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성곽 *
일 시 :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오전 09:30 ~ 오후 2:30
장 소 : 서울 성곽 ( 안국동 -> 와룡공원 -> 말바위 안내소 -> 혜화문 -> 낙산 ->흥인지문 )
오전 9시 30분에 광화문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할 말이 없다.
정말 약속시간에 도착을 못한 것은 일정에 큰 차질을 빚고, 폐를 끼치는 행동이다. 그래서 하루종일 자숙하는 마음으로 맨 뒤에서 눈에 띄이지 않게 따라 다녔다. 그래서 오덕만 선생님을 놓치기도 했다. 그래도 반성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12월을 맞아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신영주 선생님의 완전군장(?) 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복장 그리고 몇몇 분들의 등산화를 보며, 설마 설마 했다.
항상 속담이나 격언에는 진리가 있다. " 설마가 사람 잡는다 ! "
안국역 2번 출구에서 2번 버스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 - 맞나요? 를 구불구불 올라 와룡공원이라는 초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 내렸다.
수원에서는 아직 볼 수 없었던 눈 쌓인 산을 탔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여, 도성을 쌓기 시작하여 1395년까지 완성을 보았다고 한다.
오늘 돌아 볼 서울의 성곽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북 -> 백악산(북악산), 동 -> 낙산, 서 -> 인왕산, 남 -> 목멱산 (남산) 을 연결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 ~ 지금은 많은 부분이 없어지고, 볼 수 없는 구간이 많다. 한양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이렇게 생긴 관광지도가 있는데, 입수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위의 큰 동그라미에서 오른쪽의 큰 동그라미까지 걸었다.
4대문 - 숭례문(남), 흥인지문(동), 숙정문(북), 돈의문(서) 4소문 -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 소의문
말바위 안내소에서 멀리 보이는 숙정문은 월요일이라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지 못했다. 아쉽기도 했지만, 웬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다음에는 꼭 가보고 싶다. 진짜로
성곽은 태조, 세종, 숙종 그리고 1975년대에 대대적으로 축성과 보수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시대별로 성곽의 쌓여진 모습이 중간중간에 비교할 수 있었다.
난 아직 그런 내공이 쌓이지 않아서 아! 다른 시대에 축성되었구나! 로 만족을 했다.
작은 돌로 허튼층 쌓기를 한 부분은 태조 때 축성 된 것이고, 조금은 큰 돌로 바른층 쌓기를 한 부분은 세종 때 축성 된 부분이다. 그리고 네모 반듯한 돌로 축성된 부분은 숙종 때 축성 되었다고 한다. (맞죠?)
성곽을 따라 성북동 공원까지 내려오다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접하자, 서울의 성곽이 이렇게도 관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마리를 찾아 탐색을 했다. 사실 오덕만 선생님이 탐색하시고, 우리는 그냥 봤다. 그리고 안타까워 했다.
보라! 조선의 성곽으로 튼튼하게 지어진 고등학교의 담장과 두산빌라의 축대를 ~
혜화문에 도착했다. 혜화문의 원래 이름은 홍화문이었다가 흠 ~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소문이지만 북대문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혜화문은 1930년대에 일본에 의해 문루가 헐렸던 것을 근래에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복원을 했다.
복원은 원래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것인데,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위의 문루와 아랫부분이 웬지 발란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도로에서 혜화문 뒷편으로 올라가는 입구 문은 들어서면 캔디나 안소니가 나올 법한 문 같았다.
혜화문을 지나 대학로길로 들어섰다. 배가 고팠다. 돈가스와 라멘을 파는 일식 식당에서 일식 돈가스와 한국식 돈가스의 차이를 생강절임과 단무지의 차이라고 우기며..... ( 이 글을 정리하며 찾아보니 1. 잘라서 나오고 통째로 나오고, 2. 국과 같이 먹고 스프와 같이 먹고, 3. 소스를 찍어 먹고 소스를 덮어서 같이 먹는 이 정도 차이 ? )
또한 " 시장이 반찬이다' 의 명 속담을 되새겼다.
대학로 골목길로 들어서며 '낙산공원'을 찾아 들어갔다. 한양의 동쪽을 에워싸는 낙산에 공원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낙산공원에서 걸어 온 길을 돌아보았다. 동대문까지 가서 흥인지문(동대문)의 모습을 감상하고,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던 곳으로 이동을 했다.
복잡한 시내로 들어서자 북악산 '날랜 다람쥐' 처럼 움직이시는 선생님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대문 운동장은 1925년 일제에 의해 건립되었다가 2007년 철거
[ 이간수문 ] [ 유선형으로 생긴 수문 받침돌 ]
발굴된 이간수문을 보면서 수원화성의 북수문인 홍예문을 기억했다 이곳의 크기에 비하면 수원화성의 수문은 미니어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흐름을 고려한 유선형의 받침돌은 홍예문 수문의 받침돌과 같이 조상들의 과학적인 설계를 뒷받침한다.
이곳을 발굴하면서 집자리터가 나왔는데, 규모와 발굴된 유물로 조선 때의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기와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을 받는 배수관, 건물로 들어가는 길의 아름다움 큰 솥을 걸었던 자리 등등
[ 건물 자리 ] [ 배수로 자리 ]
[ 보도를 아름답게 꾸며놓음 ] [ 큰 솥을 걸었던 자리 ]
동대문 역사관에 들어가서 한양전도를 보며 오늘의 활동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내 다리에게 감사했다.
하도감과 이간수문의 3D 영상복원을 볼 수 있는 영상관에 앉아서 슬쩍 옆에 있는 컴퓨터로 나만의 도자기 만들기를 했다.
아! 다리가 너무 아팠다. 쉴 새 없이 10시 출발을 해서 2시 까지 산을 오르고 내리며 서울 성곽을 돌아보았다. 다리도 쉴 겸 근처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했다.
처음 오늘의 일정을 말씀해 주시는 오덕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죽었구나! ( 과격한가요? 아님 아! 살아돌아 올 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을 하며 출발했는데, (예정했던 일정을 본인의 과실로 축소가 되었지만) 조선의 수도 한양의 성곽을 면면히 그 역사와 함께 돌아보며 밟아 온 길이 한편이 역사 파노라마 처럼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과장이라면 내 다리의 수고에 감사를 했다. 이렇게 볼 수 있었던 것을.... 늦게 도착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다음에 이어질 서울 성곽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헤어졌다. 정말로.....
|
|