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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2월 '쇼쇼쇼' 200회 특집방송. 사진 제공 김형찬 |
- 1964~1983년 TBC버라이어티쇼
- 식상한 포맷 파괴해 시청률 50%
- TV무용 도입, 동적인 무대 연출
- 뮤지컬·콩트 곁들인 파격까지
- 명사회자 곽규석 활약도 대단해
요즘 주말에 한국인들이 즐겨 보는 TV 오락프로는 MBC-TV의 '무한도전'과 KBS2-TV의 '해피선데이'인데 이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5% 정도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50%에 가까운 전설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쇼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것은 TBC-TV의 대표적인 주말 쇼프로그램 '쇼쇼쇼'였다.(이 방송은 일주일의 시차로 부산에서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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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태 PD. |
1960년대에 들어 한국의 방송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1961년 12월 31일 KBS-TV가 개국하며 본격적인 TV시대를 알렸고 이어서 MBC 라디오(61.12.2.), DBS 라디오(63.4.25)와 같은 민방라디오가 시작되며 라디오를 통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외국의 팝송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KBS-TV라는 공영방송의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은 1964년 12월 7일 개국한 최초의 민영방송 TBC-TV였다. 이런 분위기를 선도한 프로그램은 개국 다음 날인 12월8일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주말 대형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 '쇼쇼쇼'였다.
1964년 당시 KBS-TV에서는 '그랜드쇼' '올스타쇼'와 같은 쇼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진행 방식이 지극히 정적이고 딱딱했다. 천편일률적으로 고정된 엉성하게 제작된 세트에 식상한 가수들이 나와 별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무대매너로 노래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쇼쇼쇼'는 달랐다. 일단 가수 한 사람 당 조명, 세트, 안무를 모두 새롭게 제작해서 배치했다. 가수들은 그냥 뻣뻣이 서서 노래하지 않고 활발한 율동을 가미하여 동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속무용단이 선보이는 새로운 형태의 TV무용이 선도해 나갔다. 또한 가수가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짧은 콩트를 한다든지 아니면 뮤지컬 형태의 쇼프로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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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자 곽규석. |
한마디로 한국 쇼프로그램의 일대 혁신을 이룩한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포맷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6개월 정도는 전속가수 10명이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갔다. 1968년 중반쯤 '쇼쇼쇼'의 포맷은 본격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수와 중창을 합해 15명, 코미디언이 2~3명, 무용팀이 10여 명, 악단을 합하면 '쇼쇼쇼'에 출연하는 인원수만 해도 30여 명을 헤아리게 돼 일회 제작비만도 10여 만원(1968년 당시 쌀 한 가마 4600원)에 달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시작 때부터 사회를 맡았던 일명 '후라이보이'라고 불리는 명사회자 곽규석이었다. 그는 외국의 발전된 쇼와 같이 출연자의 쇼맨십과 연기·노래를 겸하는 탤런트를 강조했다. 세로줄 무늬의 바지와 미국 성조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스틱을 짚고 마치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뉴욕 뉴욕'을 부를 때는 가수 못지않았다. 곽규석의 전매특허인 원맨쇼 판토마임 피아노연주 '삼바 코바나'는 화면을 4등분해 각기 다른 옷을 입은 곽규석이 실제 피아노가 없이 동작으로만 피아노를 능청스럽게 연주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손에 강아지 인형을 쥐고 복화술로 마치 강아지와 곽규석이 재미있게 코메디를 연출하는 장면은 매회 웃음을 자아냈다.
'쇼쇼쇼'의 공신들은 또 있었다. 안무가 한익평 씨는 TV무용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에 새로운 무용을 연구하여 건전한 TV무용을 개척하여 '쇼쇼쇼'를 동적인 무대로 만들었다. 무대미술가 장종선 씨는 스티로폴이나 눈방울, 연기발생기 등 특수효과기구를 처음 도입했다.
'쇼쇼쇼'의 전체 포맷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프로를 담당했던 황정태 PD였다. 연세대 정치외교과를 졸업하고 TBC-TV 공채 1기로 입사해 처음부터 '쇼쇼쇼'를 맡아 1975년까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트로트를 배제하고 새로운 경향의 가수와 노래를 전격 수용했고 200회가 되는 1968년 말부터는 신인 발굴에 주력했다. 그 결과 조영남, 펄시스터즈, 김추자, 정훈희, 남진, 송창식, 윤형주, 장미화, 정미조와 같은 가수가 '쇼쇼쇼'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쇼쇼쇼'의 이런 새로운 개척정신은 1969년 개국한 민영방송 MBC-TV에 자극을 주어 TBC-TV에 필적할 만한 '그랜드쇼'라는 새로운 주말 쇼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그랜드쇼'는 당시에 새롭게 떠오르던 청년문화 세대를 겨냥해 젊은이들이 선호할 만한 가수들을 집중 출연시켜 '쇼쇼쇼'와 차별화를 해나갔다.
한국 쇼프로그램의 대명사 '쇼쇼쇼'도 세월이 흐르자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 1981년 컬러방송과 함께 시작된 MBC의 '쇼 2000'에 밀려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으며 1983년 7월 19일 913회를 끝으로 종영되었고 '쇼 일요특급'이 후속 프로그램으로 제작됨으로써 그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대중음악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