 퇴계의 호발설에 대해서 기가 직접 발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만 발하는 묘맥이 있을 때부터는 이와 기를 대거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퇴계의 호발설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사단과 칠정을 분대하여 바라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인심과 도심도 사단칠정에 대한 분대방식을 고수하였다.
우계에게서 인심과 도심은 서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성격상의 문제였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전이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심과 도심은 심에서 발한 것이고 사단과 칠정은 성에서 발한 것으로 차이가 난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심과 도심을 심의 범주로 그리고 사단과 칠정을 정의 범주로 구분하여 본 것이다. 즉 그렇게 보는 방식이 선에 대한 확보가 용이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우계는 퇴계의 호발설에 대해서 그 이론의 정합성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선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문제에는 충실하였다는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계의 고민이 엿보인다.
우계가 가치와 사실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서 가치에 비중을 두었다면 율곡은 가치와 사실 어느 하나에도 치우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이기론의 전통적인 견해를 통해서 인성론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율곡에게는 인성도 마찬가지로 기질의 범주로 파악되었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에서는 서로를 포함관계로 보고 있지만 인심과 도심은 개념상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관계는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다른 성격의 심을 규정한 것일 뿐 一心에서 유래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즉 율곡은 사단이 칠정에 포함된다고 말함으로써 비롯될 수 있는 선에 대한 당위성의 확보를 인심과 도심의 정의에서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심과 도심을 사단칠정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정(情)과는 별도로 의(意)가 인심·도심에는 첨가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을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인심을 도심화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본 것이다.
성리학의 인성론은 지식이면서 실천이라는 둘이면서도 하나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결합된 상태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은 논리적인 정합성을 요구하는 면도 있지만 과거의 유학자들은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성에 대한 탐구는 그 실천적 수양을 위한 이론적 뒷받침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물리적으로 정합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륜과 마찰을 빚게 되는 경우 이 물리적인 정합성에 대한 의심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그러한 경향성을 충분히 설명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계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율곡이 인심도심을 사단칠정의 정의와 달리 해석하는 이유도 이러한 경향성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 이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이론을 몸소 실천하는 데에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이렇게 정립된 이론체계는 이론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이었다. 즉 자신은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강인한 신념이 성리학에는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그토록 열성적으로 변론하고 비판하는 과거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측면을 배제하고서는 그저 관념적인 논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가치를 지향하는 성리학은 어떠한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惡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대처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우계와 율곡의 논변이 조선조 성리학 전개의 특성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평가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한 것이고 이러한 면이 우계와 율곡이 전개한 논쟁의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 론
주희는 현상세계에 대한 객관적 해석을 끌어내려는 입장에서 理氣의 동정을 규정 했다기보다는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理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퇴계는 性과 理를 관련시키며 더욱 理를 순수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려 했었다. 인간은 순간순간마다 크고 작은 판단을 하며 살고 있다. 이때 인간은 무엇인가에 근거를 두고 현상을 인식하고 주관적, 객관적인 가치판단도 한다. 현상과 접하여 순간적으로 어떠하다는 판단을 내리거나 묵살하거나 하는 생각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이⌟라고 하였다. 가이는 잠재된 의식, 무의식에서 의식이 되는 과정이자 순간이다. 기준 판단에 방향을 설정하여 주는 것, 그것은 그 인간의 미래일 것이다. 앞날의 예측이 인간이 행하여야 할 것, 가야 할 길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개인적인 환경, 주변 여건, 경험 등과 맞물리어 분명 지극히 주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이는 이 기준이 이루어지는 상태이기도 하다. 인간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갖가지 감정과 이해관계에 얽매이게 될 때 무질서와 혼란을 정리하는 가이는 이루어지기 힘들게 될 것이다. 퇴계는 이런 점을 걱정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보편적 기준으로 理를 선정하여 하나의 전 사회적인 통념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노후에도 불구하고 고봉과의 8년간에 걸친 힘겨운 논쟁에서도 끝까지 理의 순수한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것도 위와 같은 의도였을 것 같다.
주희는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로써 理를 강조했고,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 식으로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理에 접근하려 했고, 논리적 진리보다는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가치를 우선시 했는데, 이점은 퇴계에게서도 그러하다. 퇴계는 理를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높이려 하였다. 퇴계에게 있어 理란 도덕적인 기준이자 원칙인 것이다. 서로 잡다하게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으로써 理를 강조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봉과 율곡은 이와 생각이 다름은 이제까지 말해 온 바이다. 그러나 理를 중요시하는 것 까지 다르지는 않다. 또한 이들이라고 선을 이루기 위한 이상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논쟁의 주안점이 인위적인 진리가 아니라 정밀한 본체론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율곡은 천리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을 性이라 하고, 性과 氣를 합하여 한 몸의 주재가 된 것을 心이라 하며, 心이 사물에 응하여 밖으로 발동하는 것을 情이라한다. 이때 性은 心의 체가 되고, 情은 心의 用이 된다. 心은 이미 발한 것과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합하여 말하는 것으로써 心이 性과 情을 통섭한다. 心을 퇴계보다 강조하였지만 그렇다고 心則理라 하여 양명학이라 할 수도 없다.
사단칠정의 논쟁 중에 퇴계는 고봉에 대해 자꾸만 하나로 종합하려 하지 말고 구분지어 볼 것을 충고하고 있다. 우계와 율곡과의 논쟁에서도 우계는 율곡에게 자꾸만 급하게 하나로 일치시키지 말 것을 수차례 당부하고 율곡은 자신의 경솔한 성격 탓으로 그 탓을 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주희는 육구연과의 논쟁에서 평하길 육구연의 제자 중엔 실천적인 인물이 많다고 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心이나 氣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며 행동적인 면이 사색적인 면보다 많음을 알 수 있다.
극단적인 氣론자라 할 수 있는 허균은 매우 행동이 앞서는 인물이었다. 급한 성격과 행동의 빠름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연결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때문에 일단 지나친 비약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상인중 태양인은 화급한 성격을 소양인은 성급한 성격을 갖고 있다. 양인은 단순하고 화끈한 대신 원칙도 지조가 없고 말과 행동을 신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태음인은 좀 느린 면이 있고 소음인은 조용하고 침착한 편이지만 태음인만큼 느긋한 면은 덜 나타나고 조급한 면을 좀더 보이는 편이다. 대신 생각할 때는 일단 양보하고 내주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는 편이다. 태음인은 상대가 하는데도 내버려두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침착하다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음흉하고 속을 알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인의 성격적 특징 중 이런 면은 性일까? 情일까? 이런 것이 기질일까? 왜 율곡과 고봉은 性과 情을 자꾸만 하나로 종합시키려 했을까? 실제 그것이 그렇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퇴계나 우계, 주자는 그르다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면 서로 상대적인 두 의견이 모두 옳은 것일까? 그럼으로써 변증법적인 논리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째서 이조 500년을 통해 내로라하는 두 학자가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