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결혼식
결혼식 며칠 전 아버지는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는 집에 들어와서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결혼식에 안갈테니 알아서 치러라."
"아빠 많이 취하셨나 봐."
"아빠 안취했다 이녀석아."
며칠 뒤 결혼식을 치를 막내딸 송희는 아버지가 취기에 농담을 하
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게 아니고 너무 완강했다.막내딸은 그런
아버지에게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저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만드시려구요? 말도 안돼요."
"뭐라고 해도 난 안간다. 안가."
아버지는 연신 안간다는 말만 되풀이하시면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결혼식 날까지 아버지를 설득시키시겠다며 딸을 안심시켰
지만 그녀는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 아버지는 막내딸의 신랑될 사람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서운함과 사위에 대
한 욕심,말하자면 이런 것들 때문이었지 사위될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도 결혼 승낙 후에는 별말씀
이 없으셨다.그런데 결혼식 며칠 전에 이런 선언을 하시다니......
송희는 신랑될 사람 얼굴을 어떻게 볼지 걱정스러웠다.자기한테
불만이 있어서 아버지가 결혼식에 오지 않으신 거라고 생각하겠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아버지를 다시 한번
설득시킬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밤을 새운 송희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마루로 나갔다가 부모
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보, 도대체 왜 그래요. 당신 평생 후회하면서 살려고 그래요?"
"가나 안가나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뭐."
"그럼 가고 나서 후회하세요. 아이 체면도 생각하셔야죠."
"글세 내가 안가는게 송희 체면을 세워주는 일이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언제 송희가 당신 장애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
한 적이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송희는 친구들과 있다가 당신과 마주치면 언제나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당신을 소개했어요. 숨길 수도 있었고.피할
수도 있었는데 송희는 한번도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장애를 가지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는 당신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요. 그런 아이 가슴에 못을 박으시려는
거에요?"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이 울고 계신 것 같았다.
"내가, 왜 그걸 모르겠소. 당신도 내가 우리 막내딸을 얼마나
이뻐하는지 알잖소.그래서 더욱 안가겠다는 것이오.
지난번 숙희 결혼식 때 나는 결심했어요. 신랑신부 입장이야
요즘식대로 둘이 같이 들어가서 괜찮았지만 사진을 찍고 어쩌고
하느라고 결국 난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는 모습을 그 많은 사람
들한테 보여야 했소. 사람들이 속으로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는
것 같았소."
"당신 생각일 뿐이죠."
"그때 결심했어. 우리 막내딸 결혼식 때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
이오. 나 때문에 우리 송희가 시집 사람들한테 흉잡히게 할 수는 없
소. 몰라도 될 사람들까지 신부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그게 송희한테 좋을리 있겠소.나도 내가 장애인이란 사실이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고요."
"여보.......,"
어머니도 나지막히 흐느끼셨다.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희
는 소리내어 울면서 부모님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는 아버지 앞
에 무릎을 끓었다.
"아빠. 난 괜찮아. 아빠가 어떤 모습이어도 난 아빠가 자랑스러워.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송희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송희,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부등켜안고는
한참을 울었다.
사랑하는 막내딸의 결혼식 날, 하늘은 여느 때와 달리 유독 송희
아버지의 사랑만큼 높고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