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려 다른 분에게 부탁하고 당번을 쉴까 생각하다가 감기 정도로 해야할 일을 안한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으로 동검도에 왔다. 오는 길에 문득 웃기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느님 오늘은 감기 걸렸으니 감기 낫고 제 컨디션이 좋은 날 저를 데려가세요. 천국에 가서 감기 전염시킬까 걱정되서요.
동검도에 오면 일단 작은 채플에 가서 앉는다. 아늑하고 평화롭다. 왼쪽에 서있는 예수의 십자가상을 묵상한다. 추운 겨울에 벌거벗고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 내 겉옷이라도 벗어 덮어드리고 싶다.
오른쪽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묵상한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감동적인 사랑의 표현은 없다. 나이가 들어 칠십이 넘었는데도 아기처럼 어머님 품에 안기고 싶은 사랑의 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아직도 방황이 끝나지 않아서인가? 또다른 충동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듯 누군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끔이라도 이런 마음 자리에 들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거룩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바로 창 앞에는 벌거벗은 아카시아나무들이 서있다. 봄의 파릇함과 여름의 무성함과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다 벗어버리고 죽은 나무처럼 서있다. 높히 솟아있는 모습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 같다. 나이 들면 이렇게 거룩해져야 할텐데 내 속에는 아직도 꿈틀거리는 무엇인가가 있다.
갯벌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볼수록 아름답다. 나와 세상의 허물을 다 덮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이 눈이 되어 내린 것 같다. 저 갯벌로 뛰어나가 어린아이처럼 놀고 싶다.
멀리 마니산이 보인다. 단군이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나라를 세우고 제를 올렸다는 신비한 영산. 십여년간 해마다 신년이 되면 새해 첫날 친구들과 마니산에 올라 나와 이웃과 가정과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
하느님 동검도에 이렇게 아름다운 작은 채플을 주셔서 그 모든 아름다움을 통해 당신을 엿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상을 마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되있는 갤러리에 들어와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림들과 주변 풍경을 감상한다. 항상 창조하시는 하느님은 만물과 사람을 작품으로 창조하셔서 그 작품들을 통해 당신의 아름다음을 알게 하신다. 또한 사람을 자기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느님은 사람 속에 창조력을 주셔서 예술 작품들을 창조하게 하신다. 창조하는 인간처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것은 없다. 누구도 써본적이 없는 시를 쓰고 그려본 적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작곡해 본적이 없는 음악을 창작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얼굴을 신적인 작품으로 내 삶을 한편의 시와 노래로 창작할 수 있다면!
이층에도 작품들이 있는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정면에 있는 텅빈 액자다. 텅비어 있기 때문에 이 액자의 그림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그 그림은 하느님이 그리신다. 나도 나를 텅 비우면 하느님이 내 삶을 통해 매순간마다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실까?
첫댓글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에서 "사랑은 어떤 나이에도 찾아온다네" 라는 아리아가 생각납니다. 사랑은 인생 어느시기에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첫사랑을 시작하고 칠십, 팔십 어르신 들도 로맨틱한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너무 이른 사랑도, 너무 늦은 사랑도 없듯이 말이죠. "사랑이란 우리의 의지와는 별개로 불쑥 찾아왔다가 어느새인가 사라져 버리는 열병과도 같다." 스탕달의 말 입니다.
첫댓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에서 "사랑은 어떤 나이에도 찾아온다네" 라는 아리아가 생각납니다.
사랑은 인생 어느시기에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첫사랑을 시작하고 칠십, 팔십 어르신 들도 로맨틱한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너무 이른 사랑도, 너무 늦은 사랑도 없듯이 말이죠.
"사랑이란 우리의 의지와는 별개로 불쑥 찾아왔다가 어느새인가 사라져 버리는 열병과도 같다."
스탕달의 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