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에게 그 길을 묻다
코로나 팬데믹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 속 여러 분야에 가져다준 다양한 변화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온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산더미 같은 숙제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있다. 한국 교회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긴 시간 동안 비대면 예배와 제한된 활동 등으로 침체된 교회의 영적 위기 극복을 위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들어선 한국 교회들은 “다시 부흥으로”(Revival), “다시 말씀으로”(Re-Bible), “다시 본질로”(Re-Ad Fontes) 등의 슬로건을 앞세우며 그 출구 찾기에 지혜와 힘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디 선교사가 있다.
로버트 하디 (Robert A. Hardie, 한국명 하리영, 1865-1949) 선교사는 1900년대 초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계기를 마련한 영적 지도자이다. 3년 간 원산 지역 선교를 위해 온힘을 쏟았음에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는 영적 침체에 빠진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회개와 그 가운데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은총이었다. 1903년, 회심 후 그는 예배에 모인 한국 교인들과 선교사들 앞에서 눈물로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 그의 영적각성은 도미노와 같이 한국 교인들과 선교사들의 공개적 회개로 이어졌고 그가 인도했던 개성, 서울, 평양 그리고 인천 지역의 사경회에서도 이러한 참회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하디로 시작된 한국 교회의 영적각성 운동은 1903년 원산 대부흥과 1907년 평양 대부흥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러한 교회의 부흥은 청년운동과 1919년 삼일운동 등을 통해 민족의 부흥을 이끌었다. (1904년 9천 명이었던 교인은 1910년 18만 명으로 성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올해는 하디 선교사의 영적각성으로 시작된 1903년 원산부흥운동 120 주년이 되는 해 이다. 감리교를 비롯한 여러 교단에서 초교파적으로 올해 하디 선교사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부흥과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하디 선교사에게 묻고 배우기 위해서 일 것이다.
꼭 10년 전, 우리 색동공동체는 원산부흥운동 110주년을 기념하며 ‘소설 하디’(도서출판kmc, 고진하 지음)를 통해 하디 선교사와 만난 경험이 있다. 감리교 출판국에서 주최한 독후감 공모가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는 단체상 1등, 개인상 3등으로 색동교회 역사에 남아 있다. 원산부흥운동 120주년을 기념하며 감리교 출판국이 ‘소설 하디’ 독후감 공모를 발표했다는 소식에 슬그머니 책장에 묻혀있던 10년 전 책을 꺼내 다시 속독했다. 속독 후 ‘다시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다짐은 어떤 이유에서 생겼을까? 속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읽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인 듯하다. 장소와 인물이 한반도, 선교사들과 조선인들로 바뀌었을 뿐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동일한 것 같다. 아울러 10년 전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하며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바로 하디와 12살 소년 셔우드 홀(Sherwood Hall)의 만남 장면이다. 셔우드 홀은 선교사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1932년,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던 그는 1941년 일본군에 의해 한국에서 추방되기 전까지 한국인의 결핵치료를 위해 헌신한 의료선교사로 사후 양화진에 묻힐 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이다. 평양에서 열린 사경회 후 열두 살배기 셔우드 홀이 하디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목사님 말씀을 듣는 동안 제 꿈이 바뀌었어요! 그동안 저는 서양에 가서 큰 사업가가 되어 부자로 살고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사업가 대신 의료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셔우드 홀은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셔우드 홀의 꿈을 변화시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만든 힘은 무엇일까? 우리 자녀들도 셔우드 홀 같은 멋진 꿈을 가지고 성장하고 또한 이루어 내는 그런 교회를 꿈꾸어 본다. 가슴 떨리는 설렘이 있지 않은가! 그 길을 하디에게 묻고 배워보자. 성령 강림절, 성령의 은총을 갈망하며 우리가 당장 ‘소설 하디’를 읽어야 할 이유이다.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의 은총을 입어 전적으로 거듭난 영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 이것이 곧 부흥이 아니겠습니까? 신자들만 많이 모이는 것이 부흥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실 만큼 변화된 신자들의 거룩한 삶이 부흥이라는 말입니다.” (소설 하디 中)
박희산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