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주머니
김순덕
뜨개질을 하거나 벽걸이를 짜려고 수직 프레임에 실을 걸때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유년시절의 집은 기와도 얹지 못한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황토벽과 콩물을 먹인 장판에 창호지를 붙인 문이 특징인 그야말로 바람과 공기가 잘 통하는 친환경주택이었다. 하지만 단칸 셋방이라 여름에는 비좁고 더워 뜸질을 할 지경이었다. 또, 겨울에는 떠다놓은 자리끼와 빨아놓은 걸레가 얼 정도였으니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너무나 그리운 것이 있는데 창호지를 바른 문과 문고리다.
창호지문은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뚫는 재미도 쏠쏠해 장난기 많은 자식들의 손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여름이면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겨울이면 잠잘 때 코끝이 시릴 정도의 황소바람이 들어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곤 했다. 조금이라도 덜 뚫어지게 하려고 문고리 주변을 덧바르는데 아버지는 책갈피에 넣어 말린 잎새들로 운치 있게 만드셨다. 종이도 솜씨 좋게 오려붙이셨다.
봄과 가을이면 창호지가 너덜거리는 문짝들은 떼어져 벽에 기대어졌다. 언니들은 걸레에 물을 축여 묵은 종이를 벗겨내고 먼지를 닦았다. 아버지는 그 위에 풀칠을 하고 흰 창호지를 바르셨다. 깨끗이 빨아 물기가 있는 풀비로 창호지를 쓸어내리면 햇볕을 받아 마르면서 팽팽해지고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변했다.
제자리를 찾은 문은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한낮의 햇빛을 기억한다는 듯이 환하게 빛났다. 밤에 수월하게 문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빛을 머금은 창호지 덕분이었다. 우리 남매들은 그 하얀 문을 배경삼아 손가락 그림자놀이를 하며 자랐다. 햇살 가득 품은 창호지문은 밤의 두려움과 불안을 사라지게 하는 수호자였고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문이자 시간의 문이었다.
아버지는 창호지만 솜씨 좋게 붙이신 것이 아니었다. 문고리에 실을 걸어서 아버지만의 방법으로 무언가를 짜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곡식을 담는 자루를 봉했던 무명실을 모아두셨다가 꼬아서 문고리에 거셨다. 그 낡은 실들은 아버지 손에서 엮이고 매듭이 지어져서 안경집과 도장주머니라는 신기한 물건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중에서 나는 자그마한 도장주머니가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덜그럭 덜컥’ 문고리 소리가 거듭됨에 따라 형태가 잡혀진 주머니는 귀여운 술이 달린 끈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머니가 완성되면 나는 그것을 손가락에다 끼우고 까슬까슬한 감촉도 좋다면서 높이 치켜들고 뱅그르르 방안을 돌고는 했다. 아버지의 눈길이 부드럽고 자애롭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문고리는 연결된 끈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듯한 모습으로 예쁜 소품들을 탄생시켰고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아버지의 마법의 손과 문고리를 흠모했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 집의 형편도 나아져서 새롭게 장만한 집에 살게 되었다. 창호지가 발라진 문은 유리로 덮인 현대식 문으로 바뀌어졌다. 햇살 가득한 격자무늬 창호지 문을 보는 낙은 사라졌으나 아버지께서 도장주머니를 계속 짜셨기에 그 환상의 손재주를 보는 재미는 아직 남아있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도장을 마련하거나 새 도장이 생길 때마다 도장주머니를 짜셨던 아버지, 실을 거는 곳이 문고리에서 서랍장의 손잡이로 바뀌었을 뿐 피조물을 통해 연결된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여전하셨다. 나도 중학교 때 통장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도장을 가지게 되자 주머니를 받았다.
하지만 학교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것이 있어서 그 아름다운 도장주머니는 관심 밖으로 물러나버렸다. 아버지의 낡은 실보다 색색이 아름다운 색실로 놓인 수가 마음을 사로잡고 한 땀 한 땀 고운 바느질로 만들어진 저고리나 블라우스, 스커트가 도장주머니에 대한 관심을 앗아버렸다. 어린 시절을 마술적인 상상들로 이끌었던 아버지의 손재주는 2분의1로 축소된 옷들을 앙증맞게 만들어 내거나 전자 오르간을 치면서 신비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선생님들의 손재주로 대체되었다. 가끔 내가 쓰다가 남긴 색실로 도장주머니를 짜시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으나 그 손을 흠모했던 내 어린 날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다. 무언가를 만드시는 아버지 옆에 알짱대며 적으나마 이어지던 대화도 줄어만 갔다.
아버지께서 고희가 되시면서 기력이 쇠해져 한지로 책을 엮거나 도장주머니를 짜고 서예를 하시던 손길을 놓으셨다. 아버지가 짜주시던 올록볼록한 요철이 뚜렷했던 도장주머니는 닳아서 밋밋해졌고 아버지의 서릿발 같은 눈매도 생에 대한 연민을 삭이지 못해 한가득 머금은 눈물로 흐릿해졌다. 아버지는 지병인 당뇨와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1년간 자리를 보전하셨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해, 햇살 가득했던 날의 흰 창호지보다 더 하얀 눈길 너머 비탈진 산자락에 묻히셨다.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시던 어머니도 10년 후에 같은 곳으로 가셨다.
20대에 나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코바늘과 실을 가지고 도장주머니를 짰다. 남편의 도장주머니를 짜면서도 햇살에 빛나던 문의 창호지와 문고리에 매달려 덜그럭거리며 완성되어 가던 아버지의 소품들을 떠올렸다. 제일 처음 배울 공예로 수직공예를 택하였던 것은 유년의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도장주머니를 소중히 간직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며 추억의 시간을 되새긴다.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을 그리워하며 수직에 새기는 것도 날마다 다시 시작되는 일출이다. 이리도 그립고 짧게 느껴질 시간들일 줄 알았다면 문고리에 걸어 매듭지으시던 세심한 솜씨를 물려달라고 떼라도 써볼 것을...
첫댓글 " 아버지의 낡은 실보다 색색이 아름다운 색실로 놓인 수가 마음을 사로잡고 한 땀 한 땀 고운 바느질로 만들어진 저고리나 블라우스, 스커트가 도장주머니에 대한 관심을 앗아버렸다. 어린 시절을 마술적인 상상들로 이끌었던 아버지의 손재주는 2분의1로 축소된 옷들을 앙증맞게 만들어 내거나 전자 오르간을 치면서 신비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선생님들의 손재주로 대체되었다. 가끔 내가 쓰다가 남긴 색실로 도장주머니를 짜시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으나 그 손을 흠모했던 내 어린 날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다. 무언가를 만드시는 아버지 옆에 알짱대며 적으나마 이어지던 대화도 줄어만 갔다."
추석 며칠전이면 어머니께서 창호지문들을 마당에 모두 떼어놓고, 물을 풍겨 낡은옷을 벗기며 새옷을 입히기위해 꽃잎으로 문늬를 수놓던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의 사랑을 담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콩물먹인 장판, 국화꽃잎 넣어 바르던 문창호지 ..... 그옛날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은 아버님의 솜씨를 닮으셨군요. 아버님을 그리워하시는 선생님의 마음 잘 읽었습니다. 글도 잘쓰시구요. 건필하세요..
20대에 나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코바늘과 실을 가지고 도장주머니를 짰다. 남편의 도장주머니를 짜면서도 햇살에 빛나던 문의 창호지와 문고리에 매달려 덜그럭거리며 완성되어 가던 아버지의 소품들을 떠올렸다. 제일 처음 배울 공예로 수직공예를 택하였던 것은 유년의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도장주머니를 소중히 간직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며 추억의 시간을 되새긴다.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을 그리워하며 수직에 새기는 것도 날마다 다시 시작되는 일출이다, 아버님을 그리워 하는 글 감상 잘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간절하게 배여있는 글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선생님. 참으로 훌륭하셨던 아버님을 두셨던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문창호지 바르던날은~ 장독대 옆에 맨드라미와 잎을 따다가~ 무늬로 바르고 겨우내 맨드라미꽃을 보던 기억이 나네요. 옛 추억을 떠올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단풍잎이나 은행잎, 혹은 국화잎이나 구절초를 넣어 운치 있게 만드셨다.그 옛날을 그리게 한 글 깊은 감명을 느꼈습니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감사 함니다.
아버지의 세밀한 재주를 많이 닮으신듯 합니다 글 재주가 많으신 것을 보니...,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잊고 지난 문창호지 발랐던 꽃무늬를 생각하니 새삼 아쉬운 추억이네요. 건강하시고 건필 하세요.
아버지를 생각하시며 그리움을 펴보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도 곱습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우리속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 고마우신 아버지! 훌륭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선생님 모습에서 나타나 보인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한사람의 재능은 그냥 떨어지는게 아니지요.. 유전~~ 보았기에 할수있듯 ..어떤모습으로 비춰질까 아이들에게
추억과 미래를 생각해 볼수있는 계기가 좋읍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옛날 창호지로 문 바르고, 장판콩물로 예쁘게 하던 시절이 아련히 기억속에 젖어봅니다.선생님의 좋은글 갑사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답고도 애틋하게 표현하셨네요.
선생님은 특별히 아버지께 떼를 쓸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솜씨를 따님이 그다로 물려받은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에 잘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