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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여기서는 물질의 생김jāti이라는 하나의 특징을, 최초로 형성·증대되는 측면인 생성upacaya과 그 발생이 계속 이어지는 측면인 상속santati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2. vatthu-dhamma
특징을 가진 토대가 되는 법 72가지를 설했다.
이제 경우에 따라 그들의 범주를 설하리라.
제6장까지에서 설해진 네 가지 구경법(paramattha) 가운데 추상적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72가지를 '토대가 되는 법(vatthudhammā)'이라 한다. 여기서 '토대(vatthu)'란 실재하는 단위(dabba, substance)를 지칭한다. 이 7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마음(citta)은 비록 89가지로 분류가 되지만 대상을 아는 것으로서는 하나의 고유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위이다.
(2) 52가지 마음부수(cetasikā)는 각각 다른 구경법이다. 이들은 각각 그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 18가지 구체적 물질(nipphanna-rūpa)은 같은 이유로 각각 다른 단위가 된다.
(4) 열반(nibbāna)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므로 하나의 단위로 취급한다.
10가지 추상적 물질(anipphanna-rūpa)은 구경법인 물질에서 설명이 되었지만 실재하는 단위(dabba)인 구체적 물질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토대가 되는 법에는 제외가 되고 위빳사나의 영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pp.99~100, 초기불전연구원(2020)
(3) 추상적 물질은 고유성질이 없는가
...CMA는 추상적 물질에는 고유성질이 없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레디 사야도는 『빠라맛타디빠니 띠까』 에서 추상적 물질이 고유성질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아래와 같이 강조하신다.
"그렇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이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따로 분리해서 이들이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거나 구경[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인습적 표현으로만 성취되는 성질을 넘어서서 순수한 법의 행처에 의해서 성취되는 구경[법]의 특징에 의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겨남의 특징이 없고 형성되지 않은 열반도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구경[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생겨남의 특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추상적 물질이라고 부를 뿐이지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PdṬ.289)
역자들은 레디 사야도의 이러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받아들여 추상적 물질도 고유성질을 가지며 그래서 구경법은 모두 82가지라고 인정한다. 물론 82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72가지만이 토대가 되는 법(vatthudhamma)이고 이 추상적 물질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추상적 물질들은 위빳사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레디 사야도는 "여기서 토대(vatthu)란 실재하는 단위(dabba, substance)를 지칭하는 것이다."(PdṬ.332)라고 토대를 정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실재하는 단위란 것은 자신의 특성을 통해(sarūpato) 얻을 수 있는 고유성질에만 적용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42~43, 초기불전연구원(2021)
Vatthu 라는 단어는 2가지 계통의 용례가 있다.
'토대'라는 번역은 여기서 두 번째 의미를 취한 번역이다. 그런데 레디 사야도 본인이 vatthu를 dabba(실체)로 주석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작동하는 의미는 첫 번째 '실물·실체'의 의미다. 즉 vatthu-dhammā는 맥락에 따라 번역하면 '토대가 되는 법'이라기보다 의미상 '실물로서 있는 법, 실재 단위인 법'에 가깝다. 여기서 vatthu는 심장토대 등의 '의지처'가 아니라 '실물'의 뜻이기 때문이다. Dabba의 어원은 '나무, 목재'의 의미를 가진 dru라고 한다. 의미 변천은 '나무로 된 것 → 재료·물질 → 실체·사물'이다. Dabba(실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위빳사나의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vatthu/dabba 자체가 ‘위빳사나의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이유는 72가지 가운데 열반도 하나의 vatthu-dhamma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무상·고·무아라는 삼특상으로 조사하는 유위법이 아니라, 도심과 과심이 대상으로 삼는 무위의 대상이다. 열반은 72가지 실물인 법에 포함되지만 위빳사나의 대상은 아니다. 무위법이므로 무상·고로 사유될sammasana 수 없다. 따라서 'vatthu-dhamma = 위빳사나 대상'이라고 동일시할 수는 없다. 반대로 주석은 18가지 구체적 물질을 sammasana-rūpa, 즉 ‘위빳사나로 숙고할 수 있는 물질’이라 하고, 그 이유를 그것들이 자기 성질로 식별되고 삼특상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따로 설명한다. 10가지 추상적 물질은 구체적 물질의 특징일 뿐 조건들에 의해 직접 산출되지 않으므로 이 범주에서 제외된다.
인용문의 “이들은 인습적 표현으로만 성취되는 성질을 넘어서서 순수한 법의 행처에 의해서 성취되는 구경[법]의 특징에 의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겨남의 특징이 없고 형성되지 않은 열반도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구경[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문장은 아래와 같은 뜻이다.
이어서 인용문의 “그러므로 단지 생겨남의 특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추상적 물질이라고 부를 뿐이지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장 역시 같은 독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석서들에서는 lakkhaṇa를 sāmañña와 sabhāva 둘로 나눈다. 즉 주석서에서 lakkhaṇa와 sabhāva는 항상 함께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청정도론에서는 추상적 물질 각각에 대해서도 네 가지 정의를 실제로 부여한다. 이것 역시 "고유성질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레디 사야도 주장의 실질적 지지대이기도 하다.
다만 인용문 말미의 "이러한 실재하는 단위란 것은 자신의 특성을 통해(sarūpato) 얻을 수 있는 고유성질에만 적용된다"는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 물질은 고유성질을 갖지만 sarūpato(제 모습 그대로)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허공의 요소는 언제나 '깔라빠들 사이의 한정'이고, 가벼움은 '물질의 가벼움'이며, 생성은 '물질이 일어남'이다. 항상 구체적 물질에 기생적으로만 파악되고, 독립된 항목으로 떼어낼 수 없다. 그래서 dabba가 아니고, 따라서 위빳사나가 하나의 관찰 단위로 붙잡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고유성질sabhāva이라는 것도 사실상 이 문맥에서는 두 층위를 구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인용문은 다음 세 층위를 구분하고 있다.
레디 사야도와 역자들은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1번이 아니라 2번에 놓는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는 구경법이지만, 3번의 vatthu-dhamma/dabba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추상적 물질은 위빳사나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넓게 읽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정확한 의미는 "추상적 물질을 구체적 물질과 별개의 독립된 법으로 세워 놓고, 그것에 다시 무상·고·무아를 적용하여 숙고하지는 않는다."에 가깝다. 수행자는 당연히 위빳사나 수행에서 구체적 물질의 생겨남, 연속적인 새 발생, 쇠퇴, 소멸을 식별한다. 그러나 그때 식별되는 것은 구체적 물질의 생멸이다. ‘무상함이라는 물질’ 하나가 별도로 생겼다가 다시 무상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추상적 물질은 위빳사나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가 아니라, “추상적 물질은 독립된 sammasana-dhamma로서 따로 삼특상을 적용받는 대상은 아니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는 18가지 구체적 물질이 자기 성질로 식별되고 삼특상 숙고에 적합하기 때문에 sammasana-rūpa라고 불린다는 상가하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3. ākāsa-dhātu
8. 한정하는 물질(pariccheda-rūpa):
'한정'으로 옮긴 pariccheda는 pari(둘레에)+√chid(to cut)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둘레를 자르다'는 문자적인 뜻에서 '한정, 제한, 범위, 경계, 한계, 크기' 등을 뜻한다. 여기서는 한정하는 그 성질을 물질로 간주하여 pariccheda-rūpa로 표현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허공의 요소(ākāsa-dhātu)'를 들고 있다.
허공의 요소(ākāsa-dhātu):
...불교에서는 허공을 물질을 한정(pariccheda)하는 기능으로 파악하여 근본물질로는 인정하지 않고 추상적 물질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한정하는 요소가 없이는 물질의 최소 단위들이 여러 가지로 모여서 한 특정한 형색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크기를 가진 그런 단위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제어는 pariccheda(한정, 범위를 정함)로 하고 내용으로는 허공의 요소(ākāsa-dhātu)라 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청정도론 XIV]: "63. 허공의 요소(ākāsa-dhātu)의 특징은 물질의 범위를 정하는 것(한정하는 것, pariccheda)이다. 물질의 경계(pariyanta)를 보여주는 것이 그 역할이다. 물질의 한계(mariyādā)로 나타난다. 또는 닿지 않는 상태와 구멍과 공간의 상태로 나타난다. 한정된 물질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 허공의 요소 때문에 한정된 물질들에 대해 이것은 저것보다 위이고, 아래이며, 맞은편이라고 한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pp.49~50, 초기불전연구원(2020)
ākāsa의 어원은 ā(향하여)+√kāś(빛나다, 드러나 보이다)이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환히 드러난 열린 것, 빛이 걸림 없이 통하는 것'이며, 여기서 '막히지 않은 것 → 트인 것 →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참고로 아비담마에서 ākāsa의 용례는 다른 것도 있다.
수행의 맥락에서 ākāsa-dhātu의 쓰임은 깔라빠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이다. 물질의 범위를 한정한다는 말은 하나의 루빠 깔라빠를 다른 루빠 깔라빠와 구별되게 한다는 뜻이다. rūpa-kalāpa-pariccheda, 즉 ‘물질의 집단인 깔라빠를 한정함’이다. 깔라빠 A가 깔라빠 B와 하나로 붙어 있지 않고, 각각 한정되어 있다는 경계·비접촉·틈의 양상/양태를 ākāsa-dhātu라고 부른다. 허공은 생겨난 물질 집단들의 경계 양상이다. 깔라빠들이 서로 닿지 않고 각각 한정되어 있다는 그 양상이 허공의 요소로 파악된다. 그래서 이 요소는 한정된 물질을 가까운 원인으로 삼으며, 언제나 무엇의 사이인가에 따라 규정된다. 수행에서 깔라빠를 쪼개어 볼 수 있는 것은 이 경계 양상을 붙들기 때문이다.
깔라빠 안에는 허공의 요소가 없다. 특히 avinibbhoga라는 낱말 자체는 '분리할 수 없는(不可分)'이라는 뜻으로, 이 여덟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분의 물질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깔라빠 안은 무엇으로 구별하는가? 고유특성sabhāva-lakkhaṇa으로 구별한다. 깔라빠들과 달리 공간적 분리가 아니라 성질의 차이로 구별한다. 깔라빠 안의 여덟은 나란히 늘어선 여덟 개의 알갱이가 아니라 동일한 깔라빠에서 함께 일어나 함께 멸하는, 서로 다른 여덟 가지 성질이다. 이것을 '작은 알갱이 여덟 개가 붙어 있는 것'으로 그리면 그것이 바로 깨야 할 무리의 응집samūha-ghana이다.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물질들은 함께 생기고, 함께 소멸하며, 동일한 깔라빠의 사대요소에 의존하고, 함께 존재한다. 여기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지혜로 서로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발생할 때 실제로 서로 떨어져 하나씩 단독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의 동일한 발생 집단에서 땅·물·불·바람·색깔·냄새·맛·영양소가 서로 다른 기능과 특징을 가지면서 함께 생긴다. 이들은 같은 공간 안에 들어 있는 여덟 개의 작은 알갱이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 발생 안에서 서로 환원되지 않는 여덟 가지 궁극적 현상이다. 마음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 심찰나에 마음과 함께 느낌·지각·의도·접촉 등이 생길 때, 느낌과 지각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느낌은 ‘대상을 경험하는 기능’, 지각은 ‘표지를 취하는 기능’, 의도는 ‘함께 생긴 법들을 조직하는 기능’으로 구별된다. 깔라빠 내부의 물질도 이와 비슷하다.
사대명상에서도 사대의 구별은 딱딱함·거침·무거움 또는 부드러움·매끄러움·가벼움(땅), 흐름·응집(물), 뜨거움·차가움(불), 지탱·밀어냄(바람)이라는 특성으로 갈라진다. 땅의 요소가 깔라빠의 왼쪽에 있고 물의 요소가 오른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깔라빠에서 단단하게 하는 현상, 응집하게 하는 현상, 온도를 이루는 현상, 지탱하고 미는 현상을 서로 다른 고유 작용으로 판별한다. 색깔, 냄새, 맛, 영양소를 식별하는 것에서는 기능rasa이 동원된다. 따라서 이 고유성질의 구별에 특성만이 아니라 기능·나타남·가까운 원인의 네 장치가 모두 동원되며, 견청정diṭṭhi-visuddhi의 정의 자체가 정확히 이것이다. 특징·기능·나타남·가까운 원인에 의해 정신과 물질을 파악하는 것을 견청정이라 한다.
핵심은 허공의 요소가 데려다주는 곳까지가 깔라빠이고, 거기까지는 아직 구경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깔라빠들이 매우 빠르게 생멸하는 것을 처음 알아차리게 되지만 생멸에 많은 주의를 두지 말고 각 깔라빠 안의 사대를 계속 관찰하라고 말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깔라빠에 머무르면 여전히 개념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수단은 허공이 아니라 특성이다. 허공의 요소는 깔라빠와 깔라빠를 경계 짓고(깔라빠를 한정하고), 한 깔라빠 안의 여러 궁극적 물질들은 허공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특징과 기능으로 구별된다. 허공으로는 ‘깔라빠와 깔라빠’를 구별하고, 고유성질로는 ‘한 깔라빠 안의 법과 법’을 구별한다. 비유하자면 한 방울의 오렌지 주스(하나의 깔라빠) 안에는 '물(액체)', '단맛', '신맛', '노란색', '오렌지 향'이 섞여 있다. 우리는 칼로 이 주스 방울을 쪼개어 단맛과 신맛 사이에 빈 공간(허공)을 만들어서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혀와 코와 눈이라는 감각 기능을 통해 액체의 성질, 단맛의 고유성질, 신맛의 고유성질, 색깔의 고유성질을 특징lakkhaṇa으로 각각 인식(식별)하여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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